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들어 눈이 많이 내렸다. 징기스칸 군대처럼 대책없이 눈이 내렸다. 십년 만의 폭설이라고도 했다. 온 세상이 눈에 뒤덮인 백설 천지이다.
어린 날, 눈 오는 날은 기쁜 날이었다. 냇가 빙판에서 썰매를 타고 동무들과 눈밭위로 방패연을 날렸다. 대나무살에 밥풀로 붙인 창호지에 어머니가 감아 준 명주 실꾸리 끝에 어린 꿈을 매달았다. 금방이라도 녹아 사라질 눈들이 뭉쳐서 단단해졌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마을 이웃과의 친근함도 성벽처럼 단단해졌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내 어릴적 낭만으로 남아 있는 이불처럼 포근한 눈이 아니다. 하늘이 이 시대의 어둠과 곤고하고 핍박한 세상을 정화하려는 듯 하늘의 방어선이 대책없이 무너졌다. 눈 덮인 도시와 농촌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독거 노인이 사는 움막이 무너지고, 가축의 축사가 무너지고 ‘이것이 쌀이라면 좋겠네’ 한탄하는 농부의 가슴도 무너졌다.
부드럽고 여린 눈 속 어디에 질풍노도의 큰 힘이 창과 칼처럼 숨어 있었을까. 자연을 망각하고 사는 문명 세계의 오만에 대한 하늘의 응징인 것일까.
휴일을 이용해 필자는 겹겹이 쌓인 눈을 헤치고 칠보산을 올랐다. 나무들은 눈꽃으로 얼굴을 가리고 떨고 있고 설해목은 눈에 고개를 쳐박고 있다. 웬만한 눈쯤이야 끄떡하지 않았을 조선소나무의 생솔가지도 꺾였다.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순은의 바다이다. 그 순은의 바다에서 나는 표백된 나무들처럼 마음이 깨끗해 진다. 하늘도 나도 땅도 순백의 깊이에 젖는다.
경인년 새해 첫 달도 어느새 후반에 접어들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포부가 가득한 가슴으로 희망을 설계한다. 내일을 잘 살아보려는 자아변신의 인간적 욕망과 동시에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일까 하는 의문이 나를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리게 한다. 반성적 사유는 국경일에 대문 앞에 거는 의례적 깃발처럼 걸렸다가 내일이면 내리는 깃발이기 일쑤이다. 일상의 껍질을 벗어 던져야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도, 껍질은 스스로 밖에 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벗지 못하고 일상에 갇히는 삶이 필부의 삶이다.
생각해보니 내 삶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보다도 세상이 만들어주는 현실의 나로 살아오지 않았는가. 제발 정신 좀 차려야겠다고 옷깃을 고쳐매지만 시간은 다시 시계태엽처럼 새해를 돌리고 회환과 반성의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눈보다 깨끗하고 진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눈은 머무르지 않는 역사처럼 사라져버리겠지만, 나는 눈의 추억과 지난 세월의 유품에서 더 의미 있는 현재를 살아 갈 지혜를 얻는다. 미래에 대처할 방안과 설계도 눈위에 뜬 태양처럼 명백해진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거센 파고 앞에서 우리 한국호는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 중 가장 빠르게 회복 중이라고 한다. 세계가 극찬한다고 하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기업인으로서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로 행복하다. 사회가 이구동성으로 일자리 나누기, 일거리 나누기를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이고 아름다움이다. 요즘 사회 갈등이 많은 듯이 보이지만 남과 생각이 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같이 사는 생존의 판을 깨서야 되겠는가. 전국시대 제나라 우화 ‘황금에 눈이 먼 사내 이야기’ 가 생각난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삶에 깊숙이 스며 들고 온정과 배려가 가득한 새해를 기대해 본다.
/박무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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