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초, 우리나라는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변환기에 처해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약육강식의 전쟁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무역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고 있다. 조용하지만, 그러나 19세기의 그것보다 못지않게 혁명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국제정세의 해석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냉철한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세련된 외교 정책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외교전략과 정책은 새로운 무역 패러다임 내에서 수립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전쟁 패러다임에 집착하거나, 또는 전쟁과 무역의 패러다임 사이에서 방황할 경우 혼란과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무역 패러다임에 입각한 외교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는 한가지 주요 장애를 극복하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제는 극복해야 할 전쟁 패러다임에 뿌리를 둔 국민 정서이다. 국민이익과 대치되는 이 현상은 무엇보다도 구한말 약육강식의 패러다임 속에서 뼈아프게 경험한 피해의식에 연유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주장,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균형을 취하여야 한다는 주장, 중국의 계속되는 부상에 발맞추어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 외세를 배제하고 동족끼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주장, 북한의 입장은 결국 북중 동맹은 유지하면서,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고 주한미군의 철수를 노리는 위계이므로 조심하여야 한다는 주장 등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우리외교는 아주 복잡한 방정식 속에 처해 있다. 무역 패러다임은 미국이 동아시아에 전파한 역할이 크다. 일본이 가장 먼저 이에 적응하였다. 우리나라도 다른 동아시아 4룡(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과 함께 20세기 중반 이후 무역 패러다임을 가장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이제 거대한 중국이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하고 있다. 북한만 홀로 시대착오적인 전쟁 패러다임에 집착하고 있다. 아주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광의의 북한 문제는 결국 북한이 무역 패러다임 내에 편입될 때 비로소 해결된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우리의 외교전략은 큰 줄기를 잡고, 간명한 원칙이나 분명한 비전에 입각하여야 한다. 21세기에 우리가 취할 외교전략은 ‘한미동맹, 한중협력, 한일 교류 그리고 대북 교류와 억지 정책의 동시 추진’ 으로 요약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략을 일관하는 원칙과 비전은 무역 패러다임이다. 21세기 국제사회를 지배할 무역 패러다임 내에서 볼 때 상기 4가지 전략, 특히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동시 선택이 가능하게 된다. 단 우리는 과거 전쟁 패러다임 속에서 쌓아온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무역 패러다임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 통일이 머지않았다. 최영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오피니언
최영진
2015-10-11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