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간호사 이야기

지난 추석 연휴기간 내내 필자는 병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병원의 구석구석을 살금살금(?) 돌아보았다. 오후 늦게 병원을 들어서다가 3교대 낮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밝은 인사를 받으며 문득 며칠 전 보고받은 ‘입원환자고객 인터뷰보고서’를 떠올렸다. 고객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설문조사 등의 방법도 있지만, 고객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 가장 생생한 고객의 소리라는 생각에 고객만족부서의 인터뷰보고서를 직접 챙겨보는 편이다. 그날의 인터뷰보고서의 내용은 나이도 어린 간호사들이 연로한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돌봐줘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리고 미숙하고 거기에다 무뚝뚝하기까지 한 간호사들 때문에 불만이라는 민원이 꽤 있었던지라 그날의 칭찬보고서는 그 간에 있었던 심려를 씻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최근 병원에 나이 어린 간호사가 많아진 이유는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간호사인력의 부족현상과 더불어 작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내 감염위험성을 줄이려는 방편으로 보호자 없는 병동 즉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매년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간호사의 숫자는 늘어나는 데 비해 경력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호자 없는 병동을 개설한 뒤 맨 먼저 고민했던 것은 보호자가 없어서 외롭고 불안한 환자들의 정서적 지원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그래서 일정한 숫자의 간호조무사와 보조원을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구성했다.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연륜과 경험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간호와 수발 양쪽에서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환자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가족간병이 보편화된 지금까지의 간병문화에 익숙한 환자, 보호자 그리고 간호인력 모두 새로운 제도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새로운 역할과 기능에 대한 혼돈이 병동현장에서 갈등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어느 순간 1~2년 차 간호사들의 간호행태가 전문적 간호에서 전인적 간호로 바뀌면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간호 종사자들에 대한 칭찬으로 바뀌었다.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정서적 지지와 가슴 따뜻한 수발을 나이가 많은 간호보조 인력에 기대 했지만, 오히려 딸 같고 손주 같은 간호사들이 더 헌신적으로 간호와 수발을 수행했다는 칭찬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간호사들이 간호윤리에 대한 투철한 직업의식과 간호사로서의 소명의식을 자각한 결과라고 병원장은 믿고 있다. 손주를 봐서 할아버지가 된 병원장의 눈에는 아직도 부모님에게 어리광이나 부릴 나이인 우리 간호사들이 가족들도 어려운 간병과 수발업무까지 업무영역의 구분 없이 간호서비스를 제공한 결과인 것이다. 병원장은 오늘도 한없는 애정과 신뢰의 눈길로 우리 간호사들이 간호현장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이겨내며 끝없이 정진하고 노력을 다하리라 믿고 있다. 정영호 한림병원 원장

[아침을 열면서] 불확실한 시대의 단상

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이라는 비교적 낯선 학문을 전공할 때만 하더라도 세상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군에서 제대하고 처음 마주친 인터넷 기반의 윈도우 운영체제가 가져다준 난감함이 앞으로 시작될 변화의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것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갑자기 국민학교 때 읽었던 공상과학소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빅데이터, 드론, 증강현실 등 대학교재에서나 볼 법한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포켓몬고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속초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한편 자율주행자동차의 첫 사고 소식과 함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후손들이 만든 가상세계라는 다소 황당한 뉴스도 들린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은 에어비앤비,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한 반면에 기존의 기업들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의 등장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상이다. 문화관광산업이 국가를 이끄는 신성장동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명동에는 중국인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군상들도 변화시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력을 갖춘 젊은 친구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취업을 해도 다수가 사표를 내고 마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바둑대결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열릴 것 같이 난리법석이다. 성공을 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된다는 스티븐 코비의 얘기도 어디가 올바른 방향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미 과거의 유물과 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한때 지능형 의사결정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불확실성하에서 의사결정이라는 연구도 했었지만 사실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의 중심에 내가 놓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안락한 미래가 나를 반겨줄 것이라고는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요즘은 학생들이 상담을 하러 오면 뭐라고 상담을 해주는 게 좋은지 판단하기 어렵다. 내 앞길도 잘 모르겠는데 조금 더 살았다고 조금 더 배웠다고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개인의 생계도 안전도 자신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중요한지 지금 알 수 있다면 지금이 불확실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회보다는 동적인 움직임이 있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가능성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확실해서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시대는 원래 없었던 것 같다. 늘 위기였고 항상 불확실했다. 결국 되돌아보면 이 시기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제대로 행하다 보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정남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김영란법은 ‘홍보성 보도’를 막을 수 있을까

얼마 전 필자가 소속된 한 단체로부터 추석 연휴 뒤 바로 송년모임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말이 되려면 아직 수개월이나 남았는데 무슨 연유인가 했더니 김영란법 시행 전에 부담 없이 모임을 갖자는 취지라고 한다. 지인이 근무하는 모 대학에서도 추석 연휴 다음 주에 송년모임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모임을 9월에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들어보면 납득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이 법이 도대체 얼마나 부담스러우면 이런 해프닝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법 시행을 앞두고 전에 없던 여러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급식당은 예약 취소로 울상이라고 하는데, 포털 사이트에 한 일식집의 2만9천원짜리 ‘김영란정식’이란 메뉴판 사진이 올라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법 시행과 맞물려 택배업계는 일이 넘쳐서 비상인데 문화마케팅 업계는 꽁꽁 얼어붙어 비상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예술 분야에 기업 후원 비중이 높은데 공연 티켓 값이 5만 원이 넘는 예술 분야는 타격이 클 것이다. 이처럼 피부로 느껴지는 현상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 라는 이 법명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이상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이 법 적용 대상 중에서도 언론인들이 공직자는 아니지만 업무의 특성상 준 공직자 대우(?)를 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어, 대형 방송사들은 사내에 김영란법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신문 매체도 향후 언론계가 받게 될 영향을 가늠하면서 홍보 기사 관행이 감소되지 않겠냐는 기대감과 함께 광고비 감소와 매출 타격을 염려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인 듯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 지상파 방송은 과도한 홍보성 보도로 논란을 빚고 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관객동원 700만을 돌파해 화제인데 KBS가 영화 개봉 전부터 자사 뉴스를 통해 이례적으로 이 영화를 홍보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KBS의 자회사가 제작비 일부를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25일 이 영화의 홍보성 기사 제작 지시를 거부한 자사 문화부 소속 기자들을 징계 처분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탓에 김영란법 시행으로 홍보성 보도 관행이 얼마나 줄어들지 의문이 생긴다. 그야말로 이해충돌 방지조항 누락과 적용대상의 형평성 문제 등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있는 터라 홍보성 보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또한 법 적용 대상 가운데 1만7천210개의 국내 언론사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정작 언론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거대 미디어인 포털사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하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김영란법이 언론 분야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거센 논란의 강을 건너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역별 적용기준이 달라 곳곳에 형평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뜨거운 감자는 단연, ‘홍보성 보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언론사의 매출과 직결되는 이 문제를 두고 ‘법’과 ‘현실’은 어느 선에서 타협하게 될까. 김정순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아침을 열면서] 부모세대의 절규

