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자서전은 합법, 공약집은 불법인 이상한 선거법

코미디 한 편 소개할까 한다. 정치인의 자서전은 합법이고, 공약집은 불법이라면 믿겠는가? 어이없게도 현행 공직선거법을 살펴보면 내용도 비슷하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자서전 발간은 합법이고,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담은 공약도서는 불법이다. 2008년 2월 공직선거법 제60조의 4, 제66조 등의 매니페스토 관련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및 지방자치단체장 예비후보자는 공약집(공약도서)을 발간 및 판매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이 법안에서 쏙 빠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자서전은 대부분 홍보할 것만 주로 쓰고 부끄러운 것은 덮어버리는 자화자찬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일반 서점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다만,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는 후원금 모금 창구로 이용될 뿐이다. 이에 반해 공약집(공약도서)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유권자와의 약속과 핵심정책을 담아야 하기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으면 도서 출간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예비후보자가 공약집을 출간할 경우 선거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뿐더러 선거 후에도 깐깐한 공약이행검증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법권 남용이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정책공약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고, 입법권을 위임받은 의원들은 자화자찬이 가득하고 후원금 모금에도 용이한 자서전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지난해 4ㆍ11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 지난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의 정책공약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성숙한 선거문화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였다. 그러나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양상이 180도 바뀌었다. 후보 간 상호 비방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면서 정책과 공약 대결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무참히 깨버린 19대 국회. 툭 하면 불거지는 지방의원의 유착비리, 기대에 못 미치는 의정활동과 예산낭비,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상한 선거법으로 계속 선거를 치러서 되겠는가? 다행인 것은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의원 등 28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법안 개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 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매니페스토 연구회 창립 토론회에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면 공약집(공약도서)을 발간, 판매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개정법 안을 제시했다. 국회 정개특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고, 연구회도 발족되었으니 매니페스토 관련법이 개정되리라 기대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자서전은 합법이고 공약집은 불법인 공직선거법 개정을 지방의원이 선도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권력이 더 막강해지고 부패한 토호세력의 발호로 지역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방의원들은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줄을 서야 하고 그로 인해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펼칠 수 없었노라 목소리를 높였었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자서전은 합법이고, 지역주민과의 소중한 약속을 구체적으로 담은 공약집은 불법인 이상한 선거법을 이번에는 꼭 고쳐야 한다. 툭하면 동네북 취급받는 국회와 지방의회, 이번에는 매니페스토 관련법 개정을 선도하여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보는 게 어떤지 묻는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언젠가 내 학생 하나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왔다. 그 말은 영화 봄날은 간다 덕분에 유명해졌단다. 근데 자신은 사랑이 변한다고 생각한단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은 변하기 때문에 첫사랑은 만들어진 것이다, 라는 말도 나왔으리라. 사랑이 들어간 글을 보면서 나는 직업정신이 발동하여 사랑이 서사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흔히 사랑은 확인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내지는 대상이 서로 마주칠 때, 마주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 어떻게 부딪치는가에 따라 사랑도 서사가 될 수 있다. 텔레비전의 어떤 연속극 대사 가운데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인구에 회자 된 적이 있다. 그 연속극이 상당히 오래 전에 방영되었음에도 지금의 젊은 학생들도 그 말을 알고 있다. 그들 말대로 하면 명대사여서 그렇단다. 이미 어록이 되었나보다. 나는 이 말에서 서사를 느낀다. 만약에 남자가 여자에게 내가 너를 무지 사랑하는데하면서 건성으로 혹은 지나가는 말로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확인하려들었다면 사실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을 사랑이라 하며 확인하려들면 절대 서사가 안 일어난다.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말을 쓰지만 사랑임을 알 수 있을 때 서사는 일어난다. 상대방이 다쳐서 아플 때, 나도 몹시 아프면 그때 사랑이 발생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의 관계성이 입증되며 서로 마주하는 상응성이 생기기 때문. 사건이 발생하는 것, 그게 서사일 터.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분명 사랑은 확인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사랑의 사건을 일으켜 서사를 발생시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이라는 말을 써서 사랑의 상태를 확인하면 감동도 안 일어나지만 구체적인 사건이 없어서 서사가 안 일어난다. 구체적인 사건이 없을 때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남발하게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라면 민이 주인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민이 주인으로서 벌이는 일이어야 서사가 일어나며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추상적인 민주주의라는 말만 마냥 들먹인다고 민주주의 세상이 오는 것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알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면 감동적인 서사가 일어난다. 법도 마찬가지일 터. 법적 안정을 위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한다며 법이라는 명사를 마구 들먹인다고 감동적인 서사가 일어날까? 법이라는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법을 생활 속 여기저기서 느낄 때 서사가 일어나며 법적 안정이 실현된다. 너무 많은 추상적인 말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적인 말은 어떤 서사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사가 있어야 감동을 받는다.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사회복지사도 복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현장이 요동치고 있다. 서비스 공급자도, 이용자도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사회복지 서비스 총량은 확대되었으나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경제적 상황은 정부 및 지자체의 재정 여건 악화를 불러오고 있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 서비스 축소와 취소 현상도 빈번해지고 있다. 복지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크게 높아졌는데 실제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복지공약 남발과 동시에 세금은 최대한 적게 내고, 서비스는 받고 싶은 대로 다 누리고 싶은 국민들의 과도한 복지 욕구도 문제로 보인다. 올해 초 보건복지노동 예산으로 책정된 돈이 103조원으로 복지예산 100조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호들갑스러울 때만해도, 특히 보건복지부 예산도 이 어려운 때에 41조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해도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 복지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복지의 최우선 영역인 복지 사각지대는 줄지 않고 있다. 전국적으로 대략 410여만명이 자격기준 미달로 기초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만 해도, 최저생계 수준에 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이 17만4천여가구 28만6천500여명이며 경기도 차상위계층은 비수급 빈곤층과 최저생계비 120% 이하 계층을 합하여 45만3천7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기도에 거주하는 노인, 아동, 장애인의 28%인 약 103만여명이 복지 사각지대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들은 예견된 일이었다. 아무리 전체 복지 예산이 크다고 해도, 실상은 소득계층과 무관하게 보육료 및 양육비 지원으로 보육예산이 가장 많이 증가(34.8%)했다. 더욱이 공약 중심의 예산 배정으로 최저빈곤층을 위한 의료급여 등 시급한 예산이 삭감되는 상위 30% 예산을 위해 최빈곤층 3%가 희생하는 구조였음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사고는 누가 치고, 일을 추스르는 쪽은 누구인가? 진짜 문제는 일선 사회복지사들이 크게 소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온갖 불만과 민원들을 최초로 접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공과 민간 영역 모두, 사회복지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자살과 58.4%에 달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심각한 이직 현상 등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 실무자들은 요즘 일할 맛이 안 난다. 지난 11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들의 평균 임금은 196만원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 평균 임금(약 243만원)의 80%에 불과했다. 특히 사회복지사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 신체적 안전도 위협받고 있었다. 사회복지서비스의 확충과 서비스 내용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도 좋다. 민관 협력을 통한 효과적인 사례관리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은 너무도 유용한 일이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사회복지서비스를 실제 수행하는 사회복지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업무와 삶을 존중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서비스이용자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정작 자기 복지는 뒷전에 두고 살게끔 해선 안 될 것이다. 요즘 같으면 사회복지사를 양성하는 교수로 사는 것이 제자들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이준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침을 열면서]큐슈-야마구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진정성’ 있어야

