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베토벤의 웃음

베토벤은 평생 병원 문턱을 드나들며 질병들을 치료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청각장애는 물론 소화기능 부실, 장기간의 상습적인 음주로 인한 간 기능저하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유사 이래 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베토벤의 청각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존재하는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그가 웃는 모습은 고사하고 옅은 미소라도 짓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고뇌와 사색하는 그림을 통해 그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세들은 그가 행복하지 않았으며 유별난 음악가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올바르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베토벤의 음악 속에 노출된 유머와 위트는 셀 수 없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도 들린다. 베토벤이 하하하 소리 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그의 교향곡 8번 2악장에 잔뜩 깔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교향곡의 4개의 악장 중 인류의 우애와 신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가득한 피날레만 기억하고 있다면 베토벤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교향곡의 2악장은 하늘을 나는 듯한 경쾌함이 유머와 함께 그윽하고 3악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포근하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으로 들리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이제라도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dead mask)보다는 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초상화를 지혜로운 화가들이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베토벤이 인생을 즐기며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자연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띤 그런 모습으로. 지난 15년간 중국 대도시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다양한 중국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을 콘서트홀 안과 밖에서 대면하였다. 중국인들에 대한 필자의 좁은 견해는 그들의 감정표현은 무디고 때로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들과 교감이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늘 의심하며 연습에 임한다. 묵고 있는 호텔의 프런트 직원, 식당 종업원들은 정감 어린 최소한의 친절이 금기되어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아침인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나름대로 자신만만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의 내면적 표현을 파악하지 못하는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주 상하이에서 연주를 마친 후 예원이라는 오래된 공원을 찾았다. 그동안 경험한 연주자, 호텔 직원, 식당 종업원들의 사무적인 무표정은 부정적인 표시가 아님을 인지하게 되었다. 예원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나들이 온 중국인들은 모두가 엄청나게 밝고 환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직장에서의 감정적인 표현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고 그들의 내면을 섣불리 판단한 것은 심각한 오판이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로 화제를 바꿔본다. 숙련된 기술과 반복적인 훈련으로 다져진 연주자들의 퍼포먼스는 과연 청중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매 연주 지휘자로서 호기심을 갖는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연주자들이 내면으로 자신이 연주하는 곡을 진정으로 즐기며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청중들의 판단은 예민하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21세기는 오디오 시대를 넘어 디지털비디오의 최첨단 영역이다. 콘서트홀에 오지 않아도 유튜브 등으로 연주를 선택하여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청중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상태에서 연주를 접한다. 2020년 시즌은 베토벤의 탄신 250주년이 된다. 1770년에 태어난 베토벤의 귀중한 악보를 판권 없이도 연주하는 엄청난 행운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반면, 이제는 많이 듣고, 자세히 보고,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연주자들은 청중에게 본인들의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하고 스스로 음악에 푹 빠져 있는 행복한 표정을 전달하는 것이 섣부른 오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전 예일대 교수

[문화카페] 좋은 아빠, 나쁜 아빠, 이상한 아빠

최근 인터넷 세간의 주된 관심사인 한 각료 부부의 비리 의혹사건은 대한민국 아버지들로 하여금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아직은 혐의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다양한 편법의 스펙 쌓기의 방법들을 접하며 참으로 보통 부모들은 자신의 무능을 절감했을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최고의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위기 시대라는 말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설 자리를 점점 줄어든다. 밤낮없이 일해 자녀 뒷바라지를 하고, 부모를 모시고, 자신의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삼중고를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허망하다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들은 어떠했을까?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살아내는 일에 전념했다. 가정 내부의 일은 부인에게 맡기고 밖의 일에 전념하느라 자녀를 돌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가부장적 지위를 유지하며 자녀들에겐 무척 엄하고 절대적 존재였다. 정말 좋은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몇 년 전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던 두 후보자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SNS에 올린 글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지은 사건이 있었다. 후보자들의 외부 평판과 달리 한 후보자의 딸은 아버지에 대해 교육감 자격이 없는 형편없는 아버지임을 알리는 충격적인 양심선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후보자는 낙마하였다. 경쟁 후보자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글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 아이들의 글이 오늘도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평가는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내세울 만한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분이었다.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장남의 결정을 반대하셨고 예술보다는 출세에 유리한 전공을 택하라고 요구하는 분이셨다. 필자는 미대를 진학하고 일찍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고 나서 줄곧 화실을 차려 독립하면서 매우 힘든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그리된 것이라고 나에게 냉담하셨다. 내심 서운함과 불만도 많았지만 내 결정이 그르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회갑 때 시골 친구 분들에게 아들이 화가임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시는 시간을 경험할 때까지 아버지가 가지셨던 나에 대한 믿음과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했었다. 필자에겐 특목고를 나온 아들이 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전공과는 다른 진로를 모색하며 비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정한 기준과 원하는 것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용히 지켜보며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조언을 할 뿐이다. 아이 엄마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 뒤처질까 고민하는 눈치지만 나와 크게 다르진 않다. 그의 인생은 스스로 건강하게 서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처럼 다만 그의 결정을 믿고 조용히 기다려 줄 뿐이다. 무한경쟁의 세태를 보며 많은 부모는 조급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자신이 기획하려 든다. 피상적으로는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행한 일들이 나쁜 아빠, 이상한 아빠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우린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일까?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독서대전과 일상독서

바람결에 가을이 입혀졌다. 가을이 오면 책과 관련된 기관에서는 독서에 관한 각종 행사를 연다. 그중 대표적인 행사가 독서대전이다. 독서대전은 크게 대한민국독서대전과 지자체 별 독서대전으로 구분된다. 대한민국독서대전은 매년 공모를 통해 독서문화 진흥에 앞장서는 지자체 한 곳을 선정, 책 읽는 도시로 선포하고 해당 지자체와 함께 펼치는 전국 단위의 대규모 독서 관련 행사다. 2014년 군포에서 처음 시작된 대한민국독서대전은 인천, 강릉, 전주, 김해를 거쳐 올해는 청주에서 8월31일부터 9월2일까지 열렸으며 2020년에는 제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대한민국독서대전을 개최했거나 희망하는 지자체들은 독서문화 고양의 취지 아래 개별적인 독서대전을 운영해나가기도 하는데 전주독서대전, 김해독서대전 등이 그 예로 대부분 오는 시월에 개최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독서대전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연 책과 독서가 가진 근본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독서대전은 어떤 식으로 독서를 장려할까? 주최하는 지자체는 저마다 주제를 정하고 그 아래에서 전시, 강연, 체험, 공연, 학술, 북마켓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이번 청주독서대전의 주제는 책을 넘어였다. 행사장 중앙에서는 책을 넘어선 새로운 독서 문화 생태계로 랩, 낭송, 음악 등의 행사가 제시되고 또 비중 있게 펼쳐졌다. 책을 넘어 독서하는 삶을 지향했던 독서대전이었지만, 책을 만드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독서와 연관된 행사에 더 힘을 주는 것만 같아 책을 넘어가 아닌 책에 머물기를 바라게 된 부분도 있다. 눈과 마음이 책에 머물기에 적당한 데시벨의 연주가 흐르고 광장에는 책을 읽기에 마땅하고도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한다면 독자들이 책에 좀 더 온전히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 아쉬움은 전체 방문객 수가 10만 명이 넘었다는 주최 측의 발표에 얼마만큼은 녹아내렸다. 행사 기간이 3일이었고, 청주시 전체 인구가 84만 명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많은 분이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독서대전은 제 몫을 한 듯하다. 반면, 생활 속에서 독서운동을 조용히 펼쳐가는 사람들이 있다.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의 한국지부인 KBBY 회원들 몇몇은 일상의 공간에 그곳과 관련된 책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그 정보를 서로 나누곤 한다. 예를 들면, 단골 미용실에 가면서 미용실을 소재로 한 그림책의 목록과 그중 몇 권을 사서 선물로 주는 식이다. 미용실과 관련된 책이 뭐가 있을까? 아카시아 파마, 코끼리미용실, 미용실에 간 사자, 두근두근 처음 가는 미용실, 변신미용실, 머리하는 날, 마빡이면 어때, 줄무늬미용실, 머리 감는 책, 나는 뽀글머리 등 그 목록을 꿰자면 스무 권은 훌쩍 넘는다. 여성 월간지를 주로 비치하던 미용실 측에서는 자신들이 일하는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나간 이야기들이 새롭고 반갑기는 것이 당연할 터이다. 미용실에 온 손님들은 일상과 독서가 밀착된 순간이 책의 내용을 내면화시켜 나가는 데에 윤활유 역할을 함을 더불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0세에서 100세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지향하는 장르인 그림책으로서는 그 독자층을 넓혀가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더해진다. 미용실을 시작으로 한 이 프로젝트는 빵집, 은행, 병원 등으로 이어나간다고 하니 그 후기들도 기다리게 된다. 단체든 개인이든 저마다 독서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반갑다. 2017년 국민도서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40%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는 하나, 독서대전과 일상독서를 장려하는 이러한 노력들이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 기대하며 또 책을 만든다. 가을이다. 오승현글로연 편집장