어렵사리 대기업에 취업한 아들을 둔 아버지는 자식 농사 잘했다는 만족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이런 부모는 자식이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말 중에 슬쩍 끼워넣어 자랑을 하고 만다. 그것이 부모 된 심정이리라. 그러다 보니 우리 부모들은 경쟁하듯 그렇게 자식들에게 거의 올인하고 살아왔다. 아이들 때문이라면 비싼 학원비도 마다하지 않았다.자기 삶을 즐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과 사회를 위해 생을 바친 우리 부모들에게 세상은 또다시 엄청난 도전을 강요하고 있다. 우선 미처 준비하지 않은 삶을 더 살아야 한다.과거라면 환갑잔치하고 예쁜 손주들 좀 보다가 하늘로 가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이제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냥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삶의 절벽에 매달려 기나긴 생명을 어렵게 유지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나마도 자식세대와 소통이라도 되고 부모로서 또한 그들의 선배로서 위엄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비상식이 되어가는 또 다른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 필자의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그 기업이 비전이 없다며 사표를 쓰겠다고 해서 괴로워한다. 야구방망이로 패주고 싶다고도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연거푸 술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 아들이 맞다. 지금의 질서가 머지않아 흐트러지고 망가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텐데 가라앉는 배를 타고 있느니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그 아들은 요즘 보기 드문 아주 스마트한 친구였다. 이런 일이 어디 그 집뿐이겠는가. 아마도 많은 가정에서 아니 이 사회통념도 다가오는 뉴노멀(New Normal)을 이해하지 못하고 난제를 풀어가려 한다. 이제 머지않아 기존 산업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허무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내년에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가 국내에 상륙하는 모양이다.전기차는 엔진이 없다. 또한 테슬라는 자사의 슈퍼차저스테이션에서의 충전을 평생 무료로 제공한다. 기름 값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미세먼지도 안 뿜어낸다. 맥캔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이면 신차의 약 60%가 전기차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60% 자동차는 엔진이 없다는 의미이고 트랜스미션이나 배기계통의 장치도 필요 없게 된다.당연히 휘발유 수요는 급감할 것이고 주유소는 문을 닫게 된다. 또한 엔진관련 부품산업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이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오래전 우마차 시절에 자동차가 등장하자 우마차협회에서 격렬히 저항했던 것보다 훨씬 큰 강도의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정치인도 공무원도 우리 모두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침몰하는 배에 일등석을 차지하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의장·前 한글과 컴퓨터 대표

[아침을 열면서] 청년 고용의 확대

필자의 제자인 K군은 마지막 학기인 작년 1학기, 영어공부도 할 겸 해외 경험도 쌓을 겸 호주에 가서 한국인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였다.그리곤 졸업이 되었으나 호주에 계속 머물면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공부를 하였다. 1년이 지난 후 K군은 귀국하여 경영학 전공에 걸맞는 직장을 찾고 있지만, 쉽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때문에 방황하는 청년은 K군만이 아니다. 통계청 조사 자료에 의하면, 20대 청년의 고용률은 41% 정도로서 OECD 평균보다 13%나 낮다. 정부는 청년 고용률을 7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데 까마득히 모자라는 수준이다.대학생들의 경우 취업자라고 하더라도 졸업 후 평균 11개월이 지나야 취업을 하게 되고, 그리고는 첫 직장에서 겨우 15개월 정도 밖에 지내지 못하고 직장을 나오거나 다른 자리로 옮긴다. 그나마 얻은 직장에 만족을 못하거나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첫째는 우리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데다가 그조차도 고용 없는 성장형으로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기업에서 젊은이들을 ‘왕창’ 뽑아주던 일은 옛일이 되고 있다. 둘째는 미스매치(mismatch)의 문제다. 일자리가 있기는 있는데 서로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시장기능의 문제다. 미스매치의 대표적인 문제는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많이 있는데 청년들이 이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아 기업은 구인난이고 청년들은 구직난을 겪는 문제다. 그러니까 청년 고용률을 높이는 방안은 결국 두 가지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가 첫째고, 일자리 미스매치를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가가 둘째다. 지난 24일 경기도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모시고, 노사민정이 다 모여서 협의회를 개최하면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대책을 논의하였다.2조나 3조로 운영되는 사업장은 3조나 4조로 운영하도록 권장하고, 그리고 고임금을 받고 있는 임원들의 임금인상을 자제하여 그 돈으로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제안되었다. 또한 중소기업으로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방안이 답답하고 억지스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기업의 교대제를 어떻게 바꾸고, 임원 임금을 어떻게 삭감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어떻게 줄인다는 말인가. 결국 청년 일자리는 청년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청년들 스스로 창업을 하든지 기존 조직에 들어가더라도 혁신적인 활동을 하여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길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학교교육이 모두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창업가적이어야 한다. 특히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기술서를 매력적으로 쓰고 어떻게 하면 면접에서 점수를 딸 수 있나 하는 것을 가르치는 진로교육은 의미가 없다.그래 보았자 동료 일자리나 빼앗은 것 아닌가? 무슨 직종을 새로 만들고, 무슨 사업을 새로 개척하고, 무슨 기술을 개발하고, 무슨 시장을 새로 열 것인가를 목표로 삼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 아니던가. 조영호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부부대화와 체면보호

