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폭력성은 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폐해를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폭력성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일체의 행위에서 나온다. 특히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헐뜯는 언어폭력은 상대방에게 회복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래서 로젠버그(2003)는 평화의 언어로서 ‘비폭력대화(NVC)’를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비폭력대화의 핵심은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나 명령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부탁하는 것이다. 즉 비폭력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행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비폭력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띄는가? 이를 위해 우선 폭력성의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폭력성은 어떤 행위 자체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 토론할 때 상대방에 대한 비판 자체를 폭력으로 보지 않는 이유이다. 만약 그 행위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비로소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평화’의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었다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도 일상에서 자주 나타난다. 가령 “자네는 영업 쪽은 적성이 아니야! 인사팀이 맞는 것 같아”처럼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습관은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서 언어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언어폭력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습관이 언어폭력을 낳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조언이나 충고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언어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것에는 대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한몫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는 아마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병리 현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극심한 경쟁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둘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대화를 나눌 친구나 직장동료, 심지어 가족이 없는 이유다.
따라서 비폭력대화는 우리에게 습관처럼 돼 있는 자기중심적인 대화 방식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 초점을 둔 사고와 행동에서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다.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갑-을 관계구조에서 벗어나,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신뢰는 차츰 쌓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할 때, 대화를 자신의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 평화의 언어, 비폭력의 언어가 깃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조용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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