[경기시론] 추석의 완성

고대로부터 추석(秋夕)은 단순한 가을 저녁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수확한 음식을 서로 나눠 먹는, 어쩌면 저승까지 모두 기꺼운 중추(中秋)였다. 익은 벼를 어루만져온 금빛 바람으로 각박한 세상살이에 다친 마음을 다독이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이런 추석의 핵심에는 가족이 있다. 가족은 천륜일진대 가족과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가족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사람 본래의 인정이라고 맹자(孟子)는 말하였다. 돌아가신 부모의 시신이 들짐승에게 뜯기는 걸 차마 보지 못하여 매장하기 시작한 것이 예(禮)의 첫 뜻이라고도 하였다. 맹자를 빌리자면 나이 든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 예가 아니듯 남의 소중한 자식인 며느리나 사위에게 가혹한 것도 예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으로 추석은 성립한다. 희미한 자전거 등에 의지해 먼 길을 마중 나온 할아버지의 여윈 팔뚝을, 오다가다 집어먹던 고소한 동태전을, 고향집에 어린 딸을 처음 데려가던 그 순간을 영원처럼 소환함으로써 추석은 계속된다. 해마다 이 땅 위 삼천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추석을 확인하러 가깝고 먼 길을 간다. 귀향 DNA가 어김없이 작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추석 풍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일인 가족이 늘어나고, 부모를 여읜 후 고향을 같이 상실한 경우도 많아졌다. 외국여행은 늘어나고 제례의 설득력은 점점 약해진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적 견해를 역시 빌려보자면, 추석은 농업혁명의 부차적 산물로 특정지역 호모 사피엔스가 가족공동체의 억압을 강화시키고자 고안한 문화적 관행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변화하는 추석 풍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추석을 궁리하게 한다. 행복한 추석은 어떤 것이며, 충돌하는 여러 가치관 속에서 다수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는 이미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추석의 핵심이 가족이라면, 이번 추석부터 가족의 범위를 확대시키면 어떨까.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면 귀향길 음주운전이 있을 수 없다. 부모 자식이 걸어다니는 도로에서 누가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겠는가. 지난 5년간 추석연휴에만 1만4천20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는데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를 한 가족으로 여긴다면 교통사고도 대폭 줄어들지 않겠는가. 추석의 의미를 되새기는 운전자라면 양보운전, 배려운전을 늘 실천할 것이다.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는 운전자에게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과속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돌아가신 부모의 시신이 들짐승에 뜯기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처지도 잘 헤아릴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고향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헤아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저급한 지역감정 따위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이번 추석 역시 넉넉할 터이나 어떤 이에게는 태풍이 할퀸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주저앉은 시간일 것이다. 비록 추석이 고대 한반도 농업혁명의 부차적 산물로서 시대변화에 따라 언젠가 종결될지 모를 관행적 절기에 불과할지라도, 천륜에 근거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명절이라는 점은 현재로서는 분명하다. 떠났으되 차마 잊히지 않는 죽은 자를 기리며 남은 자와 이승의 고마운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추석의 시작이었다면, 생각과 풍습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범위를 넓혀 어려운 이웃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알지 못하는 타인조차 더 배려하는, 내 몫의 송편을 함께 나누는, 더불어 넉넉한 추석, 상하좌우가 안전한 추석, 즉 새로운 추석으로 완성하면 어떨까 한다. 추석을 완성한 후 혹여 남는 시간에 부동산투자 성공요령 같은 책 대신, 좋은 시집을 골라 여럿이 함께 낭독해 본다면 한가위 보름달은 아마 더 낭만적이 되거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지겠지.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문화카페] 화령전과 정조대왕

수원화성행궁은 정조가 세웠으나 화령전은 순조가 세운 정조(正祖)의 영전이다.화령전은 1800년 6월28일 정조 서거 이후, 순조 원년 4월29일 완공하여 정조 어진을 봉안했다. 순조 4년에는 화령전에 응당 행해야 할 절목인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을 개정하여 수원 유수로 하여금 사맹삭(四孟朔)과 탄신제(誕辰祭), 납향제(臘享祭)를 정기 제향으로, 그리고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를 부정기제향으로 올리도록 한 곳이다. 진전(眞殿)은, 임금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궁궐 밖에는 종묘(宗廟)가 있었으며 궁 안에는 선원전(璿源殿)과 영희전(永禧殿)이 있었다. 영희전은 조선시대 여섯 임금의 어진(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을 봉안한 전각으로 해마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제향을 올렸으며, 1985년 보물 제817호로 지정된 창덕궁 선원전은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친히 삭망에 분향배례 하며 각 임금의 탄신일에는 다례(茶禮)를 지냈다. 이제는 조선시대 명절다례를 올리던 영희전도 없어지고 임금의 탄신다례를 올리던 선원전은 궁내에 소장된 주요 유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을 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원화성 화령전은 정조대왕이 모셔져 있다. 이 화령전은 순조 재위기간 34년 동안에 열 번의 행차와 친제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헌종 2회, 철종 3회, 고종 2회로 모두 17회의 행차와 함께 화령전에 친제(親祭)를 올린 기록이 있다. 세월이 흘러 218년이 지나도록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화령전은 1963년에 사적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순조가 세운 화령전은 일제 피압박 속에서도 6.25사변에도 원형이 크게 손실되지 않아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다하여 지난 8월29일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5호로 지정하였다. 올해는 정조대왕 탄신 267돌이 되는 해이다. 정조 서거 이후 순조가 재정한화령전응행절목에 제시했듯이, 순조가 선대왕의 탄신일에 선원전에 탄신다례를 올렸듯이 정조의 탄신일을 강조한 순조의 뜻을 기려 선원전 차례를 바탕으로 이번 음력 9월22일은 그냥 넘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해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이라 하고 이를 높여 생신(生辰)이라 하며 죽은 사람의 생신에 지내는 차례를 생신차례(生辰茶禮)라고 한다. 그러나 임금이나 성인이 난 날은 탄신(誕辰), 귀인(貴人)이 태어남을 높이어 탄생(誕生), 탄생한 날을 탄생일, 탄생일을 줄여서 탄일(誕日)이라고 하며 임금이나 성인(聖人)이 탄생하는 것을 탄강(誕降)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27대(代)의 왕이 있었으나 국조(國祖)로서의 태조에게만 탄강이라고 하고 그 외의 임금에게는 탄신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한 나라를 세운 왕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뜻으로 탄강이라 한 것 같다. 흔히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축하파티를 하지만 죽은 후에는 기일(忌日)을 중심으로 가족 친척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의 추모제를 지내게 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탄신일, 정월 초하루(正朝), 동지를 삼명일(三名日) 또는 삼명절(三名節)이라 하여 승하하신 임금의 탄신일을 명절로 간주하였다. 이제 국보로 지정된 수원화성화령전에 조선시대 이래 끊긴 의례를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하여 올리는 정조대왕 탄신다례로 정조의 효사상을 고착시키고 다도의 덕(德)을 실천하는 한국의 독창적 제례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또한,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그 기쁨을 널리 알리는 축제마당으로 이어져 살아생전의 잔치를 여는 것처럼 효와 경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축제잔치로 거듭나서 지역정체성 수립은 물론 세계 속에서 민족 문화의 자긍심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비상등

