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와 스티브 잡스

아기 고양이가 태어났다. 백설 공주처럼, 한입 베어 먹은 사과를 남긴 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아직 어둠이 너울을 걷지 않은 이른 새벽녘이었다.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참인데 겨드랑이께서 뭔가 고물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뭘까? 눈을 떠보니 맙소사, 난리가 나 있었다. 온통 잠옷 자락이며 이불이 피 칠갑이었다. 욕실에서 우리 집 암코양이 ‘미오’가 기척도 없이 새끼를 낳아 침대 위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아기를 낳았으니 돌봐달라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상황 파악이 되긴 했는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우선 젖을 물려야지. 작고 여린 것을 수건으로 대충 닦아서 제 어미 품에 디밀어 넣었다. -출산한 어미 몸에서 새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신비로운 첫 젖을 먹거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젖을 물기 바랐다. 그러나 새끼는 좀처럼 젖을 물지 않았다. 어미 젖도 불어 있지 않았다. 새끼가 젖을 물지 못해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마음이 달았다. 조바심이 난 딸이 그 새벽에 열려 있는 동물병원을 찾아 나섰다. 온 동네를 다 뒤져 가까스로 동물병원을 찾아낸 딸은 헐레벌떡 초유를 사왔고, 서둘러 아기 고양이에게 먹이려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주사기가 닿는 느낌이 싫은지 아기는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기만 할 뿐 초유를 먹지 않았다. 그러자 어미가 갑자기 초유를 빨기 시작했다. 평소 우유도 먹지 않는 애가 초유를 빨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한다. 어미가 초유 몇 방울을 먹었을 뿐인데 진짜 ‘초유’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적이었다. 감동이 일었다. 감동은 큰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가까스로 젖을 먹기 시작한 것만으로 마음 속에서 큰 울림이 일어난 것이다.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날이 부옇게 밝아 있었다. 방송을 틀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작은 한 생명이 태어나던 즈음, 큰 생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세계 최초 PC 개발자로 IT계의 혁신을 이룬 그의 공적과 함께 불우했던 성장기가 언론을 탔다. 스티브는 축복받지 못한 부모의 결합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게 세상의 구비를 헤쳐왔을까. 얼마나 외로웠고, 얼마나 고달팠을까. 양부모 밑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좌절과 상실감은 아마도 그의 가슴깊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학교를 빼먹기 일수 였고 결국 대학도 입학을 한 후 1학기만 마치고 중단을 했다고 한다. 히피가 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고, 사과 농장에서 허드렛 일을 하기도 했고, 승려 코분치노 오토가와 만난 인연으로 선불교에 입문해서 인도 히말라야를 떠돌기도 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상상과 창의력 그리고 단순함은 그때 이미 그의 정신 세계 속에 구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에 매료됐었다. 핸드폰을 단지 통화의 기능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온갖 정보의 첨단 도구로 신분상승을 시킨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이팟의 단순 디자인은 참선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애플의 로고는 사과농장의 기억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명확한 비전과 천재적 영감 그리고 창조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꾼 스티브 잡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이쯤에서 종지부를 지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모든 생명에게 죽음은 필연이다. 4,500년 전에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은 왜 죽는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삶의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어,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고 결국은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삶의 종지부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라프를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스티브 잡스는 즉음이 인생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말을 남겼다. 삶은 유한 하므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당부와 함께.

 

아기 고양이가 어미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또 한 생명의 그라프가 시작된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라프의 우여곡절은 실은 가슴을 치게 하는 것이다. 신효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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