지난 11월22일 서울 국립 고궁박물관에서는 강제동원 관련 일본 큐슈-야마구치 일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지들의 진실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주제의 국제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의 역사보전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한국과 일본의 관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본에서 2009년부터 2015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규슈 야마구치 일원의 산업유산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진정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일본 정부는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2013년도 9월17일에 정부 추천 안건으로 결정하고, 약 2주 후인 9월30일에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 일본이 평가하고 있는 규슈-야마구치 일원의 가치는 국가와 민간자본의 통합을 통해 일본 근대화와 산업개발의 기반을 제공한 아시아 최초의 다양한 근대산업유산이 집합된 중공업 관련 지역으로, 가장 단기간에 산업화를 달성한 곳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845개소의 조선인 강제동원 노역장이 있었던 일본 최대의 징용지대였다. 또한 등재 추진 중인 단위유산 26개 중 17개소는 징용의 현장이거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포, 총탄류, 군함 등의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군수산업시설, 또는 전쟁을 위한 석탄, 철 등을 생산하는 연료공급지였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공식 확인된 사망자가 1천983명, 행방불명자가 513명이며 그 외의 피해자도 3만5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징용관련 사실을 노출하지 않고 기술차원의 기능적 당위성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면 진정성(authenticity)의 확보가 필수조건이다. 진정성은 진짜와 진실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집단 학살수용소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s Birkenau)는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우슈비츠는 독일 제3제국에 존재했던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였던 곳으로, 요새화된 벽, 철조망, 발사대, 막사,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 대량학살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우슈비츠는 자유로운 행동과 사상을 억압하고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고 했던 나치 독일의 시도에 끔찍한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강한 인간정신을 기념하며, 유대인 대학살, 인종차별 정책, 인간의 야만성을 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장소로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의 전제에는 철저한 반성과 진실한 사죄가 있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과거 일본이 한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정권을 중심으로 일부 정치인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큐슈-야마구치 일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먼저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유네스코 위원회와 같은 국제적 기구를 통해 세계에 알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일본에 피해를 입었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조체계 마련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연계하여 국무총리실의 일제강제동원희생자에 대한 연구진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련 연구재단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더불어 우리나라도 국내에 산재해있는 산업유산에 대한 검증과 보존체계를 갖추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함께 승리하는 통일정책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치적 현안들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사안에 따라서 여야 간의 대립이 격화되기도 하고 긍정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입장에 대한 표명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은 아직은 어렵고 멀게 보이지만 우리가 꼭 가야 할 길입니다. 저는 반드시 임기 중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그러면 제가 제안한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해서 부산을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평화통일의 길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표현과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상황은 대륙에 붙어 있는 섬 아닌 섬의 모습이다. 말이 대륙국가이지 대륙으로 통하는 길은 완전히 휴전선으로 봉쇄되어 있어 대륙으로 가려면 배를 이용해야 하는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섬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대륙국가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고 또한 대륙의 이점을 활용해야 하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통일문제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우선 피곤함을 느낀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최근에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은 통일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불필요성은 증가하고 있다.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점점 증가하여 2013년 현재 25%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간 우리가 영원히 섬나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우리는 통일문제하면 당장의 통일비용이 어떻고 또 북한의 경제문제 해결은 물론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삶을 살았던 그들과의 복잡한 화해 등 온통 어지러운 상상만이 먼저 들어온다. 그러니 당연히 통일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통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제이고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업이라면 완성된 통일이 아닌 시작하는 통일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시작하는 통일은 남과 북의 공동번영을 이끄는 것이라는 각성에서 출발한다. 세계는 지금 저성장의 덫에 걸려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성장동력을 찾아 나서고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경제구조상의 한계가 너무도 명백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제한된 자원 속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북쪽으로의 난 창을 연다면 오히려 현대판 황금의 도시인 엘도라도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육로를 통한 중국과 러시아로의 진출이라는 새로운 길은 분명 우리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줄 수 있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력은 세계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양질에 저임금이 가능함이 확인되었다. 부산항에서 나진항을 통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탄다면 남북은 가만히 앉아서 세계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데 북한의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윈윈전략은 없을 것이다. 만약에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완성되고 해주에 제2의 개성공단이 들어선다면 지금 연평도 앞바다에서는 조기잡이가 한창일 것이다. 평화와 안전 그리고 공동번영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이를 극복하고 함께 승리하는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을 기대한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거대 정당의 꼼수,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

우리는 곧잘 정의와 공평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서도 익숙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믿는다. 선거에서 의석수순 방식으로 전국을 통일하여 기호배정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기에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검은 카르텔이 존재한다.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권력행위자와 그들의 권력관계에 따른 산물이지 결코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행 선거법상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에서 제1당과 제2당은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추천하기 때문에 1번과 2번의 기호를 받지만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군소 정당은 선거구별로 투표용지 기호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연히 전국적으로 1번과 2번의 기호를 부여받지만 그밖에 군소 정당들과 무소속 후보들은 선거구별로 기호가 달라진다. 공평하지 못한 제도다. 정치 지체를 부추기는 문제도 있다. 현행 방식은 기성 제도정치권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으로 거대 정당이 1, 2위를 싹쓸이 할 수 있었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관행적으로 1번과 2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기성 제도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질타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기대하였던 대안세력의 약진과 정치 독과점 완화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기호배정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성 제도정치권이 스스로 정치개혁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오랫동안 변함없이 적용되었는데 과민반응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추첨으로 기호를 정했다. 기호추첨과 의석수순에 의한 통일기호 부여방식을 오갔다. 다만, 현행의 방식으로 고착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진행된 당시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의 8인 정치회담의 결과였다. 당시 해체위기를 벗어나려는 민정당과 개헌의 주도권을 쥐려는 민주당에 의해 권력 나누기의 이해가 작동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 등 외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을 적용하고 있을까. 아니다. 선거 결과를 인위적으로 왜곡하지 못하게 철저한 무작위 추첨방식을 사용한다. 일본의 지방선거는 투표결과 왜곡의 문제 때문에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직접 후보의 이름을 쓰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는 후보자의 게재순서를 투표용지마다 기계적으로 바꿔 기호 순번이 빠를수록 당선이 유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투표용지가 원형으로 되어있어 기호1번과 기호2번의 프리미엄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두고 누가 정의롭고 공평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기성 제도정치권이 민의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다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부상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유권자의 명령,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비민주적이고 오만불통의 정치가 가능한 이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공평하지 못한 선거법은 위헌이다. 선거결과는 민의가 투영되어야 한다.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결과를 왜곡시키는 현재의 투표용지 기호배정 방식은 유권자의 매서운 회초리를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거대 정당의 꼼수임을 고발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노출증과 관음증의 평범성

