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슬픈 진도

실증적 연구와 관찰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을 통렬히 비판하며 보여주었던 레비-스트로스. 그의 대표 저작물 가운데 하나인 슬픈 열대의 명명법을 따르자면 진도는 시방 슬픈 진도(엉뚱하지만)이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슬픈 곳이 진도뿐이랴만.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진도사람들은 지금 대부분 공황에 빠져 있다. 300명이 넘는 목숨들을 품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조도면 일대의 주민들은 갯것 채취나 고기잡이를 비롯 어장 관리를 한 달 넘게 포기해야 했다. 진도 본토의 사람들 역시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군말 없이 해야 했다. 혹시라도 유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될까봐 큰 소리도 안 내고 웃지도 않아야 했다. 게다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죄책감은 상당하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것 정도는 자식 잃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생업을 못해도 그러련 해야 한다. 내 고향 진도.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해 고향이 진도라고 하면 대부분 진돗개를 떠올리며 개의 안부를 묻는다. 근데 이젠 세월호를 떠올리고 세월호의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해 슬픈 소식 말곤 전할 게 없다. 진도는 이미 진도아리랑 속에 아리고 쓰린 마음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진도아리랑의 후렴구를 보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라고 노래한다. 물론 이 후렴구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순하게 발음하여 스리 스리랑으로 노래 하기도 하고, 서리 서리랑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자꾸만 아리고 쓰린 마음 때문에 그런 후렴구가 붙지 않았나싶다. 지나친 억측 내지는 견강부회인지 모르지만, 그럴 거라고 강변해본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은 목숨들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필자는 사반세기 전, 고향 진도의 사람과 풍물을 그린 연작시 진도아리랑을 썼다. 그때 쓴 어떤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영민이는 끝내/돌아오지 못하고/영민이 떠나던 포구에/씻김굿 한바탕/대끝만 흔들거렸다. 이제 세월호 청춘들을 위해 씻김굿을 해야 하는가? 남은 이들에게 할 일이 씻김굿밖에 없는가? 익히 알려진 대로 진도엔 씻김굿이 성하다. 사방이 바다라서 배 타고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기도 했고, 고려말 이후 왜구들이 늘 출몰하여 주민들의 목숨을 많이 해쳤다. 그때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씻김굿을 해서 제 명에 못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의식을 치렀을 거라고 추측한다. 사실, 명을 다 채우고 죽었다 해도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씻김굿이 처음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느라 시작되었겠지만 차츰 죽은 사람이면 누구든 모두를 씻겨주는 상례 내지 제례 의식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물론 몇 해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씻김굿을 했다. 근데 그 씻김굿 가운데 바다에 빠져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랠 땐 특히 넋건지기굿을 한다. 넋건지기굿. 할머니 생전에 바다에서 살아오지 못한 마을 사람을 위해 바닷가에서 이 굿을 할 때 대나무를 잡은 할머니한테 바다에서 죽은 마을 사람의 영혼이 실려 할머니가 며칠 동안 꼼짝 못하고 앓은 적이 있었다. 설마 바다에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을 것을 예감하고 진도에서 씻김굿이 성하진 않았을 것이지만 세월호가 진도 바다에서 침몰한 게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아 자꾸만 몸이 떨린다. 진짜 씻김굿은 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이 진정 극락이 되도록 살아있는 이들을 잘 위무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씻김굿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안 당했으면 좋겠다.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지방선거와 복지정책 공약

6ㆍ4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요 며칠 새에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폭증했었다. 깨알같이 후보를 홍보하는 내용으로 빽빽했다. 보낸 사람의 수고를 생각해서 보내오는 메시지마다 꼼꼼히 읽어보았다.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내가 사는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그 길지 않은 거리에 플래카드가 수십 개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벽보들도 보인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공약들로 희망이 넘실거린다. 문자메시지며 플래카드며 벽보며 홍보되는 거의 대부분의 공약들이 지역주민들의 복지와 관련되어 있었다. 지난 총선과 대선 때에 본격화된 복지공약의 경쟁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지방선거 특성상 주민생활과 직결된 복지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눈앞의 당선을 위해 과도하게 내세운 공약들은 없을지 고민이 된다. 과거 수많은 정치인들이 저마다 당선되기 위해서 복지제도를 활용하였을 뿐 사회복지를 제도화시키는 데에는 인색했으며 그나마 공약으로 내건 복지정책들을 지키는 일에도 소홀했었기 때문이다.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사회복지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에는 잘해야 시혜적 자선 정도로만 여겨졌던 복지가 이제는 주민생활에 직결된 정책과제가 되었다. 복지는 지방정부의 정책과 정치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상당수의 후보들은 여전히 무언가 도와주겠다는 퍼주기 식의 저급한 복지정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사회복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이 행복해지고 복지정책을 통해 지역사회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고 있다. 또한 각 후보들이 내세운 복지공약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전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시군구 및 광역도의원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서 나름의 성과를 내었던 복지정책들을 계승하거나 보완하여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복지공약들마다 마치 뭔가 새로운 것인 양 포장되어 있거나 파격적이며 참신한 문구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솔직해보자. 이미 시행하고 있는 복지정책들도 그 가짓수와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또 새로운 복지정책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 모든 복지정책들을 도대체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중앙정부의 복지정책만 해도 거의 300여 가지가 넘는다. 지방정부에 위탁되어 시행되는 사업도 대략 200여 가지나 된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돈으로, 어떤 전달체계에 의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범위와 수준에서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미 잘 하고 있거나 크게 성과가 난 복지정책들을 보다 더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은 왜 제시하지 못하는가? 지나간 지방정부의 성과는 무조건 배제하고 보는 풍토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좋은 복지정책과 제도들을 여든 야든 모두 다 이어받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금만 더 잘하게끔 노력해도 그 모든 성과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돌아온다. 그게 진정한 정치 아닌가? 이를테면 경기도의 무한돌봄센터 사업은 정말 훌륭한 복지정책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내세울 만한 복지정책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약 하나쯤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무한돌봄 행복 플러스 센터> 사업을 하겠습니다! 진정한 지역복지는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를 복지친화적인 환경으로 다함께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모습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당연히 복지정책 공약은 표를 위해 던지는 선심성 미끼가 아니라 어떤 삶, 어떤 지역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정치인들의 철학과 비전이 표현되는 정치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에너지기술전망 2014와 저탄소 정책

오늘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경제적 물질적 피해가 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온실가스가 유력하게 꼽히는데 그 중 이산화탄소가 가장 대표적이며 인류의 산업화와 함께 그 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속적인 산업화에 따른 한정된 자원의 무절제한 사용은 국가 에너지안보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곧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과 환경 친화적인 이용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개발과 성장방식은 환경을 해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므로 고비용의 자원과 에너지의 대량투입에 의존하는 기존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월 13일 서울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한국공학한림원, 에너지기술평가원 등 산학연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에너지 포럼이 세계에너지기구(IEA)의 Maria van der Hoeven 사무총장과 Didier Houssin 국장의 에너지기술전망(ETP) 2014 발표로 진행되었다. 에너지기술전망은 IEA가 매 2년마다 발행하는 보고서로 이번 포럼에서는 2050년까지의 세계 에너지 전망을 분석한 3가지 에너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청정에너지 보급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미래 에너지정책의 목표와 기술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2050년까지 전 세계 평균온도가 6℃ 상승하는 경우로 전 세계가 재앙으로 치닫는 시나리오이고 둘째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증대하려는 각국의 노력이 반영된 시나리오로 전 세계 평균온도가 4℃ 상승하는 경우이며 셋째는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하여 2℃만을 상승시켜 온실가스 및 이산화탄소 배출이 감소한,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이 달성된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미래 에너지 수요예측 분석을 통한 장기적 에너지 정책 목표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중단기적으로 꼭 필요하면서도 달성 가능한 조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폭넓게 제안하고 있다. 