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동지에 생각하는 배려와 나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을 앞두고 세시행사인 동지(冬至)와 기독교의 대표 축일인 크리스마스가 이어진다. 동북아 농경문화의 세시절인 동지와 서양의 축일인 크리스마스는 담고 있는 내용이나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위치해 있고 달을 중심으로 한 음력(陰曆)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지는 정월의 입춘에서 시작한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낮이 가장 짧고 밤은 제일 길다. 동지를 지나며 다시 낮의 길이가 길어지며 태양이 부활한다 하여 동지를 아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 부를 정도로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삼았다. 동지에는 다양한 풍속이 있었는바, 궁중에서는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고 신하들에게 새해 달력을 나눠주는 풍속이 있었으며 만조백관이 모여 임금께 동지 인사를 나누고 연회를 베푸는 동지조하(冬至朝賀) 의례와 중국에 동지사(冬至使)를 보내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풍속이었다.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려 조상님들께 천신(薦新)한 다음 마루, 광, 헛간, 장독대, 우물 등에 한 그릇씩 놓으며 팥죽을 그릇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대문, 벽에 뿌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족들이 먹었다. 이렇게 하면 액이나 질병이 없어지고 잡귀가 근접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믿었으며, 동짓날 뱀 사(蛇)자를 써서 부적으로 거꾸로 붙여 두면 악귀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한 밤이 길다 보니 사랑방에 모여 이야기책을 읽거나 윷놀이, 종경도 놀이 등을 즐기고 새끼를 꼬거나 새해 농사에 쓸 농기구를 손보기도 했다. 이처럼 겨울의 중심에 있는 동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휴식과 정중동의 시간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구세군 자선 냄비가 설치되고 사랑의 열매 온도탑이 설치되어 십시일반(十匙一飯) 온정을 모아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기부와 나눔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국민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다. 복지와 사회 안전망은 국가나 자치단체 등 공적 영역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기부와 나눔을 통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해 보니 이름 없는 익명의 독지가가 적지 않은 금액을 익명으로 기부하며 내년 연말에 또 보자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곁에는 남모르게 자선과 나눔을 실천하는 작은 천사들이 있어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우리 경제 역시 저성장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서민경제는 위축되었고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팥죽을 나누고 김장김치를 나누며 이웃을 배려하던 전통사회의 아름다운 미덕을 되살려 소외된 이웃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 곁을 돌아보고 작은 기부를 할 수 있는 방범을 생각해봐야겠다. 직장 송년 회식비를 아껴 함께 기부할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선물비를 아껴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이웃 사랑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말보다 실천이라고 나부터 시작하자는 다짐을 한다. (이 글의 내용 중 일부는 한국문화재재단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한덕택 남산골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다양하게 변화하는 박물관문화

문화는 자신의 취향이고 타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즐기고 수집하면서 본능적인 삶의 욕구를 채워가듯이 인간의 공동체 행위로부터 생성되는 모든 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역사이며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문화유산이 소장된 박물관은 국공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 사립박물관으로 구분되며 사립박물관은 운영주체에 따라서 재단법인, 개인, 종교, 학교, 기업 등으로 구별한다. 전국 등록 박물관미술관(1천186개관)중 경기도(133개관)와 서울시(128개관)에 가장 많고 강원도(102관)나 제주도(61관)와 같이 특수 관광자원을 누릴 수 있는 곳에 밀집되어 있다. 미 등록관을 포함한 전국의 박물관미술관은 약 1천300여개 관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립 관(박물관 42%ㆍ미술관 69%)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 있다. 대부분 박물관은 소장품 위주를 벗어나 농어촌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마을주민의 민속 문화가 어우러져서 주민공동체의 생태계를 보존하고 계승해나가는 안동하회마을과 외암리 민속마을, 생태박물관, 환경박물관 등은 에코 뮤지움으로 활동하고 있다. 첨단디지털기술로만 이루어진 안동의 전통문화 컨텐츠 박물관도 간단한 터치나 카드로 기록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라키비움Lachiveum으로 도서관과 기록관, 박물관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박물관이다. 서울의 돈의문과 이화동은 낙후된 도심을 개발해서 마을전체를 박물관화 했다. 