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창피한 자신의 모습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관은 그날의 일을 너무나 정확히 기록했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은 임금의 지근거리에서 임금의 행적을 기록하는 자를 말하며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사초(史草)라 부르고 이를 모아 임금이 죽은 뒤에 편찬한 책을 실록이라고 한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인데 그것의 기초작업을 하는 사람을 사관이라고 한 것이다.
사관은 예문관의 봉교, 대교 그리고 검열이라는 자리로 각기 정7품, 정8품, 정9품으로 매우 낮은 등급이었다. 그러나 품계상으로는 말단이었지만 한번 제수되면 가문의 영광이 되니 누구나 열망하는 직책이었다. 사관이 기록한 사초에는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였으며 혹 수정을 하거나 변조, 누설하였을 경우에는 참형에 처해졌다.
사헌부나 사간원의 대간에게 탄핵을 당하면 더 이상의 관료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사관이 작성한 사초에서 비판을 받으면 현직은 유지할 수 있을지라도 후세까지 영원히 그 욕됨이 기록되므로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러니 신하들은 물론 임금까지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오직 사관뿐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 사관제도를 둔 이유는 선왕의 업적을 정리한다는 명분과 함께 당시의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왕들과 역사의 교훈을 준다는 보다 큰 뜻이 있었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관제도를 두었지만 오직 우리나라만이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졌었다. 그랬기에 왕조의 역사가 타국가와 달리 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의 전통을 가진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 실종문제로 여야 간의 사초폐기 논쟁이 치열했었다. 다소 야당이 밀리는 듯하더니 이제는 이명박 정권 말기의 외교문서가 무더기로 폐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정권 말에 있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건이 집중적으로 없어진 모양이다. 당시 여론의 엄청난 비판을 받은 사안이었다. 그러나 외교문서 폐기는 박근혜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자신의 정권에 불리한 것들은 그저 감추고 숨기고 없애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역사는 숨기고 위장한다고 그 진실이 결코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다면 당장에는 이득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부메랑이 되어 그 왜곡을 시킨 정권에 돌아올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부패와 함께 간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시장의 독대금지를 위한 사관제도의 부활이 지금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면 역사로부터 배우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지나간 일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면 역사는 하나의 가감 없이 정확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역사기록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이었다. 역사책에 거울 감(鑑)자를 쓰는 이유는 우리가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고치기 때문이다. 거울은 비뚤어지거나 깨지면 사물의 형상을 제대로 비출 수가 없다.
역사의 기록도 이와 같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하려는 이유도 과거를 현재에 비추어 교훈과 반성을 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기록정신이 다시금 높아 보이는 오늘이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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