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떠나는 것들

가만히 보면 모든 것들은 한없이 느리게 떠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걸 가까이 하게 되면 그것들은 훼손되고, 훼손되면 떠날 준비를 하도록 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그리고 느리게 죽음의 충동까지 느끼며 쫓겨나는 마음으로 떠난다.

 

우린 아무 준비 없이 헤어지면서 당혹해 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사랑했던 연인들이 울고불고 야단스럽게 이별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랑과 연결되었던 관계의 알갱이들이 서로 손을 놓고 그 모서리를 서로가 조금씩 부스러뜨리고 있었던 것을 미처 느끼지 않았을 뿐이란 걸 알게 된다.

 

허둥대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슬픈 해체는 이루어진다. 미세한 구성입자들은 항상 헤어지려는 꿈을 꾸며 얼마 후 멀어져야 한다는 슬픈 조짐을 만들고 있다. 어떤 사물의 상태에 외형적인 금이 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쓸쓸함이 뒤따른다.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이 서로 닿을 때부터 이것들은 계산속에 있었어야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너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신음조차 흘러나올 수 없다.

 

모든 현상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어

 

한밤중 잠을 깨보면 내 얼굴 위로 무엇인가 떨어져 내림을 느낀다. 보일락 말락한 먼지들, 오래된 파리똥, 모기가 먹다 묻힌 혈액의 말라버린 분말, 삭은 종이의 작은 귀퉁이 부분들…….

 

만져지지 않는 것들의 끊임없는 이별, 이 작은 이별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한 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잠을 설치고 우울해할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내 주위의 것들이 하나씩 둘씩, 아니 이제는 아주 잡을 수 없이 무더기로 나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내고 별안간 쓸쓸한 마음으로 어두워질 때가 있다. 기존의 것들이 지녔던 허위들이 우리를 반성시키기 보다는 쓸쓸함 쪽으로 해석하려한다.

 

얼마나 활기있게 시작되었던 것들인가?

 

규칙성 및 상호주관성에 의해서 ‘사라짐’, 사물의 소멸, 주체였던 것들의 삭아짐, 자연의 몬순적 주기에 순응했던 농경민의 철학이 아직도 나에게는 생소하기만하다.

 

처음에 세차게 깍지끼고 시작했던 것들에게 요즈음 호되게 실망 당한다. 이 절망스런 해체에 대한 처리 방법을 우리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헤매고만 있다.

 

느리게 떠나고 있는 것들에게 이미 발버둥 칠 수 없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느리게 진행되는 결핍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은 대상들은 언제나 나와 하나일 수도 없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우리를 외면하려는 것들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지우지 못한다. 빳빳하게 한 번 마주쳤던 것들을 우리는 오늘도 독하게 사랑한다.

 

허둥대는 사이 슬픈해체는 이뤄져

 

요즘 설거지를 하면서도 느리게 떠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용해 보이는 듯해도 가슴으로 침식해 들어오는 심심치 않은 크고 작은 사라짐의 사건들이 나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날은 꼬박 밤을 샐 때도 있다. 느리게 진행하며 만들어낸 이별이 사실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옴을 알 것 같다.

 

한 시인은 말하기를 ‘산은 어디서 보아도 대지의 아문 상처처럼 보인다’ 고 했다. 상처의 크기를 존재의 크기로 보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산에 가던 것을 요즘은 못 가게 되었다. 못 갈 때에는 오랫동안 산을 바라본다. 그 느리게 아문 상처의 빛남을 바라본다.   최문자  협성대총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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