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큐슈-야마구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진정성’ 있어야

지난 11월22일 서울 국립 고궁박물관에서는 ‘강제동원 관련 일본 큐슈-야마구치 일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지들의 진실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주제의 국제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의 역사보전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한국과 일본의 관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본에서 2009년부터 2015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규슈 야마구치 일원의 산업유산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진정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일본 정부는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2013년도 9월17일에 정부 추천 안건으로 결정하고, 약 2주 후인 9월30일에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 일본이 평가하고 있는 규슈-야마구치 일원의 가치는 국가와 민간자본의 통합을 통해 일본 근대화와 산업개발의 기반을 제공한 아시아 최초의 다양한 근대산업유산이 집합된 중공업 관련 지역으로, 가장 단기간에 산업화를 달성한 곳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845개소의 조선인 강제동원 노역장이 있었던 일본 최대의 징용지대였다. 또한 등재 추진 중인 단위유산 26개 중 17개소는 징용의 현장이거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포, 총탄류, 군함 등의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군수산업시설, 또는 전쟁을 위한 석탄, 철 등을 생산하는 연료공급지였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공식 확인된 사망자가 1천983명, 행방불명자가 513명이며 그 외의 피해자도 3만5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징용관련 사실을 노출하지 않고 기술차원의 기능적 당위성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면 진정성(authenticity)의 확보가 필수조건이다. 진정성은 ‘진짜’와 ‘진실’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집단 학살수용소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s Birkenau)’는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우슈비츠는 독일 제3제국에 존재했던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였던 곳으로, 요새화된 벽, 철조망, 발사대, 막사,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 대량학살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우슈비츠는 자유로운 행동과 사상을 억압하고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고 했던 나치 독일의 시도에 끔찍한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강한 인간정신을 기념하며, 유대인 대학살, 인종차별 정책, 인간의 야만성을 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장소로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의 전제에는 ‘철저한 반성’과 ‘진실한 사죄’가 있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과거 일본이 한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정권을 중심으로 일부 정치인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큐슈-야마구치 일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먼저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유네스코 위원회와 같은 국제적 기구를 통해 세계에 알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일본에 피해를 입었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조체계 마련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연계하여 국무총리실의 일제강제동원희생자에 대한 연구진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련 연구재단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더불어 우리나라도 국내에 산재해있는 산업유산에 대한 검증과 보존체계를 갖추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