유대계의 독일 정치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주구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남겼는데 거기서 악의 평범성에 대한 말을 했다.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아이히만은 위에서 시킨 대로 했고, 알고 보면 좋은 아버지였으며 가족을 위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단다. 그는 명령대로만 살았다. 말하자면 생각 없이(요즘 아이들 말로 개념 없이!) 살았다. 악은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니고 있단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떠올리자 노출증과 관음증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같이 따라 나온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보자.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기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린 사람이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다 알 수 있다. 누가 묻거나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노출 시킨다. 노출의 평범성이다. 노출이 일상화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다. 관음증은 어떤가?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랑방이나 우물터나 빨래터의 수다가 있었고, 텔레비전의 연속극이 인기를 끌었다. 그게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지금은 어떤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씹어야 심심하지 않고 자신이 위로가 되는 세상이다. 대중은 관음증을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트위터는 장터에 나가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소리치는 것과 닮았다. 페이스북은 저녁에 사랑방에 마실 가서 하루 종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거나 타인의 소식을 듣거나, 아침에 샘가에 물 길러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지상에서 겨우 마흔 살을 살고 간 카프카가 작품 수보다 훨씬 더 많게 천 통 넘는 편지를 남긴 것은 무얼 의미할까? 편지의 수신인은 친구, 연인, 가족, 일과 얽힌 사람들이었다. 그걸 이상한 열정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도 작품으로 쓰지 못한 노출증과 관음증에 빠져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노출 시키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되레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자기의 사후 저작물을 다 불 태우라고 친구에게 부탁한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야기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목매고 있어 남의 이야기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이야기 속에는 노출증과 관음증이 같이 들어 있다. 작가는 둘을 잘 버무려 좋은 이야기가 되게 하기도 한다. 그 반면에 국정원 같은 빅 브라더는 평범한 노출증과 관음증에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만든다. 이른바 억압하기 위한 조작이다. 노출증과 관음증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인데 말이다. 어떤 억압도 인간에겐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빅 브라더 같은 기관들은 억압 하고 싶어 한다. 그런 기관들의 부당한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는 이는 뜻밖에도 아이히만 같은 인간들이다. 주변에선 다 사람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기에 악의 편이 되었다. 그래서 95살로 거의 한 세기를 살고 간 스테판 에셀은 90살 넘어서 분노하라는 에세이를 썼을 것이다. 자신이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과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을 보면 늙은 몸의 피도 끓었다. 악은 평범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탄식조로 노래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결코 생각 없이 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한국수어법’은 꼭 제정되어야 한다

지난 10월 22일은 음성언어인 한국어를 대신하여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농인들에게는 감격스런 날이다. 바로 한국수어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지금까지 수화는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단죄되거나 폄하되어 온 대표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수어가 아닌 수화로 명명되어 왔다. 수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아직도 우리나라는 농인을 재활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려 한다. 그래서 농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당연히 언어적 재활과 치료에만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농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각적인 정보수용이나 농인의 특성에 적합한 정보제공 등은 외면 받고, 그 결과 한국수어 사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농인들 자신은 수어에 의한 완벽한 언어 기능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수어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농인들은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이다. 문제는 농인들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을 무능한 것으로 치부하는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교육, 취업, 정보접근, 문화향유, 지역사회 참여 등 전 영역에서 농인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사회 인식 및 제도와 교육 및 문화 환경 등에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수어법 제정은 향후 농인 복지와 교육이 바로 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어가 언어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수어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 관련법 등 농인에 차별적인 제도들에 대한 개정 운동이 뒤따라 일어나고 그 다음 사회적 서비스들의 개선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음성언어가 주류인 우리 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장애로 인해 다양한 정보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농인들에게 수어통역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이 보다 더 법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정말 수어는 언어인가?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국수어법 제정을 향한 확고한 명분이 생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답이지만 또 한 번 강조하면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다른 독자 체계를 지니는 언어가 맞다! 한국수어에는 분명한 음운구조가 있다. 극히 제한된 요소와 그 조합이라고 하는 구조를 그 언어의 음운구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어를 모양 짓는 요소가 소리는 아니지만 구조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동일함으로 수어에도 음운구조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수어에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문법이 있다. 문장을 만들 때의 구조를 문법이라고 하는데, 한국수어에도 문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한국수어가 언어라는 논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국가는 언어인 수어를 공식적ㆍ제도적ㆍ사회문화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 시작이 한국수어법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청각장애학교 15곳의 교사 391명 가운데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가진 교원은 24명으로 6.1%에 불과했다. 더 이상 수화를 못하는 교사들이 농인들을 가르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국내 청각장애인이 28여만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 176곳의 수화통역센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농인들을 상담하거나 심리치료를 할 경우에도 우선적으로 수어 사용 가능 여부부터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농인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어통역을 권리적인 차원에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농인들이 더 이상 사회적 취약계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제발 간절히 바란다. 법안 제출로 끝나지 않고, 한국수어법이 현실에서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이준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공공 공간의 공익성 확보 사전 대비 필요

