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란 말이 쓰일 때가 있다. 이 말은 긍정으로 쓰이기도 하고 부정으로 쓰이기도 한다. 칭찬이 되기도 하지만 욕이 되기도 한다. 시골 동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고등학교는 시내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도청소재지에 나와 유학(?)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한의원에는 가정 형편상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한의원에서 잔심부름을 해 주는 직원으로 취직을 해 있던 고향에서 함께 살던 동네 형이 있었다. 나는 잠자는 방을 그 형과 함께 썼다. 나보다 두세 살 위인 형을 그 집에서는 내 또래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시골 동네에서 부르던대로 그냥 형이라고 불렀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실하고 착했다. 동년배들이 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부럽게 보일 나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열등감을 가질 만도 하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부지런하게 일하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안팎으로 청소를 하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주인집 식구들에게 뿐 아니라 그 집 아이들에게도 친절했고 특히 나에게는 더 없이 각별하게 대해주는 형이었다.
아비의 성실함 빼닮은 삼형제
일과가 끝나면 틈틈이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는 모습도 기억된다. 그 형과 함께 그 집에서 5~6년 같이 생활하면서 나 역시 정식으로 온전한 하숙비를 내고 있는 형편이 못되어 틈틈이 그 집에서 그 형을 도와 허드렛일을 하곤 했었다. 지금 기억하는 형은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 나지막이 부드럽게 이야기 하고 궂은일은 자신이 먼저 알아서 하곤 했다.
나는 대학을 진학했고 군대를 다녀왔다. 군대를 면제받은 형은 그 후로 한의원을 경영하던 친척분이 돌아가시자 그곳을 그만두게 됐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도 못한 채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설 명절에 고향에 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그 형을 만나게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생전 아버지의 고향을 한 번 자식들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세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방문했다는 형과의 만남은 이번 설을 통해서 얻은 아주 값진 선물이다.
지난 40년의 세월이 압축되면서 옛 기억이 어제일 같이 되살아나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한의원을 나온 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고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자라 큰 아들이 이학박사로 대학교수가 되고 둘째는 한의사가 되어 개업을 하고 셋째 아들은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평신도 선교사라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돼 반갑고 그가 나와 함께 자라온 형이어서 더욱 자랑스럽고 기뻤다. 다정다감하게 나지막이 이야기 하는 억양이나 모습이 하나도 변한 것 없는 모습에서 배어나오는 훌륭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 셋이 어쩌면 그렇게도 아버지를 빼 닮았을까? 자식은 아비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잘 키운 세 아들의 모습에서 한마디로 아주 좋은 의미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자식에 존경받을 만한 부모돼야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한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라는 교훈이지만 부모입장에서 보면 효도 받을 만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을 내포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공경은 윤리가 아니라 계명이다. 공경은 선택이 아닌 삶으로 결단해야 할 일이다. 효도는 좋은 부모와 자식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은총이다. 따라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존경받을 만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재산보다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값진 재산은 존경의 삶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게 아닐 때 그 자녀의 삶에는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갈등과 아픔이 된다. 공경하고 존경하는 삶은 하늘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반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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