역사가 있는 돈의문마을의 재생프로젝트는 지역과 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노후 된 건축물과 거리를 재생해서 공공의 건축물과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한옥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가 자리해 있다. 이화동은 한양도성의 낙산성곽 안쪽으로 자리한 일반주택가의 노후 된 건축물들을 재생해서 카페나 공방 등이 자리했고 옛 골목길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작은 박물관들이 있다.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주민들의 협동으로 마을의 옛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마련되었듯이 마을공동체 활동을 지향하고 있다. 전문사립박물관인 커피 박물관이나 민화박물관 등은 일상생활 속에 잔재된 소소함까지도 현실에 맞게 접근해가면서 수익창출을 위한 사업 확장으로 비영리기관으로서의 사립박물관운영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사립박물관의 독창적인 소장품이나 교육프로그램의 활성화로 지자체의 공립박물관으로 유치되는 사례가 있듯이 지방자치 단체 중에는 지역주민의 문화향유를 위해서 공사립 박물관을 총괄 관리하는 문화재단도 있다. 출판단지로 인식된 파주시는 박물관미술관(16관)의 수요가 급속히 늘면서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박물관도시를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다. 파주시에 위치한 어느 박물관은 소장품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인정받아 강원도 영월군에 분관으로 유치되었듯이 영월군은 지붕 없는 박물관 고을을 만들기 위해 마을에 넓게 분포된 폐교나 공공시설에 박물관미술관 28개관을 유치했고 2017년까지 5년 동안 국제박물관 행사를 진행해오면서 한국박물관의 위상을 높여 왔으나 꾸준한 행정력 부족으로 박물관고을의 효율성이 침체되고 있다. 이와 같이 박물관은 공사립과 관계없이 박제된 유물의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도전하고 변화해가면서 국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어떤 대안공간의 폐관을 바라보며

1990년대 말부터 한국사회에는 대안학교, 대안교육 등 대안이란 용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안이란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체 수단 또는 극단적으로는 기존제도를 거부하는 별도의 시스템을 지칭한다. 서구에서의 대안(Alternative) 개념은 68 학생운동 이후 기존의 가치관이나 제도혁신을 위한 청년 세대들의 정신적 소산이기도 하다. 한국 미술계에도 90년대 말 대안적 성격을 지향하는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국전 등 기존의 공모전이나 상업주의적 기성 미술제도로는 수용될 수 없는 신진작가들의 변화된 창작활동을 수용코자 하였다. 좀 더 실험적 성향의 작가들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제도권의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인 비영리적 실험공간들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에서도 대안공간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였다. 정부는 이 대안공간들의 비영리성과 공공성을 감안하여 지원을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2000년도 이후 전국적으로 다양한 대안공간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대안공간들은 운영상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태생적으로 비영리성을 유지하며 자구적 운영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고, 그간 정부의 지원금에 대한 의존성이 검증된 데 반해 정부의 지원이 줄어가고 있다. 또한, 대안공간들이 어느덧 자신들이 넘어서려 했던 제도의 일부가 되어 버려 대안의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최근 수원 행궁동 소재의 대안공간 눈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며 많은 작가들과 관계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눈은 지난 15년간 사비를 들여 공간을 운영하며, 신진작가 발굴과 그들에 대한 창작발표 공간지원을 수행해 왔다. 공공이 감당해야 할 부분을 사적 공간에서 공공성을 유지하며 수원과 경기지역의 문화적 가치와 창의성을 높여왔다. 눈은 대안성의 차별화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진작가 발굴은 물론, 원도심인 행궁동의 도시재생을 위한 벽화골목 조성, 국제 레지던시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갔다. 이로 인해 정부의 전국 대안공간 평가에 있어 늘 수위를 차지하고 2011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후발 대안공간들이나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많은 관계자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행궁동을 수원의 랜드마크가 되게 하였다. 눈은 그동안 힘든 여건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공간을 꾸려왔지만 이제 그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보다 운영자를 더 좌절시킨 것은 주변의 몰이해, 그로 인한 자존감의 실추로 보인다. 행궁동은 수원의 심장이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새로운 대안적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명소로서 화성과 함께 국제 경쟁력도 가지고 있다. 근자에 도시마다 문화예술을 통한 구도심 재생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눈과 같은 성공적 사례는 별반 없다. 그동안 눈이 기여한 사회적 역할과 공공적 가치는 절대 간과될 수 없는 일이다. 그 종언을 막을 수 있는 공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나 공공영역에서의 민간에 대한 지원이란 지원금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제혜택과 같은 간접지원이나 민간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기반여건들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재정 지원보다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시민적 이해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격려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운영자는 이제 조용히 본업인 작가로 돌아가 창작에만 몰두하겠단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눈의 역사와 정신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이 문을 닫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문화시민 우리 모두의 수치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레테의 강과 잊지 말아야 할 것