태양에너지가 2040년부터 주요 발전원으로 부상하고 2050년에는 전 세계 발전량의 26%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며 탄소의 포집 및 저장체계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는 한 2025년 이후 천연가스는 저탄소 연료로서 위상을 상실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통합지능 미래 전력시스템에서 에너지 저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시스템의 혁신적 변화를 불러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에너지시스템과 시장 모두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공조가 필요하며 규제와 시장변화는 청정기술의 잠재력과 경쟁력에 기회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정부의 지원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처럼 에너지기술전망 2014는 향후 40년 간 에너지부문을 변모시키는데 있어서 정책과 기술이 기존 변화에 대한 대응책이 아닌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저탄소정책 기반을 조성하고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즉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하여 신재생에너지원의 적극적 개발과 선진적 에너지시스템의 도입과 보급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부문의 정책, 금융, 시장 상황의 변화를 통해 타 분야와의 적극적인 연계를 도모하고 이를 통한 전 분야에서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국가 폭력과 트라우마

약간은 섬뜩한 이 제목은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하는 담당과목의 이름이다. 이 과목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국가가 자행한 부당한 폭력과 그 피해자들의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의 존립이유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인 정의와 달리 국가가 나서서 저지른 폭력적 행위들은 역사의 이면에 점철되어 있었다. 전쟁과 권력남용의 폭력, 사법적 살인, 의문사, 고문과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한 억압 그로 인한 고통과 희생의 상처는 시대에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의 국가폭력을 살펴보고자 함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밝힘으로써 과거청산의 과정으로, 그것이 남긴 트라우마를 넘어선 대화합의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과목은 구체적 사례들을 추적하고 분석하는데 특별히 그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행위와 간접폭력으로 인한 피해 등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지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사건이었던 인혁당 사건과 같은 직접폭력과 컨텍터스 같은 노조파괴 용역회사를 이용한 간접폭력이 해당된다.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또는 국가의 묵인과 방조 하에 벌어진 행위들이다. 그러나 강의의 특성상 우리 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에 마주한 학생들에게 자칫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항상 결론은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대화합을 해 나가자는 쪽으로 내고 있다. 국가폭력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여 그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는가를 고민하는 강좌인 것이다. 수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폭력보다는 평화이고 분열보다는 화합이고 과거보다는 미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앞에서는 이러한 미사여구가 모두 소용없게 되었다. 분명 세월호의 침몰은 국가가 저지른 직접적인 폭력행위가 아니었다. 사기업의 기업활동 중에 발생한 참사였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 드러난 모습들은 거대한 국가폭력 그 자체였다. 해피아도 대표되는 관료집단과 이익집단들의 유착, 이를 전혀 감시하지 않은 감시체제, 사령탑이 부재해 우왕좌왕하는 구조본부, 정부의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언론들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공범들이자 그대로 국가가 저지른 간접폭력이었다. 수장되는 아이들 앞에서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은 아무리 탓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해경의 이상한 대응과 무대책 그리고 뒤늦은 대통령의 위로도 소용없었다. 온 국민이 지금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꽃다운 우리들의 미래가 차디찬 바닷물에 잠기는 동안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자괴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까지 한다. 찬란한 오월.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오월이기도 하다. 이 아픔이 극복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이번이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마지막 폭력이었으면 말이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침을 열면서] 멍첨지 세상

돈의 위세가 대단하다. 재물 있는 곳에 마음 간다는 말도 있지만, 오로지 돈만 숭상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돈이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이 있다. 모두들 멍첨지가 되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다. 기업은 돈 놓고 돈 먹기 하고 있고, 사람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을 아무 데나 내놓고 쓰는 이들이 많기도. 대박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대박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행운, 아니 요행이다. 마침내 모두들 요행을 바라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 놓고 돈 먹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이 대학에서도 벌어진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일까? 철학과는 돈이 안 되니 폐과하고, 영문과를 제외한 불문과 독문과 등도 인기 없으니 점차 없애고, 기초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의학도 돈벌이 되는 성형의학 계열엔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몰리고, 외과나 산부인과 같은 전공은 막노동이라서 싫다 한다. 그 틈에 정신과는 성업이라 한다. 하긴 다들 미쳐 돌아가니 그럴 만하다.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학기 초에 어느 대학 문예창작과 신입생들에게 특강을 했다. 그 학교 문예창작과는 진즉 문예창작과 앞에 미디어 자를 붙였다. 취업을 생각해서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보니 야간이 없어졌다. 문예창작과 같은 곳은 취업률이 낮으니 야간 정원을 빼서 세무과를 만들었다 한다. 이러다 아예 주간도 없어질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한다. 그런 우려는 전국의 대학 여기저기서 보인다. 무용과는 댄스과로, 체육과는 레저스포츠과로, 문예창작과는 이미 스토리텔링과나 디지털문예창작과 혹은 미디어문예창작과가 된 세상! 연극과의 신세도 마찬가지. 예전엔 흔히 연극영화과라 했는데, 이젠 연극은 떼어내고 영화과만 살아남는 듯. 그나마 영화는 예술보다는 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의 기능이 이제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직업인을 양성해내는 학원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기초학문과 예술을 말살하고 오로지 자본주의의 부속품인 기계 인간을 만들자는 속셈이다. 기계 인간은 자신이 자본주의의 노예인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무조건 열심히 산다. 기업인이나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사는 사람이 다루기 쉽다. 지금 인문학이라는 말이 아무 데나 붙는다. 경영의 인문학, 거리 인문학, 생활 인문학 등. 다 좋다. 그런데 인문학이 모든 것에 들러리를 서는 느낌이다. 사실 인문학은 자신의 행위에 적당히 문사철 당의정을 입힌 게 아니다. 또 엉뚱한 말과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써먹는 게 아니다. 오만 인간들이 다 나서서 자신의 말과 글 모두를 인문학적 상상 내지는 실천이라고 강변한다. 이러다가는 경찰이나 검찰도 자신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인문학적 충성이라 할지 모르겠다.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말하지 않는 건 인문학이 아니다. 나를 따르라! 나만이 옳다! 그건 인문학이 아니고 돌격 명령이다. 나는 인문학은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동심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동심을 들먹인다. 진정한 인문학은 실체를 정확히 보는 것. 정확히 본 것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도 오로지 돈에 눈이 먼 자들의 돈 놓고 돈 먹는 짓거리 때문에 일어났으리라 여기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여객선 회사는 물론 관련 기관도 그저 눈앞의 돈에만 매달렸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을까?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충격과 슬픔이 컸다. 전 국민이 집단적 우울감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기자, 자원봉사자, 공무원, 경찰,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전 국민 모두가 일종의 죄책감과 황망함 그리고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수습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자식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유족들과 살아남은 어린 학생들이 짊어지게 될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우리 사회가 보듬어 안아야 할지를 본격적으로 걱정하며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야 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미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사고 희생자 가족들을 상대로 한 심리치료 상담사들이 배치됐고,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3년 동안 안산에 심리 외상지원센터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피해자와 유가족, 지역주민의 심리적 외상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과연 국민에게 어떤 존재이며 도대체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안겨 주었다. 