한 나라의 운전문화는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비상등은 위험을 알리기 위한 램프로서 좌우의 플래시 램프를 점등시켜 후속 차 또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 차 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이 그 기능이다. 미국에서 비상등을 켜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비상상황으로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할 때, 또는 기상악화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때를 제외하고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에서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워 두고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오는 다른 차의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반면 서울에서 경험한 비상등의 사용은 불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신한 느낌이다. 어둠이 깃든 강남의 좁은 1차선 일방통행 골목길에서 비상등을 켜고 역주행하는 무분별한 운전자들의 폭주는 미안함을 표시하기보다는 나의 불법행위는 비상등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라는 신념의 신호로 사용되는 것 같다. 분주한 대로에서 한 차선을 완전히 막고 서 있는 영업용택시는 다음 승객을 태울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런 이기적이며 무분별한 선택은 수많은 운전자들의 위험과 모험을 초래한다. 이제,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되는 이런 비상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반면, 비상등을 켜고 경각심을 상기시켜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이 위험 수준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특히, 필자가 속해 있는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는 실력을 최우선 하고 있는가? 연주력은 충분하지만, 학벌이나 커넥션이 부족해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연주자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직도 입시철에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입학이 결정되는 일은 없는가? 예체능계의 입시철에 벌어지는 불결한 행태들이 아직도 횡행하지 않는가? 재능있는 학생들이 고액의 개인교습비가 없어 갈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희망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액의 레슨비를 요구하는 선생들이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면 이제는 그들의 축적된 부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돌아가도록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런 고액레슨들이 혹시 불법의 관행으로 정착되어 버렸는지 비상등을 켜야 할 시기가 아닌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예술단체들이 원칙을 무시하고 편의를 우선한다면 과연 그곳에 참된 미래가 있을까? 예술인들은 매 무대에서 연주 또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전문직업인이다. 국가에서 지급되는 봉급을 받는 연주자들이 이런 무대에서의 철저한 평가를 피하거나 두려워한다면 비상등을 켜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원래의 본분을 다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특정단체에 쓸리는 국가 예산의 지원이 건전한 예술인과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단체를 골고루 육성하고 장려하는 본분에서 빗나가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필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에 많은 음악인이 이력서를 보내온다. 크고 작은 음악회에서 함께 연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선발한 음악인은 유학파 또는 서울의 유수대학 출신이 아니다. 소위, 지방대학 출신이다. 화려한 이력서에 준하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연주자들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이력서로 젊은 재능을 섣불리 판단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비상등을 밝게 켜야 한다. 우리 미래의 주인공인 고귀한 후배들이 원칙을 지키면 값진 보상이 당연히 돌아온다는 매우 간결한 논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향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어렵게 켠 비상등을 보고 그들을 돕고 또한 그 아픔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운전자와 우리 문화계의 같은 목표는 비상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인류의 풀·짚 문화

전성임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는 에덴동산 이야기와 같이 인간은 태초부터 몸을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해 나뭇잎과 식물의 줄기를 이용하면서 문명은 시작되었다. 과거 자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던 풀ㆍ짚 문화는 가을 들녘에 쌓인 볏짚, 밀짚, 억새 등의 풍성함 속에서나 그려지는 추억이 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들이나 산에서 풀을 거두어들이고 갈무리한 짚을 이용해서 지붕을 올리고 담을 치고, 생활도구를 만들고 가축의 사료나 퇴비는 물론 땔감으로도 이용되었던 자연친화적인 생활이 사라졌다. 벼농사가 많은 평야지대는 짚 일을 하고 산간지역은 나무와 풀을 이용하고, 늪이나 강가에서는 버들이나 골 풀로 물건을 만들어 쓰던 그 시절은 누구나 장인이었다. 만든 솜씨는 조금씩 달랐어도 자연물을 이용해서 묶고 매고 엮는 본능적인 기능만은 글로벌하게 소통된 풀ㆍ짚 문화이지만 소임을 다하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소비생활로 인해서 역사적인 자료나 공예 적인 가치를 인식하기도 전에 태워지고 버려진 문화이다. 우리가 옛것을 쉽게 잊고 있을 때 필요성과 실용성은 물론 예술성을 인정받는 바구니 세공법(Basketry)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계속됐다. 2016년 제9회 프랑스 파리 장애인 기능올림픽 바구니 만들기 종목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로 세계의 기능강국임을 인정받았어도 석연치 않은 마음은 떨칠 수가 없다. 프랑스는 전통문화를 학교교육으로 체계화하여 재료재배나 제작기능과 디자인교육이 이루어졌고 조상들이 사용해온 버들의 종류를 다양한 성질과 색상별로 개발해서 창작활동과 상품제작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은 전통바스켓의 보존과 교육발전을 위한 대규모의 BASKET WEAVER GUILD OF OKLAHOMA 정기행사에 전 지역의 공예인들이 참여한다. 2013년 엑스포(EXPO)센터(14회)를 찾았을 때는 커다란 홀에 300여 명이 넘는 참여인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 동안 숙식하면서 진행되는 대회장 한쪽에선 바스켓 전문서적과 지역별로 특색 있는 전통재료와 도구와 소품들을 전시 판매하듯이 역사는 짧아도 자연과 함께 했던 조상(인디언)의 문화적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생산과 소비를 즐기는 공동체 활동이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일찍 풀ㆍ짚 문화가 사라진 상태에서 유럽으로부터 영향받은 바스켓 트리를 섬유 미술 분야로 확장하여 40여 년 이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필리핀도 지역생산품인 아바카와 다양한 식물소재를 응용한 국제전시 MANILA FAME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마치 바나나 나무와 같은 열대식물인 아바카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 디자이너들에 의해 가구나 종이, 섬유, 생활용품, 인테리어용품 등으로 개발되었다. 이번 전시는 아바카 종이로 만든 현대적인 용기와 장식 벽지의 창조적인 멋에 감탄되듯이 세계인들의 관심은 환경을 의식한 자연친화적인 활동에 집중되었고 동서양의 생활문화는 하나로 소통되는 시대이다. 특별한 자원이 없는 우리도 민족의 정서를 드러낸 풀ㆍ짚 문화가 존재한다. 과거 대나무나 갈대, 칡이나 싸리, 버들로 생활용기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고 전국에서 생산된 왕골자리나 인초자리는 국가의 최고 진상품으로 상납된 기록도 있다. 오늘날 왕골로 자리를 매고 삼이나 모시풀로 옷감이나 떡, 차 등이 개발되었어도 식물의 특성과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확장되지 못한 채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각 지역에서 재배되는 모시나 삼, 왕골의 폭넓은 응용과 함께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자원에 관심을 두고 자연에 내재된 소소함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풀ㆍ짚 문화연구가 필요하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공공 뮤지엄 정책과 토건적 사유

