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을 가진 뮤지엄들은 대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소장품들로 관람객을 유치한다. 사실 MoMA에는 피카소의 명작들을, 루브르에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뮤지엄들은 관광차원을 넘어 소장품 기반의 고도화된 경영전략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문화상품 개발은 물론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보듯 다국적 기업을 모델로 한 경영활성화가 그것이다.
지난 6월 말 정부의 뮤지엄 진흥 중장기계획이 발표되었다. 뮤지엄을 국가의 중요한 SOC로 인식하고 공공성, 전문성,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제와 전략이 제시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현재 1천124개 관인 뮤지엄 수를 늘려 현재 4만5천 명인 1관당 담당 인구를 2023년까지 3만 9천 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OECD국가 중 독일은 1만 2천 명, 덴마크 2만 5천 명, 영국 3만 7천 명인 점을 감안하면 영국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전문 관장을 임명토록 하며 큐레이터 제도를 정비하며 평가인증제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ARㆍVR 등을 활용한 미래지향적 스마트 뮤지엄 환경조성과 운영방안 등도 제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지자체 뮤지엄을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ㆍ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개발 컨설팅이나 지원정책이 포함되어 있으며,뮤지엄 정책을 관리할 위원회를 설립하고 뮤지엄 간 국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안 등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과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상이다. 뮤지엄의 수를 늘려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를 확장코자 하는 것은 명분상 타당하지만, 뮤지엄을 일반적인 SOC처럼 단순한 시설 확충이나 그 수의 확대라는 토건적 차원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뮤지엄의 양적 확대보다는 뮤지엄의 내실과 전문성 확충 등 본령과 기본에 충실한 질적 성숙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공공 뮤지엄 정책은 대개 규모 있는 건축물 건립에 목표를 두고 이것이 완공되면 임무를 끝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그 건물들이 해외 사례처럼 예술성이 높아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지도 못한다. 이후 운영예산은 줄어들고 뮤지엄은 ‘돈 먹는 하마’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뮤지엄 경쟁력 요소 중 하나가 탁월한 소장품 유무인 점을 감안한다면, 지속적인 예산 투자가 기본이지만 초기 구입 소장품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성 역시 심각하다. 뮤지엄의 핵심인력인 학예사들의 경우, 거의 단기 계약직으로 긴 호흡의 수준 높은 전시기획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관장들 역시 외부공모를 통해 전문가 영입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선거 캠프의 인사들이 명예직으로 머물다 가거나 전문 관장이라 하더라고 짧은 계약기간 탓에 중장기 경영전략을 구현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를 가진다. 아무리 능력 있는 전문가라도 재간이 없다.
이렇듯 기반이 부실한데 뮤지엄 수를 늘리는 일이 능사일 수 없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한 종합적인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뮤지엄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면 두메산골이라도 찾아가는 것이 요즘 관람객의 기본 성향이다. 수준 낮은 콘텐츠로라도 숫자를 늘려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무지의 소산이다. 영국이 문화정책의 슬로건으로 삼은 ‘모두에게 최고의 예술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뮤지엄 정책에 담겨 있는 뿌리 깊은 토건적 사유는 언제나 걷힐까? 본질에 충실히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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