즉 국가가 과연 국민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국가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정부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정확히 밝혀 단호한 법 집행을 함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사건 수습보다는 선거에 관심이 있는 듯한 정치인들 또한 있어서는 안 된다. 여야 구분하지 말고 초당적으로 침착하고 실질적인 지원과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화와 입법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 미국에서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뉴욕 시장인 루디 줄리아니는 테러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취했으며 이념과 정파를 떠나 뉴욕 시민들이 정상화된 삶으로 복귀하도록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뉴욕 주지사 조지 파타키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공공안전 부서를 만들어 테러 예방과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모든 공직자들이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운영의 모습을 향해 철저히 낮아져야 한다. 잘못된 제도는 혁신해야 한다. 무능하고 타락한 공무원들과 실무자들은 퇴출시켜야 한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점검하는 사회적 안전 감시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어린 아들과 딸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보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구사일생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살아있음에 대해 죄의식을 갖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모든 국민이 지속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울음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죽을 때는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숨을 거둔다. 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울고 싶을 때는 맘껏 울어야 한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슬픔과 분노, 고통과 좌절, 불안과 공포 등과 같은 심리적 외상들이 치유되게끔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국민의 관심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있는 사회복지기관들과 심리치료 및 상담기관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개입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교회와 성당, 사찰 등과 같은 종교기관들도 종교 간의 경쟁을 넘어 희생자와 유가족, 지역주민들을 영적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한다. 이제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도록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준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새로운 도시계획 패러다임

최근 기후변화와 세계 경기침체 및 탈산업사회로의 전환 등 도시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폭우나 폭설로 인해 심각한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도시의 안전과 방재시스템이 계획분야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경제의 위기와 함께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중산층의 몰락 및 빈곤층의 확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균형 있는 경제성장,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더불어 의학기술의 발전, 사람들의 의식변화는 우리사회를 저출산고령화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게 하였고, 이와 함께 나타난 1인가구의 빠른 증가현상은 새로운 주택 및 복지정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전반적인 사회변화에 맞추어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패러다임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197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는 무분별한 개발과 양적 성장을 지속해왔다. 특히 경제논리가 우선된 공급자 중심의 고층고밀 개발방식은 자족성과 다양성이 결여된 획일적 도시환경을 양산하였다. 또한 주민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한 전면철거형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아울러 도시외곽지역의 난개발은 자연환경의 파괴와 교통혼잡의 문제를 유발한 반면, 기성시가지의 경우 상주인구의 감소와 함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도심기능이 점차 쇠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심각한 도시문제가 만연함과 동시에 건설경기의 악화와 주택시장의 침체현상이 지속되는 현시점에서 최근 새로운 계획 패러다임이 도시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철거 위주의 재개발, 재건축이나 주택의 양적공급 형태인 신개발보다는 주민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재생사업 또는 도시의 보전과 성장관리 정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국토도시정책은 살고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음의 실천전략을 고려할 때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보행자 중심의 걷고 싶은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벗어나 보행자를 우선하고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로공간을 제공할 때 시민의 유대감 형성은 물론 도시의 활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중교통 중심의 스마트한 도시가 실현으로 도시통행의 편리성을 제고하고 토지이용계획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보유하지 못한 거주민에 대한 배려는 대기환경오염의 감소뿐만 아니라 수입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다. 셋째, 시민의 만남을 유도하는 문화복합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복합용도개발방식은 다양한 기능간의 상호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넷째, 다양성과 특징 있는 도시이미지를 확립해야 한다. 매력적이고 성공적인 도시이미지는 주택유형의 다양성과 고유의 빛을 낼 수 있는 건축도시디자인에 기초할 때 성립될 수 있다. 다섯째, 재미있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창조도시로 발전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유비쿼터스 및 IT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화를 창조산업의 근간으로 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여섯째, 지역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주민주도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환경친화적인 지속가능한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기존의 자연환경 맥락을 유지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공생을 중시하는 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적으로 건전한 도시가 조성될 것이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지난 대선 때의 공약사항을 아무도 안 지키고 있을 때 안철수 의원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가 바로 새정치라며 고군분투했었다. 그가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할 때도 이것은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수차에 걸쳐서 공언을 했다. 그러나 지난 주 또 다시 철수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그는 이 약속을 거두어 들였다. 이것을 두고 정치적 아마추어인 안철수 의원의 패배, 이미 기성 정치권에 물들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예견된 출구전략이었다는 등 말이 많다. 분명 안 의원의 패배인 것은 틀림없다. 기성 정치권의 철옹성 같은 강력한 기득권 사수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정치에서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한국 정치계의 인물 면면을 보면 별로 존경할 만한, 아니 자녀들에게 귀감으로 삼아라하고 권할만한 정치인이 거의 없다. 그만큼 한국 정치계는 존엄이 상실된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랬기에 지난 대선 때는 후보자들 모두 기초선거의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세워 놓고 막상 지방자치 선거가 돌아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천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를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이 말이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간에 국민들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공약을 직접 내 걸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대통령이나 야당 후보나 모두 뻔뻔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런 가운데 외롭게 그것은 아니다라며, 기초선거의 무공천은 민주주의 발전의 시금석이라며 안 의원만이 공약을 지켜야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 마저도 결국 기성 정치와 타협하고 국민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했다.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당장의 64 지방선거에서 불 보듯 뻔한 야권 후보의 난립과 혼선으로 인한 여당의 압승이라는 예상 앞에 선 당원들의 거센 항의에 그의 외침은 가녀린 마지막 잎새와도 같았다. 그의 후퇴를 두고 여당의 비난은 평가할 가치도 없다. 대선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한 자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를 동등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이 확산되는 것이다. 그동안 안철수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특히 젊은층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안 의원의 후퇴로 인해 그 역시 마찬가지이니 한국 정치는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정치 무관심층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너무난 많은 문제를 앉고 있다. 특히 기초단위로 가면 더욱 한심한 수준이기도 하다. 기초단체 의원들이나 단체장들은 공천비리, 줄 세우기, 지방자치의 중앙예속 등 부정적 측면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64 지방자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에 기초선거의 무공천은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 여야 간의 불공정한 경기 규칙은 사라졌다. 향후 기초선거의 무공천 문제는 입법을 통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로 남겨졌지만 문제는 당장의 선거에 임할 국민의 마음가짐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번 선거에서 무공천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그들을 표로서 심판해야겠지만 여야당 모두가 해당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누가 조금이라도 덜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정치를 혐오는 자, 결국 그 혐오의 정치를 가질 것이다라는 토마스 만의 경구를 되새겨 보는 시점이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침을 열면서] 정치가 부끄럽다

