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할까 한다. 몇 년전 한국을 방문한 외국 동료 교수를 태우고 운전한 적이 있다. 좌회전 후 다시 바로 우회전을 해서 고속도로를 들어서야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진입에 실패하면 다음 신호에서 다시 유턴해서 돌아와 결국 어마어마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했고, 다른 운전자는 당연히(?) 양보를 안해주고…한국에서 운전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떤 상황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늘상 일어나는 ‘일상(日常)’에 대해 그 동료 교수가 한 말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는 다음 신호에서 되돌아오면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되는지 물었다. 또 평상시 한국인들의 친절, 양보심, 배려심 등은 운전 중에는 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은 ‘우리’를 지적한 것 같아 약간 불쾌한 생각이 들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하간 부끄러운 기억이다.
다음 신호에서 되돌아오면 5분 정도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순간이 5분을 다툴 만큼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었나. 또는 평상시 내가 시간을 그 정도로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나. 아니다.
그 상황에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는 것은 시간의 급함 때문도 또는 시간의 소중함 때문도 아닌 단지 여유의 부족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이러한 특성은 근면성, 추진력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정신이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서두름으로 초래되는 폐단이 있다면 이 속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런 속도의 완급은 아마도 제도나 정책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정부 정책은 속도 조절에 대한 고민없이 오히려 더 서두름을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돼 아쉬움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입학사정관제’일 것이다. 정부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창의적 수월성을 갖춘 학생을 선발한다는 취지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게 됐다. 이 제도를 통해 한국의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인 지나친 교과중심, 기계적 수치화에 의한 단선적 평가를 지양하고, 리더십, 삶의 경험, 지적인 탐구력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는 평가기준에 있어 정량적 요소(수능점수 등)뿐만 아니라,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평가의 주된 요소인 정성적 평가를 포함한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은 입학사정관제에 부합하는 정성적 평가기준보다는 아직도 계량화된 평가기준만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성적 평가의 한 지표로서 봉사활동의 ‘횟수’가 포함된다. 그러나 만약 봉사활동의 횟수를 평가지표로 삼는다면 이는 다시금 정량적 평가에 지나지 않을 뿐, 활동의 내용에 대한 정성적 평가는 아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시간때우기에 급급할 뿐 봉사활동의 핵심적 요소인 ‘자발적 참여’는 사라지고 ‘시간 모으기식’ 봉사활동만이 남는다. 결국 제도(입학사정관제)의 서두름으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자원 봉사활동은 오히려 축소되는 것이다.
때로는 서두름보다 느림이 빨리 갈 수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멀리 또 오래 갈 것이다. 최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제목과 더불어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라’를 제안하고 싶다.
/최순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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