지난 10월7일, 제5회 2013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이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됐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국토와 도시의 대외경쟁력 강화 및 국격 향상을 목표로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은 우리의 국토가 아름답고 쾌적하며 친환경적이고 친인간적인, 그리고 효율성과 지역성을 갖춘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 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이 자리에는 미국과 중국의 도시계획 전문가를 초청하여 국토도시 디자인의 세계적인 추세와 전망을 논의하는 정책포럼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와 건설사에서 시행한 사업 가운데 우수한 디자인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기념식 등이 마련되었다. 이날 대통령상을 수상한 충청북도 충주시의 달천역 문화디자인은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공간 조성사업으로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용인시의 하수처리시설 부지에 건축된 복합 문화시설인 용인 아르피아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대규모 하수처리시설은 주민 기피시설로서 도심지 외곽에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주민들과의 원만한 갈등 조정을 통하여 도심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주민의 휴식장소로서 공원과 운동시설 및 편익시설을 조성하여 혐오시설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공공공간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이어진 도시 공공공간의 디자인 전략에 대한 포럼에서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제롤드 케이든 교수가 뉴욕시의 공공공간 이용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며 도시 내 공개공지의 효율적 관리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뉴욕시의 공개공지는 약 503개의 이르며 조닝 인센티브는 약 2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중 약 16%만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공간일 뿐, 대부분의 공개공지가 건축주의 사유공간으로 점유되고 있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뉴욕시에서는 관련법을 개정하여 1975년 공개공지에 대한 심의기준과 관리규정을 만들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공개공지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시민을 위한 공공공간이라는 표지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였고, 둘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자를 설치하거나 예술공간과 조경시설을 마련하여 시민의 편익을 도모하였으며, 셋째, 모든 공개공지에 대한 상세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넷째, 공공공간의 활용실태를 기록하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등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했다. 케이든 교수는 서울시 중심의 어느 기업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고 기부채납한 공개공지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공공공간이 사적으로 점유되고 있는 사례를 설명했다. 건축물의 전면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바람직한 공공공간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후면의 공개공지는 기업의 사유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미국의 경우와 같이 공공공간의 이용에 대한 명확한 원칙설정과 유지관리에 대한 규정 마련 등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외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듯이 우리도 공공공간의 공익성 확보에 대한 사전 대비를 할 필요가 있고,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통해 매력과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우종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아침을 열면서] 이 사실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

태종 이방원은 1, 2차 왕자의 난으로 엄청난 피를 묻히고 왕위에 오른 조선의 3대 군주였다. 그런 그가 즉위 4년(1404)에 노루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평생을 싸움터에서 단련된 그에게는 치욕스러운 상황이었다. 신하들이 걱정하며 임금을 일으켜 세우자 그의 첫 마디는 뜻밖에도 이 일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였다. 태종은 창피한 자신의 모습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관은 그날의 일을 너무나 정확히 기록했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은 임금의 지근거리에서 임금의 행적을 기록하는 자를 말하며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사초(史草)라 부르고 이를 모아 임금이 죽은 뒤에 편찬한 책을 실록이라고 한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인데 그것의 기초작업을 하는 사람을 사관이라고 한 것이다. 사관은 예문관의 봉교, 대교 그리고 검열이라는 자리로 각기 정7품, 정8품, 정9품으로 매우 낮은 등급이었다. 그러나 품계상으로는 말단이었지만 한번 제수되면 가문의 영광이 되니 누구나 열망하는 직책이었다. 사관이 기록한 사초에는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였으며 혹 수정을 하거나 변조, 누설하였을 경우에는 참형에 처해졌다. 사헌부나 사간원의 대간에게 탄핵을 당하면 더 이상의 관료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사관이 작성한 사초에서 비판을 받으면 현직은 유지할 수 있을지라도 후세까지 영원히 그 욕됨이 기록되므로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러니 신하들은 물론 임금까지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오직 사관뿐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 사관제도를 둔 이유는 선왕의 업적을 정리한다는 명분과 함께 당시의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왕들과 역사의 교훈을 준다는 보다 큰 뜻이 있었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관제도를 두었지만 오직 우리나라만이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졌었다. 그랬기에 왕조의 역사가 타국가와 달리 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의 전통을 가진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 실종문제로 여야 간의 사초폐기 논쟁이 치열했었다. 다소 야당이 밀리는 듯하더니 이제는 이명박 정권 말기의 외교문서가 무더기로 폐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정권 말에 있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건이 집중적으로 없어진 모양이다. 당시 여론의 엄청난 비판을 받은 사안이었다. 그러나 외교문서 폐기는 박근혜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자신의 정권에 불리한 것들은 그저 감추고 숨기고 없애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역사는 숨기고 위장한다고 그 진실이 결코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다면 당장에는 이득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부메랑이 되어 그 왜곡을 시킨 정권에 돌아올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부패와 함께 간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시장의 독대금지를 위한 사관제도의 부활이 지금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면 역사로부터 배우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지나간 일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면 역사는 하나의 가감 없이 정확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역사기록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이었다. 역사책에 거울 감(鑑)자를 쓰는 이유는 우리가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고치기 때문이다. 거울은 비뚤어지거나 깨지면 사물의 형상을 제대로 비출 수가 없다. 역사의 기록도 이와 같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하려는 이유도 과거를 현재에 비추어 교훈과 반성을 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기록정신이 다시금 높아 보이는 오늘이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화성갑의 선택, 유권자의 바로미터

