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건너뛰기

‘요즘은 서바이벌이 유행이다’는 식으로 ‘유행’이란 말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다. 시대감각에 따라 사회 전체에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드는 유행은 전염병에 가깝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흉내 내며 닮아가는 가운데 쓰나미에 쓸려가듯 서로 감염된다. 사전을 찾아보면 유행이나 전염병이나 신드롬이나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일본과 동남아를 휩쓴 ‘겨울연가’, 유럽에서 인기 폭발이라는 ‘케이팝’과 브라운관을 들썩이게 ‘나는 가수다’, 겨우내 축산농가를 떨게 했던 구제역 등이 유행이고 신드롬이고 전염병이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유행은 한 시대의 일시적인 흐름으로 수명의 차이만 있을 뿐, 또 다른 물결에 의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가나 공공정책이 유행의 물결에 편승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자칫하면 정책의 오류를 가져오거나 다수 국민이 피해를 보는 합병증에 걸릴 수도 있다.

 

유행에 감염되는 문화정책

 

예컨대 국회에서 어느 의원이 “요즘 케이팝이 유럽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는데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해당 국무위원은 뭐라고 답할까? “한류문화 확대를 위한 국가 홍보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이미 관련 기관을 통해 어쩌고저쩌고…” 라는 답변이 나오고 관련 기관에서는 지원책을 마련하느라고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

 

또 언제부터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문화예술을 중시했다고 저마다 예술촌, 엑스포도 많고 비엔날레도 많다. 텅 빈 콘텐츠 전시관들을 지나치다 보면 한숨도 안 나온다. 문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산업’으로 인식되면서부터 예견된 실수다. 문화의 이름을 팔아 누가 이득을 봤을까?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문화산업, 대중적 관심에서 떨어져 있는 예술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한 사례를 굳이 들먹일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인문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모든 사회현상을 문화라고 하지만 범위를 좁혀 보자. 경기도의 수많은 문화행사 가운데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다. 올해도 71개국에서 1천875명의 작가가 3천362점을 출품, 해마다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2년에 한 번 씩 열리는 비엔날레에는 300만명이나 찾아온다. 옹기 청자 엑스포까지 생기고 도예촌도 여러 곳에 조성된다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점에는 멜라민 밥그릇을 집어던지며 씻을 정도로 도자기엔 관심조차 없다. 생활문화 속에 도자문화가 파고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행사 따로 생활 따로,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혼이 담긴 우리 도자’라는 따로국밥같은 문화행사가 줄을 잇는다.

 

유행 넘어야 미래가 보여

 

문화행사도 유행의 일종이다. 그러나 축제나 행사에 예산을 쓰는 이들은 일시적인 성공에 눈이 멀기 쉽다. 많은 돈을 퍼붓고도 여운이 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자축제가 끝나면 도예인들의 삶의 질과 창작환경이 좋아지고 생활문화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예술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이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도자비엔날레가 10년이나 지속되었는데도 한국의 도자문화가 세계는커녕 국내인들에게조차 관심이 없다. 너무 예술행사 또는 이벤트에만 골몰한 탓이 아닐까?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문화예술 행사는 평범한 생활인들에게 예술가의 혼이 스며들게 하여 품격을 높여 준다. 미술행사가 지속되면 집집마다 아름다운 매력이 흘러넘치고, 음악공연이 많은 도시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활력소가 된다. 올 가을 열릴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모양이다. 연례행사를 지속한다는 의무감이나 유행을 넘어 여운을 오래 남기는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보여지길 기대해 본다.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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