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카메라를 들고 교정에 핀 꽃을 찾아다니노라면 누군가 보고서 의외란 듯 꽃 사진을 다 찍느냐고 하면서, 사진을 좀 보여 달란다. 휴일이나 일요일에 산이나 들을 돌아다니다 찍은 것들까지 보여주면 참 예쁘다고, 솜씨가 좋다고, 작품화 할 거냐고 묻는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태연한 척 그냥 좋아서 찍어보는 거라고,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쑥스럽고 민망함에 가슴 속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동무 따라 강남 가듯 얼떨결에 사진 강좌 몇 번 나가서 설명 듣고 함께 어울려 출사라는 것을 해보는 과정에서 조금씩 재미를 느끼게 되었었다. 처음에는 인물이나 풍경을 찍으면서 똑같은 대상을 어떤 각도에서 어떤 구도로 포착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이치를 깨달은 듯 스스로 흐뭇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의 각도를 의식하게 되고 화면에 담긴 연출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꽃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이따금 혼자서도 산이나 들을 돌아다니다가 들꽃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촬영했던 것이 사진으로 잘 나오면 좋기는 하지만 별로 집착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관찰하여 충실하게 기록해 두자는 의도나, 영상미를 구현하려는 욕심에서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렌즈를 통해서 들여다보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 황홀감에 사로잡힐 뿐이다. 솜씨가 서툴어서도 그렇겠지만 사진으로 완성된 꽃들은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여태껏 관심을 갖지 않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또 맨눈으로 잘 포착되지 않던 것들이 카메라를 매개로 해서 나에게로 왔고, 그리하여 나의 눈과 마음이 더 환하게 열린 것 같은 그 느낌이 좋다.
아주 작은 꽃들을 보면서 그들도 갖출 것을 모두 갖추고, 그 작은 꽃잎, 꽃 술 하나하나가 그렇게 정교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모양이나 색깔, 매달린 자리가 모두 다르면서도 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제각기 풍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감히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한 때 장미의 조형성을 예찬한 시를 읽고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장미이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려했던 허식과 오만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요즈음은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 청소년들을 보면서도 그 꽃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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