박근혜정부의 출범 8개월 만에 치러지는 1030 재보궐선거는 한때 국회의원 선거만 10여곳에 이르리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경북 포항 남울릉과 경기 화성갑 두 곳으로 대폭 축소되면서 현 정부의 중간평가라는 의미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경기 화성갑에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공천하면서 해당 지역 유권자의 선택이 전체 유권자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시돼야 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에만 집착하면 선거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유권자의 존재는 그저 표밭이나 텃밭 등 푸성귀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 선거가 치러지는 화성갑 지역의 유권자들이 고민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선거 때마다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부터 정리하자. 인물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 정당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 정책공약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의 고민은 잠시 잊자. 선거는 인물과 정당, 정책공약을 동시에 선택하는 행위이고, 세 가지 모두에 정책기조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물, 정당, 정책공약 중 지지 세력의 유불리에 따라 하나만을 선택기준으로 하라고 강요한 것은 나쁜 선거운동이다. 이와 같은 음습한 의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맹목적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철학을 맹목적 습관에 따른 삶의 대안으로 좋은 삶은 무엇이고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깨닫는 방법이라 말한다. 틈만 나면 쇄신과 변화를 부르짖었던 그들의 주장이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와 정당, 정책공약속에서 주장하는 좋은 삶은 무엇이고 좋은 삶을 살아가는 비전이 살아 숨쉬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둘째,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검증하자.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헌법 46조에 명시된 청렴 의무를 준수할 자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 자인지, 국회의원의 지위를 남용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려는 자인지를 검증하자는 것이다. 특권만을 주장할 자인지, 성실히 의무를 다할 자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자 하는 자, 즉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려 거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를 걸러낼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세 번째, 기교와 선동,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을 검증하자. 보궐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어김없이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거짓공약을 남발한다. 그래서 공약의 실현가능성 검증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지난 2009년 10월에 치러진 잔여 임기 2년 반짜리 양산 재선거의 경우에 당시 박희태 후보는 KTX와 도시철도, 지하철, 첨단의료산업단지, 미래첨단집적화센터, LED특화단지 등 대형개발사업과 국비지원을 얻어내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으나 당선 이후에는 공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국책사업을 양산에 유치하겠다는 약속은 처음부터 지킬 수도 없었던 공수표였다. 마지막으로 화성갑 유권자들에게 당부할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유권자의 자존심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자는 여도 야도 아닌 유권자가 돼야 함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깐깐한 유권자로서 선거에 꼭 참여하여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화성갑 유권자의 선택이 전체 유권자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늙어지면은 못노나니/화무는 십일홍이요/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이런 노래가 있었다. 한두 구절이 민요 가락에 실리기도 하였지만 나중에 유행가 가락에 실려서 더 유명짜해진 노래이다. 노래대로라면 젊어서 놀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늙으면 놀기 힘들다. 노는 것도 일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힘이 있을 때 해야 한다. 그러니 젊어서 놀아야 한다. 열흘 붉게 피어 있는 꽃도 없고, 달도 보름달이 되면 바로 반달이 되고 마침내 초승달로 기울어지는 법. 어른도 노는 게 즐겁다. 오죽하면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런데 아이들은 놀이 자체가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놀이는 익히 알다시피 승부가 있는 것과 승부가 없는 것으로 나뉜다. 예전의 아이들은 승부가 없는 소꿉놀이 같은 걸 통해 사회와 인생을 배웠다. 이른바 가상현실을 통해 실제현실을 이해한 것이다. 근데 어른들은 화투 등 승부를 가르는 놀이를 즐겨한다. 삶 자체가 놀이를 잊은 지 오래고 대결 구조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도 컴퓨터 게임 등 승부에 집착을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만. 하 그런데, 칠레의 민중 시인으로 잘 알려진 네루다가 이런 말을 했네. 나는 집에다 크고 작은 장난감을 많이 모아두었다. 모두 내가 애지중지 여기는 수집품이다.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 그런 그이기에 (그의 사후에 나온 질문의 책이란 시집에 제목 없이 숫자로만 나열 되었지만) 이런 시를 남겼으리라.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서울 광화문 복판에 있는 어느 서점은 서점 건물 벽에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대목을 발췌하여 한 계절 내내 내걸어서 오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 속의 아이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였다. 나는 완전히 이별하여 떠나보내지 못한 내 속의 청소년 때문에 청소년소설도 쓴다고 늘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아직 그가 내 속에 남아 있다면 그가 떠날 것을 바랄 게 아니라 더욱 사랑해야 하리라. 내 개인적으론 문예창작 수업 시간에 늘 영화 일 포스티노를 틀어주었다. 익히 알다시피 영화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를 다룬 영화로 은유를 배우기에 딱 좋다. 이제 은유를 넘어서서 노는 아이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늙어서도 놀고 싶은 아이.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자는 피터팬이어서 더 이상 자라선 안 된다고 했다. 물리학에서조차 그걸 잘 연구하려면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리라. 이는 단순히 몸집만 커졌지 무책임한 짓만 하는 어른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어른이 되더라도 아이 같은 호기심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리라. 그렇다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은 늙더라도 젊었을 때의 호기심 같은 걸 잃지 말라는 뜻으로 다시 해석해도 될 터!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사회복지를 정치 도구로 삼지 말아야

지난 26일 정부는 고심 끝에 기초연금에 대한 정책 방안을 내놓았다. 소득계층 하위 70%에 한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최저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 차등지급하는 방안이다. 이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공약보다 대상과 지급액 규모가 대폭 후퇴된 것이다. 주요 복지정책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취임 7개월이 지난 지금 4대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 공약의 후퇴에 이어 기초연금까지 사실상 후퇴된 모양새다. 당연히 기존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국민의 실망감이 크게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기초연금 축소 결정을 비롯한 여타 복지관련 공약에 대한 논란이 단지 과중한 국가재정 부담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입장만 부각되는 것은 오히려 더 우려스러운 일이다. 만일 재정만 가능했다면 공약은 지켜졌을 것이며 작금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정말 경계해야 한다. 기초연금을 비롯하여 무상보육, 4대 중증질환 치료, 고교 무상교육, 대학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복지관련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정치 만능주의에서 출발했다는 데에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사회복지를 표심을 움직이는 도구로 마구 사용해왔다. 이번 기초연금으로 인한 상황을 정치권에서는 겸손하게 바라보며 자성해야 한다. 더 이상 사회복지를 정치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치가 사회복지를 다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겸손하게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국민에게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른 정치이다. 이제 국민도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혜택에 현혹되지 않고, 대책 없이 제안하는 정치권의 복지 공약을 면밀히 검토하는 풍토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갈등과 대치의 국면에서 벗어나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면서 복지 정책만큼은 함께 수립하고 실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간 경쟁적으로 빚을 내서라도 우선은 국민의 마음을 가져오는 데에만 급급했던 여야 모두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과거 눈에 드러나 보이는 정책을 따라갔던 습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효율성과 효과성을 세심하게 챙기면서 국민 개개인과 국가적 차원 모두를 아우르는 성숙한 사회복지 정책 개발과 수립, 실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정치권과 정부가 함께 숙고하며 국민의 행복을 위해 복지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정부-여-야-민간전문가 통합 TFT를 거국적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지 않겠나 싶다. 국회가 싸움의 현장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소통의 한 마당이 되어야 한다. 자신과 정파의 이익을 따질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미래의 소망을 줄 수 있는 길은 말이 아니라 정치권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가슴 속에 들어오기 위해 실제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렇게만 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치권의 권위는 국민이 세워줄 것이다. 비로소 국민은 정치권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침을 열면서] 지역주민 중심 지역발전 계획의 필요성

