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생각한다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을 다녀왔습니다. ‘젊은 부산’을 상징하는 광복동에 인접해 있습니다. 6·25피난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이제 60년의 연륜을 쌓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책은 살아야 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다양한 문화축제를 펼칩니다.

 

좁은 골목에 어깨를 하고 60여 서점이 늘어서 있는 보수동을 저는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찾아가곤 했습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책들, 서가에 촘촘하게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펼쳐보곤 했습니다. 저 책들을 온통 내 자취방으로 옮겨 놓고는 그 책들 속에 파묻히고 싶었습니다. 책을 잘 사지도 않으면서 너무 자주 찾아가 책을 뒤적거려 책방 주인의 시선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보수동 책방들의 풍경은 저의 가슴과 머리에 깊고도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헌책들과 고서들이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존재와 가치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전쟁과 피난의 시절, 임시 수도 부산에서 책을 팔고 책을 읽는 그 풍경이란 슬프고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문화와 정신이 깃든 ‘책방거리’

 

불현듯 달려간 보수동 책방골목은 저를 다시 학창시절로 안내했습니다. 헌책의 향기가 저를 유혹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사람들이 이런저런 책방들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맞은편 책방에서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버지의 흐뭇한 모습을 바라다 볼 수 있었습니다.

 

보수동에서 35년째 충남서점을 경영하는 남명섭 사장과 인사했습니다. 2009년도 보수동 책방골목 축제를 이끌기도 한 그는 좋은 책 펴내는 한길사 사장님이라면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한길사가 80년대에 펴낸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와 하우저의 ‘예술의 사회학’ 등이 꽂혀 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책들을 서점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유별합니다. 한길사의 헌책들은 잘 나오지도 않지만 인기목록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올해 여덟 번째를 맞는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축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습니다. 부산시민들이 아끼는 축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점인들과 문화인들이 손을 잡고, 부산시도 응원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찾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그래서 낭만적인 축제의 공간, 열려 있는 문화의 공간이 됩니다.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청계천 책방거리를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아니 저뿐이겠습니까. 청계천 책방들은 우리들의 지식의 고향이었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책을 싸게 공급해 주는 청계천 책방들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책 체험·책 읽기를 했습니다.

 

여러 해 전 새 청계천을 만들면서 서울시는 그 서점들을 살려내지 못하고 없애버렸습니다. 문화 민족·문화 국가임을 그렇게 소리 높이 외치면서, 막상 문화와 교양의 상징이자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책방들을 몰락시켰습니다. 저는 그때 청계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책방거리를 온존시켜야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의 문화 책방의 거리는 개발의 논리에 사정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이 땅의 정신사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는 청계천 책방거리의 그 빛나던 풍경은 지금 우리들에게 그리운 기억으로만 존재합니다.

 

개발논리 휩쓸리지 말고 보전해야

 

‘책을 만드는’ 파주출판도시를 독자들과 함께 ‘책을 만나는 공간’으로 진화시키는 일을 출판계 동료들과 기획하면서, 세계의 책방마을과 책방거리를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영국 웨일즈의 책방마을 헤이온와이를 다시 다녀오고, 도쿄의 간다 책방거리를 새삼 살펴봅니다. 인류정신문명의 위대한 유산을 담고 있는 고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토론을 펼칩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이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한 권의 책, 하나의 책방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문화와 정신의 힘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은 책방거리를 정책으로 보호합니다. 책방들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는 빈 깡통 같은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만들기는, 보다 차원 높은 문화공동체의 논리와 당위를 갖습니다.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문화공동체를 구현하는, 문화 인프라로 구현되는 프로그램입니다. 보수동의 책방골목의 존재와 발전을 현장 답사하면서,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를 만드는 출판인들의 문제 의식을 다시 확인합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ㆍ책축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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