부부만큼 장기적이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사는 커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의 운명을 지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역할과 의무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런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갈등을 겪는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극복하는 방식이다.많은 부부들은 갈등을 회피하거나 또는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체념하며 살아간다. 또는 자녀가 결혼을 할 때까지 참고 있다가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혼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큰 상처와 불행을 안겨 줄 수 있으므로 갈등 해결책은 될 수 없다.갈등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대안으로서 필자는 부부 간 체면을 세워주는 대화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브라운과 레빈슨(1987)은 인간은 외부에 드러내고자 하는 긍정적 이미지 즉 ‘체면(face)’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화할 때 서로의 체면을 존중하는 것이 관계유지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체면은 두 유형의 욕구와 관계된다.하나는 타인으로부터 구속되거나 간섭받지 않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존중,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브라운과 레빈슨은 모든 인간은 이 두 유형의 욕구를 갖고 있어서 항상 이를 보호하고 지키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타인으로부터 손상받을 때 체면의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을 겪는 대부분의 부부는 상대의 체면을 무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경도되고, 의사소통은 공격과 논쟁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방식이 부부 간의 부정적 의사소통 패턴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쪽이 체면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 다른 한쪽도 그렇게 되고 이는 계속해서 부정적 대화분위기를 낳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갈등은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는 체면을 세우는 메시지와 언어습관을 갖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함께 살다보면 의견의 대립이 생겨 비판이나 불평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상대의 체면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상대의 체면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비언어적인 표현이다. 부부 간 갈등의 많은 원인이 경멸적인 태도, 비웃음, 무시하는 얼굴 찡그림 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부 간 체면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요령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말을 적게 하고 상대의 말을 많이 듣는 습관을 가져라. 듣는 습관은 존중, 배려의 의미를 전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갈등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둘째, 상대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 대신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둬라. 상대에 대한 불만을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로 했잖아요! 당신은 정말 너무 게을러!” 라고 하지 말고 “음식물 쓰레기를 아직도 버리지 않아서 정말 당황스러워요! 지금 좀 치울 수 있어요?”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상대의 체면을 세우는 적절한 언어와 비언어의 조합이 매우 중요하다. 부부 간의 갈등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상대의 체면을 위협하는 거친 말투, 고압적인 태도, 공격적이고 논쟁 일변도의 대화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무심코 던진 나의 표현이 갈등을 유발했다면 이에 대한 성찰과 예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부부에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조용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자주 감탄하라

행복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다. 어쩌면 인간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처럼 비유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비결을 아는가? 바로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유없이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원리로 잘 웃으려면 잘 웃는 사람 옆에 있으면 된다. 누가 웃기지 않아도 저절로 웃게 되고 웃게 되면서 기분 좋은 상태로 빠지게 된다. 사람들이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잘 웃는 이유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아이들은 왜 행복한가? 어린아이는 하루에 300번 이상 이유도 없이 잘 웃는다. 아이들이 잘 웃는 이유는 근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에 잘 웃는다고 한다. 잘 웃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것도 같고, 걱정 근심이 없기 때문에 잘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 감탄하고 사소한 일에 깔깔거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감탄하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한 번은 아들과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질러가며 나를 불렀다. “아빠, 아빠, 빨리 이리 와 봐” 큰일인가 싶어 달려가서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우와, 벌레야. 이것 봐봐 아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탄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황홀해하고 이것이 아이들이다. ‘그렇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이의 모습에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정말로 작고 사소한 것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늘 곁에 있는 것을 보면서 “우와…”하고 외쳐 본 적이 있는가? 정말 일상의 작은 것들에 대해서 감동하고 감사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아이처럼 행복해지면 우리 가정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내가 행복해지면 옆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내가 행복해지면 옆 사람이 15% 행복해진단다. 그 사람 때문에 그 옆 사람은 8%가 행복해진단다. 이처럼 행복은 전염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전염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집에 가면 우리 와이프가 안 웃어요” 이것은 핑계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우리 남편이 절대 안 웃어요” 안 행복하다면 전적인 내 책임이다. 내가 전염을 못 시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행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린아이는 될 수 없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은 가질 수 있다. 밥상에 앉아서 날마다 감사하라. 날씨를 느끼면서 ‘더워 죽겠네’라는 말 대신에 ‘우와 무지 덥다’라고 말하라. ‘우와 더워 죽겠네’라는 말 대신에 ‘우와 1주일만 참자’ 그러면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자, 그렇다면 오늘은 탁월한 감정을 위해 ‘웃음’을 선택해 보자. 어린아이처럼 옆 사람을 보며 감탄해보자. ‘우와 오랜만이네요’ ‘우와 오늘 짱이십니다’ ‘우와 점심 맛있다’ 이렇게 웃어보자. 내가 행복해지면 가정이 행복해질 것이고 내가 행복해지면 이웃이 행복해질 것이다.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아침을 열면서] 우리나라 뉴스신뢰도 최하위 점수는 포털 탓?

