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문학 잡지가 있었다. 이 잡지는 1914년 10월에 최남선이 창간한 문학 청년들을 상대로 한 우리 나라 최초의 문학 잡지로 다른 잡지와 차별되는 점은 다른 잡지보다 시대적으로 앞서 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만 게재하는 그 당시 잡지들의 틀을 벗어나 해외 문학을 소개하고 번역 문학의 기수가 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였으며,이 시대로 말하자면 잡지가 젊고 글로벌하며 독자에게 도전을 주던 문학 잡지였다.
청춘이란 말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한 그런 시절을 뜻하는 말’ 로 표현되어 있다.
취업이 인생목표가 된 이 시대 청춘
청춘은 이처럼 아름답고 파릇파릇하며 내면에 무한하게 잠재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에너지는 비전이나 열정과 연결되고 청년들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청춘이 자꾸 희미해지고 청춘이 불안하고 때로는 암울해서 견딜 수 없다. 얼마 전 밤 늦게 제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약간 취기가 있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청춘이 왜 이리 희미합니까? 이 참을 수 없는 희미함 때문에 저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꿈도 야망도 당찼던 제자였다. 대학원도 마치고 나름대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자였다.
60년대 70년대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비록 그 시대의 삶은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꿈을 가지고 미래에 도전하는 힘은 강하고 담대했다. 깊은 역경을 뚫고 성공하려는 청춘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또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청춘의 특성이 있다.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성 세대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그 시대에도 시대적 사명을 띠고 목숨과 청춘을 바쳤었다. 민주화는 수많은 청춘들의 피가 항쟁해 이루어낸 결실이다.
9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청춘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세기가 전문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은 ‘대학 입시’라는 표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것은 ‘생각하기’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보석 같은 결실들이 삭제되고 있기에 이 시대의 청춘은 늘 불안하고 허전하며 점점 희미하고 무의미해진다.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
대학 총장을 하면서 시달렸던 문제중 하나가 ‘취업률’에 관한 것이었다. 얼마나 잘 가르치는 대학인가? 보다 얼마나 취업을 잘 시켰는가? 에 더 평가의 무게를 둔다. 수많은 학생들이 취업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달리고 못 견뎌 하는 것을 직접 듣고 보았다.
취업에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춘은 취업에 매달려 있다. 60~70년대의 청춘보다 이 시대의 청춘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빠른 속도와 변화에 밀려 우울할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실재와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 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청춘은 이러한 벽을 뚫어야 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별하도록 한다. 취업이 인생의 목표나 목적이 되는 것에서 취업을 ‘미래의 자기 세계를 만드는 도구’로 주의 깊게 차별해야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청춘이 희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청춘들에게 이미 청춘을 의미있게 보낸 우리 모두가 희미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미래를 환할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
최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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