정치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상상을 해보자.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외국인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 언론에서 친박, 친이, 친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고, 고유명사가 된 재벌처럼 영어사전에도 친박이라 표현되어 있어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마디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들의 팍팍한 삶 곁에서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찾겠노라 정치를 하는 자들이 누구랑 친하니까 뽑아달라고 하는 어린아이나 하는 짓을 하고 있으니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다. 자질과 능력으로 선택받겠다고 노력하기는커녕 겨우 유력 정치인과 친하니 뽑아달라는 것은 유권자 모독죄다. 이러한 정치구태를 지적하기는커녕 누가 누구보다 보스와 더 친하다고 떠드는 언론, 누구와 사진 한번 더 찍은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균형감각을 잃은 사회단체들을 보고 있으면 더 비극적이다. 지방선거가 본격화되자 후보자들은 부쩍 서민 이미지에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다. 햄버거 번개 미팅을 하고 아이돌 그룹 노래에 맞춰 춘다거나 출근길 교통정리에 나서기도 하고 노숙인 급식소를 찾아 배식 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권자의 바람과 달리 선거 때에는 표를 얻기 위해 이미지에 신경을 쓰면서 정작 평상시에는 시급한 민생은 제쳐놓고 특권누리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시에는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서민 코스프레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정치권은 한 때 3김 시대 청산을 외쳤다. 보스ㆍ밀실정치 등으로 명명된 비민주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고 정치 본연의 목적인 사회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는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구호였다. 그러나 매니페스토운동을 하고 있는 내 눈에는 지금의 정치는 3김 시대보다 더 뒷걸음질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는 그래도 드물지만 당리당략에 앞선 지역의 문제점 해결방안과 미래비전을 호소하는 정치인이 있었다. 반대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디어로 압도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기성정치를 타파하고 젊은 정치시대를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국민과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책임이 강했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여주는 정당과 후보자의 거꾸로 가는 정치구태를 보는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3김 시대를 추억해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그러면서 새정치를 하겠다는 후보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데, 조금더 기다려보면 좋아지겠지 하는 그런 기대와 위안으로 인내심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거에서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특히, 선거에서 유권자는 슈퍼울트라 갑이다. 결국 유권자가 준비해야 한다. 자질과 능력은 전혀 없으면서 누구와 친하다는 말만하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눈여겨보았다가 선거에서 심판하자. 평상시에는 나몰라라 하다가 선거 때면 어설픈 서민흉내 내는 후보가 누구인지도 가려내야 한다. 정치가 부끄럽다. 그러나 고쳐 써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선거에서 주인공이여야 할 유권자가 정치가 부끄럽다고 외면하지 말자.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은밀하고 위대하였다. 조금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고장 난 민주주의를 고치기 위해 은밀하게 준비하자. 선거에서 관객 취급하던 정치권의 버릇을 이번 선거에서 꼭 고쳐주자. 정치개혁과 행정혁신 선언, 구체적인 비전으로 경쟁하라는 국민명령인 매니페스토운동을 펼쳐보자.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사회복지부터 정보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1994년 이후 연속적으로 그 규모가 커지며 지속적으로 반복된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급기야 최근 발생한 대규모 금융권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수집, 축적, 관리되는 개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위험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마디로 국가적 재앙 수준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러한 개인정보 유출은 단지 기업만이 아니라 공공기관, 교육기관, 민간사회단체 나아가 사회복지시설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분야 어디에서든지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은 계속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개인의 정보에 대한 권리와 보호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들을 접하면서 민감하게 고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복지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주 대상으로 서비스개입이 수행되어왔으며 다른 어떤 휴먼서비스(Human Service)보다도 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인권 보장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복지계도 일반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보 관리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껏 사회복지시설이나 기관에서 서비스 대상자와 그 가족의 개인 신상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과도한 정보 수집을 관행적으로 당연시해왔으며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손쉽게 노출됨으로써 서비스 대상자를 낙인찍는 데에 오용되는 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이는 사회복지계에 만연해 있는 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각종 정보를 소홀히 여기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는 업무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현장을 지도 감독한다는 명목 하에 공공기관에서 민간 사회복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남용하는 일도 발생되고 있다. 정보 인권을 강조해야 할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전형적인 정보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정보가 유력한 자원이 되어, 정보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회나 경제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정보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사회복지에서도 정보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정보 사회복지란 서비스 대상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서비스 대상자의 바람직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전문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서비스의 주된 대상자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정보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보 지체와 정보적 장애로 표현되는 정보 사회의 또 다른 낙오자들이 의외로 많다.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들은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보다도 정보 악용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정보 인권을 사회복지에서부터 철저하게 보장해 나가는 일을 구체적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참에 서비스 대상자의 개인정보를 포함한 복지관련 정보 보호 규정에 관한 법률안 정비 등 정보 인권 보호의 제도적 보완책을 사회복지 분야에서부터 선구적이며 적극적으로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정보 사회에서 정보 인권의 보장과 보호는 이제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핵심적인 기본 가치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처한 것도 힘들고 안타까운데 정보 인권마저도 보장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행복한 공동체가 결코 될 수 없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정보 권리를 침해당한 사실조차 모를 때가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금융사든, 통신사든, 자신의 권리가 훼손되었다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회가 진짜 복지사회가 아니겠는가? 이준우 강남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도시개발, 공공성 확보가 우선돼야