세계적 명성을 가진 뮤지엄들은 대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소장품들로 관람객을 유치한다. 사실 MoMA에는 피카소의 명작들을, 루브르에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뮤지엄들은 관광차원을 넘어 소장품 기반의 고도화된 경영전략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문화상품 개발은 물론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보듯 다국적 기업을 모델로 한 경영활성화가 그것이다. 지난 6월 말 정부의 뮤지엄 진흥 중장기계획이 발표되었다. 뮤지엄을 국가의 중요한 SOC로 인식하고 공공성, 전문성,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제와 전략이 제시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현재 1천124개 관인 뮤지엄 수를 늘려 현재 4만5천 명인 1관당 담당 인구를 2023년까지 3만 9천 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OECD국가 중 독일은 1만 2천 명, 덴마크 2만 5천 명, 영국 3만 7천 명인 점을 감안하면 영국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전문 관장을 임명토록 하며 큐레이터 제도를 정비하며 평가인증제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ARㆍVR 등을 활용한 미래지향적 스마트 뮤지엄 환경조성과 운영방안 등도 제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지자체 뮤지엄을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ㆍ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개발 컨설팅이나 지원정책이 포함되어 있으며,뮤지엄 정책을 관리할 위원회를 설립하고 뮤지엄 간 국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안 등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과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상이다. 뮤지엄의 수를 늘려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를 확장코자 하는 것은 명분상 타당하지만, 뮤지엄을 일반적인 SOC처럼 단순한 시설 확충이나 그 수의 확대라는 토건적 차원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뮤지엄의 양적 확대보다는 뮤지엄의 내실과 전문성 확충 등 본령과 기본에 충실한 질적 성숙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공공 뮤지엄 정책은 대개 규모 있는 건축물 건립에 목표를 두고 이것이 완공되면 임무를 끝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그 건물들이 해외 사례처럼 예술성이 높아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지도 못한다. 이후 운영예산은 줄어들고 뮤지엄은 돈 먹는 하마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뮤지엄 경쟁력 요소 중 하나가 탁월한 소장품 유무인 점을 감안한다면, 지속적인 예산 투자가 기본이지만 초기 구입 소장품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성 역시 심각하다. 뮤지엄의 핵심인력인 학예사들의 경우, 거의 단기 계약직으로 긴 호흡의 수준 높은 전시기획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관장들 역시 외부공모를 통해 전문가 영입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선거 캠프의 인사들이 명예직으로 머물다 가거나 전문 관장이라 하더라고 짧은 계약기간 탓에 중장기 경영전략을 구현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를 가진다. 아무리 능력 있는 전문가라도 재간이 없다. 이렇듯 기반이 부실한데 뮤지엄 수를 늘리는 일이 능사일 수 없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한 종합적인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뮤지엄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면 두메산골이라도 찾아가는 것이 요즘 관람객의 기본 성향이다. 수준 낮은 콘텐츠로라도 숫자를 늘려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무지의 소산이다. 영국이 문화정책의 슬로건으로 삼은 모두에게 최고의 예술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뮤지엄 정책에 담겨 있는 뿌리 깊은 토건적 사유는 언제나 걷힐까? 본질에 충실히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호모 리덴스, 웃음의 시학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은 상처를 입고 항상 웃는 얼굴을 가진 조커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웃고 있는 것인가? 아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는 늘 웃고 싶을 때 웃고 있는가? 아니,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어야 할 때가 있다. 인간의 감정은 너무나 다양한데 조커처럼 항상 웃고 있다면 오히려 괴기스러울 것 같다. 더욱이 조커는 악당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폭력과 살인을 일삼으니 섬뜩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정한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의 일상적 삶이 불안의 그늘 속에서 흔들리면서 두려움은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웃음을 사지로 몰아내고 있다. 인간에게 웃음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만이 웃는 동물이라고 한다. 호모 리덴스(Homo Ridens)! 인간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이다. 그렇지만 과연 인간만이 웃을 수 있을까? 물론 인간 이외의 동물들도 웃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다면 웃는 것이 인간에게만 고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이 인간같이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의 기분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인간과 같이 웃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웃는 고양이를 상상할 수 있지만 웃는 고양이는 없다. 고양이는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는 웃는 고양이다. 웃는 고양이라니! 고양이야말로 웃음과 가장 어울리지 않다. 고양이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체셔 고양이는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져서 앨리스가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꼬리 끝에서 얼굴의 웃음까지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고양이의 웃는 얼굴은 몸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한참 남아있었다. 앨리스는 웃음 없는 고양이는 자주 봐왔지만 고양이 없는 웃음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놀라워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체셔 고양이처럼 몸이 먼저 사라지고 웃음이 남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먼저 사라지고 몸만 남는 형국이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한 얼굴들이 고양이 유령처럼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마치 체셔 고양이가 인간들의 웃음을 모두 거두어 간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웃을 수 있는 웃음은 무엇인가? 최소한 이성이 함께 작용하여 발생하는 웃음을 가리킬 것이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생각하면서 웃게 된다. 그러므로 웃음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에 속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웃음이 인간을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한다고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중세 수도원의 살인 사건의 원인이 웃음이었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현존하지 않지만 소실되었다고 추정되는 희극편이 살인범이다. 웃음은 어떻게 살인범이 되었는지는 중세 문화에서나 나올 법한 추리이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세상에서 웃음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남긴 웃음에 관한 책을 누군가 읽는다면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파급될 것이다. 그래서 당시 도서관에 유일하게 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에 치명적인 독을 발라놓아 그것을 읽기 위해 책장을 넘겼던 수사들을 모두 죽게 만들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희극에 대해 독립적인 글을 썼을지라도 호르헤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현존하는 시학에서 제시한 비극론을 통해 희극론에 대한 기본 내용을 추리해본다면, 희극의 정의와 구성 요소 및 특징 등에 중점을 두고 설명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 자체를 옹호하거나 칭송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썼을 가능성은 적다. 그런데 호르헤는 과연 그 책을 읽었을까?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의 맹목적이고 독단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이 웃는 동물이라고 썼던 책은 시학이 아니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이런 콘서트 홀을 지어주세요

