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자서전은 합법, 공약집은 불법인 이상한 선거법

코미디 한 편 소개할까 한다. 정치인의 자서전은 합법이고, 공약집은 불법이라면 믿겠는가? 어이없게도 현행 공직선거법을 살펴보면 내용도 비슷하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자서전 발간은 합법이고,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담은 공약도서는 불법이다.

2008년 2월 공직선거법 제60조의 4, 제66조 등의 매니페스토 관련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및 지방자치단체장 예비후보자는 공약집(공약도서)을 발간 및 판매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이 법안에서 쏙 빠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자서전은 대부분 ‘홍보할 것’만 주로 쓰고 ‘부끄러운 것’은 덮어버리는 자화자찬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일반 서점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다만,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는 후원금 모금 창구로 이용될 뿐이다.

이에 반해 공약집(공약도서)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유권자와의 약속과 핵심정책을 담아야 하기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으면 도서 출간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예비후보자가 공약집을 출간할 경우 선거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뿐더러 선거 후에도 깐깐한 공약이행검증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법권 남용이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정책공약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고, 입법권을 위임받은 의원들은 자화자찬이 가득하고 후원금 모금에도 용이한 자서전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지난해 4ㆍ11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 지난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의 정책·공약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성숙한 선거문화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였다. 그러나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양상이 180도 바뀌었다.

후보 간 상호 비방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면서 정책과 공약 대결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무참히 깨버린 19대 국회. 툭 하면 불거지는 지방의원의 유착비리, 기대에 못 미치는 의정활동과 예산낭비,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상한 선거법으로 계속 선거를 치러서 되겠는가?

다행인 것은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의원 등 28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법안 개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 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매니페스토 연구회’ 창립 토론회에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면 공약집(공약도서)을 발간, 판매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개정법 안을 제시했다. 국회 정개특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고, 연구회도 발족되었으니 매니페스토 관련법이 개정되리라 기대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자서전은 합법이고 공약집은 불법인 공직선거법 개정을 지방의원이 선도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권력이 더 막강해지고 부패한 토호세력의 발호로 지역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방의원들은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줄을 서야 하고 그로 인해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펼칠 수 없었노라 목소리를 높였었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자서전은 합법이고, 지역주민과의 소중한 약속을 구체적으로 담은 공약집은 불법인 이상한 선거법을 이번에는 꼭 고쳐야 한다. 툭하면 동네북 취급받는 국회와 지방의회, 이번에는 매니페스토 관련법 개정을 선도하여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보는 게 어떤지 묻는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