그동안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개발행위를 통한 이익은 대부분 특정 주체에게 한정되어 왔다. 이는 민간에게 인센티브를 담보로 하여 물리적인 공공시설의 제공을 통한 공공성의 구현을 강제한 결과로, 민간입장에서는 수익성을 향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반면 개발로 인한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등의 불이익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전가되어 많은 사회적 갈등과 도시문제를 야기해왔다. 이처럼 도시 내 개발행위는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무엇보다 공공성(公共性)의 확보가 중요하다. 공공성이란 개인의 이익추구보다는 도시차원에서의 사회적 관계 개선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얻기 위한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시공간에서의 공공성은 공공공간의 제공과 공적인 기여도, 공간의 접근성과 개방성 등과 같이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장소와 활동이 이루어지는 삶의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건축분야에서의 공공성은 개방적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이 포함된 절차적 공공성과 보편적 이익의 공익적 내용을 담는 내용적 공공성,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체적 공공성을 포함해야 한다. 아울러 요즘과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도시의 질적 관리를 강화하고,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서로 협력하며 공공성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에서는 사업허가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민간에서는 지역의 활력을 증진할 수 있는 포괄적 시설을 공급하여 공공성 구현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요구된다. 도시개발사업에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은 기부채납제도이지만 지금까지의 기부채납은 다양성, 적합성, 적정성, 조직 및 관리 측면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의 기부채납 시설이 획일적으로 도로나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역여건에 맞는 공공기여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비율 채우기식의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다보니 자투리 공간과 같은 저성능저이용의 공공공간이 양산되고 있다. 더불어 용도지역의 변경에 따른 기부채납 부담비율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수요나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 결정으로 인해 공공시설이 방치되는 문제가 나타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개발사업에서 기부채납을 통한 공공성의 확보는 다양하고 적정한 장소제공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영유하고, 지속적 관리서비스를 통해 주민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포괄적 기부채납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때 개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무기반시설을 설치하거나, 지역의 공공성을 증진하기 위해 지역증진시설을 제공하는 방법, 계획에 따른 이득을 환수하기 위한 시설의 공급, 사회경제정책의 실현을 위한 에너지시설을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기부채납 방법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포괄적 기부채납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종 시설설치 및 정책실현을 위한 비용의 기금화가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또한 공공시설의 설치 및 운영과 관련된 사전협의체를 구성함으로써 사회적 요구에 대응함과 동시에 기부채납의 유연한 공간적 범위를 적용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적정시설을 공급하는 것이 요구된다. 더불어 국가에서는 공공성 확보와 공공시설의 유지관리를 위한 전담부서를 조직하고, 공공시설 등 설치 및 운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성장과 개발의 시대에서 성숙과 재생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저성장시대의 공공성 구현을 위해서는 도시개발의 이익이 사유화되기 보다는 포괄적 기부채납을 통해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균형을 이루고, 시민을 위한 맞춤형 공공시설로 환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갑오년, 민족통합과 화해의 해로

2014년은 육십갑자로 따져서 갑오년이다. 갑오년 하면은 위정자들은 갑오개혁을 떠올리겠지만 우리들 민초들은 아무래도 갑오동학혁명이 먼저 떠오른다. 똑같이 120년 전 갑오년에 벌어진 일이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던 갑오개혁보다 밑으로부터의 개혁적 요구였던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더 생생하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19세기는 부패의 극을 이루던 시기였다. 대왕의 개혁정치는 물 건너가고 모든 것은 옛날로 돌려졌다. 아니 부정은 과거보다 더욱 극심해졌고 정통성을 잃은 왕권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도 어린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다. 거기에 믿었던 중국이 서양에 패배하니 세계관마저 무너져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경주사람 수운 최제우에 의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이 창도됐다. 동학의 평등주의적 사상은 신분적 차별과 억압 하에 있던 백성들에게 주효해 너도나도 동학에 입도했다. 당시 주자학 이외의 학문에 엄벌을 가하던 조정은 최제우를 참수했지만 그의 제자인 해월 최시형의 지도하에 동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부패세력들의 폭정이 극에 달한 곳이 곡창지대인 전라도 땅이었다. 삼정의 문란은 말할 것도 없이 온갖 잡세를 부쳐 또 뜯고 또 뜯어 갔다. 먼저 1894년 갑오년 1월 10일 전라도 고부의 말목장터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고부군수 조병갑을 징치하러 관아로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도망간 뒤였다. 지도자였던 고부접주 전봉준은 창고문을 열고 수탈한 곡식을 나누어 준 뒤 이웃한 무장으로 가서 손화중을 만났다. 손화중은 호남 최대의 동학조직을 이끄는 대접주였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호남지역의 동학군에게 통문해서 백산에 모이게 했다. 전북 부안의 백산에 모인 수만의 동학군들의 손에는 죽창이 들려 있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다. 파죽지세로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며 전주성까지 점령한 동학군에 놀란 조정은 청나라와 일본에 원군을 요청했다. 제나라 문제 해결에 외국군을 불러야 할 정도로 무능한 정부였다. 동학군의 지도부는 정세를 파악해 개혁적 요구조건을 걸고 전주화약을 맺어 철수해 최초의 지방자치제였던 집강소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군은 갑오개혁을 추진하자 다시금 동학군들이 일어났다. 2차 봉기였다. 특히 9월 18일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으로 동학군은 전라도 지역을 넘어서 전국에서 동시에 똑같은 구호를 가지고 일어났다.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의 구호는 내 나라를 내 힘으로 지키자는 민족적 각성이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인간주의적 몸부림이었다. 비록 그들의 외침은 공주 우금치에서 패퇴함으로 종결되고 말았지만 오늘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혁명이라고, 아니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동학혁명이 추구했던 이상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지금의 기형적인 분단국가형태가 아닌 지리적 통일이 이루어진 국가, 지역과 세대 그리고 계층을 넘어서 전 국민이 하나되는 통합이 이루어지는 모습일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의 우리 앞에 놓인 최고의 과제는 국민화합과 통일문제이고 어쩌면 이 운동에 나서라는 것은 동학혁명 선배들의 명령일 것이다. 금년 10월 11일은 동학혁명이 전국화하는 총기포령이 내려진 9월18일의 양력이다. 그날 전국의 동학혁명 관련 단체들이 대규모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을 기해 그동안 호남만의 동학혁명이 아닌 전국의 동학혁명으로 바뀌는 계기로 만들고, 동학군과 싸운 관군과 심지어는 일본군의 후손들까지 참석해 화해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침을 열면서] 더 중요한 지방선거, 언론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우리 정치는 참으로 계륵(鷄肋)이다. 정치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속임, 모략, 허위, 거짓 등이 유사 이래 늘 있어왔다고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요란스럽게 민생과 입법을 약속한 2월 임시국회가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국회를 내팽개치고 외유를 떠난 의원들이 50여명에 이른다. 이와 함께 정치개혁특위도 여야가 이달 말로 활동 시한 연장을 합의하였지만, 호들갑스럽게 변죽만 울리더니 결국 빈손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만회하려는 듯 여야가 앞 다투어 상향식 공천을 선언하고 있지만, 제한적 전략공천과 여론조사로 대체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지방선거 공천이 늦어질 것 같은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요란스럽고 호들갑만 떨었던 2월 임시국회와 정치개혁특위 활동 연장으로 정당들의 공천을 위한 실무작업 순연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여권의 경우 상향식 공천제 도입을 명분으로 당헌당규 개정 이후에 공천심사기구를 꾸린다면 후보등록이 임박해서야 공천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은 후보단일화나 정책연대를 둘러싼 밀고당기기가 길어질 경우 후보자등록 시점을 넘기지 말란 보장이 없다. 64지방선거의 성패는 언론에 달려있다. 이번 선거는 광역기초 단체장과 지방의원, 비례대표, 교육감 선거 등 7개의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데다 지난 선거보다 배 이상 높은 5대 1 이상의 경쟁률이 예상되고 있다. 즉 유권자들이 약 40명의 후보자 가운데 7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공천과 야권단일화가 빨리 마무리되어야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공약을 검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계륵(鷄肋)인 정치권의 국민우롱 정치쇼와 깜깜이선거가 우려되는 데도 언론들이 너무 안이하고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들이 정치권의 정치쇼에 농락당하는 순간, 이른바 얼굴만 보고 찍는 깜깜이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이다. 이밖에도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정치이슈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고 한국의 본선행이 확정된 6월 브라질 월드컵은 공식선거운동기간 중 선거무관심을 부채질할 것이다. 이번 선거일은 징검다리 연휴로 이어져 투표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거에서 주인공은 유권자이다. 그리고 언론의 진짜 주인은 국민이다. 정당공천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 유권자들이 후보자와 정책을 파악해 이를 토대로 투표에 임할 수 있다. 밀고당기는 단일화에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되면 정책검증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는 말을 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수준이다. 여기에 대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냐고 외면한다면 주인으로서 떳떳할 수 있겠는가. 선거 때만 되면 푸성귀 취급받으며 텃밭으로 불리고, 집토끼 산토끼 등의 토끼취급 받는 것이 주인공인가. 진짜 주인인 국민의 눈높이는 외면하고 정치인의 어깨 높이에서 언론보도를 한다면 진정한 언론인가. 지방선거는 대선과 총선에 비해 덜 중요한 선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꾸는 더 중요한 선거이다. 차분차분 접근하자. 이번 선거를 두고 새누리당은 민선5기 중간평가로, 야권은 국정의 중간평가로 규정하지만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언론들에게 부탁한다. 우선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약속한 지역공약 106개의 실태를 점검하자. 민선5기 체제의 공약이행 결과를 평가하자. 이와 동시에 정당들에게 조기공천을 압박하고 야권단일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자. 후보자의 자질검증과 동시에 정책공약의 실효성과 실현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자. 이제는 유권자가 주도하는 매니페스토 선거를 만들어보자. 언론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비밀을 가질 수 없는 세상