연주자가 되려고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해 온 청년음악가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문화 하드웨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우울한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전문 예술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십 년 전 만들어진 패턴과 시스템을 모델로 적용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전용 콘서트홀의 부재다. 지자체 단체가 다목적 홀을 짓고 그곳에서 다양한 단체들이 연주와 공연을 하는 형태는 50년 전부터 이어온 행정적 획일화에서 비롯된 오류다. 연주단체에 맞는 전용 콘서트홀의 확보는 선진문화가 뿌리내리는데 근본이 된다. 어떤 콘서트 홀을 지어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면 세계 유수의 콘서트 홀에서 연습과 연주를 경험한 내 생각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첫째도 음향, 둘째도 음향, 셋째도 음향이다. 연주자 개인의 악기는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이다. 그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콘서트 홀 그리고 거기서 생성되는 음향이다. 음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대는 값비싼 보석으로 천장을 장식하고 바닥을 귀한 대리석으로 꾸며도 아무 쓸모가 없다. 좋은 음향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투자가 있을 때 이뤄진다. 지자체의 다목적연주시설을 지켜보며 알게 된 것은 음향보다 외적인 면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공연장 광장의 분수대, 화려한 넓은 로비, 그리고 객석과 객석의 편안한 공간 등이 음향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분배하는가에 따라 후대에 기록될 값진 유산 또는 그것을 헐고 다시 세우는 쓸모없는 콘서트 홀이 되는 핵심적인 잣대가 된다. 지금도 흠잡을 수 없는 유럽이나 미국의 오래된 홀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들의 콘서트홀은 밖에서 볼 때 화려하지 않다. 로비도 크지 않고 적절한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입구도 초라하다. 주차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음향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청중이 늦은 시간에 급히 저녁식사를 하고 정장을 차려입고 교통지옥을 뚫고 콘서트홀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어떤 음향이 이상적인가? 무대의 연주자들이 본인들이 연주하는 사운드를 가감 없이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음향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오케스트라들은 자체적으로 전용 콘서트홀을 갖고 있으며 그곳에서 매일 연습도 한다. 연주회와 같은 음향에서 연습하면 본인들의 사운드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쉽게 적응한다. 무대에서 연주자들이 듣는 그대로 청중석 전체에 전달되는 음향이 이상적인 음향이다.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습할 때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단원 전체에게 속삭이듯 얘기해도 무대 구석구석에 정교하게 전달될 뿐 아니라 100m 후방에 있는 3층 꼭대기 청중석 맨 뒤에도 그대로 전달되는 것에 놀란 적이 많다. 연주자들은 이런 음향에서 본인의 최고의 연주력을 내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2004년 6월 대전시향의 미국순회연주 첫 번째 장소인 시애틀의 베냐로야 홀의 연주를 잊지 못한다. 이 악단의 첫 해외 연주였다. 단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거야? 또는 그렇다면, 지금껏 우리가 들었던 우리의 사운드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가?라는 감격과 회한이 교차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감동으로 붉어진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베냐로야 홀은 마술이 있는 음향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정직한 음향을 갖춘 것이 전부였다.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음향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가지고 연주홀을 건축하는 것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한다. 그 연주 홀 로비가 멋졌어 또는 이토록 환상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을 우리에게 물려준 선대들에 감사한다 우리는 이 둘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지난 7월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진행된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제43차 회의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모두 9곳으로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종 38년(1543)에 백운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건립한 조선의 첫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으로 구성됐다. 이번 서원의 등재로 한국은 세계유산 14건, 인류무형문화유산 20건, 세계기록유산 16건 등 모두 50건을 소유한 문화강국의 국가이미지를 갖게 됐다. 경기도민으로서 율곡 이이를 모시는 파주의 자운서원이 함께 등재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세계유산 등재는 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공인받았다는 의미와 함께 문화관광 자원으로서 다양한 활용을 통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실례로 안동 하회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국내외 방문객이 급증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전통은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에 못지않게 당대 가치를 갖도록 재해석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때 비로소 우리 곁에서 존재감을 갖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강학과 제향의 공간인 서원이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었으면 한다. 경기 도내에는 율곡 이이를 모시는 파주의 자운서원을 비롯해 이천의 설봉서원, 양평의 운계서원 등 유서 깊은 서원과 공립 교육 기관이었던 향교가 잘 보존되었고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후원을 받아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과 전통문화체험, 선비문화 체험, 한옥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경기도에는 수원의 화성, 수원, 구리와 고양의 조선왕릉, 광주군의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원화성은 드라마 촬영지 및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으며 전통무예 시범, 달빛 기행, 수원화성문화제 등 다양한 전통문화 관련 행사를 통해 도시브랜드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구리와 고양의 조선왕릉 역시 잘 조성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예전보다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예술관련 행사를 통해 시민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또한,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남한산성은 주말마다 많은 등산객이 남한산성을 오르고 있고 조선시대의 병자호란의 역사를 다룬 영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처럼 도내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서원 및 향교 그리고 오래된 사찰 등은 경기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가치와 함께 지역의 자랑이요 새로운 문화산업이나 관광산업의 좋은 소재나 테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체관광객 위주의 관광은 이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소규모 자유여행객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관광 트렌드가 변하고 있으며 지역만이 가진 매력을 차분하게 즐기는 체류형 관광이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경기도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한 문화유산과 명소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과 향토 음식 등을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의 개발과 마케팅이 필요하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다. 서울, 경기, 인천이라는 거대 시장의 관광객들이 찾기 쉬운 접근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광 상품을 만들 때 이런 점에 주목하여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었으면 하며 도민 여러분 또한 경기도의 역사문화자원을 테마로 한 여행휴가를 계획하고 가족과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오셨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문화 소비시대의 박물관 축제

박물관(뮤지움ㆍMUSEUM)은 고고학 자료나 역사적 유물, 미술품, 학술자료 등을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여 사회교육에 기여될 목적으로 설립된 시설이다. 수집별로는 민속, 미술, 과학, 역사 등으로 구별되고 직능별로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사립박물관, 사립미술관, 대학박물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가에 등록된 문화기반시설은 사회교육에 이바지하는 공공기관으로 인정되어 전문 인력과 교육프로그램의 일부지원체계 아래 지방자치단체와 도서관, 공공기관과 같이 사회적 역할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5월18일은 ICOM국제 박물관협의회에서 정한 세계 박물관의 날이다. 한국박물관협회는 제13회 국제학술대회와 함께 5월16일부터 19일까지 박물관 주간에 전국 박물관ㆍ미술관의 관람료를 무료로 하거나 할인했다. 문화중심으로서의 박물관과 전통과 미래를 주제로 한 20여 개 연구단체의 학술발표와 교육적 사회적 역할에 의미를 둔 각 박물관의 소개와 문화상품 바자회, 공연, 체험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로 이루어져 박람회장 같은 축제로 진행됐다. 과거 상류층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었던 박물관의 컬렉션이 1851년 영국 런던에서 국제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세계인들에게 처음 알려지게 된 당시의 박람회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만의 축제였다. 산업시대와 IT 시대에 들어 세계 각국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1993년 대전엑스포와 2012년 여수엑스포로 국가의 위상을 널리 알린 박람회는 건축과 산업, 과학, 미술공예와 공연, 음식문화 등을 응집해 놓은 대규모 축제의 장이 되어 주최국의 발전상과 단체의 힘을 드러내게 된다. 근래 들어 지자체의 특성을 알리는 크고 작은 문화제나 지역축제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박물관역사 100년을 훌쩍 넘기면서 박물관도 국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지역마다 독창적인 활동은 물론 뮤지움데이를 정한 경기지역은 공립 박물관을 중심으로 박물관공동체 행사를 주관했고, 어느 박물관 운영자는 2005년 각 기관의 후원을 받아 박물관ㆍ미술관 박람회를 개최했지만, 예산이나 홍보 부족은 물론 시기적으로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제는 박물관ㆍ미술관의 역사와 함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해 온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제된 박물관의 역할을 벗어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하다. 처음 박람회가 계급사회로부터 출발한 컬렉션을 우선으로 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수집과 직능별로 풍부한 요소를 갖추어 놓는 박물관의 특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축제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가야 한다. 소비가 미덕인 문화소비시대다. 문화 참여는 메슬로우의 인간욕구 5단계 기부문화와 비슷해서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어야 사회적 욕구를 경험하고,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갖게 된다고 했듯이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하위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것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나타난 소비문화는 과거 계급적이었던 문화적 개념이 대중화되었고 대중의 삶과 연계된 문화 창조가 대세를 이루게 되면서 대부분 소비문화는 영화, 스포츠, 오락, 여행 등에 치우쳐 있다. 소박하고 검소한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다니며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성숙한 문화소비시대다. 다양한 콘텐츠가 담긴 1천여 개의 박물관공동체 축제를 기대해 본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오늘 우리 뮤지엄을 해체(?) 한다

