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일 아침에 예배가 한창 진행 중에 안내위원이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을 교회 앞자리로 모시고 나온다. 보기에도 몸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연세가 많으신 뿐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옆에 앉은 젊은 여 집사님이 성경도 찾아드리고 열심히 예배를 도와드렸다. 예배 시간 내내 열심히 따라 하신다. 찬송 부르는 시간에도 열심히 입술로 읊조리면서 따라 부르시고 설교시간에도 고개를 끄떡끄떡하시면서 아멘도 하신다. 우리 교회는 헌금 시간이 따로 없고 자율이기는 하지만 헌금봉투도 준비를 해 가지고 오셔서 예배 후에 안내위원에게 맡기신다. 예배 후에 새 신자 접견실에서 상담을 했다. 교회에 나오시게 된 동기는 손자가 교회 앞 현관까지 데려다 줘서 나오시게 되었다고 하신다. 성함을 물으니 “김달자” 연세를 물으니 “몰라요” 주소는 “몰라요” 글자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신단다. 그저 아는 것은 성함 석 자와 큰 길 건너 빌라 3층에 살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해서 왔다고 하신다. 예배 후에 안내위원이 집까지 바래다 드렸다.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꼬박꼬박 나오셨다. 그저 성함만 “김 달자” 성도님으로 2년 남짓 교회에 출석하셨다. 거의 매주일 빠지지 않으시고 출석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 시간이 넘는 예배시간 동안 앉아 있으려면 힘도 드실 텐데 전혀 불편한 내색 안 하시고 꾸준히 출석하셨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 드리고 가시는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이셨는데 그 다음 월요일 전에 왔던 뇌경색이 다시 재발하여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한 달여 계시다가 지난 17일 급기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장례를 치러 드렸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 석 자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뿐이었다. 지방에서 도시에 나와 직장 생활하는 손자 밥해 주시기 위해 와 계시는 동안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열심을 다해 신앙 생활을 하셨던 것이다.
이름 석자와 예수만 알던 할머니
인생은 살아가는 동안 하루해가 지면 돌아갈 내 집이 있어야 한다. 크든 작든 내 한 몸 편히 하룻밤 안식할 가정이 있어야 한다. 한평생 일생을 다 살고 난 후에는 돌아갈 본향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인생은 나그네요 거류민일 수밖에 없다.
하늘의 태양을 우리 육안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 번뿐이다. 아침에 동녘하늘에 붉게 떠오르는 시간과 저녁에 서산으로 붉게 물들이며 지는 시간이다. 한낮에는 너무 밝아서 육안으로 자세히 볼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생 동안 그 사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때는 어머니 자궁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날 때요, 또 한 번은 이 세상에서의 생을 다하고 떠나갈 때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사람을 가리고 있고 치장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천국으로 돌아가던 뒷모습 아름다워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떠나가는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요즘은 성형 기술이 발달해 나이를 감추고 젊게 보이게 하는 기술이 놀랄 만하다. 그러나 성형을 해서 앞에선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고 젊게 보이도록 꾸며도 돌아서서 걸어가는 모습은 속일 수 없다. 뒷모습은 성형이 안 된다. 하루해가 져서 돌아갈 집이 없는 이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외롭고 적막함이란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일생을 다하고 돌아갈 본향이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보라. 그 망망한 길을 누가 동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 세상 것은 그저 이름 석 자만 기억하고 사셨던 김달자 할머니,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긴 호흡 몰아쉬며 희미한 정신 가다듬고 몇 번이고 두 눈을 꼭 감아 보이며 어서 천국 가고 싶다고 하셨던 김달자 할머니, 당신은 뒷모습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반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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