한국 드라마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사건은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이다. 현재 우리 자신을 아무리 해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거나, 반대로 너무나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꿈꾼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모든 것이 변해있기를 말이다. 언젠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드라마의 출생의 비밀이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만약 우리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면 단번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자신의 현실을 부정한다면, 기억상실은 타자의 현실을 부정한다. 기억상실을 통해 자신과 가까운 타자의 삶의 조건을 이상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지금은 별 볼 일이 없거나 쓸데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게 되면 원래 높은 지위에 있거나 고귀한 출신이었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억을 회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일정한 플롯을 유지할 수 있다. 영국 철학자 로크는 나 또는 자아는 기억의 동일성에 의해 확인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억을 상실한 사람은 과거와 단절되고 동일한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기억을 상실해도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는 기억상실증이나 알츠하이머 등의 병명이 있다. 메멘토(Memento)라는 영화에는 아내가 살해당하던 날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 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복수를 위해 기억의 편린들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기록하지만 결국 진실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그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고 기억하기 싫은 것을 삭제하여 왜곡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경우에도 우리의 기억들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사람은 의학적 기억장애나 기억상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억에 장애가 생기고 기억을 상실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망각이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의 죄에 대해 용서를 해주었다고 해도 나 스스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울 때가 있다. 기억이 덫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비록 구원받기는 했지만 남은 죄를 정화해야 하는 사람들이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마지막에 정화의 산의 꼭대기에 있는 에덴동산에 도착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레테의 강이 있는데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연옥 영혼들이 가진 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망각은 일종의 축복이다. 그리스어로 기억상실은 암네시아(amnesia)로 기억(mnesis)이 없다는 뜻이고, 망각은 레테(lethe)는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레테의 평야에서 강물을 마시고 지상에 있었던 일들을 잊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을 뜻하는 레테와 대립적인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리를 의미하는 알레테이아(aletheia)이다. 망각하지 않는 것, 감춰지지 않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이미 진리를 알고 있고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산파술을 통해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스인들은 기억의 여신(Mnemosyne)이 무사 여신들의 어머니라고 한다. 무사 여신들은 모든 학문과 예술의 신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약이기도 하고 독(pharmakos)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도 될 것을 기억하는 것이 문제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Routine과 파괴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단원들이 종종 있다. 이 교향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어요. 