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에 있는 내 작업실에는 도깨비 방망이 하나가 있다. 십오년 전 쯤 충무의 어느 허름한 기념품 가게에서 구한 나무방망이다. 길이가 1미터 쯤 되는데 얼마나 풍상을 겪었는지 옹이가 수천 개는 족히 박혀있고 모양새는 소시지처럼 살짝 휘어 있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나무방망이를 삼만오천원이나 주고 샀다. 생김새는 여지없이 도깨비 방망이다.
“일이 잘 풀릴 땐 자중하라고 ‘뚝딱!’, 안 되는 일이 많을 땐 걱정 말라고 ‘뚝딱!’” 도깨비 방망이에는 이런 글을 써서 천정에 매달아 두었다.
살아가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진학할 때, 취직할 때, 결혼할 때, 여행할 때, 심지어 점심식사를 할 때도 ‘자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를 두고 잠시나마 망설인다. 비 예보가 있는데 우산을 들고 나갈까, 두고 나갈까?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것이 선택의 길이다. 선택의 순간은 매우 짧지만 선택을 위한 판단과 고민의 시간은 길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도 선택의 결과물이다. 잘된 선택은 성공, 그릇된 선택은 실패란 결과로 남는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희망으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성공과 실패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지혜를 주는 좌우명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판단과 선택기준이 있다. 전공이나 직업, 종교, 조직, 정파의 이념에 따라 기준도 다르다. 나름의 좌우명을 새겨두기도 한다. 어느 날,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데 느닷없이 “당신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좌우명이 없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짧게 대답했다.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만나는 건 운명이다. 그냥 모두 딛고 넘어 간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한 것이었다. 남이섬 대표를 맡은 이후 숱한 선택의 갈림길을 만났다. 천박하지만 돈 되는 유원지를 유지할 것이냐, 사업성은 적지만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관광지로 바꿀 것이냐? 시설을 늘리느냐 자연을 살리느냐? 눈앞의 이익이냐, 미래가치냐?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
조직사회에서 리더의 선택은 결재란 이름으로 남는다. 사업의 성패는 물론 조직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기직 리더들은 백년대계를 중시하면서도 단기효과에 치중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당년도 성과가 리더의 평가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이 단기적인 전시효과 중심의 반짝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한국도자재단이 전년도 경기도 내 공공기관 평가에서 꼴찌를 했다. 단기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중장기 정책사업 기반조성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성과를 계측할 수 없는 공원 녹화사업까지 시작됐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천·광주·여주의 도자문화 시설물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휴양지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 선택의 결과를 어디 집중할 것인가? 대개 집중력은 목적지를 향하게 마련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도처에 있어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병법의 하나다. 나무를 심는 조경사업과 도자진흥이라는 문화사업은 다르다. 세계도자비엔날레라는 국제행사와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아스팔트 광장에 전시관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면 누가 찾을까? 서쪽이 없다면 동쪽에서 뜨는 해는 어디로 질까? 목표지점의 반대편에 집중해야 하는 지금은 융합의 시대다.
전혀 다른 이질문화가 서로 섞이고 재분해 융합되어 제 3의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빠르고 도깨비처럼 변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의 보존이 변화를 거부할 명분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시대감각의 변화에 용해되지 못하거나 나이 먹고 경험 많다고 고집만 부린다면 자신도 모르게 ‘꼰대’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게 될지 모른다. 변화를 따르는 건 선택이고 집중력은 성동격서의 자신감을 실현시키는 도깨비 방망이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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