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 ‘권리와 의미’

2009년 ‘기축년’을 거의 마무리 하고 희망을 가져보는 2010년 ‘경인년’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말에 반복되는 생각이지만 올해도 별로 한 것이 없다는 회한만 든다. 금년은 개인적으로 ‘하늘이 내리는 명령을 알아 듣는다’는 지천명(知天命)인 만 50세가 되었는데, 역시 세상사 모든 이치를 어느 하나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아 만년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올해는 나름대로 연초에 법률구조 봉사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들어와 많은 보람 있는 소송과 일을 한 것을 조그마한 위안이라고 애써본다.

 

며칠전 치매 할머니 등을 수용하고 있는 용인시에 위치한 ‘서울시립 영보노인요양원’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주관한 ‘주민등록증 및 위문품 전달식’에 수원지부 직원들과 같이 참여하고 내친김에 약간의 봉사활동도 하고 왔다. 위 요양원은 서울시 대방동에 수용되어 있던 서울시 보호 여성 부랑인 800명을 지난 1985년 이동시켜 현재 천주교 성모영보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다.

 

법률구조공단에서는 ‘법률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찾아가는 법률구조를 하고 있는데, 위 주민등록증 전달식은 그 결과의 산물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면서도 자신의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국민으로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 공단은 이러한 분들 중 608명의 가족관계미등록자를 위한 취적(就籍) 기획소송을 통해 이분들이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에 등재될 수 있게 했고, 그 중 38명에 대해서는 공단이 전 절차를 밟아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아 이를 전달한 것이다. 이런 소송에 대해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 절차를 잘 모르고, 그러한 분들로부터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소송도 아니므로 법률구조공단 같은 기관만이 할 수 있는 소송이다.

 

우리가 흔히 서민, 소외된 사람을 말할 때 다른 사람들 즉, 경제적으로 좀 나은 사람과 비교 지칭해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서민 또는 소외된 사람이라고 인식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위 할머니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그러한 처지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이웃의 어르신들이다. 이 땅에 태어났지만 어릴 때 버림 받았거나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외면당한 분들이다. 그분들을 돌보는 단체나 관심을 갖는 소수의 분들 이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관심도 끌 수 없는 분들이다. 또 이분들은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실상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힘 있는 정치인들의 선거 때 반짝하는 홍보용 위문도 받기 힘들다. 이분들 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소외된 이웃이다.

 

늙고 병들고 곧 돌아가실 분들에게 가족관계등록부에의 등록이나 주민등록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주민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국민이 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주민등록이 돼야 국민으로서의 권리, 즉 선거권과 피선권이 부여될 수 있다. 그리고 국민 또는 주민으로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수급 등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주민등록이 없으면 구체적으로 예금통장을 만들 수 없고, 대중교통 이용시 경로우대를 받기 힘들고, 인터넷 회원가입,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임차인 보호 등 부동산관련 법령상 불편함 등 일상생활에서 주민등록이 갖는 의미는 적다고 할 수 없다.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울먹이시는 할머니들을 보고 보다 빨리 이러한 도움을 줄 수 없었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인생의 황혼기를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는 분들이지만 웃는 모습이나 건네는 말 한마디는 어린아이 천사 같이 마음의 평화를 주는 분들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면서 하늘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우리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는 분들 같았다. 진정으로 소외된 우리 이웃 분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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