한국의 박물관ㆍ미술관 제도는 근대 일본으로부터 이식되어 현재까지 그 근간을 유지하고 있다. 양자 모두 영어로는 뮤지엄(Museum)으로 표기하지만, 두 영역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그 조직문화 역시 사뭇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실정은 법적 근거인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명칭에서도 보인다. 뮤지엄진흥법이라 해도 될 것을 양자를 굳이 구분하고 있다. 두 영역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소장품의 내용과 제작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이것은 편의상의 구분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먼 과거에서 조망한다면 근대와 현대가 무슨 차이가 있을 수 있는가? 뮤지엄은 본질적으로 리좀(Rhizome)적 속성을 가진다. 리좀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철학의 중심개념 중 하나인데, 뿌리나 줄기가 뚜렷한 수목과 달리 줄기와 뿌리의 구분이나 시작과 끝도 분간할 수 없는 속성의 넝쿨뿌리 식물로 서로 비논리적인 연계를 이루는 점에서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의 상관성을 시사하는 바 크다. 하지만, 우리는 박물관 영역과 미술관 영역이 구분되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기도 한다. 다행히 경기도는 박물관협회가 미술관까지 포용하여 상부상조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양자가 서로 협력하는 일의 핵심은 단순히 서로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상호 간 공동의 전시 콘텐츠를 생산하며 각자의 영역에 머무는 사고의 틀을 융합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외의 경우 이러한 상호융합적 사고는 일상화되어 있다. 박물관 유물과 현대미술이 함께 대화하고 현대미술품 전시에 박물관의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문화를 다시 본다전(2018.12.14~2019.3.3)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2019.4.29~2019.6.16)과 같이 박물관의 유물과 현대미술의 접목하는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전자는 신라의 정신을 현대미술로 해석하고 후자는 유물과 현대미술을 접목시켜 전혀 이질적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도 작년 구조의 건축전에 이어 올해에도 셩:판타스틱 시티전(7.23~11.3)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는 수원의 역사 문화적 기반인 화성과 정조의 정신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하려는 전시이다. 이는 잠자고 있는 박물관의 유물과 유적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통은 리좀적 사유를 가진 두 영역의 학예사들 간 공동연구를 축적한다면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뿐 아니라 뮤지엄과 5G 시대의 일상을 융합하는 새로운 전시콘텐츠의 생산은 오늘 통섭과 융ㆍ복합의 시대에 뮤지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10년 전 시인 마리네티는 「미래파 선언문」에서 박물관과 도서관을 파괴하라.라는 극단적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는 서구 근대문화의 정수인 뮤지엄의 한계와 폐해를 해체하고 새로운 미래의 가치를 찾고자 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시대 뮤지엄의 해체를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메두사의 공포와 야만의 얼굴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련의 무차별적인 폭행이나 잔혹한 살인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심지어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또는 부모와 같이 너무나 가깝고 친숙한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다는 사실이 공포를 가중시킨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존재가 할 수 있는 야만의 끝은 어디인가? 프랑스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은 1816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함선을 타고 프랑스를 떠났다가 배가 암초에 걸려 뗏목에서 버티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탑승객 400명 중에서 6대의 구명정을 탈 수 있었던 권력자나 고위층 사람 등은 목숨을 건졌으나, 나머지 149명은 임시로 뗏목을 만들어 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13일 동안 뗏목에만 의지하여 바다를 떠다니는 동안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살해하고, 목마름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인육을 먹는 핏빛 광기의 시간을 보내다 일부만 구조됐다.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존엄한 존재도 아니고 단지 살기 위해 타인의 살을 뜯어 먹고 피를 마시는 굶주린 짐승에 불과하다.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끔찍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 프랑스 함선의 이름은 하필이면 메두사이다. 메두사의 얼굴은 한번 쳐다만 봐도 돌이 되어버린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다. 메두사호의 파선으로 생겨난 조각들로 만들어진 불길한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49명 중 불과 15명뿐이었다. 그러나 메두사의 뗏목에서 벌어진 잔혹하고 끔찍한 상황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뗏목이라는 비좁은 공간에 머무르기 위해 아비규환에 빠지고 생존하기 위한 동물적인 본능이 극대화되어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다. 오히려 누구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무차별적인 폭행을 저지르고 이유 없이 잔혹하게 살인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겐 훨씬 더 큰 공포의 대상이다. 인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불안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인간의 야만성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인간이 일차적으로 동물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 정의하면서 다른 동물과의 종차를 이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성은 본성적으로 강하지 않다. 이성은 원래 얇은 유리와 같이 아주 쉽게 깨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성을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힘들게 단련시키지 않는다면 이성은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묵직한 청동 방패와 갑옷이 되기보다는 타자를 해치는 날카로운 청동 칼과 창이 될 것이다. 인간의 동물성은 우리가 너무나 연약하고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거져 나온다. 인간은 언제든지 실수를 하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인간은 신도 천사도 아니며, 또 짐승도 악마도 아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천사처럼 될 수도 있고 짐승처럼 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에 희망을 두어야 할 것인가? 한나 아렌트는 여전히 사유에 희망을 품는다. 인류는 21세기 세계 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과 만행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사유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서 확립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 벌릴 참혹한 결과를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다시 한 번 목도하게 될 것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야외음악회 그리고 아, 내 악기!

