수능을 치른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입 수능시험을 보았구나.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은 수능 3일 전인 11월 9일이다. 수능을 앞둔 너에게 특별한 말을 하는 것이 행여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하지 못하고, 수능시험을 마친 후 네가 보게끔 이 편지를 쓴다. 네가 태어날 때 네 엄마 옆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죄인 것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남들처럼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잘 키우거나, 다른 부모처럼 너를 극성스럽게 과외를 시키거나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히 계획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게끔 이끌어 주지도 못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너는 큰 걱정 끼치지 않고 초·중·고등학교를 마쳤지. 한때 나만의 과욕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너를 외국유학 보냈다가 1년 만에 다시 유턴하게 한 일, 그래서 너보다 1년 후배인 아이들하고 같은 학년을 다니게 한 일 등이 모두 다 나의 책임인 것 같구나.

 

수험생활 과정에 어려움을 같이 못한 것도 미안하다. 외로운 시험 준비 과정에 자주 격려의 말도 못했구나. 아버지도 너의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다 경험했으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너의 수능 준비 과정을 보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졌단다. 또 너는 작년에 한 번 수능을 본 적이 있지 않느냐. 그때는 네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서 다시 도전을 해 보겠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재수를 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 아버지로서는 내심 많은 걱정도 했었단다.

 

네가 이 편지를 읽는 때는 시험이 끝났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수능성적이 좋고, 수능성적이 좋아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틀에 박힌 말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아들아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다.

 

“시험 잘 보았니? 몇 점 정도 나올 것 같니?” 같은 질문은 하지 않겠다. 아들아, 조만간 나올 결과인 수능성적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좋든 나쁘든 네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에 대한 결과 아니겠니. 대입 수능시험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인생 여정에서 겪을 수많은 시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네가 인생에서 보람 있게 살고 못 살고는 그러한 수많은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고 잘 치르느냐에 달려 있단다.

 

그런 시험들에는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등 너와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시험도 있고, 좁게는 가족, 이웃, 넓게는 사회, 국가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 시험도 있단다. 단 하루에 평가하는 수능시험은 너의 인생을 평가하는 시험들에 비하면 오히려 쉽다고도 할 수 있지.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 왔고, 너도 너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이렇게 시험이 끝난 지금이구나. 네가 시험 준비를 할 때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혹시 네가 시험 준비를 게을리 할까 봐. 이제 너도 성인이 다 되었으니 네 방식대로의 인생을 살거라. 그렇다고 네 멋대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 네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라는 것이다.

 

아버지도 인생을 살면서 그때 그때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더 나은 현재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배운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단다. 이제는 너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가 대입시험을 볼 때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셨을 거라고 이제야 깨닫는구나. 너도 언젠가는 지금 아버지의 마음을 알 날이 있을 것이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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