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명문대학 교수가 조교에게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하니 조교의 답변이 의미심장했다고 한다. 불안해서란다. 도서관을 벗어나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가능한 한 도서관에 머문다고 한다. 이 불안이 캠퍼스 곳곳에 떠돌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가 ‘퇴출의 공포’를 안고 산다면, 자녀 세대는 ‘진입의 불안’ 앞에 서성거리는 게 요즘 대학 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라고 한다.
자본주의가 불평등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 대학에 가기 위해, 아니 좀 더 나은 대학에 가기 위해 기꺼이 청춘을 불사른다. 하지만 한번 획득한 문화 자본인 학벌은 패자부활전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만이 아니다. 일부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취직을 위해 스펙 쌓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뿐 아니다. 올해 4월1일자로 필자가 지부장으로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에 공익법무관 4명이 새로 부임했다. 공익법무관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자 중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로서 군 복무 대신 만 3년간 소송 등의 공익업무를 해야 하는 예비 법조인들이다. 그 중 2명은 3년차로서 내년 3월 말이면 소집해제가 돼 사회의 진정한 법조인이 된다. 그런 3년차 법무관들에게도 대학 캠퍼스의 학생들만큼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내년까지 1년여 동안 여러 로펌 또는 기관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그 입사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런지 법학 외에 어학분야 학과를 다닌다든가 경영대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앞으로는 모든 학문이 서로 융합되어가는 추세라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은 곳에의 취직 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한 스펙 쌓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물며 비 명문대생이나 그보다 못한 대학의 학생들은 어떠하랴.
큰 아들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둘째 아들은 고3이다. 아들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공부를 잘하는 고3도 아니니 더 더욱 걱정이다. 이러한 점들을 환기시키는 아빠의 말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게 사는 아이들이 옳을지도 모른지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활동을 해 보라는 아빠의 요청에 어느 정도 부응할지 의문이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이 저 멀리 남의 일 같지 않게 보인다. 나만이 이러한 불안감을 갖고 있을까. 안정된 직업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조건인데 말이다. 그 직업으로부터의 수입에 의해 가정이 이뤄지고 그 가정이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지탱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불안한 사회에 살아야만 하는가. 그러나 전 세계는 무한경쟁의 동일한 경제권이 되어가고 있다. 대표적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영국과 신흥 개발도상국들 뿐 아니라, 그동안 유지된 대학의 평준화까지 무너지는 독일 등 유럽 각국들도 경쟁력을 배가하기 위해 더욱 효율성을 강조하고 이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국민 개개인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국가의 경쟁 레이스에 내몰리고 있다. ‘진입의 불안’ 앞에 서성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를 극복하고 직장을 구하고 평범하게나마 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을지, 부모로서의 ‘또 하나의 불안’을 지울 길 없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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