이 곡을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해 보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음악의 내면적 요소들이 너무 많아 부끄러움이 증가되어 연주를 앞두고는 오히려 두렵고 자괴감이 심해 어딘가로 숨고 싶은 때도 많다. 최근 NASDAQ(나스닥, 미국 장외주식시장)의 가장 핫한 5대 주식을 FAANG라고 부른다. 이는 Facebook(페이스북), Amazon(아마존), Apple(애플), Netflix(넷플릭스), 그리고 Google(구글)의 첫 자를 모아 만든 합성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산업형태의 변화는 이전보다 격하다. 이런 현상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라고 한다. 기술혁신으로서 낡은 것을 파괴,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죠셉 슘페터가 1912년에 발표한 이론이다. 놀랍게도, 위의 회사들은 10여 년 전만 해도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예술분야, 특히 음악계에도 Routine, 즉 일상적이며 통상적인 판에 박힌 접근의 방식을 거부한 창조적 파괴자들로 가득하다. 비발디(1678~1741)는 3악장 형태의 협주곡을 새로운 장르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계절의 자연현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걸작 사계를 작곡하였다. 베토벤(1770~1827)은 교향곡의 이전의 미뉴에트 Minuet(우아하고 느린 춤곡의 형태)를 파괴하고 템포가 빠르고 격렬한 리듬, 급격한 변화를 투입하는 스케르초 Scherzo를 도입하였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2류 음악으로 취급되던 발레음악에 직접 손을 대어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남기며 이 분야를 일류로 격상시켰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죽음이라는 인류의 숙제를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며 기피하는 불편한 주제를 청중석 정면에 던지는 충격을 창조하였다.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봄의 제전 초연 당시 청중들이 야유를 퍼붓고 공연 중 퇴장하는 모욕을 당했지만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표현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에 심포니 송이 연주하는 리게티(1923~2006)의 종말의 신비는 연주자들이 극한의 악기연주를 포함하여 괴성을 지르고 소프라노가 무대를 뛰어다니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음역에 도전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당시의 평가는 부정적이었지만 오늘날 그들의 음악에 뛰어난 평가를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의 음악인들이 이런 세계적 조류에 앞장서는 것을 우리 음악계와 애호가들은 응원의 박수와 애정을 보내야 한다. 익숙함은 자칫하면 게으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노련함은 특별한 재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경험을 자랑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더 아름답게 영입하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내일 아침, 나의 하루의 시작을 자극해 줄 모닝커피의 그 진한 향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을 routine으로 삼는 젊은이들이 많을 때 우리의 미래는 밝다. 예술활동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현상유지이다. 음악의 고귀한 본질은 엄숙하게 유지하되 그 표현은 열정과 혁신의 정신으로 매번 새롭게 그리고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창조적 파괴이다. 한 번뿐인 인생, 그 짧은 축복의 기간을 현상유지를 하며 보낸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후회할 일인가?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경기미의 부활을 기원하며

한덕택 단풍철이 한창인 요즘 많은 관광객들이 화려한 단풍을 찾아 길을 떠난다. 만추의 단풍을 즐기고 어김없이 지역의 맛집에 들러 여행의 피로를 풀고 오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양평의 봄나물, 여주의 땅콩, 강화도와 서해안의 해산물 등 다양한 식재료가 있음에도 경기도를 대표하는 음식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기름지고 찰진 경기미로 지은 쌀밥을 떠올린다. 강원도에서 발원한 한강이 흐르는 경기도는 예로부터 비옥한 농토에서 품질 좋은 쌀을 생산했다. 이미 5천년 전 신석기 시대 한강 일원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을 증명하는 고양의 가와지 볍씨가 출토됐고,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던 김포 쌀과 이천 쌀의 명성은 자자해서 밥맛 좋은 쌀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경기미의 품질은 자타가 인정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경기미의 전성시대는 가고 핵가족화와 식습관의 변화, 외식산업의 발달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지난 10년간 쌀 소비량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농가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경기도에서는 한때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와의 협업을 통해 경기미로 떡을 만들어 판매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이제 쌀 소비시장의 변화에 주목하며 주식으로서의 쌀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비를 창출해야 쌀농사가 지속되고 쌀 농가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6차산업과 연계한 농경문화 체험프로그램을 통한 지역 관광 활성화와 새로운 제품개발 그리고 지역별 전통주의 육성을 통한 경기도 쌀의 소비 진작을 제안한다. 