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직급파괴와 수평적 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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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미국 청바지회사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인사담당 임원이 한국 방문객을 처음 맞게 되었다. 걱정이 되어 한국지사에 나와 있는 미국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그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별로 질문이 없을 터이니 준비된 내용만 설명하면 그걸로써 족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웬걸, 이 방문단에서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국인의 말이 맞다. 한국인은 통상 질문이 별로 없다. 특히 상하관계가 분명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말들을 잘 안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수업시간도 조용한 편이고,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가 주류를 이룬다. 교수들의 모임은 다른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학생들보다 더할 때도 많다. 이게 한국인들의 생활이고 문화다.

 

비교문화학의 대가인 네델란드의 홉스테트(Hofstede) 박사는 권력거리(Power Distance)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상하관계는 존재한다. 그런데 그 상하 간의 거리의식은 사회마다 다른 것이다. 심리적인 거리 말이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아시아나 남미 국가는 권력거리가 크고, 유럽은 좀 낮은데 특히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낮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처음 발표 시 53개 국가 중 중간쯤 되는 27위로 나왔다. 권력거리가 클수록 사회는 수직적으로 되고 경직적이다. 권력거리가 낮을수록 사회는 수평적이 되고 다원적이고 유연해지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도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한국의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직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물론 우리보다 더한 나라도 많지만, 우리와 거래하고, 우리와 경쟁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렇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2~3명이 보좌관을 한명 쓰며 대개 대중교통수단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한사람이 보좌관을 7명 정도 쓰며 대형 자가용으로 움직인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원들은 공간도 크고 일을 주로 시켜서 한다. 서양회사의 임원들은 직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이메일도 직접 응대하고, 차도 직접 끓인다.

 

문화는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수직적 문화는 그 나름대로 효율적이며 안정을 준다. 그러나 창의성을 저해하고 다양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이 내부의 수직문화와 본격적인 전쟁에 나섰다. CJ에서는 1999년부터 호칭에서 직급을 없애고 그냥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모레 퍼시픽, SK에서도 이름 뒤에 님을 붙이거나 매니저라는 중립적인 호칭을 쓴다. 카카오 같이 영어 닉네임을 쓰는 회사도 많다. 삼성도 최근 본격적으로 직급파괴에 나섰다. 직급 자체를 7단계에서 4단계로 줄이고 호칭도 ‘OOO님’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수직화된 사회에서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조직문화가 진정으로 수평적으로 되고 조직과 개인의 창의성이 높아질 것인가?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회사 임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들이 당장의 불편함과 답답함을 감내해야 한다. 그들이 먼저 철저하게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의 관건이다.

 

조영호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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