한국 사람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자마자 번호로 매겨진다. 이름 하여 주민등록번호. 출생 연월일을 근간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주민등록번호는 평생 따라다닌다. 심지어는 사망신고서에까지 적힌다! 어느새 자신을 대신하는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을 순차적으로 이어붙인 주민등록번호. 그러기에 위조하기가 쉬워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라는 것도 진즉 생겨났다. 주민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면 이 땅에선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니 안 할 수도 없다.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세상. 편리한가? 그걸 부리는 자들은 편리하겠지. 그러나 늘 호출당하고 노출당해야 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끔찍하다. 최근 금융기관의 개인정보 유출.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숫자가 자신을 대신한 지 오래다. 은행이나 병원 등 접수 창구가 있는 곳이면 당연히 있는 번호표. 어디를 가든 우리는 이름 대신 번호로 지칭되고 호칭된다. 감옥의 수인들도 번호로 불린다. 그 옛날 일제 강점기 때 감옥에 갇힌 이육사 시인은 수인번호가 264여서 본명 이원록 대신 이육사를 썼다고 하는, 그럴싸한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번호의 뿌리는 깊다. 이제쯤 번호를 내려놓고 싶다. 한때 주민등록증 대신 운전면허증 같은 것으로 신분증을 대신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 대신 운전면허증을 내민다고 주민등록번호가 사라질까? 운전면허증도 주민등록번호와 사진이 나를 대신한다. 어느새 통제와 관리 대상이 되어버린 인간들. 번호가 있어 통제하고 관리하기에 편하다고?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시지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나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더 유출되어야 내가 다 없어질까? 사람을 다 까발려 감시하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괴상한 숫자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주민등록번호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예전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카드를 내밀어야 했는데, 지금은 주민등록번호만 대면 된다. 그러면 접수처 컴퓨터에 내가 무슨 병으로 병원에 들렀는지, 언제 다녀갔는지 쫙 뜬다.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는 세상이다. 약간 큰 건물 주차장에 차를 몰고 들어 가면 차량 번호가 자동으로 인식되어 내가 언제 들어가는지 다 안다. 나와 차는 숨을 곳이 없다. 집을 나서도 카메라, 길을 가도 카메라, 전철을 타도 카메라, 버스를 타도 카메라, 건물을 들어가도 카메라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는 카메라. 이것도 나를 불편하게 한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을 애써 찾아나서야 하나? 어릴 적엔 학교 갔다 오다가 보리밭이나 나락밭 두렁에 퍼질러 앉아 해질녘까지 노을을 바라보아도 되었고, 큰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땀을 들이며 누워 졸아도 되었고, 비를 피한다며 큰 바위 아래에 들어가 한나절을 보내도 되었다. 그렇게 해도 하늘과 바람 말곤 나를 지켜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숨을 데가 없다. 숨고 싶다. 비밀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 시인 이상은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했지만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은밀한 생이라는 소설에서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비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우린 지금 비밀을 가질 수 없으므로 가난하고 허전한 정도가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파스칼 키냐르 말마따나 영혼이 없다는 얘기이다. 맞는 말씀인 것 같다. 현대인은 영혼이 없다.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제2의 인생 누리기

고령화는 피할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노인의 노후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크게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제는 고령화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고령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접어 든 것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12013년 언론에 보도된 생계형 사건사고를 분석한 복지 사각지대의 생계형 사건사고 유형과 원인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167건의 사건사고 중 79.7%가 자살과 살인(미수 포함)으로, 그 당사자의 33.5%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이렇게 생계형 사건사고에 노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데에는 의료비 부담과 가족들의 수발부담 및 간병이 사고로 이어지는 주 위험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기의 건강악화는 의료비라는 경제적 부담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확신이 낮아지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는 심리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한 은퇴를 비롯한 사회적 역할상실로 인해 주어진 긴 여가시간은 무료함과 고독감의 나락으로 노인들을 이끈다. 제1인생이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린 시기였다면 제2의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 되어야 한다. 노인들이 제2의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펼쳐나가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한데, 그 중 한 가지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지루함과 외로움을 해소하여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노인에게 있어 교육은 단순한 지식습득이나 배움의 즐거움을 넘어 친구를 사귀거나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노인교육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역사회 내에 있는 다양한 자원들 간의 연계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인교육 지원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여 지역사회 내의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연계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 무엇보다도 노인 자원봉사 교육을 창의적으로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노인들이 지닌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여 사회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일자리 분야의 개발과 그와 관련된 직능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나라의 노인일자리사업은 2001년 시니어클럽 활동과 2004년 참여정부의 1기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정착되어 왔으며, 노인복지법 제23조와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 제11조에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점차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노인들의 근로의욕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서비스전달 인력과 활용 등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결국 노인일자리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정책적 결단이 요구된다. 이제 노인문제는 교육과 일자리사업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혜적인 노인복지서비스만으로는 절대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초노령연금만 갖고 노인복지를 이야기하던 시대는 끝났다. 노인복지관이나 노인요양원 등과 같은 노인복지시설을 확장하겠다는 시책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인생은 없다. 하지만 주저앉기엔 다시 찾아온 제2의 인생은 너무나 길어졌다. 제2의 인생에서는 노인이 당당하게 주체가 되어야 한다. 노인교육을 통한 노인의 역량 강화와 이를 토대로 하는 노인일자리사업 활성화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이준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역대 최악 정개특위, 여야 간사에게 제안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 나란히 앉은 여야 간사는 냉랭한 반목과 어색한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등 여야가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공직선거법 개정을 두 달간 논의하고 있지만 단 한건의 합의도 없이 무책임한 주장만 오고갈 뿐이어서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이 불거지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가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59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6건의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기 않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이미 성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무소불위의 소통령이라 불리는 단체장의 방만한 재정운영, 지방의회의 무능력, 선심성 사업의 마구잡이 집행 및 부패 등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를 막고 국회의원의 사천에 따른 폐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정개특위의 두 달간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과정은 어떠한가. 