최근 가장 핫한 뉴스로 온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사드’ 이슈가 단연 으뜸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이 안심할 만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여야 갈등 속에서 대립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어 ‘국가안보’와 ‘외교실리’ 명분이 뒤섞이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드 문제는 군사적 본질 외에도, 외교적 실리 등 고려 요소가 다양함에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제시하는 뉴스는 보이지 않고 과격한 찬반 주장과 갈등양상만 보도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ㆍ여당은 원칙론만 내세우며 밀어붙이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을 설득시키기는커녕 불신과 불안만 증폭시키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사드 관련, 여러 보도를 접하면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필자는 국민들이 뉴스를 어느 정도 신뢰할까 궁금해졌다. 애당초 우리나라 언론의 뉴스 신뢰도가 높게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진흥재단이 공개한 영국 ‘옥스퍼드대학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2016년도 보고서 결과로 나타난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충격적이었다. 한국 뉴스 신뢰도가 미국, 영국 등 조사 대상 26개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한국인의 뉴스 소비 패턴도 다른 국가들과 차이를 보였는데 국제, 정치, 경제, 건강 등 경성뉴스보다 연성뉴스인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연예ㆍ스타, 예술ㆍ문화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인쇄매체 등 전통매체를 통한 뉴스 이용 비율은 조사 대상국 중 하위권이며, 주로 포털과 뉴스검색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포털 의존도는 터키, 폴란드에 이어 3위로 매우 높았고, 언론사 홈페이지나 앱 이용률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필자를 포함한 언론학자와 다수의 언론인들은 과다경쟁과 선정성 일변도인 언론 환경이 염려스럽다. 평균 3만 건 가까운 기사들이 포털로 쏟아지는데, 각 언론사들은 뉴스 소비자들에게 자사 기사를 노출시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눈에 더 잘 띄기 위해 제목과 사진, 내용 등을 선정적으로 편집하기도 한다. 이런 탓에 언론은 고유 사명인 ‘감시 역할’을 소홀할 수도 있고 이런 환경은 양질의 뉴스 소비문화와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지면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뉴스 소비 환경이 바뀐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론사의 포털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언론사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야 생존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보다 더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 구조 속으로 깊게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자주 검색되고 많이 노출되는’ 기사 생산을 위해 언론사는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다루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 뉴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같은 음식만 먹거나 편식하면 영양결핍에 빠질 수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여서 편식하지 말고 연성과 경성 뉴스에 고루 관심을 갖고 균형 잡힌 소비로 건강한 소비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뉴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바람직한 뉴스 소비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뉴스 생산이 선행되어야한다. 언론인들은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낙종을 감수하면서까지 익명 취재원 사용 기준을 강화한 조치도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스 산업은 소셜미디어와 플랫폼 회사가 뉴스를 배포할 수 있는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뉴스는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통해 걸러지는 상황이 됐다는 한 매체의 기사가 깊게 와 닿는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아침을 열면서] 맑은 사회로 가는 길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으면서 그 시행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적용대상이 공무원뿐만 아니라, 언론인 그리고 필자와 같은 사립학교 교직원에까지 이르므로 우리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도 당장, 명절에 졸업생들로부터 받는 선물이 예전 같지 않고, 그리고 대학원생으로부터 식사를 얻어먹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우리나라와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하고 그리고 식사나 술을 함께 하며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부정청탁이나 비리로 이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친구인 검사에게 주식을 주거나 차를 제공하기도 하고, 프로 스포츠선수가 친척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승부조작을 하기도 한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혁명’이 일어나고 맑은 사회로 가는 데 큰 전기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필자는 1983년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교수가 강의용 교과서를 채택하면 출판사로부터 사례금(교재채택비)이 제공되었다. 당시로써는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교수들 사이에 말들이 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교재채택비 수수를 거부하고 그만큼 교재비를 학생들에게 할인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박사과정의 논문심사도 그렇다. 대체로 세 번 이상 심사를 하게 되는데 과거에는 적어도 한번 괜찮은 자리에서 식사를 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주는 심사료 말고 학생으로부터 ‘교통비’를 제공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심사위원들을 학교의 구내식당에 초대하는 것도 힘들어졌으며 가벼운 식사자리를 마련하더라도 학생이 아닌 지도교수가 계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깨끗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함정은 많다. 법인카드는 여전히 사적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직원들끼리 가볍게 식사하는 자리도 회의비로 지출하고, 친구들 하고 술 한 잔 하면서도 업무용으로 처리한다. 애매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애매한 경우 회사의 법인 카드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애매한 경우는 개인카드를 써야 한다. 필자가 해운사 경영컨설팅을 할 때 노르웨이 지사에 있는 인사 임원이 하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임원들은 급여 외에 회사로부터 제공 받는 것이 많더라고요. 식사도 공짜가 많고, 차도 전화도 회사에서 제공을 받고… 노르웨이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요즘은 웬만한 기관이면 윤리강령이나 행동수칙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윤리경영에 대한 교육을 나가 보면 그런 규칙을 자세히 읽어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10년 전에 만든 것을 개정 없이 그대로 두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란법은 조직마다 윤리강령을 다듬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경영의 윤리성과 개인의 도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조영호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인성교육과 토론

최근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조차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주지하다시피 인성교육은 인간의 기본적 됨됨이를 갖추게 하는 것으로 전문적인 특별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에서 인성을 중요한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현 실태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며 철저한 분석과 함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다. 인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인간다움의 품성과 태도를 지녔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이것을 도덕이나 윤리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도덕이나 윤리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내용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아마도 관계적 사고와 실천 속에서 인간다움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성교육의 핵심은 관계성을 도모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이런 교육이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상대방을 존경하고 자신을 낮추는 법을 가르치면서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함께 사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함께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 상대방을 타도해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슬그머니 우리의 뇌를 지배하고 말았다. 인간관계에 공룡시대 약육강식의 논리가 침범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사회의 폭력성은 특히 토론에서 나타난다. 사회의 쟁점에 대해 찬반으로 나누고 반론과 재반론의 의견개진을 통해 공통의 합의를 모색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다. 토론을 마치 ‘전쟁’으로 간주하여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 토론의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에서 이를 독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간단치 않다. 아마도 우리사회의 다양한 병리적 현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는 오히려 작은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계성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제대로 토론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서 말이다.이를 위해 우선 적절한 토론교재가 시급하다. 토론은 무엇인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대화적 논쟁’의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런 과정을 실천하게 하는 교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가짐’, ‘공통의 대안을 모색하는 협력적 태도’는 중요한 교육목표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교육의 방향도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기존의 논쟁능력만을 키우는 것에서 탈피하여, 합의 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편으론 논쟁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하는 프로세스, 즉 과정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한 세부내용으로 ‘대안을 위해 비판하기’, ‘상대의 타당한 비판 인정하기’, ‘상대의 입장 정확히 이해하기’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겠다. 인성은 관계적 가치를 배우고 실습하는 교육으로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가치를 반영하는 ‘대화적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 대한 인성교육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조용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장수마을엔 웃음이 있다