매년 여름이면 미국이나 유럽의 휴양지는 크고 작은 음악축제로 붐빈다. 전통을 자랑하는 다양한 축제는 음악애호가들을 들뜨게 한다. 연주자들은 본인들이 시즌 내내 속해 있던 도시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과 영롱한 별들과 머리를 가깝게 하고 짙은 숲 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벗 삼아 연주를 하는 낭만을 즐긴다. 이런 축제는 청중들에게도 큰 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 또는 연인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보듬으며 야외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와인과 치즈를 곁들이며 음악을 즐긴다.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긴장과 반복적인 도시의 일상생활과 콘크리트 군단에서 탈출하여 자연과 함께 듣는 음악은 분명코 우리의 삶에 자양분이 되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야외 여름축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콘서트 홀이 일반적인 연주 홀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대형 텐트로 만들어져 있는 축제이다. 무대와 분장실 등 시설이 완벽하고 텐트 밖의 청중들은 무대를 직접 볼 수 없지만, 대형화면과 스피커로 잔디밭에 편히 앉거나 누워 텐트 안의 음악의 향연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연주자나 청중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텐트 위를 거니는 빗소리는 연주되는 음악에 방해되지 않고 지극히 낭만적인 또 다른 악기 소리로 들린다. 두 번째, 무대는 완벽하지만, 청중들은 노출된 야외 잔디에서 감상하는 형태이다. 무대는 일회용의 조립식이 아닌 영구적이다. 무대는 천장을 갖추고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벽도 갖추고 있어서 바람에 악보가 날아가는 등 연주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는 이런 야외음악당(Amphitheater-원형극장이라고도 부른다)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런 시설들은 연주 당일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던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는 미국 독립기념일 연주를 준비하여 티켓은 매진되었지만, 연주 당일 내린 폭우로 연주가 취소되어 주최 측은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대비하는 손해보험도 생겼다. 야외음악회가 우리 주변에도 많아지고 있다. 내가 지휘하는 심포니 송도 야외음악회 요청을 많이 받는다. 연주자들이 청중과 접하는 다양한 형태의 콘서트를 마다할 리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모한 야외음악회가 연주의 질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생명처럼 아끼는 악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대부분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있는 실내에서 연주하도록 제작됐다. 전통적으로 야외에서 빈번한 연주를 하는 군악대나 마칭밴드의 금관 악기도 오랜 시간 동안 야외에 노출되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특히 바닷가 해변은 최악이다. 바람에 날아오는 염분이 악기에 흡수되면 그 난감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악기들과 목관 악기들은 섬세한 나무로 만들어져 수백 년에서 수십 년 동안 세밀한 관리를 받아왔다. 그런 악기들이 햇빛에 잠시라도 접촉이 되거나 가랑비라도 맞기 때문에 입는 상처는 크다. 간혹, 야외무대를 멋지게 만들었다고 초청하여 현장에 가보게 되면 천장이나 방풍벽도 없이 조명만 설치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면 스쳐가는 바람에도 악보는 날리고 단원들은 한 곡이 끝나면 악기를 감싸고 우는 아기 달래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상황보다는 오히려 소란한 지하철역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연주자들은 야외음악회는 본인의 주악기가 아닌 보조악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여러 척도 중에 이제는 수준 높은 콘서트 홀을 건설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질 좋은 야외음악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신중히 고려해 적절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것을 알리고 싶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하지(夏至)를 앞둔 단상

단상 하나 얼마 전 기차를 타고 남도를 다녀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노랗게 물든 황금빛 보리밭을 보았다. 한편에는 줄을 맞춰 모내기를 끝낸 초록빛 논도 있어 양쪽의 풍경을 번갈아 보며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양력으로 6월6일이 보리를 베기를 마치고 모내기를 하는 망종(芒種)이었고 7일은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인 단오(端午)로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농경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단오는 큰 명절로 여겨져 여러 가지 민속이 행해지고 있다. 단오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약으로 쓸 쑥과 익모초 뜯기, 절기음식인 수리취떡 만들기 등과 함께 그네타기, 활쏘기, 씨름 같은 민속놀이 등이 행해졌다. 남원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던 이팔청춘의 선남선녀인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한 것도 단오 즈음이고, 전국의 명궁들이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천하의 소리꾼들이 모여 판소리 실력을 겨루는 유서 깊은 전주대사습놀이가 열리는 시기도 바로 단오 때다. 또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에서는 풍요와 번영을 비는 단오 굿이 며칠간 펼쳐지며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긴다. 이처럼 봄 농사와 모내기를 전후해서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마을의 단합과 풍요, 풍어를 기원하였으니 바로 이어지는 하지(夏至) 무렵까지 보리타작, 모내기 마무리, 하지감자 캐기, 메밀 파종 등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농번기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농경사회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전해진다. 단상 둘 필자는 며칠 전 우연하게 경기도 고양시에서 토종볍씨로 키운 모를 심는 행사를 마친 시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기와지 볍씨가 발견된 고양지역에서 이제는 잊힌 사라져가는 우리의 토종볍씨를 논에 모내기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의미 있는 행사라 생각했다. 비록 토종볍씨의 쌀 생산량이 저조하고 상품화하기 어려우며 우리의 입맛에 맞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식물 다양성과 종자주권의 보호 그리고 전통에 담긴 의미를 오늘에 다시 되새기고자 추진한 행사라고 하기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올가을 추수를 하면 토종볍씨로 키운 쌀로 막걸리를 함께 빚어 한판 잔치를 만들어 보자고 하였다. 오늘날 도시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지나며 농경사회에서 중요시하던 절기와 민속의 많은 부분이 전승이 단절되고 있다. 또한,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기계농업의 보급 등 농촌의 환경도 많이 변화했다. 그러나 이른 더위와 함께 시작된 차창 밖의 여름날의 풍경은 단지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풍요로운 수확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려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을 흘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장마가 시작되거나 가뭄이 오고, 태풍이 불 때마다 근심을 하며 애태우는 농부의 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살아왔다. 하지를 앞두고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 하나하나에 담긴 농부들과 생산자들의 땀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인문학과 어린이 박물관

쉽고 편리한 기계적 사물에 익숙해진 생활의 여유는 소비생활에 주목되고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누리게 된 첨단 기술의 발달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정작 문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은 특급열차를 탄 것 같이 분주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삶의 질은 저하되고 인성을 잃은 사회적 혼란은 야기 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문화향유와 사회적 안녕을 기대하면서 문화기반시설의 체험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지향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지원체계를 마련하였다. 학교 밖 교육에서 기대되는 성장기 학생들의 인문학적 교육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탐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지속하여온 온고지신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인문학에서의 역사는 시간의 축으로 판단된 집단적 인류변화에 대한 기록이나 유적, 유물과 같은 문화유산을 통해서 객관적인 우리의 자화상을 찾게 된다. 예술은 삶의 이상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창조활동으로 미술이나, 음악, 무용, 연극 등으로 표현되는 감성을 통해서 자신을 경험하게 하고 자아 성숙의 기회를 얻게 한다. 문학은 세상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주제가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면서 삶의 여유를 만들고, 인간의 경험을 다룬 투명하고 체계적인 철학의 진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아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이나 꿈의 학교와 같은 박물관에서의 체험교육프로그램은 주 5일제 학교 수업과 자유학기제 실시가 확대된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사고를 넓혀주기 위해 전액무료로 진행하면서 박물관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가는 성찰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물관소장품에 존재된 인간의 역사와 문학, 예술,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인간중심의 사회를 희망하는 길 위에 인문학 프로그램은 2013년부터 6년 동안 전국의 학생 약 80만 명 정도가 참여했고 올해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꿈의 학교는 매주 토요일마다 2~3시간씩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의 소수 인원에게 5월부터 10월까지 연속 진행하는 학습과정으로 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학교 밖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그리고 소공동체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교통의 발달은 국가 간의 빈번한 교류를 이루었고 정보통신의 증가와 함께 개체문화의 변질이 심화하면서 지역이나 민족, 국가 간의 색채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움을 창조해내기 위한 박물관의 교육은 소장품에 존재된 다양한 정보와 자료들로 구성된 전시환경에 따라 특별한 경험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는 학교 밖 교육의 장이다. 박물관의 역사 속에 담긴 과거의 산물들과 현대생활 속으로 잊혀가는 삶의 문화가 현재의 사고로 재조명되어 미래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명작동화 어린왕자에서와 같이 아름다운 꽃동산을 보고 즐기는 것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 경험하고 보살펴가듯이 어린이들은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박물관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장기 어린이들로부터 현재와 미래 우리 사회의 안녕과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여자도 인간이외다

