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박원규 선생과의 대화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서예평론가 김정환 씨가 묻고 박원규 선생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제법 큰 책입니다. 책 제목을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라고 붙였습니다.
서예란 동아시아 인문학의 최고경지를 의미합니다. 동아시아의 정신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입니다. 지식인들과 선비들에게 서예란 필요·충분조건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와 글씨를 제대로 쓰고 사용하지 않고서는 반듯한 정신과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듯하게 글씨 쓰는 일이란, 그 행위를 넘어서는 인문적 경지를 말할 것입니다.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구성하는 지식인들 또는 선비들에게 요구되는 서예란 나라와 사회의 문화적 역량입니다. 반듯하게 글씨 쓰는 것은 곧 바른 언어, 바른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오랜 친구인 박원규 선생과 우리는 ‘서예의 의미’에 대해서 늘 이야기해왔습니다.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담아내는 한 권의 책도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문자로 구성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책과 서예도 사실은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사회의 문화적 역량
우리 출판사가 기획하는 이런저런 전시와 문화행사 때마다 준비되는 방명록을 살펴보면서 큰일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명하는 글씨의 수준이 안타까울 정도로 시원찮습니다. 자기 이름도 반듯하게 쓰지 못합니다. 이런 글씨로 어디 반듯한 정신과 삶이 구현될 수 있을까! 이런 글씨로 말을 바르게 할 수 있을까!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과 선비들이 붓을 던져버렸습니다. ‘신언서판’의 오랜 전통이 무너졌습니다. 글쓰기와 말하기가 무절제하고 혼탁해졌습니다. 컴퓨터가 가져온 지식정보혁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듯하게 글씨 쓰고 올바르게 말하는 정신적·문화적 행위까지 던져버린다면 이건 분명 ‘천박한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듯하게 글씨를 쓰고 올바르게 말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를 표현하는 이상의 문화행위·정신행위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습자시간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연필과 펜과 만년필과 붓으로 글씨를 쓰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컴퓨터라는 디지털교육과 함께 손으로 글씨를 일상으로 쓰게 하는 아날로그교육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한자도 가르쳐야 합니다. 붓과 펜으로 한자를 쓰게 하는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글이 우리 문자이듯 한자도 우리 문자입니다. 이 지식정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이야기를 너도나도 합니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창조적 상상력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박원규 선생과의 대화집은 서예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문자와 서예를 통해, 배우는 일이란 무엇이며,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담론합니다. 언어가 무엇인가를 토론합니다. 동양의 인문학이자 예술학으로서의 서예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 한국의 인문학이 지향할 바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식·정보 이상의 문화·정신행위
출간과 함께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박원규 선생의 서예전을 시작했습니다. 책과 전시를 통해, 특히 젊은이들이 서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전시장에서 서예가와 직접 대화하면서 서예체험을 하게 하고, 서예교육 또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반듯하게 하는 교육과 운동을 우리 함께 펼치자는 그런 의도입니다.
서예가·서예동호인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퇴직 후에 서예를 배우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서예를 배우게 하고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교육운동·문화운동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 21세기에 ‘신언서판’ 운동을 새롭게 펼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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