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 짝꿍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

“빨리 집에 좀 내려와 보세요” 아내의 호출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막내 녀석 책가방에서 담임선생님이 써준 알림장을 꺼내 보여 주며 읽어 보란다. “학교에서 종종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지도하고 있습니다만 가정에서도 신경을 써서 지도해 주세요” 아내는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땅이 꺼져라 한숨짓고 아들 녀석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있다. 아내는 당신이 어떻게 좀 해보란다. “뭘 어떻게 해, 아이들이 놀다보면 좀 그럴 수 도 있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줄 알았네” 하면서 아들 녀석을 데리고 서재로 올라왔다.

 

문득 언젠가 친분 있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의 교육방법가운데 하나가 자식이 잘못했을 때면 허리띠 매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날 나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와 함께 아빠도 네가 잘못을 할 때마다 허리벨트로 혼내주겠다고, 오늘은 처음이니까 용서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좋아하는 아이 괴롭히는 아들녀석

 

몇 날 후 이번에는 알림장에 “짝꿍 지우개를 연필로 30번을 콕콕 찔러놨습니다. 새 지우개를 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아내는 이번에도 역시 나를 불러댔고 어떻게 좀 하라고 야단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허리벨트를 만지작거렸다. 아이 시선이 가죽벨트에 머물자 얼굴에 잔뜩 겁을 먹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아빠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정말 안 그럴게요”하는 게 아닌가, 그러는 아들을 보니 슬며시 벨트에서 손을 뗄 수밖에….

 

아이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엘 갔다. 금세 다 잊어버리고 신이 나서 텀벙거리고 좋아한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너 왜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니? 오늘 네 짝꿍 지우개는 왜 연필로 30군데나 찔러놨어?” 하자 대답하는 말 “아빠 그 애가 얼마나 예쁜지나 알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애가 예쁘고 좋아서 그런 건데 그것도 모르고 짝꿍아이는 치사하게 울면서 선생님께 일러바쳤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참 우리 요셉이 마음이 많이 서운했겠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빠도 너만큼 어렸을 때 옆집에는 아주 정말 예쁜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 애가 얼마나 예쁘고 좋은지 매일 놀러갔었다는 이야기, 자꾸 그 애를 괴롭히고 울려놓고 와서 그 애네 할머니한테 혼나기도 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그 애네 집이 이사를 가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히고 못살게 군 게 바보 같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욱 친절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제법 진지하게 듣는다. 듣고 나서 이 녀석 하는 말 “아빠 친구가 그래도 내 짝꿍보다는 안 예쁠걸”. 녀석 반해도 단단히 반한 모양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이에게 “야 임마 네가 안 봐서 그렇지 아빠짝꿍이 얼마나 예쁜지나 알아? ” “그럼 엄마보다도 예뻐? 그런데 왜 결혼 안했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암튼 좋아하는 사람은 더 친절히 대해 주는 것이라는 것과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아빠의 가죽벨트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힘주어 일러주었다.

 

어린시절 추억 ‘새록새록’

 

기분 좋게 목욕하고 집에 와서 기분 좋게 저녁 먹고 나니 이내 아내는 숙제 시키느라 아이와 실랑이를 벌린다. 그때 불쑥 “엄마 그거 알아?” “뭘 알아? 숙제하다 말고 뭘 딴 짓 하려고 그래” 아뿔싸 이 녀석 기어코 일내고 말았다. “아빠 짝꿍이 엄마보다 백배천배 예쁘대 근데 괴롭혀서 결혼 못했대” 아예 하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보태서 하는 게 아니가,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말은 그렇게 하는데 표정은 영 아니다. 이어서 이상기류가 흐르고 아내의 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다. 짜식, 남자끼리 한 얘기를 함부로 말하다니, 그렇게 입이 가벼워서야….

 

반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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