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언젠가 내 학생 하나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왔다. 그 말은 영화 ‘봄날은 간다’ 덕분에 유명해졌단다. 근데 자신은 사랑이 변한다고 생각한단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은 변하기 때문에 첫사랑은 만들어진 것이다, 라는 말도 나왔으리라.

‘사랑’이 들어간 글을 보면서 나는 직업정신이 발동하여 사랑이 서사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흔히 사랑은 확인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내지는 대상이 서로 마주칠 때, 마주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 어떻게 부딪치는가에 따라 사랑도 서사가 될 수 있다….

텔레비전의 어떤 연속극 대사 가운데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인구에 회자 된 적이 있다. 그 연속극이 상당히 오래 전에 방영되었음에도 지금의 젊은 학생들도 그 말을 알고 있다. 그들 말대로 하면 명대사여서 그렇단다. 이미 ‘어록’이 되었나보다. 나는 이 말에서 서사를 느낀다.

만약에 남자가 여자에게 ‘내가 너를 무지 사랑하는데’하면서 건성으로 혹은 지나가는 말로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확인하려들었다면 사실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을 사랑이라 하며 확인하려들면 절대 서사가 안 일어난다.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말을 쓰지만 사랑임을 알 수 있을 때 서사는 일어난다. 상대방이 다쳐서 아플 때, 나도 몹시 아프면 그때 사랑이 발생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의 관계성이 입증되며 서로 마주하는 상응성이 생기기 때문.

사건이 발생하는 것, 그게 서사일 터.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분명 사랑은 확인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사랑의 사건을 일으켜 서사를 발생시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이라는 말을 써서 사랑의 상태를 확인하면 감동도 안 일어나지만 구체적인 사건이 없어서 서사가 안 일어난다. 구체적인 사건이 없을 때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남발하게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라면 민이 주인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민이 주인으로서 벌이는 일이어야 서사가 일어나며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추상적인 민주주의라는 말만 마냥 들먹인다고 민주주의 세상이 오는 것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알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면 감동적인 서사가 일어난다.

법도 마찬가지일 터. 법적 안정을 위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한다며 법이라는 명사를 마구 들먹인다고 감동적인 서사가 일어날까? 법이라는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법을 생활 속 여기저기서 느낄 때 서사가 일어나며 법적 안정이 실현된다. 너무 많은 추상적인 말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적인 말은 어떤 서사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사가 있어야 감동을 받는다….

박상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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