르네상스기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미술사 대가로 평가받는 여성작가들은 왜 별로 없는 것일까?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창의력이나 예술분야의 재주가 미흡했던 탓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1970년대 들어 린다 노클린(Linda Noclin) 등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이 미술교육과 같은 제도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로부터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성화가들에게 역사화의 근간인 누드화를 그리는 것은 금지되었고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여겨진 풍경화나 정물화만을 그리도록 요구받았다. 요즘은 어떤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인물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큐레이터들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한다. 각 분야에 여성들의 역량이 남성들의 그것을 능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뿌리깊은 남성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제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8일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탄생일이었다. 나혜석기념사업회와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추진위원회에서는 올해도 학술행사와 기념 공연 등을 통해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혜석은 수원출신으로 개화한 가정에서 성장하며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한 초기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라 세계 여행을 하며 선진 문물을 체득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이고 여성운동가이며 페미니스트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다. 그녀는 일제 식민지와 가부장적 사회라는 이중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여성이기 이전에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했고, 구체적 삶을 통해 기성관념의 남루를 벗어버리고자 한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간 선각자였다. 뿐만 아니라 춘원 이광수보다도 먼저 자전적 단편소설인 경희(1918)를 발표한 현대문학가이며, 군국주의 일본에 저항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정부가 정한 이달의 문화인물(2000년 2월)로 선정되기 전까지 그녀의 존재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못했다. 신여성으로서 자유연애와 이혼이란 그녀의 사생활을 들어 좋지 않게 평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물며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와 관련된 많은 학술행사에서 그의 친일행적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지역마다 지역출신의 유명 미술인의 이름을 빌려 그 예술가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지는 미술상들을 가지고 있다. 양구의 박수근 미술상, 대구의 이인성 미술상, 용인의 백남준미술상 등등. 수원은 나혜석이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상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술상 제정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전문가 간담회에서 한 전문가는 말했다. 나혜석의 정신은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되고 한국을 넘어 국제적 수준의 상으로 발전시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가 아직도 그녀의 예술과 앞서갔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근대적 사유의 틀 속에 꼭꼭 가두어 역사의 사각지대에 그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호모 페스티부스,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최근 대학 축제들이 많이 시들해진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축제들이 만들어졌지만 예전에 대학 축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과거의 축제는 눈부시게 빛나는 5월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대학생활의 화려한 꽃이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축제 시즌을 놓친 적이 많았다. 대학 축제를 실감할 수 있는 행사들이 매우 줄어들었고 축제다운 축제를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축제가 돌아오면 오후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벚꽃 내리는 봄날에 야외 수업하자는 학생들에게 끌려나가 강의를 해본 적이 있는데, 말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 버려 당황했던 적도 있다. 요즘은 대학 축제의 라인업을 올리며 각 대학에 어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지에 관심이 쏠려있는 경우도 보인다. 대학 축제에 찾아오는 연예인들은 축하해주는 손님일 뿐이며, 대학 축제는 대학생이 주체이다. 축제는 원래 종교 제의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제의로부터 신화와 예술 및 종교 등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축제는 인간의 삶의 고유한 특징과 보편적 원형을 보여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축제를 하는 존재이다.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는 현대 인간의 주요 특징들을 보여준다. 축제의 어원은 일차적으로 즐거움과 밀접하다. 페스티부스(festivus)는 라틴어 페스툼(festum) 또는 페스투스(festus)에서 유래되며 즐거운, 기쁜, 유쾌한 등의 의미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의 축제에서 즐거움은 이중적이다. 신들은 인간을, 인간은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축제를 한다. 우선 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축제의 주요 원리는 경쟁이다. 니체가 그리스문화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특징으로 제시하는 것도 경쟁(agon)이다. 축제에서 경쟁을 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신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은 인간들이 경쟁을 통해 탁월성을 발휘하는 것이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종교제의에서 춤이나 시가 및 드라마 등의 경연대회를 열고, 전차경기, 레슬링, 달리기, 권투 등의 각종 운동 경기를 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들의 즐거움을 위한 축제의 원리는 위로이다. 플라톤은 축제의 기원을 인간의 비참한 삶에 대한 신들의 위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들은 인간들이 본성적으로 고통 받도록 태어난 것을 불쌍히 여겨 인간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삶의 영양분을 얻고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게 하려고 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축제는 단지 먹고 마시고 놀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활력을 찾고 삶을 재정립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축제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관련하여 일시적인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욕망을 소비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는 현장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 축제는 최소한 축제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대학 정신을 보여주는 학술제는 반드시 개최되어야 한다. 교수가 아닌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학문적 경연을 벌이는 제전이 활성화되도록 전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축제를 직접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각종 문화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대학 축제 시즌에 단순한 오락기구들이나 먹거리를 파는 푸드 트럭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은 대학을 시장으로 변질시킬 뿐이다. 그렇지만 축제 현장에 선후배가 함께 자리하여 대화하며 즐기기 위한 장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축제는 만남과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갈등과 투쟁을 지양하고 상호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대학 축제에서도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어 대화를 통해 서로 치유하고 대학생으로서의 연대의식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장영란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칭송받지 못한 진정한 영웅들

잘 정리된 잔디축구장에서 수십 대가 넘는 중계카메라의 초점이 되어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가 있다. 더불어, 명품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사이드라인에서 특유의 캐릭터를 마음껏 드러내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감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레모니도 선수들의 득점장면 이상으로 인상적이다. 반면, 카메라 한 대 없는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발목 보호를 위해 테이핑을 하거나 부상선수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땀 흘리는 재활 트레이너들이 있다. 예수를 따랐던 여인 중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가 있었다. 예수가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의 강론을 들으며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까이 있는 예수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듣고 싶지만,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향해 팔을 걷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를 희생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라이언 킹을 관람했다. 무대의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양쪽의 작은 발코니에서 간헐적으로 북을 치는 두 명의 연주자들을 발견하고 과연 이들이 어떤 자세로 연주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기로 했다. 무대 위의 화려한 배우들에 비해 아무런 조명이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들의 연주는 한순간도 온몸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페라 극장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출연자들이 있다. 주역 및 조역가수들, 발레단, 그리고 합창단 등이 있다. 또한, 무대 위는 아니지만, pit-피트 (무대 앞에 위치하고 있는 큰 구덩이)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청중들의 시야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없다면 오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교향악단 연주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하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무대 뒤의 스태프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들은 연주자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 콘서트홀에 나타나 준비를 하고 연주를 마친 후에도 마무리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오케스트라에는 많은 악기가 다양한 기능으로 연주에 참여한다. 통상적으로 8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감동을 주는 연주라는 목표를 지니고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역할은 현저하게 다르다. 바이올린은 연주 초입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쉬지 않고 꽉 채워진 악보의 많은 음표를 연주한다. 반면, 타악기 또는 금관악기 들은 연주하는 음표보다 쉼표가 더 많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악보는 검은색보다 흰색의 공간이 눈에 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타악기들은 앞의 3개 악장에서는 아무런 음표도 없고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연주한다.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서도 트롬본들은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만 연주하도록 작곡되었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바이올린은 한 음표당 백 원이면 타악기는 십만 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세계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 중 또렷이 기억나는 연주자가 있다. 한 시간 길이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단지 다섯 개 정도의 음표를 연주하는 독일의 심벌즈 연주자였다. 실제 소리를 내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동료들이 연주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어떤 연주자보다 무대에서 흐르는 음악을 깊이 느끼며 즐기는 것을 나를 비롯한 모든 청중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Unsung Hero 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뒷전에서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꺼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아가 그들의 스타 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 혹시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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