얼마 전 동아시아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우리나라 응원단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사용해 논란이 됐다. 이 문구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의 각료들이 신사참배를 옹호하는 망언을 하는 등 일본이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청년들이 경각심을 주고자 작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글귀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일제의 식민지로 있던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며 우리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60여년간 수많은 개발사업과 산업육성 정책 등을 통해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그동안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 가난한 나라로 시작해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먹고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오히려 훼손하기까지 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하지만 최근 몇몇 도시들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산업유산 등을 활용해 도시를 재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청주시에는 1946년부터 1999년까지 53년 동안 지역 경제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과거 한국 최대 규모의 연초제조창(12만2천여㎡)이 자리하고 있다. 청주시는 최근에 공장이 폐쇄된 이후 흉물처럼 방치된 이 공간을 도시의 역사산업유산으로 인식하고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재활용해 도시의 재생과 혁신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주시는 도시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전주 고유의 역사자원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이를 관광 및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후백제의 수도이자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역사도시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을 수 있었다. 근대문화도시로 잘 알려진 군산은 1899년 5월 1일에 개항된 항구도시다. 이곳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쌀 부족을 보충했던 일본 상공인들의 경제활동 중심지로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도시이다. 군산시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東國寺)와 일본식 가옥과 건축물 등의 역사자원을 잘 보존하고, 과거 자료들을 근거로 해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식민지 역사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문화도시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와 산업자원은 도시 브랜드를 창출하고 도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지역자원조사를 통해 역사문화자원, 생산품, 이야기 등의 유무형 자산을 발굴해 지역의 잠재력을 높이고, 이를 활용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위해 주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동안의 지역발전 계획은 정부 주도하에 하향식으로 진행됐지만, 지역의 역량강화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주민이 중심이 되는 상향식 지역발전 계획이 요구된다. 나아가 지속적으로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을 실시해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고 이들이 리더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한다. 이를 통해 단재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의 과거 역사의 교훈을 재인식하고 작지만 희망적인 새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계획가들의 환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가 아닌 주민의 시각에서 출발해 주민과 함께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즉 주민을 위한다는 위민(爲民)정책 보다는 주민과 더불어 하는 여민(與民)정책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

[아침을 열면서] 문제는 정치다

1992년 미국 대선 전에서 클린턴 후보는 아버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이렇게 공격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오늘날까지 유명한 선거구호로 쓰이는 이 말은 당시 쌍둥이 적자에 빠진 미국 경제를 통쾌하게 지적한 명쾌한 수사(rhetoric)였다. 이 언술 덕에 대중에 크게 어필한 클린턴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에게 회자되고 또 상대방을 공격하는 주요한 수사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문장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문제는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경제를 장악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일은 당연히 정치의 영역이다. 1인 1표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에 의해 경제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모두 정치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막히면 경제가 원활해 질 수 없고 사회통합은 물론 국가발전도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데 이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하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치고 돌아왔다. 특히 G20 정상회의에서 선도발언을 포함한 2차례의 연설을 통해 창조경제와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론이 정상선언문에 상당부분 반영되는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했다. 화려한 그의 패션쇼만큼이나 외교적 성과에 대한 찬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에 비해 국내정치는 낙제점이다. 집권한지 7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포용의 정치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들과만 화합하는 듯한 배제의 정치가 오늘 정국경색의 주요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전 아버지 시대와는 달리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된 민주정부로 많은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출범했다. 모든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심판에 의해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나아가 그 대표성을 부여 받는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정책결정과 집행에 있어서 국민의 대표성을 위임받은 상태로 권위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야당을 비롯한 사회 제 세력들과 타협을 통해 사회통합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터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이후 촉발된 정치의 실종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새로운 협력의 동반자로 국민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나가 달라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국내정치로부터 독립된 듯한 행보를 거듭해 왔다. 자신만의 원칙을 유지하려 할뿐 반대를 허용치 않는 이른바 소통의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제기하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물가와 같은 모든 민생문제들도 역시 어떤 정치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로 나타날 것이다. 사실 정치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세력 그리고 개인의 이해를 수렴해 조화하고 융화시킴으로써 그 공동체가 유지, 번영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적인 기제가 정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견충돌과 대립의 화해 역할도 정치의 몫이다. 정치를 최고의 예술이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 일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침 오늘 여야 영수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부디 불통의 정치가 아닌 소통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문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Because its the politics).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교수

[아침을 열면서]거짓공약 피노키오 정치, 매니페스토운동으로 뿌리 뽑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거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빌 공(空)자 공약이었다. 선거공약은 재정범위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선거 때 유권자와 약속했던 공약의 기조는 흔들지 말아야 대의민주주의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선거공약이 가용예산의 범위 밖이고, 심지어는 가용예산의 10배, 100배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선거 때 한말 다르고 선거 이후에 하는 말이 바뀌고 있다. 선거에서 공약보고 투표하지 말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선거 때 지키지 못할 거짓공약을 남발하고 선거 이후에 오리발을 내미는 거짓공약 피노키오 정치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매니페스토본부는 선거공약이 국가재정의 범위를 훨씬 넘거나 가용예산에 수십, 수백배에 달하고 있다고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지난 4년 동안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제시되었던 당선자 공약만도 약 8만개이며, 대통령과 광역단체장 공약이행에만 340조원인 국가예산의 2년 규모를 넘는 718조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덧셈을 해 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국정공약 201개와 지역공약 106개 등 모두 307개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재정은 국정공약에 135조원, 지역공약에 200조원 등 모두 실현하려면 335조원이 필요하다. 광역시도에서 매니페스토본부에 제출한 공약이행을 위한 재정계획은 총 383조원이었다. 국회의원 공약 8천936개와 기초단체장 공약 1만1천35개, 지방의원 공약 약 6만개에 필요한 재정은 아직 추계 중이다.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 때 주요정당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100개에서 300개의 공약을 제시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유권자에게 제시한 공약기조는 복지, 일자리, 경제민주화이다. 증세 없는 생애주기별 맞춤복지, 창조경제와 중소기업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골목상권까지 넘보았던 재벌을 향해 던진 경고였던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취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어디서 재원을 마련할 것이며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쓸 것인지, 어떤 원칙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연차별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 가관인 것은 지자체가 앞 다투어 공약이행율이 80~90%에 달한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행태다. 매니페스토본부 분석 결과, 민선4기 기초단체장의 공약완료율은 49.56%였다. 민선5기 광역단체장 공약이행 재정집행은 지난해 말까지 약 40%에 불과했다. 민선5기 마무리 시점에서는 수조원이 필요한 공약 7, 8개씩을 대선 공약에 슬그머니 끼워 넣고 약 200조원에 달하는 공약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다. 이와 같이 정치권의 시대착오적인 거짓공약, 피노키오 정치 놀음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표를 얻기 위한 거짓공약을 뿌리 뽑자는 매니페스토운동의 역할은 막중하다. 매니페스토본부는 지난달 대학생 기자단을 발족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 등의 공약 약 8만개를 데이터화하는 등 오는 9월 말까지 공약정보를 모두 한 곳에 모은 시민검증센터를 구축, 공개할 예정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은 것은 국민이다. 거짓공약, 피노키오 정치를 뿌리 뽑을 절호의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오는 10월에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거 때 한 말 다르고 선거 이후에 한 말 다른 정치세력에게는 매서운 회초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와의 약속에 무게가 실릴 것이고, 경고를 엄중히 받아드릴 것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꽃나무는 꽃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백일홍처럼 백일 동안(벼가 익어가는 여름 석 달 동안!) 꽃들이 돌아가며 피는 꽃나무도 있지만 꽃나무는 대부분 열흘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고 말한다. 이 말은 권불십년(權不十年)에까지 이어져 영원한 권력이 없다는, 권력의 무상함을 일컫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꽃이 피었던 그 열흘의 자태로 그 꽃나무를 기억한다. 겨우 열흘 붉었던 꽃이 바로 그 나무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꽃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1년 내내 꽃을 매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꽃나무라 할지라도 1년 내내 꽃을 매달고 있는 꽃나무는 없다. 1년 가운데 꽃 피는 기간은 기껏해야 열흘 남짓이다. 1년 가운데 나머지 기간, 즉 350여 일은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 위해 준비하거나 시들어가는 기간이다. 꽃나무는 우선 뿌리를 땅에 내리고 얼마큼 자라야 한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시련이 많다. 온갖 병충해에 시달려야 하고 비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꽃을 피운다. 그리고 이내 곧 시들어간다. 하지만 꽃은 그 열흘 때문에 그 꽃나무의 이름을 얻는다. 꽃들이 그가 피운 꽃으로 기억된다면 대부분의 새들은 일단 우는 소리로 기억되어 우는 소리가 그 새의 이름이 된다. 그런 까닭에 새는 흔히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한다. 새들은 우는 소리에 따라 이름이 불려지기 때문이다. 뻐꾹뻐꾹 하고 울면 뻐꾸기. 까악까악 하고 울면 까마귀. 물론 우는 소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들의 소리는 무조건 운다고 느낀다. 새들의 소리는 그들의 의사소통 도구로서 언어인지도 모르다. 아니면 웃음소리인지도. 어쨌든 꽃은 피어난 자태로, 새는 울음소리로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간다. 그럼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하려고 애쓴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자 한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는 그가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성공했다면 오로지 그 성공만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처럼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남은 쉽게 재단하고 규정해버릴 수 있어도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못한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한때(특히 젊었을 때)의 추억으로 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부자는 재산이 많은 이가 아니라 추억이 많은 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몸에 박힌 한때의 기억으로 한평생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게 사람이다. 자신은 한때의 추억을 자신의 전부라고 느끼지만 남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지금 현재를 보는 것, 그의 성공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현재의 상태를 두고 평가되지만, 그렇게 평가되는 그 자신은 자신의 속 모습을 알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장 내세우고 싶은 것, 내세워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사람의 젊은 시절 한때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쩌면 그 젊은 시절이 지금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 사람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막 살아선 안 되리라. 평생의 밑천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전부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게 그 순간인 것을. 남은 성공한 현재의 모습으로 자신을 기억하더라도 자신은 지금의 성공보다 더 화려했던 자신의 시절(자신만의 꽃이 피던 시절!)을 알고 그걸 기억한다.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시절은 자신만이 안다. 화려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근데 최영미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다.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뮤직박스

