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아끼는 창의산업

지금은 창의력 경쟁시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와 관광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창의적 접근을 요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그러나 창의력이 별건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 그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할 만큼, 이미 상식화된 지 오래다.

 

문제는 행동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받아들이는 조직이나 사회의 안목이 없으면 괴짜들의 공상·망상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자본과 노동 등 이해 당사자들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민족이 창의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을까? 평범한 이해 당사자들의 상충된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 괴짜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창의성 검증을 요하는 문화산업

 

지난 달 중국 베이징에서 제5회 국제창의산업엑스포가 열렸다. 전기전자 등 첨단산업은 물론 도자기나 전통음식까지 모든 화두가 ‘창신(創新), 창의적으로 새롭게’였다. “창의를 향한 길은 국가가 만들겠다. 인민은 그 길을 부지런히 달려가시라.” 작년부터 등장한 이 구호는 창조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대와 희망이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나 지자체가 벌이는 각종 공공사업들이 얼마나 창의성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 창의력 시대에 세금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은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주, 난생 처음 도의회 증인석에 섰다. 문화관광위원회 행정감사 자리였다. 오전부터 밤 아홉시 반까지 호되게 감사를 받았으니 지치고 짜증스럽기도 했어야 하는데 다음 날 아침,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함을 느꼈다. 가슴 속의 체증 같은 것이 사라지고 뭔가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다가왔다. 가끔 뉴스에서나 보아오던 국회의원들의 방대한 자료요구와 수박 겉핥기식 행태를 우려했지만, 지역사업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과 관심도는 달랐다.

 

제출된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질의했다. ‘세금’을 낭비하지 않도록 따지면서도 진솔하게 당부하는 모습,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창의 문화산업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로 진지하게 다가오는 질문들은 기존의 의회에 대한 선입견까지 바꿔 주었다. 좋은 아이디어에는 격려까지 해주는 넉넉함도 있었다.

 

창의력에 바탕을 둔 문화산업은 초기 단계에서 성공의 근거를 제시하기에 가장 어려운 분야다.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더 많다. 그래도 대부분의 마스터플랜 기획자들은 장밋빛 사업계획을 들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예산은 곧 세금이다. 자신의 돈으로 사업계획을 짠다면 성공보다는 실패 대비책을 먼저 짜는 것이 순서다. 예산도 적게 짜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예산심의를 통과하기 어렵다. 그래도 믿어 줘야 하는 것이 창의산업이다. 그런데 누구를 믿나? 지휘자를 믿고 오케스트라를 믿어야 한다.

 

지휘자만 알고 있는 악보도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먼저 악기의 특성과 악보를 이해해야 한다. 지휘자의 머리 속에는 곡의 특성과 분위기가 이미 그려져 있다. 그걸 모두 언어로 전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때로는 부분을 강조하며 지휘하기도 한다.

 

공공사업에 있어 창의력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이유는, 지휘자의 상상세계를 객관적 수치로 입증해야 한다는데 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도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중적인 잣대를 쓴다. 세금이라고 하는 공공재가 투입되는 까닭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창의성이 떨어진다. 성공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창의산업의 성공을 원한다면, 지휘자의 상상력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생각을 아이디어라 할 수 없듯이, 창의력을 검증하려는 생각을 잠시 접어 보자. 그래야 세금도 아낄 수 있다. 헛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한국도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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