정치개혁과 참다운 지방자치 구현을 위한 노력을 뒷전이고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가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서서히 식물이 되어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대선 공약이라도 위헌 소지가 있고 폐지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는 지적이 있으니 유지하자는 입장이지만, 이는 선거 때 말 다르고 선거 이후에 말 다른 오리발 정치와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기초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는데 새누리당이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2006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도입에 앞장섰던 정당으로서의 반성이 전혀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그리고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당의 입장 번복을 스스로의 자기 부정이고 정치 훼손이며 전형적인 사익추구 행위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기초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따른 문제점 해결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어 무책임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 다시 정상화될 길은 지금으로서는 없어 보인다. 각 정파가 저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정당공천 폐지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데다 정당공천이 폐지되거나 유지되어도 그에 따른 또 다른 문제점이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어느 한 쪽으로 합의가 되어도 광역선거를 제외한 기초선거에서의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있어서 더욱 그렇다. 이럴 바에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전면 폐지가 아닌 무공천지역 확대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난 재보궐 선거의 경우 자율적인 규제에 의해 무공천지역을 선정했듯이 이번에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인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무공천지역 확대를 여야 간사가 합의하자는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래야 새누리당은 실리를, 민주당은 명분을 나눠가질 수 있고, 국민들은 극심한 지역주의 타파의 돌파구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교육감 선출방식 개선과 선거공정성 확보방안 등 다른 과제들이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개특위에서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가 어디로 흐르든지, 폐지든 유지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개혁과 참다운 지방자치 구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모든 정치개혁의 핵심은 아닐 진데 정치적 셈법에 따라 변죽만 울리고 있는 정개특위에 출구를 찾아주고 명분과 대안을 제공하는 것도 시민사회의 역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야 정개특위 간사들에게 묻는다. 이번 6ㆍ4 지방선거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은 무공천하는 게 어떠한가? 이마저도 거부할 것인가?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아침을 열면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유신시대 때 김추자가 부른 노래 거짓말이야에선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이라고 하여 흔한 사랑 노래임을 드러냈지만 그 노래는 금세 금지곡이 되었다. 당시 유신정권은 삼선 개헌 등 하루가 멀게 거짓말을 해서 그 노래가 불편했던 듯하다. 금지 사유는 사회 불신 조장! 아, 그리고 김추자가 노래 부르면서 손짓을 했는데 그게 간첩들에게 보내는 난수표 해독 암호라나? 이게 또 거짓말! 이 시점에 오래전 옛일이 다시 되새겨지는 건 어인 까닭인지. 정치가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은 거짓말로 밥을 먹고 사는 작가에게 넘기시라. 작가는 거짓말로 참말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거짓말을 수십 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본의는 아니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 그러면 개인적으론 이 시가 떠오른다. 오래 전 펴낸 시집에 넣은 아내의 브래지어라는 시. 밤새 토악질하다 엎드려 있다/진통제 몇 알 먹고 겨우 눈을 붙인/병든 아내 머리맡에 놓인 브래지어 하나,/유행 지난 꽃무늬 장식이 요란하다./신혼 시절 떠올리며/브래지어 컵을 살며시 쥐어 본다./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탄력도 없이/그만 손 안에서 구겨지고마는 젖 주머니.//아내 가슴께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주다/옷 사이로 자꾸 숨어드는 야윈 젖을/슬며시 쥐어 본다./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탄력도 없이/쥐어지는 지난 십 수 년의 세월./만질, 가슴살도, 없죠?/이제, 컵이, 단단한, 걸로, 바꿔야겠어요./자는 줄 알았는데,/아내가 느닷없는 소리를 한다./아니, 아직은./나는 더듬거리다 애써 되묻는다./그럼, 크기는, 몇 짜리로? (졸시 아내의 브래지어 전문) 당시 위 시가 수록되었던 시집을 본 여제자들의 묘한 눈총과 여독자들의 앙탈(?)에 가까운 항의성 재잘거림에 당황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들에겐 병처를 둔 시인의 상황도 낭만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당황스런 일은 그 시의 발상 제공자인 아내에게서 나왔다. 아내는 나는 그런 적 없는데라는 말을 했다. 알만한(?) 사람이 시의 상황을 부정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시의 대상자가 부정하는 건 당연하다. 사실 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를 쓸 때 두 가지 상황을 보고 개연성 있게 하나로 연결하였다. 상황 하나는 병처(현진건의 소설 빈처, 소크라테스의 아내 악처(?)에 빗대어. 병처는 내가 주례를 서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인 아내의 상황. 두 번째 상황은 빨랫대에서 빨래를 걷어오다 꿰맨 젖싸개를 봤던 상황.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과 해질 대로 해진 젖싸개를 보고서 두 상황을 하나로 연결했더니 그럴싸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아주 개연성이 있어보였다. 작가는 우연도 필연도 아닌 개연을 쓴다. 나는 늘 파브르가 곤충이어서 곤충기를 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런 사건을 겪었기에 그 시를 쓴 게 아니다. 겪었느냐 안 겪었느냐 하는 것보다는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작가는 남 얘긴 자기 얘기 하듯이 하고, 자기 얘기는 남 얘기하듯이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정치가는 그러면 안 된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일까? 국민은 배를 곯든 말든 남의 일로 여기면 그만일까? 정치가의 말은 개연성이 있으면 안 된다. 정치가의 말이 그럴싸하고 그럴듯하기만 해서 되겠는가? 박상률 작가

[아침을 열면서] 내 인생의 행복 플러스 ‘무한돌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그러고 보니 짧은 기간에 지역주민들로부터 크게 호응받는 사회복지정책이 생각난다. 무한돌봄사업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전달체계의 혁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업이다. 이 무한돌봄사업이 경기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경기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2008년 위기가정 해소를 위해 시작된 무한돌봄사업은 2010년 one-stop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무한돌봄센터 개소 이후, 경기도내 31개 시ㆍ군에 95개 민간네트워크팀을 구성하여 공무원과 민간사례관리자 63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민간과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여 44,000가구의 사례관리를 진행하였고, 민간자원 372억 원 상당을 발굴ㆍ연계하였다. 또한 2012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전 시ㆍ군ㆍ구에 무한돌봄센터를 희망복지지원단으로 명명하여 출범하였고, 중앙부처 및 여러 타 지자체들은 물론 일본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경기도의 사회복지라고 하면 무한돌봄이 떠오를 정도로 대표적인 복지 브랜드가 되었다. 이렇게 무한돌봄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지속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이며 유능한 사례관리 실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돌봄센터에서 일하는 사례관리자는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가장 열악한 곳까지 다가가서 돌아보는 최전방의 실천가들이다. 다양한 위기개입 상황과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힘이 되어주는 전문가들이다. 실제로 사례관리자는 다양한 인생들을 접하고 경험한다. 기나긴 인생의 기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를 거쳐 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듣고, 지켜보며 함께 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 빠진 클라이언트는 까칠해지고, 예민해지기 쉽다. 좌절과 낙심이 심해지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불안이나 우울, 심하면 정신질환이나 폭력적 성향이 심각해지기도 한다. 냉혹한 삶의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은 그 어떤 서비스에도 호의적이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례관리자들은 그들을 돕기 위해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최선을 다한다. 사실 사례관리자는 치료자가 아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해결사도 아니다. 사례관리자는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문제를 잘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가장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례관리라는 일이 만만치 않다. 솔직히 어느 누구도 막상 해 보려고 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사례관리인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례관리는 클라이언트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클라이언트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거나 물적ㆍ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구체적인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사례관리는 클라이언트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사회복지실천 방법이다. 사례관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상생과 나눔, 그리고 조화를 구현하며 뜨거운 열정과 사랑에 기초한 전문가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소유의 방식에서 공존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는 네트워크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과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의사소통 기술, 다양한 지역사회조직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한 클라이언트까지도 품고 가면서 떠벌리지 않고 오로지 상처 난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과 애정이 싹트게 함으로써 클라이언트 스스로 자연스럽게 문제해결을 향한 의지를 다지도록 도와야 하는 전문가가 바로 사례관리자들이다. 