오래 전 의미있는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1990년도에 개봉한 코스타 가브리스 감독의 뮤직박스라는 영화였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유대인 학살의 전범이었던 인물이 미국에 이민와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다 법원으로부터 전범이니 그에 합당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게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변호사인 딸이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무죄라는 걸 입증하죠. 무죄 선고를 받는 날 파티를 여는데 전범의 딸이 아버지의 뮤직박스 속에 감춰져 있던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 사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었죠. 뮤직박스는 딸에게까지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한 전범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에도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지에서 나치 전범에 대한 전시회나 영화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많은 세월 흘러버린 과거이지만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죄에 대해 끝까지 단죄하겠다는 정의의 의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하필이면 제가 연희문학창작촌에 들어온 뒤 새록새록 떠올랐다는 겁니다. 저는 요즘 서울 연희동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첫 날 창작촌의 직원이 창작촌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창작촌 내부에 있는 커다란 대문을 하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전두환씨 경호를 맡고 있는 경호주택으로 이어지는 대문이라고 하더군요. 아, 한때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장본인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하더군요. 아직도 뒤틀린 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지요. 그런데 늦게나마 그에 대한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요즘 연희동 골목은 시끌시끌 합니다. 진즉 단죄했어야 할 일이 너무 늦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재산을 이리 저리 해서 환수를 한다한들 그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나 슬픔, 한 등이 치유될 수 있을까요? 그냥 이렇게 흘러가버리고 마는 걸까요? 시간이 흘러버리면 만사가 흐지부지되고 마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인가 봅니다. 제가 처음 쓴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주된 내용은 제 자신이 용기없고 혹은 욕망에 찌들어 살면서 저질렀던 수많은 죄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이미 잊혀졌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일이지만 제 자신이 용서하지 못한 일들이었기에 그렇게라도 사죄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게 인간으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건 남들이 몰라줘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남들에게 사죄를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먼저 사죄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사죄하는 일은 남들 앞에서 사죄하는 일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듯합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기에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 생각해보면 옆 집에 사시는 분은 용기가 없는 분인 듯합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불끈 일어서던 용기도 사죄를 하고 사과를 할 때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이신 거죠. 그건 어쩌면 우리 역사에 늘 존재해왔던 슬픔일 것입니다. 역사가 바로 서도록 처신하지 못한 문화가 만들어진 잘못이기도 할 겁니다. 사람은 때론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떱니다. 그런데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위선은 더 큰 위선을 낳지요. 결국 그 거짓과 위선을 진실인양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뮤직박스에 등장한 전범처럼 말이죠. 우연히 강풀이라는 만화가 그린 26년이라는 만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마 단죄를 하는 게 가능한 시대라는 거 반갑습니다. 하지만 먼저 당자가 당자 자신에게 진실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하지 않을까요? 옆 집에 사시는 분이 그런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민식 소설가