웃음을 연구한지 벌써 20년째가 되었다.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라는 연구 결과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설마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장수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활습관을 살펴보니 웃음이 실제로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가장 큰 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00살이 넘는 이들 중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이 말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남들보다 더 잘 웃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낙천가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마틴 셀리즈만 교수의 연구결과, 첫 번째 심장마비를 겪고 8년 이내에 두 번째 심장마비가 온 32명 가운데, 인생을 비관적으로 산 사람은 16명 중 15명이 사망했으나, 웃고 즐기는 사람은 16명 중 5명만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웃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제거된다. 따라서 자주 웃으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므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웃음이 많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아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으므로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진다. 결국 웃음 속에 장수비결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장수하게 만드는 웃음에는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하자. 첫째, 크게 웃자 크게 웃으면 광대뼈 주위의 근육이 자극을 받아 얼굴 근육들이 함께 움직인다. 이때 광대뼈 주위의 혈과 신경은 뇌하수체를 자극해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래서 크게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나아가 광대뼈의 신경은 심장 위에 있는 흉선을 자극해 면역계의 총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T임파구를 활성화시켜 면역체를 건강하게 한다. 둘째, 길게 웃자 웃는 얼굴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내쉬는 호흡, 즉 날숨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웃을 때 날숨을 내쉬게 되는데, 날숨은 몸 안의 독소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숨을 들이마시거나 숨을 멈추었을 때 웃으면 어딘지 표정이 어색해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10초 이상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배와 온몸으로 웃자 크게 그리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웃으면 배가 움직이는데, 이때 오장육부가 움직여 내장이 튼튼해지게 된다. 웃음이 ‘내장 마사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웃을 때는 손과 발을 움직이면서 웃자. 그러면 웃는 것이 더 쉽고 재미있다. 아이들은 정말로 신나게 웃을 때, 방바닥을 때리거나 방방뛰면서 웃는다.이렇게 웃으면 온몸이 움직여 전신운동이 된다. ‘박장대소’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는다는 뜻인데, 배와 온몸으로 웃을 때 진정한 박장대소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수 칠 때 12번 정도 치는데, 10초에 32번 칠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팔을 어깨 넓이로 벌린 다음 얼굴 높이에서 세게 박수를 쳐보자. 그렇게 박수를 치며 웃으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말 미친듯이 웃을 때에는 포복절도, 요절복통의 웃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배가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어야 최고의 건강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장수하기 원한다면 크게 웃자. 길게 웃자. 배와 온몸으로 웃자. 장수마을엔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아침을 열면서] 연예인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불편한 이유

요즘 방송에는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채널까지 동물의 등장이 부쩍 잦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연예인들이 키우는 반려견의 일상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끄는데, 연예인들의 반려동물들이 TV 예능의 대세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채널A의 ‘개밥 주는 남자’에 나오는 강아지들은 견주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복을 타고 났다’는 부러움을 받으면서, 연예인 못지 않은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웰시코기 종 강아지인 ‘대, 중, 소(강아지 세 마리 이름)’의 인기에 힘입어 이 종의 강아지 가격까지 올랐다고 한다. 견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생활하는 강아지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디 이뿐인가.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하얀 포메리언 종의 강아지가 앙증맞게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예쁘다. 최근 ‘개밥 주는 남자’를 시청했다. 너무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보았는데도 프로그램 시작부터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필자의 정서가 유난스러운 것일까. ‘대, 중, 소’의 예쁜 일상을 보면서, 동시에 수많은 유기견들의 비참한 모습과 강아지 번식장의 처참한 모습까지 오버랩됐다. 다른 시청자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했다. 필자와 함께 같은 방송을 시청한 딸에게 물었더니 “연예인 육아프로 때문에 연예인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겹도록 봐왔는데 이제는 연예인들이 키우는 강아지냐”며 다소 모진 답이 돌아왔다. 또 “보통의 반려동물들과 (생활환경 면에서) 너무 격차가 커 화가 난다”고도 했다. 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대체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려동물 1천만 시대가 동물에 대한 관심을 대변해주고 있다. SBS ‘TV 동물농장’은 대표적인 반려동물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2001년 첫 회를 시작으로 거의 10% 대의 꾸준한 시청률 속에서 15년 넘게 사랑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동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하고 동물 학대의 실상을 알려 동물에 대한 책임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데 앞장서왔기 때문일 것이다. ‘TV 동물농장’은 고통 받는 많은 동물을 구출하면서 ‘동물보호 캠페인’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수가 많아지면서 염려와 비판도 적지 않다. TV 반려동물 프로그램의 급증이 유기동물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예인들의 반려동물 프로그램 속의 사랑스런 이미지 때문에 책임감이나 고민 없이 반려동물을 너무 쉽게 구입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결국 유기동물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반려동물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나 방치 또한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연예인 애견 프로그램이 이런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연예인들의 반려견 예능프로가 곱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서울시는 10월부터 동물복지 지침을 시행한다고 한다. “동물이 인간과 공존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제대로 존중받고 보호받을 때 우리 사회의 생명에 대한 인식 수준도 같이 높아질 수 있다”라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 깊게 와 닿는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아침을 열면서] 직급파괴와 수평적 조직문화