청마의 해인 올해가 힘차게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고, 위기개입 대상 클라이언트들은 늘어나고 있다. 간간히 김정은과 북한 소식도 걱정스럽게 들린다.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행복이란 평온한 삶을 누릴 때 가능하다. 행복은 희망과 소망을 꿈꿀 때 생겨난다.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무한돌봄센터에서의 사례관리 실천은 지역사회에서 방치되고 드러나지 않았던, 클라이언트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손을 내미는 유용한 활동이다.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무한돌봄센터만한 사회복지전달체계 모델이 아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그동안 사례관리 전문가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쌓아온 노하우를 이어가는 일은 중요하다. 올해 6월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어느 분이 경기도지사가 되든, 이토록 좋은 무한돌봄사업을 설마 없애지는 않길 바란다. 무한돌봄센터가 있어서 내 인생의 염려는 없다. 혹 내가 사회적 취약계층이 되어도 무한돌봄센터에 가면 되니까. 내 인생의 행복 플러스인 무한돌봄센터가 사랑스럽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례관리자들이 그저 고맙다. 이준우 강남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갑오년 도시재생사업이 활성화 되려면

2014년 갑오년(甲午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작년 12월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우리나라 도시재생정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법은 기존의 도시정비방식이 가지고 있었던 주민참여의 미흡과 공공성 결여, 획일적 개발에 따른 지역 정체성의 상실, 민간위주의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증가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련되었다. 따라서 철거위주의 도시재정비 방식에서 벗어나 경제, 사회, 문화 등 도시의 종합적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소외된 쇠퇴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주민의 자발적 역량을 활용하고 지역 고유의 자산을 발굴하며 원주민 정착을 유도하는 사회통합적 도시재생의 실현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자체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집행할 때 국가에서 쇠퇴도시의 특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직간접적 예산을 지원하는 지원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도시재생특별법에 의하면 국가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10년 단위로 국가 도시재생 기본방침을 수립하여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에서는 주민참여를 통한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하는데 이는 지자체 도시재생의 여건을 검토하고 도시재생 기본계획 및 방향을 설정하며,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의 선정 및 방향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또한 실행계획으로서 도시재생 활성화계획을 작성해야 하며 여기에서는 산단, 항만, 철도 등 주요 핵심시설 정비와 연계하여 새로운 도시기능을 부여하고 고용기반을 창출하는 도시경제기반 재생형과 소규모 생활권 단위의 생활환경 재생,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 골목경제 살리기, 공동체 활성화 추진 등을 중심으로 하는 근린 재생형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지자체에서는 가능하다면 국가에서 선정하여 지원하고,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국가에서 구축한 도시재생 종합정보 시스템과의 연계가 가능한 지자체 차원의 종합정보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에서 도시재생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기성시가지 재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인구유발시설의 도시외곽이전을 억제하는 동시에 신규시설을 기성시가지내에 우선 입지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용수요가 높은 도심에는 중심업무, 주거, 상업, 첨단 산업기능 등의 복합적인 토지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대중교통중심의 개발을 통해 개발밀도를 최적화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후공단을 첨단산업단지로 전환하거나, 기능이 약화된 항만부지나 군사시설, 이전적지 등에는 중소기업 전용단지, 창업센터, 문화예술 창작공간, 대학 등을 유치함과 동시에 기존 도시의 정주여건을 매력 있는 공간으로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생활권 단위의 생활환경개선 및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을 위해 근린중심의 소규모 환경개선을 지원하고, 근린중심의 자생적 사회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도시재생대학, 도시재생전문가 양성 등 주민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도시재생정책은 정부의 복지, 고용, 의료, 교육은 물론 문화, 경제, 과학기술정책 등의 다른 정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행정 기능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중앙정부나 지자체 모두에서 그동안 구호에만 그쳐왔던 부서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통합적 정책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하여 갑오년 새해에는 역동적으로 달리는 청마(靑馬)의 기운처럼 도시재생정책의 활성화로 복지차원에서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삶의 질이 높아짐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도시정책이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우종 가천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정치의 송구영신을 위하여

금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국민들의 많은 기대 속에 출범한 박근혜정부의 1년도 함께 지나가고 있다. 정부는 다사다난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을지 몰라도 국민들에게는 엄청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NLL 녹취록 공개로부터 시작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논란 그리고 작금의 철도노조 파업사태까지 어느 것 하나도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준 것이 없는 해였다. 이론적으로는 사회 내의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최고의 장치가 정치인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역할을 상실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대한민국 정치 일번지인 여의도에는 거수기 정당과 무능력 정당만이 있어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기보다는 갈등과 상쟁이 증폭되기만 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청와대의 통치뿐이었다. 통치를 정치로 바꾸기 위한 오랜 투쟁이 곧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었고 어느 정도 그것이 달성되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돌아보니 도로 통치만이 남아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청와대는 법치주의를 주장하지만 법치주의란 무조건적인 법에 의해서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 뒤 그것의 집행과정에서는 법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치의 영역이 먼저라는 것인데 금년의 정치는 역할 실종이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낸 사자성어가 교수들에 의해 선택된다. 금년도의 사자성어로는 도행역시(倒行逆施)가 뽑혔다. 정치가 순리를 따르지 않고 그에 거역되는 행동만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오자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은 왕의 무덤을 파헤쳐 매질을 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성어이다. 아무리 부친의 원수를 갚는 이유라지만 이미 죽은 자를 해코지 하는 행위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로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만 한 2013년도의 정치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다. 복지를 주요공약으로 들고 나와 승리한 박근혜 정부는 곧바로 기초노령연금을 후퇴시켰다. 이에 반발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보면서 정부의 경제민주화 구호 실종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면 지나친 것일까.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점차 실체로 들어나고 있자 그 수사의 총책임자와 수사담당검사를 솎아 내듯이 내모는 모습에는 실망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원칙이라는 이름하에 강경일변도로 해결하려는 리더십을 보면서 교수들은 도행역시를 상상했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시냐고 묻고 있다. 학생들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슬픈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들 젊은이들에게 누가 이런 좌절감을 가져다주었는가. 어쩌다 안녕이란 기쁨의 표현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현이 되었는가 말이다. 무언가 잘 해보려고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은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데 알아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모에 박근혜 정부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즐겁다고 할 정도의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국민들과의 소통을 요구하자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자랑스러운 불통 대통령이 되겠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외교적 성과로 어수선한 내치를 가릴 수는 없다.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시냐고 묻는 이유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그것이 리더십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송구영신하시기 바란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 교수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