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비

지난 며칠 눈이 많이 내렸다.

 

그동안 눈이 조금씩 내린 적은 있어도 눈답게 내린 건 아마 올 겨울들어 처음일 것이다.

 

아름답다! 샹송이라도 한 곡 읊조리고 싶다. 한편의 시라도 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왜 우리는 첫눈에 반하고 또 의미를 부여할까.

 

누구나 첫눈을 기다리고 (실상은 눈이 오면 엊그제처럼 생활에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첫눈이 오면 술이라도 한잔해야 될 듯하고 또 가물거리는 옛 추억을 되새기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첫눈’은 아름답고 포근하고 정스럽다고 느끼지만, ‘첫비’에 대해서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아니 ‘첫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다.

 

나는 눈보다 비를 사랑한다. 눈은 내릴 땐 아름답고 포근하게 느끼지만 녹은 자리는 지저분하고 질척거린다.

 

반면 비는 올 땐 으스스하고 우중충하지만 비가 갠 후엔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도 깨끗해진 느낌이다.

 

눈은 실제보다 부풀려있고 보여지는 것과 달리 수증기 덩어리에 불과하다. 반면 비는 보여지는 그 자체, 즉 물이다.

 

또한 눈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녹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비는 거스르지 않고 물이 흐르는대로 가다가 결국 사라진다.

 

눈이 뭔가에 집착하는 속세의 느낌이라면 비는 이욕을 버린 어떤 초월적 세계의 느낌이라고 한다면, 자연의 섭리에 대해 너무 무례한 평가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감히 자연과 비교해서 선택한다면, 나는 눈보다는 비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시작은 작아도 결과는 큰, 그런 일을 하고 싶고, 첫인상 보다는 알아 갈수록 점점 호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만날 때 인사보다 헤어질 때 인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작보다는 마무리를 더 잘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지난 며칠은 시작의 서두름이 마무리의 여유를 빼앗았다.

 

한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기도 전에 2009년은 훌쩍 떠나가고 2010년이 벌써 찾아와서 새해의 소망과 각오를 재촉한다. 늘 그러했듯이 연말을 기해 각 언론사에서 2009년의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보도했다.

 

물론 그 중 김연아의 연속 우승과 2010의 G20 정상회의 한국개최 등과 같은 쾌거는 우리에게 기쁨과 새로운 희망을 주었지만, 10대 뉴스 중 대부분은 ‘시작이라는 조바심 때문에 마무리 하는 여유’를 가질 겨를도 없이 다시 2010년으로 넘겨졌다.

 

세종시 계획 수정 논란과 4대강 정비사업 논란은 물론 미디어법 논란은 어떻게 정리되었는가.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 그리고 아동성범죄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법적, 제도적 방안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제2차 핵실험, 그리고 6자회담 개최 등 앞으로의 남북관계 전망은 어떠한지.

 

아마도 대부분은 논란 상태에서 어떤 마무리도 없이 그대로 새해로 넘겨졌다.

 

최소한 한번쯤은 정리가 됐어야 새해가 부담이 적지 않을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평범한 경구는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맘때가 되면 늘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다만 어느 정도라도 마무리를 하고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한다.

 

누구나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새해를 맞이해 소원을 빈다. 새해의 소원을 빌기 전에 지난해의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봄도 필요할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바라는 나의 소망 중 하나는 지난해의 소원이 잘 마무리되는 것이다.

 

‘눈같은 시작’보다는 ‘비같은 마무리’를 하는 새해가 되게 하소서!

/최순종 경기대 사회과학대학 청소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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