▲ 조영호 미국 청바지회사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인사담당 임원이 한국 방문객을 처음 맞게 되었다. 걱정이 되어 한국지사에 나와 있는 미국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그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별로 질문이 없을 터이니 준비된 내용만 설명하면 그걸로써 족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웬걸, 이 방문단에서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국인의 말이 맞다. 한국인은 통상 질문이 별로 없다. 특히 상하관계가 분명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말들을 잘 안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수업시간도 조용한 편이고,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가 주류를 이룬다. 교수들의 모임은 다른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학생들보다 더할 때도 많다. 이게 한국인들의 생활이고 문화다. 비교문화학의 대가인 네델란드의 홉스테트(Hofstede) 박사는 권력거리(Power Distance)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상하관계는 존재한다. 그런데 그 상하 간의 거리의식은 사회마다 다른 것이다. 심리적인 거리 말이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아시아나 남미 국가는 권력거리가 크고, 유럽은 좀 낮은데 특히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낮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처음 발표 시 53개 국가 중 중간쯤 되는 27위로 나왔다. 권력거리가 클수록 사회는 수직적으로 되고 경직적이다. 권력거리가 낮을수록 사회는 수평적이 되고 다원적이고 유연해지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도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한국의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직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물론 우리보다 더한 나라도 많지만, 우리와 거래하고, 우리와 경쟁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렇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2~3명이 보좌관을 한명 쓰며 대개 대중교통수단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한사람이 보좌관을 7명 정도 쓰며 대형 자가용으로 움직인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원들은 공간도 크고 일을 주로 시켜서 한다. 서양회사의 임원들은 직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이메일도 직접 응대하고, 차도 직접 끓인다. 문화는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수직적 문화는 그 나름대로 효율적이며 안정을 준다. 그러나 창의성을 저해하고 다양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이 내부의 수직문화와 본격적인 전쟁에 나섰다. CJ에서는 1999년부터 호칭에서 직급을 없애고 그냥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모레 퍼시픽, SK에서도 이름 뒤에 님을 붙이거나 매니저라는 중립적인 호칭을 쓴다. 카카오 같이 영어 닉네임을 쓰는 회사도 많다. 삼성도 최근 본격적으로 직급파괴에 나섰다. 직급 자체를 7단계에서 4단계로 줄이고 호칭도 ‘OOO님’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수직화된 사회에서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조직문화가 진정으로 수평적으로 되고 조직과 개인의 창의성이 높아질 것인가?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회사 임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들이 당장의 불편함과 답답함을 감내해야 한다. 그들이 먼저 철저하게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의 관건이다. 조영호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비폭력 대화

최근 발생하는 다양한 범죄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 내재된 폭력문화가 분출된 현상이라는 것이다.주지하다시피 폭력성은 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폐해를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폭력성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일체의 행위에서 나온다. 특히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헐뜯는 언어폭력은 상대방에게 회복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그래서 로젠버그(2003)는 평화의 언어로서 ‘비폭력대화(NVC)’를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비폭력대화의 핵심은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나 명령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부탁하는 것이다. 즉 비폭력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행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비폭력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띄는가? 이를 위해 우선 폭력성의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폭력성은 어떤 행위 자체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 토론할 때 상대방에 대한 비판 자체를 폭력으로 보지 않는 이유이다. 만약 그 행위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비로소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평화’의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었다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도 일상에서 자주 나타난다. 가령 “자네는 영업 쪽은 적성이 아니야! 인사팀이 맞는 것 같아”처럼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습관은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서 언어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언어폭력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습관이 언어폭력을 낳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조언이나 충고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언어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것에는 대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한몫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는 아마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병리 현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극심한 경쟁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둘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대화를 나눌 친구나 직장동료, 심지어 가족이 없는 이유다. 따라서 비폭력대화는 우리에게 습관처럼 돼 있는 자기중심적인 대화 방식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 초점을 둔 사고와 행동에서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다.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갑-을 관계구조에서 벗어나,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신뢰는 차츰 쌓일 수 있는 것이다.나아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할 때, 대화를 자신의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 평화의 언어, 비폭력의 언어가 깃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조용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일상에서 쾌족하는 방법

