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문제는 정치다

1992년 미국 대선 전에서 클린턴 후보는 아버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이렇게 공격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오늘날까지 유명한 선거구호로 쓰이는 이 말은 당시 쌍둥이 적자에 빠진 미국 경제를 통쾌하게 지적한 명쾌한 수사(rhetoric)였다. 이 언술 덕에 대중에 크게 어필한 클린턴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에게 회자되고 또 상대방을 공격하는 주요한 수사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문장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문제는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경제를 장악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일은 당연히 정치의 영역이다. 1인 1표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에 의해 경제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모두 정치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막히면 경제가 원활해 질 수 없고 사회통합은 물론 국가발전도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데 이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하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치고 돌아왔다. 특히 G20 정상회의에서 ‘선도발언’을 포함한 2차례의 연설을 통해 창조경제와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론이 정상선언문에 상당부분 반영되는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했다. 화려한 그의 패션쇼만큼이나 외교적 성과에 대한 찬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에 비해 국내정치는 낙제점이다. 집권한지 7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포용의 정치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들과만 화합하는 듯한 배제의 정치가 오늘 정국경색의 주요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전 아버지 시대와는 달리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된 민주정부로 많은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출범했다. 모든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심판에 의해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나아가 그 대표성을 부여 받는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정책결정과 집행에 있어서 국민의 대표성을 위임받은 상태로 권위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야당을 비롯한 사회 제 세력들과 타협을 통해 사회통합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터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이후 촉발된 정치의 실종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새로운 협력의 동반자로 국민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나가 달라”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국내정치로부터 독립된 듯한 행보를 거듭해 왔다. 자신만의 원칙을 유지하려 할뿐 반대를 허용치 않는 이른바 소통의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제기하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물가와 같은 모든 민생문제들도 역시 어떤 정치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로 나타날 것이다. 사실 정치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세력 그리고 개인의 이해를 수렴해 조화하고 융화시킴으로써 그 공동체가 유지, 번영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적인 기제가 정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견충돌과 대립의 화해 역할도 정치의 몫이다. 정치를 최고의 예술이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 일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침 오늘 여야 영수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부디 불통의 정치가 아닌 소통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문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Because it’s the politics).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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