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동네의 한 고등학교 교문에 적힌 ‘가슴가득 보훈정신, 호국선열 사랑하자’라는 현수막은 지금이 보훈의 달임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에 적힌 구호를 보면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관심이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 달 전쯤 한 케이블방송에서 인기 아이돌그룹 AOA 멤버들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깅또깐?”이라고 묻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SNS를 뜨겁게 달궜고, 당연히 거센 비난이 일었다.
젊은 친구들이 안중근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을 모른다는 사실은 단순한 무지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부재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어떤 존중이나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며 여기에 심각성이 있다.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 독립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가치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희생시켜 온 분들의 고귀한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호국영령들의 헌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묻는다면 필자를 포함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 자녀인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 아버님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무섭고 불편했던 기억이 더 많다. 다정다감한 아버지 모습보다 수감 중에 당한 구타후유증으로 힘든 일상을 보낸 가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현충일 등 국가적 행사가 진행될 때 일시적이긴 하지만 약간의 자긍심과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애국지사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헌신이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은 받았지만 ‘존중 받는다’는 느낌은 실감하기 어렵다.
보훈처 발표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의 보훈의식은 낮은 편인데 호국보훈 의식이 1% 증가하면 사회갈등 요인을 1.59% 감소시키고 이를 통해 11조9천억 원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훈의식 고취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해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호국선열 애국자들과의 소통과 존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가정, 학교, 조직, 기업, 정치권, 세대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소통과 존중이 절실하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호국선열의 희생과 피땀 위에서 삶을 영위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호국보훈 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소통을 원활하게 이끌어 줄 확실하고도 귀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빚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존경스러운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넋을 기리며 서로 한 마음으로 합쳐 더 나은 사회를 더 건강한 국가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도 이 땅을 지켜보는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가장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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