우리 집에는 2년째 지켜오는 문화가 한 가지 있다.때는 아들이 사춘기로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들 하는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아들 덕에 아내와 대화하면서 내린 결론은 ‘멘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의 멘토를 찾아주기 위해 함께 집 근처에서 열린 세미나를 찾았다. 강연자는 동기 부여를 잘하기로 소문난 한 대학의 총장님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기대와 달리, 아들은 강의 두 시간 내내 다리만 떨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화가 꿈틀꿈틀 올라오는 것을 겨우 눌러야 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오늘 뭐가 기억에 남니?” 그러자 중2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부모가 바뀌어야 자식이 바뀐대” 순간 화도 났지만 나를 뒤돌아보게 됐다.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잘 웃고 화내지 않고, 인격적으로 잘 대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우리 집에는 ‘90도 인사하기’ 문화가 생겼다. 출입문을 드나들 때 사람이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90도로 인사한 후 눈을 마주쳐야 한다. 이 문화를 지켜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처음 한 달은 참 힘들었다. 보던 신문을 접고 일어선다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고, 아내는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인사한다는 것이 힘들었단다. 다행히 지금 아들은 인사를 아주 잘하는 고1이 되었다.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아내가 아들에게 물었다. “인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무엇이 느껴지니?”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는 학교 갈 때마다 공허함이 느껴졌는데 요즘은 아침마다 꽉 찬 기분이랄까!” 아들의 이 말에 우리는 깨닫는 것이 많았다. 인간은 누구나 뻥 뚫린 가슴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열었던 웃음치료 세미나에 한 사모님이 우울증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남편과 아들 모두 굴지의 의대를 졸업한 의사라고 했다. 단, 남편이 S대를 나온 것과 달리 아들이 Y대를 나온 것이 그녀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빈곤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기쁨이 사라지면 아무리 넓은 평수의 집에 살아도 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진 것에 상관없이 풍요의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려면 생각이 단순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웃음’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한 번 웃고 나면 있는 모습 그대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실컷 웃고 나면 털어버릴 힘이 생기고,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위로할 뿐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는 ‘지금의 내 마음 상태가 상쾌(快)하고 만족(足)스럽다’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의 삶이 유쾌하고 만족스럽다면 이미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일게다.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아침을 열면서] 호국영령들과의 소통·존중이 필요할 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순국 영령을 추모하는 보훈행사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한 고등학교 교문에 적힌 ‘가슴가득 보훈정신, 호국선열 사랑하자’라는 현수막은 지금이 보훈의 달임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에 적힌 구호를 보면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관심이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 달 전쯤 한 케이블방송에서 인기 아이돌그룹 AOA 멤버들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깅또깐?”이라고 묻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SNS를 뜨겁게 달궜고, 당연히 거센 비난이 일었다. 젊은 친구들이 안중근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을 모른다는 사실은 단순한 무지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부재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어떤 존중이나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며 여기에 심각성이 있다.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 독립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가치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희생시켜 온 분들의 고귀한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호국영령들의 헌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묻는다면 필자를 포함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 자녀인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 아버님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무섭고 불편했던 기억이 더 많다. 다정다감한 아버지 모습보다 수감 중에 당한 구타후유증으로 힘든 일상을 보낸 가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현충일 등 국가적 행사가 진행될 때 일시적이긴 하지만 약간의 자긍심과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애국지사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헌신이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은 받았지만 ‘존중 받는다’는 느낌은 실감하기 어렵다. 보훈처 발표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의 보훈의식은 낮은 편인데 호국보훈 의식이 1% 증가하면 사회갈등 요인을 1.59% 감소시키고 이를 통해 11조9천억 원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훈의식 고취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해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호국선열 애국자들과의 소통과 존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가정, 학교, 조직, 기업, 정치권, 세대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소통과 존중이 절실하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호국선열의 희생과 피땀 위에서 삶을 영위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호국보훈 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소통을 원활하게 이끌어 줄 확실하고도 귀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빚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존경스러운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넋을 기리며 서로 한 마음으로 합쳐 더 나은 사회를 더 건강한 국가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도 이 땅을 지켜보는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가장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아침을 열면서] 대학교육도 수출상품이다

이번 학기 필자는 대학원에서 리더십을 강의하는데 수강생 18명 중 한국인 학생은 불과 5명밖에 되지 않는다. 네팔 학생이 4명이고, 독일 학생이 3명, 중국이 2명이며, 파키스탄, 몽골, 카메론, 타이완 학생도 있다. 필자의 강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이제는 경영학과 대학원의 모든 강의에서 볼 수 있으며 또 학부강의도 비슷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독일 트리에 대학의 비르켄펠트 환경캠퍼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막스밀리안은 우연히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생애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인 한국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구내 커피점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과 대화를 했는데 그는 12시간 일을 한다고 하고, 같이 기숙사 방을 쓰고 있는 한국인 룸메이트는 실험실에서 일하느라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온다고 한다. 막스밀리안 같은 외국인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한국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으며 그들이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한국에 대해 어떤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 줄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국제화는 한국인을 한 명이라도 해외에 내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학생을 내 보내는 학생파견에 못지않게 외국인 학생을 국내에 유치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외국학생이 한국대학에 와서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교육이라는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NAFSA(나프사)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1948년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을 지도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이 조직은 이제 대학에서 국제화 교육을 담당하는 교직원의 모임으로 확대되었으며, 회원수가 1만 명에 이르고 참여하는 국가도 150개국에 이른다.나프사는 연례대회(Annual Conference)를 열고 있는데 2016년 대회는 5월 29일부터 6월 3일까지 미국 덴버에서 열렸다. 각 나라의 대학들은 행사 중간에 열리는 EXPO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필자도 이번에 두 번째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EXPO가 열리는 콜로라도 컨벤션 센터 2층은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EXPO에서는 대학들이 나라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부스를 차려놓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협의하거나 또 자신의 대학을 홍보한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16개 대학이 참가했는데, 9개 대학은 단독 부스를 차렸고, 7개 대학은 공동부스를 운영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또 부스의 외양도 제법 갖춰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 그 위상이 약해 보였다. 일본은 무려 59개 대학이 거대한 공동부스를 차려 전시장 한켠을 완전히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벚꽃으로 온 공간을 장식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식사까지 대접하면서 “일본으로 공부하러 오세요” 하며 공격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었다. 프랑스도 외국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영어로 강의를 늘리고 “왜 프랑스에서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홍보물을 돌리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마우리 전통공연팀까지 초청하며 대사가 설명회까지 했다. 가히 학생유치를 위한 무역전쟁이라 할만 했다. 대학교육도 세계시장에서 팔려야 한다. 이 무역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다른 상품에 비해 아직 미미하다. 이제 ‘대학이라는 상품의 수출경쟁력’에 눈을 떠야 한다. 조영호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미네르바 대학의 그늘

최근 대학가에서 미네르바 대학이 큰 화제다. 미네르바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캠퍼스 없는 대학교라는 점이다.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실시간 영상통화를 통해서 교수와 학생 간의 쌍방향 소통과 토론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지식의 습득과 전달에 있어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우선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적 석학의 수업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원하기만 하면 수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현지에 유학가지 않아도 해외 유명교수에게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교수자의 입장에서도 장점이 많다.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교수-학생 간 소통이 활발해져서 효과적인 지식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시간에 체크해야 하는 출석, 발표 횟수, 참여도 등이 자동 집계되기 때문에 교수들의 수업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즉 수업외적인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시켜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고, 시공간적 제약 없이 쌍방향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지식 전달 및 습득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때문에 미네르바 대학의 교육시스템은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저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대학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볼 때 큰 매력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효율성의 극대화가 대학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좌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기업의 경영방식대로 효율성의 가치만을 숭배한다면 자칫 대학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전문지식을 갖춘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집단을 이끌 수 있는 ‘전인적 리더’를 양성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전인적 리더는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통능력은 온라인상의 교육으로는 제대로 길러지기 어렵다. 특히 첨예한 의견 대립 시 서로 양보하고 합의점을 도모하는 체험을 통해서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다. 아울러 소통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감능력을 가르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교과이외 활동의 가치가 무시될 수 있다. 대학의 동아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봉사나 의료 낙후지역에서의 의료봉사는 소외계층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나눔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이는 온라인교육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미네르바 대학이 기존 오프라인 교육의 단점을 보완하는 혁신적 모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 새로운 교육모델에 대해 충분한 논의 없이 즉흥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경우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 모델이 갖는 장단점을 장기적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논의하여 채택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전문적 지식과 함께 사회적 책임의식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상을 추구한다면 미네르바 대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보다는 그 실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용길숙명여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우리는 웃기 위해 태어났다

