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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화)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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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의 사랑은 대단하다. 깊은 겨울 지리산 산자락을 걸으면서 빼곡히 서 있는 나무들을 곁에서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하나같이 나무껍질들은 거칠고 갈라지고 구멍이 뚫리거나 부서져 있었다. 얼마 안 가서 곧 허물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껍질들이 그토록 생명을 걸고 감싸고 있는 알맹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가끔 혼잣말처럼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에미는 네 껍질이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껍질이란 그 말은 매우 쓸쓸한 단어였다. 알맹이의 눈부신 출현을 위해서 언젠가는 막 까서 버려도 좋은, 기억조차 안 되는 껍질의 역할을 말씀하신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굳은살이 박히기까지 얼마 동안 껍질을 잃은 생살로 살면서 마음 여기저기가 무척이나 아팠다.

 

껍질을 깨는 혹독한 고통 극복

 

얼마 전 ‘껍질의 사랑’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껍질들은 각기 개체의 몸에 붙어 있다가 새로운 몸의 창출을 위해 몸이 껍질을 버려야 하는 순간 몸과 이별을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몸이 온몸을 비틀며 껍질을 떼어 내려고 몸부림치면 껍질은 금이 가 찢어지고 깨어져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몸에서 떨어져 나와 파편처럼 나뒹굴어야 한다. 그래서 껍질의 사랑은 안타깝고 눈물겨우며 어떻게 보면 비참한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비애와 고통이 없으면 몸과 껍질은 같이 죽음을 맞게 된다.

 

바닷가재는 바닷가재로 성장하기 위해 산란하기까지 25회나 껍질을 벗어던지고 그 후로도 1년에 한 번씩 또 껍질을 벗어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껍질은 단단해져 몸을 가두고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 구멍을 내거나 파괴해 버려 몸은 결국 질식하거나 단단한 껍질에 찔려 죽는다고 한다. 생태계 보전과 순환을 위해서는 이러한 고통스런 탈피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몸이 껍질을 벗을 때는 껍질을 벗은 후 다음 껍질이 생성될 때까지 까진 알몸이 그대로 생살로 노출된 채 얼마 동안을 견뎌야 한다고 한다. 비바람, 흙먼지가 닿거나 후려칠 때마다 갖은 쓰라린 상처를 참으면서 눈물겨운 시간을 견뎌야 새로운 껍질이 만들어지고 다시 새 삶은 시작된다. 바닷가재 말고도 껍질을 벗어야 하는 생물들은 수없이 많다. 현란한 무늬와 컬러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도 사실은 눈물겹게 자기 몸 한 부분을 깎아 내버리는 쓰라린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구렁이나 뱀도 허물을 벗어내고는 한 사흘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생살로 땅을 기어야 하는 무모한 고통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순환 향해 나아가야

 

누구나 변화는 두려워 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가 편하고 안정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혹독한 고통과 만나고 그때는 변화하고 싶어도 정말 변화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게 된다. 대학이 대학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 변화의 물결 위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사상과 지식기반이 나날이 변화하는데, 대학만 그대로 있다가는 시대상황의 날카로운 평가에 무너질 수 있다. 총장이 되고 나서 이 변화의 놀라운 속도를 절감하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 껍질을 깰 때의 아픔처럼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이 수반돼 멈칫거리게 된다. 그러나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고 창공을 날 수 없으므로 날마다 변화를 꿈꾸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삼라만상과 사물들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이 눈이 되고 얼음이 되는 모습이라든지 나무가 잎싹을 내고 여름 내 무성했다가 열매를 맺고 다시 죽은 듯이 맨살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모두가 살아나기 위한 변화의 모습일 것이다.

 

지리산 산자락에서 본 나무껍질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날마다 우리에게 변화의 필연성을 일깨워 주시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껍질들은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이 변화와 순환을 가져다준다.

 

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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