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풍습 어제와 오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추석을 지나 일주일 가까이까지도 30도를 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어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언제부터인가 매미소리가 사라지고 풀벌레 울음소리로 바뀌면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을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신호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오는 결혼식 청첩장이다.

 

물론 요즘은 결혼 인구도 줄어 결혼예식도 예전처럼 많지 않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몇 군데씩 예식장을 돌아야 한다는 이들의 비명을 자주 듣는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품앗이인지라 우리 집 큰일에 왔던 댁의 혼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고, 그런 관계가 아니라 해도 꼭 참석해야 경우도 있으니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나의 결혼식을 떠올려보니 어느 듯 40년이 가까워온다. 1970년대 초의 색이 바랜 당시 결혼식 사진들은 마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례를 맡아주셨던 스승님은 물론 그 속에 서 있는 이들 중 고인이 된 분들도 많고, 너무 젊은 모습이어서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들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식이 끝나고 식사대접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참석한 하객들에게 대부분 스테인리스 식기세트나 우산 등 기념품을 주고받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던 것이 갈비탕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으로 바뀌었다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뷔페로, 스테이크 류의 식사가 나오는 호텔 예식으로 이어져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혼례 풍습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기형의 모습으로 태어나 변화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직도 혼례 의식은 종교 예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오늘날 인도나 몽골,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양권 나라에서는 각기 민족의 문화 전통을 따르면서 적절한 변화를 주고 있는 데 비해 유럽 등 서방의 여러 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 나라들은 성당이나 교회 중심의 종교적인 질서 속에서 법률적 절차 이행에 의미를 두는 한편 파티와 춤을 즐기는 전통과 관습을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 북한이나 중공 등 과거의 공산국가에서는 통치자의 사진을 걸어놓고 결혼식을 올리는 등 강한 정치성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최근 중국에서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예식에다가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나친 혼수와 축의금으로 허례허식이 심각해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혼인 예식장도 하객이 넘치는 일은 없다. 대부분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지만 초청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예식장이 정신없이 붐비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영향력이나 집안의 세를 과시하듯, 남의 눈을 의식하여 경쟁을 하듯 유명 호텔 예식장에 수많은 하객을 초대하여 엄청난 비용을 낭비하는 그런 혼인예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이런 잘못된 관행의 똑같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꼭 알려야 할 가까운 이들만을 모시고 올리는 경건하면서도 의미있는 예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아쉽다거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되는 집이라면 혼인 잔치를 따로 벌여 여기에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 참여시켜 간단하게 국수 한 그릇 정도 대접하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은 어떨까.

 

야외 공원이나 공공 기관의 강당, 체육관, 마을회관 같은 시설을 이용하도록 권장하여 모두들 축하하고 즐길 수 있는 잔치, 그런 이벤트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혼인 예식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이나 사회지도층이 앞장서서 문제점 개선의 공감대를 넓혀가며 전파시키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박옥걸 아주대 명예교수 · 한국사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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