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오후의 책방,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 책들을 뒤지고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나들이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영롱합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엄마들은 자애롭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지혜와 지식과 정보를 분출해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새로운 진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출판인들이 책방거리를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방 100개’를 여는 프로젝트입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출판사들의 건물마다 책방을 개설해, 책의 거리·책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입니다.
세계인이 늘 찾는 ‘지식창고’ 조성
모든 문화·예술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어디 문화·예술뿐입니까. 반듯한 경제와 과학, 민주적인 정치와 사회란 당초부터 책 없이 불가능합니다. 이런저런 문제와 콘텐츠를 담론하고 담아내는 출판행위, 그 행위의 구체적 성과인 한 권의 책, 그 책을 읽는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기획하는 ‘100개의 책방거리’는 책방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화랑과 북카페와 담론장이 함께 들어섭니다. 책을 살펴보고, 그림을 보고,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생각하면서 휴식합니다. 작금의 세계와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계적 도시들은 책방거리를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랑합니다. 새책과 고서들을 취급하는 서점들이 즐비해 있는 도쿄의 진보초 책방거리는 세계시민들을 황홀하게 합니다. 세계의 유수 대학 앞에는 책방들이 즐비합니다. 책방 없는 대학이란 당초부터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청계천변에는 책방들이 끝없이 있었습니다. 청계천을 새로 만들면서 이 거리를 살리기는커녕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인사동에도 고서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두 개가 겨우 존명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앞에도 책방거리는 없습니다. 대학이 밀집해 있는 신촌에도 없습니다.
책은 우리 삶의 에너지이자 희망
책방이란 총체적인 교육·문화·예술공간입니다.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시민들을 키워내는 교육장입니다. 국가·사회 발전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살아 있는 지식창고입니다. 문화 인프라입니다.
향후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에서는 실로 경이로운 프로그램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출판사들이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자사의 책들을 한껏 보여줄 수 있습니다. 헌책과 고서들을 취급하는 서점들도 물론 들어섭니다.
출판사와 서점들이 ‘저자와 독자의 대화’를 공동기획하게 되면, 수십 개의 서점에서 동시에 대화와 담론의 축제가 펼쳐집니다. ‘올해의 책’ 축제도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특별 전시하는 축제도 벌일 수 있습니다. 음식과 생명을 주제로 하는 책 전시와 담론은 그야말로 신나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태평양 연안도시 포틀랜드의 중심에 파울스 서점이 있습니다. 한 블록이 전부 서점입니다. 책의 천국입니다. 이런저런 책의 행사가 열립니다. 헌책들도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독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유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포틀랜드는 이 서점을 ‘문화특구’처럼 사랑하고 배려하는 정책을 폅니다.
세계인들이 늘 찾는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세계시민들은 친구가 됩니다. 평화와 생명의 문제를 함께 토론할 것입니다. 책은 삶의 에너지이자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