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티 살리기

내 고향은 충북 단양이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 별명은 ‘촌놈’이었다. 서울 생활이 처음이라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별명까지 촌놈이었으니 기를 펼 수가 없었다. 뭔가를 잘 하면 ‘촌놈이 제법’이라 했고 실수라도 하면 ‘촌놈이니까’라며 놀려댔다. 나름으로는 촌티를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게 바로 촌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10년 전 남이섬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디자이너로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던 ‘서울티’는 가평과 춘천의 경계점에 있는 유원지를 경영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널려있는 남이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뿐이었다. 쓰레기들을 보며 고향을 떠올렸다. 신문지로 봉지를 만들고 음식 찌꺼기를 모아 돼지 키우던 시절, 세숫물은 채소밭에 뿌려주고 마당 청소하다 나온 검불을 불쏘시개로 쓰던 기억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道만의 촌스러움 훌륭한 관광 소재

 

쓰레기가 넘치는 유원지를 관광지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유원지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비웃기만 했다. 월급도 제 때 못주면서 관광지를 만든다니, 테마파크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큰돈이 들어가는 지 알기나 하냐고. 테마파크를 꼭 돈으로 만드나? 쓰레기가 넘치면 쓰레기 테마파크를 만들지.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재활용이었다. ‘쓰레기는 쓸 애기로!’, 버릴 것이라도 잘 다듬고 닦아서 아기를 키우듯 다시 살리자는 뜻이다. 가지치기한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굴러다니는 자갈들을 모아 담장을 쌓으며 고향의 촌스러운 풍경들을 살렸다. 때마침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손님이 급증했다. 2001년 27만명에 불과하던 남이섬 방문객은, 한류와 쓰레기 테마로 올해 200만명을 넘어섰다.

 

‘경기관광, 촌티로 승부하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촌스럽다는 것은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세속의 때가 덜 묻었다는 뜻이다. 경기도에는 촌스러움이 수없이 살아있다.

 

중국 대륙을 품을 기세로 길게 뻗어있는 서해안을 보라. 휴전선을 머리띠 삼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감싸 안고 있는 드넓은 경기 땅과 남한강 북한강의 물줄기들, 그 땅에서 생겨나는 갖은 먹을거리며 구경거리는 모두 경기도만의 촌스러움이고 관광자원이다. 이제는 고향의 촌스러움을 팔 때가 됐다. 논두렁 밭두렁, 들판의 잡초들, 바닷가 옛집의 낡은 어구들, 골짜기의 낡은 음식점까지, 약간 촌스럽긴 해도 경기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콘텐츠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

 

가끔 “우리 경기도에는 관광자원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있다. 많다. 널려 있다. 쓰지 못하거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지역 간의 시샘이나 경쟁도 관광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데 착안해야 한다.

 

음식점 등 관광 콘텐츠 다시 찾아야

 

지난 주 ‘여주도자세상’ 상량식이 있었다. 한국 최대의 도자쇼핑센터로 육성할 모양이다. 전국 도예인 가운데 50% 쯤 경기도에 거주한다는 근거 하나만으로 세계의 도자를 경기 여주로 모아놓고, 도자기를 살 사람은 모두 여주로 불러들이겠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품은 하나의 브랜드로 승부할 수 있지만 지방의 군소 브랜드는 뭉쳐야 산다. 비슷한 것끼리 차별화를 시도하다간 홍보비만 낭비할 뿐이다. 쌀을 사려면 어디로 가고, 인심 좋은 고장은 어디, 평화를 느끼려면 어디, 등등 이미지를 몰아주는 게 테마 관광 사업이다.

 

고향의 촌스러움에 부끄러워하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이미지라면, 관광은 그걸 가시적으로 이용하는 사업이다. 촌티야말로 한국 이미지의 집합체다. 촌스러움을 경기 스타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집집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전통이나 인심까지도 독특한 관광 소재가 될 것이다. 촌티 음식에 촌티 서비스에 촌티 패션, 새해부터는 한국의 촌티를 모두 경기도로 모아 보자.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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