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말장난, 먹장난, 붓장난, 글장난 등등… 그 중에서 나는 말장난이 특히 좋다. 말로 말을 만들고 형상을 생각하며 그림으로 그려보고 또 뭔가를 만들어 가는 상상놀이, 생각의 꼬리들을 이어 가다 보면 일상의 피곤이나 절망감이 사라진다. 말장난은 상상의 시작이다.
어린아이 같은 상상놀이에 몰입해 있으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 한없이 꿈꾸며 달려가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다시 맛볼 수 있다. 새로 시도하는 일이 실패할 거라는 걱정도 잊혀 진다. 안되면 다시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걸로 바꿔서 해도 될 테니까. 아무튼 장난끼는 나이조차 잊게 해 준다.
어린 아이들을 만날 때는 장난끼가 자주 발동한다. 그들과 말장난을 하며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나 자신이 다시 동심으로 되돌아감을 감을 느낀다. 아무 것이나 끼적거려 좋고 “이거 뭐 같니?” 하며 놀아줄 수 있다. 아이들과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유치해진다. 언어나 행동이 그들의 눈높이에 닿아 있고 시선의 각도마저 닮아가기 때문이다. 유치한 장난끼가 발동한다.
‘끼’ 살리기를 고령화 정책으로
‘끼’는 열정의 또 다른 의미다. ‘유치함’은 창의력을 나타내는 자유로움과 발랄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상상과 창조를 해석하는데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장난끼를 갖고 유치하게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웬만한 자리에 오르거나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리 값과 나이 값을 해야 한다. 하지만 권위나 나이 값이 어디 폼만 잡는다고 생겨나는 건가. 거들먹거리며 아래 사람들에게 호통이나 친다고 해서 존경까지 받은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세상을 섭렵할수록 머리를 숙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고개를 들고 해맑은 표정으로 웃어 보자.
건강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를 끈다. ‘술과 고기를 적게 먹고, 금연하고, 기왕이면 야채를 많이 섭취하면서 적당한 운동을 하라. 많이 웃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육체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육체건강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건강이다. 단풍철에는 동창 모임들이 잦다. 일흔을 넘긴 이들도 동창생들끼리 만나면 뭐가 그리 재미있고 우스운지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밑도 끝도 없는 어린 시절의 옛 추억에 세상 경험까지 더해지면 무한한 상상들이 꼬리를 물고 금방이라도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된 듯이 기뻐 날뛰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 큰 도움
기분이 좋으면 가뿐한 마음에 몸도 날아갈 것 같다.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난다. 자신감은 걱정거리도 사라지게 한다. 용기를 준다. 용기가 없으면 공연한 자존심만 살아난다. 자존심과 자존심이 만날 때 다툼이 생겨나듯, 자존심을 잃으면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나 돈 없다고 깔보는 거야?”, “못 배웠다고 깔보는 거야?” 이런 어이없는 다툼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퇴직자나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경로형 보호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유교적 미풍양속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일할 수 있는 이들을 뒷방으로 밀어 넣지는 말아야 한다. 고령자들을 위한 창조적 일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끼로 장난끼를 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노인과 어린이, 노인과 노인들이 유치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주자. 굳이 새 시설을 갖출 필요는 없다. 기존의 유치원이나 경로당, 마을회관도 좋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마음 놓고 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사업이나 정책이건 미래를 완벽하게 예단할 수는 없다. 장난끼와 유치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좋은 아이디어일수록 리스크는 많다. 어차피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절반씩이라면, 장난끼로 열정을 모으고 유치함으로 상상을 모아 보자.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한국도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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