미국 남서부에 살던 어느 인디언들에겐 갓 태어난 아기에게 ‘웃음부모’를 정해주는 풍습이 있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 사이는 아니지만 아이를 직접 간지럼 태우는 것 외의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장 먼저 웃게 만든 사람을 아이의 웃음부모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 아이와 웃음부모의 관계는 평생에 걸쳐 계속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는 웃음부모를 찾아가 함께 웃으며 고통과 위기를 극복해간다. 웃음부모는 아이에게 친부모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존경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자녀양육과 가족관계에 있어서 웃음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웃음으로 키운다. 자녀가 인생을 웃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도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웃음으로 극복해냈다고 한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웃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매일 나를 짓누르는 두려운 고통을 이기기 위한 무기로 나는 웃음을 선택했다. 내게 웃음이 없었다면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웃음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 힘을 주는 명약과 같다. 요즘처럼 사회가 복잡해지고 생활템포가 빨라지면서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다. 웃음은 정신적, 육체적인 긴장을 완화시켜준다. 또한 웃음은 심폐운동을 활성화시키고 동맥과 근육을 이완시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크게 웃으면 긴장하고 있던 몸속의 혈관과 근육이 이완되면서 심장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혈액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놀랍게도 웃음은 혈액 속의 NK세포 숫자가 증가하고 뇌하수체에서 엔돌핀, 엔케팔린 등의 천연진통제가 생성된다. 크게 웃으면 자연살상세포인 NK세포의 수가 늘어나 암세포를 살상하게 되므로 사전에 암을 예방하거나 사후적으로 암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고, 엔돌핀 등의 진통 호르몬이 분비되어 암환자들의 통증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암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웃음요법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웃음이 갖고 있는 위대한 힘 중 또 하나는 바로 놀라운 번식력이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작게 시작되었다가도 어느 순간 박장대소로 변해간다. 또한 웃음은 상대를 웃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웃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옷을 사고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웃음 역시 상대를 위해, 나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소중한 옷인 셈이다. 많은 재료와 공정을 통해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듯, 여러 가지 웃음의 이유들이 모여 한 벌의 희망을 만들게 된다. 멋진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듯, 웃음의 효과 역시 마찬가지다. 기분이나 날씨가 안 좋을 때도 웃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며 기분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다. 우울한 날, 거울 앞에 서서 미소 한 번 지어보아도 뭔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웃음의 이유와 기회는 찾을수록 많아진다. 지금까지 웃을 수 없는 이유들만 보아왔다면 이제 시선을 돌려 웃을 수 있는 이유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찾아보자. 그렇게 한 달을 찾으면 30가지 100일을 찾는다면 100가지의 웃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게 된다.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아침을 열면서] 혼란 부추기는 ‘쇼닥터 장사’ 이제 그만

요즈음 TV에선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 지상파채널은 물론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까지 건강프로그램이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야말로 건강프로그램 천국이다. 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향해가는 우리 사회의 필연적 요구와 관심일지도 모르겠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강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TV건강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들이 서로 상반된 의료정보를 제공할 때 시청자들은 어떤 의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또 특정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중병 완치 사례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다 보니 폐해가 뒤따른다. 시청자들은 해당 식품을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정말 혼란스럽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가짜 백수오’ 사건이나 어성초ㆍ하수오 관련 의학적 효능 논란 등 일련의 굵직한 사건들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건강프로그램과 쇼닥터들의 과잉 해설이 빚은 산물이요, 그들의 합작품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쇼닥터란 방송에 빈번하게 출연해 근거 없는 치료법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일부 의사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쇼닥터 폐해가 점차 커지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3월 ‘쇼닥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엔 건강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던 쇼닥터들이 홈쇼핑 방송까지 진출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의사의 입’이 극단적인 상업행위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건강 TV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의사나 한의사 등 의료인들이 직접 특정 건강제품 홈쇼핑 판매 행위는 ‘고도의 소비자 현혹’처럼 보인다. 소비자들은 해당 의사의 해박한 의료지식과 인지도 때문에 해당 건강제품을 적극적으로 신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2016년 건강기능식품 정책방향 및 규제개선’ 내용을 보면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데 시기적으로 늦은 감은 있지만 건강식품 관련 소비자 보호 방안 마련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정부가 백수오 사건의 원인을 ‘TV홈쇼핑과 쇼닥터가 조장한 소비자 오인’ 이라고 분석해 관심을 끈다. 또한 건강식품 관련 허위ㆍ과대광고를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1천만 원 이내 포상금을 지급하며, 연구ㆍ개발 방법을 지나치게 많이 표기하는 경우도 단속대상이라고 한다. 또한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 20인 이상이면 해당 업체의 제품에 대한 수거·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고 한다. 이 같은 규제에 힘입어 TV 방송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오인 유도하는 쇼닥터의 무대도 제한을 받게 된다면 시청자 혼란도 그만큼 줄 것이다. 이미 저널리즘의 많은 연구 결과, 건강 관련 토론이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건강에 대한 상식과 개념 형성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넘쳐나는 건강프로그램 대신 건전하고 다양한 시사교양프로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김정순 신구대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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