[아침을 열면서] 경기도 대표 도서관, 현실적 대안 찾아야

경기도는 최근 광교 신청사예정지 옆에 전국 최대규모의 18만2천160㎡규모의 문화공연장 건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도는 재정상황 등을 고려해 서울 예술의 전당처럼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부지매입비 720억원, 건축비 700억원 등을 조달한 뒤 공연장에 해당 기업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김문수지사가 1천500억원 규모의 후원금을 기업체로부터 조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새로운 문화의 전당 건립과 별도로 도는 기존 문화의 전당은 경기도 대표도서관과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으며 3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역대표도서관은 2006년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등장하게 됐다. 그 배경은 광역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도서관발전에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하도록 중심이 되는 도서관을 경영하도록 하고 있다. 선진외국에서는 광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시설 자체가 그 지역 문화의 상징이고 그 지역에서 가장 중심적인 도서관이며 일반적으로 광역자치단체 청사 인근에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2012년 10월에 개관한 서울시의 서울대표도서관도 2만㎡ 규모로 서울시 구청사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반면 경기도는 2012년 1월 파주시 교하도서관을 지역대표도서관으로 지정하고 2층에 사무실 1~2개로 도서관도 아닌 도서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의원이 작년 10월 경기도 공공도서관 설문조사에서 도내 사서 81%가 파주시 교하도서관을 지역대표도서관으로 지정한 정책에 대해 잘못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기도가 기존 문화의전당을 지역대표도서관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과거보다는 획기적인 공공도서관 정책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광교신도시 경기도청사 부지에 신문화의 전당이 성공적으로 건립돼야 한다는 불확실성의 조건이 있다. 이를 위해 김문수 지사가 우선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자금도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금 조달이 성공한다고 해도 신문화의 전당이 건립되려면 설계 및 건축기간이 4~5년 정도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이전하고 기존의 문화의 전당이 리모델링해서 지역대표도서관이 정상화되려면 얼마의 기간이 소요될 지 아직 예측조차 어렵다. 만약 자금조달이 부진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이야기가 된다. 경기도 문화의 상징인 지역대표도서관 개관을 불확실성에 담보로 둘 것이 아니라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마침 수원시 인계동 인근에 교육청 산하 경기평생교육학습관이 있다. 경기평생교육학습관은 처음부터 도교육청에서 지역대표도서관을 고려해 2008년 5월에 개관된 국내에서는 2번째 규모의 공공도서관 시설이다. 장서 65만, 직원이 50명 규모이니 우선 지역대표도서관으로 운영해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학습관이라는 명칭인데 이는 경기도청과 경기도교육청이 협의해 학습관이라는 명칭을 본래 설립목적에 따라 공공도서관 명칭으로 환원하고 경기도가 지역대표도서관으로 지정하면 경기도 지역대표도서관 문제는 우선 해결된다. 그러면 도서관 정책업무는 도청 도서관과가 도서관 업무는 새로운 명칭의 도서관이 수행하면 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된다면 경기도가 지역대표도서관 운영문제와 관련해 2006년 도서관법 개정이후 6년간 표류하고 있는 현안이 해결되는 것이며 향후 대표도서관 현안으로 예상되는 소모적인 예산집행도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도청과 도교육청이 교육관련 각종 현안을 상생차원에서 해결하는 돌파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득구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

[아침을 열면서] 노사의 땅!

지금은 우기. 연일 열대야다. 그러나 내가 사는 초부리 마을은 여전히 꽃대궐이다. 얼마 전 산책길 공터에 누가 모란을 가득 심어놓아서 무작정 가슴 설레기도 했다. 모란꽃 진 뒤에도 한 열흘쯤 눈가에 짙은 꽃물 번지게 하더니, 이번에는 마늘 갈아엎은 자리에 또 누가 도라지꽃 흐드러지게 피워 올렸다. 어쩌다 빗방울 뜨기라도 하면 속수무책 번지는 저 보랏빛 꽃숭어리에 마음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한다. 그 단단한 맞물림을 땅에서 시작하는 모든 생명들에서 배운다. 연하게 피었다가 연하게 돌아가는 꽃들의 일생. 그러나 저 속에서도 삶과 죽음은 치열해서 꽃 한 송이 눈 틔우는 안간힘은 몇만 톤의 힘을 쏟아 붓는 것이라고 하는데. 며칠 전 느닷없이 비 오시고 번개 치는 날 앞마당의 꽃들이 궁금해서 우산 받고 모종 삽 들고 꽃밭에 앉았었다. 이상해라. 재앙처럼 내리는 아우성의 빗줄기 속에서도 끄떡없이 제 모습을 간직하는 꽃 이파리들. 빨강은 빨강으로 노랑은 노랑으로 꽃들은 더 선연하게 색을 품고 있었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 엄마들의 붉디붉은 입술처럼 꽃들은 단단하게 제가 저를 붙들었다. 총탄처럼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막아서는 저 꽃들의 저항은 무엇일까. 난생처음 시골에서 살면서 흙에서 나는 모든 것들의 경이를 손끝으로 맛본다. 요즘은 열심히 땅을 기어서 열매를 맺고 있는 호박이랑, 보랏빛 꽃 꼬투리에서 시작하는 가지가 신기할 뿐이다. 가지 찢어지게 익어가는 탱탱한 토마토와 태양 앞에서 순하게 제 색을 밝히는 붉은 고추. 밭이랑 가장자리에 울타리처럼 버티는 옥수수는 저마다 삶을 받아 열심히 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살림살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가, 구름에게 묻기보다는 땅에 묻는 것이 더 빠른 대답이겠다.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 푸른 물결 아름다운 벼 포기들. 언젠가 내 사랑이 알려준 벼꽃에 대한 궁금증. 벼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는지? 8월에 핀다는 전설 같은 벼꽃을 기어이 만나리라. 나는 매일 남의 집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아직 없는 벼꽃 소식에 눈독 들인다. 한편으로는 여름이 농익어서 튼실해진 오이를 얻어서 소박이김치를 담글까 오이지를 만들까 고민하는 여름날, 친구 손잡고 따라간 노사의 땅. 날이 풀리자 친구는 땅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산허리 비탈진 곳에서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갈기 시작해서 눈으로도 멀리 광개토왕이 땅을 점령하듯, 그렇게 해 종일 땅에서 살았다. 혼자 그 넓은 땅에 거름을 주고 그 곁으로 그늘막을 지었다. 물을 나르고 좋다는 퇴비를 구해서 밭이랑마다 골고루 사랑을 나눴다. 가끔 넋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새끼를 어루만지듯 쉬지 않고 흙을 만지면서 땅을 읽기 시작했다. 만물이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섭리에 고운 눈썹을 내리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벌과 나비와 꽃들이 돌아왔다. 하늘에서는 한바탕 비를 퍼붓고, 해탈한 짐승처럼 맑은 해 이마를 보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연속을 바라보면서 곧 만나게 될 이보람! 순식간에 놓쳐버린 딸아이의 얼굴을 만진다. 오고 가는 바람에도 공손해지는 오늘. 삶과 죽음이 한 통속임을, 우리는 모두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딱 한 번의 인생임을, 그래서 아름답다고 친구는 말없이도 말을 한다. 잡초를 뽑을 때도 가만가만, 그래도 어미의 마음은 아프다. 비오시고 번개로 하늘이 들끓는 동안 열 번의 글을 마쳤다. 일 년 동안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한다. 여러분의 땅에서는 어떤 작물이 자라나고 있으신지. 부디 물과 바람과 흙과 불의 길에 자유를.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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