논농사를 중심으로 우리의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춘 신상품 개발의 사례로 평택 미듬영농조합법인(대표 전대경)은 쌀과자 제품을 비롯한 다양한 우리 농산물 가공 상품을 통해 스타벅스, 이마트, 홈플러스 등의 유통 채널을 통해 판매하고, 아시아나 항공 등에도 납품해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다음으로 쌀 소비량 증대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방법은 지역마다 개성 있는 전통주를 빚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김포 문배주, 포천 이동막걸리, 가평 잣막걸리, 양평 지평막걸리 등 다양한 전통주와 막걸리의 전통이 있다. 최근 다양한 전통주가 출시되며 젊은 층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으며, 술 시장에서 전통주의 비중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다. 또한 막걸리에 국한되었던 전통주가 약주와 증류주 등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전통주 시장을 개척하며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경기도를 살펴보아도 여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하주인 술아, 용인의 영농법인인 술샘에서 용인 쌀로 빚는 막걸리인 술취한 원숭이, 약주인 감사, 증류주인 미르, 김포의 선호 막걸리, 평택의 호랑이배꼽 등 다양한 프리미엄 막걸리와 약주, 증류주 등이 전통주 마니아를 중심으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으며,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6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경기도에만 7군데의 양조장이 있다. 파주 산머루농원, 포천 산사원, 가평 우리술, 화성 배혜정도가, 용인 술샘, 안산 그린영농조합, 평택 밝은세상영농조합이 선정되어 양조장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도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쌀 소비량 감소로 인한 고민을 풀기 위해서는 이처럼 6차산업형 체험관광의 활성화와 단순히 기호식품이 아닌 우리의 발효문화인 다양한 전통주와 양조장을 거점으로 하는 농촌체험 관광상품이 다양하게 나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기도와 각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맛좋고 찰진 쌀밥과 다양한 전통주로 경기미가 다시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소비되는 날을 기원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박물관제도의 전환 시기

한국 근대박물관의 역사는 이씨 왕가의 박물관 개관(1908년)이후 1세기를 넘겼고 일부 국공립박물관의 타당성이 사립박물관에도 적용되면서 박물관 등록 및 지원육성(2004년)을 위한 문화정책이 실현되었다. 정부는 문화발전을 위한 사회적 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의 역할과 경영 안정화를 위하여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근거해서 사립박물관의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전문 인력 지원을 우선으로 하였다. 근래 들어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인력은 좀 더 안정된 직업을 원하기 때문에 근무여건이 보장되지 않은 사립박물관에 대한 취업 기피현상과 함께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역의 사립박물관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참고 되지 않은 개인의 시각으로 인해서 박물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고 3년 동안 사립박물관의 고용인력 90% 정도가 친인척을 고정인력으로 고용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친인척의 촌수를 계산하기 이전에 전체의 약 16%가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식으로 자격을 갖춘 친인척을 고용한 곳이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지만 이를 좀 더 확인하지 않은 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지난번 경기도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립 관은 무료화 되어야 한다”고 개인의 뜻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타 기관과의 충분한 대화나 시간적 여유도 없이 강력히 추진한 일이 있었듯이 정치인 개인의 이념적 시각으로 만 이해된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시킨다는 것은 포퓰리즘 행위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박물관은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자부심으로 인식되어 국가의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의 근대박물관 역사1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공공적인 박물관의 정통성을 바르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립박물관으로서는 많은 경쟁에서도 차별되고 있지만 박물관의 역할은 이미 사회적 시스템 속에 내재되어 다양한 계층의 관계 속에서 규제되고 변화해가면서 정치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구한말 정부는 근대국가체제 확립을 위하여 국가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중요 정책수단으로 박물관 확충정책을 펼치면서 공립과 사립박물관의 양적증가를 이루었다. 하지만 건립지원 등으로 양적 확대를 이룬 공립박물관은 소장품이나 운영내실 면에서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사립박물관이라도 운영체제나 경제적인 역량이 미흡하다 보니 환경변화에 쉽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가 산업으로 인식되고 자본화되듯이 문화의 가치창조와 국민의 문화향유를 위해서 박물관의 구조체제를 확립하고 국·공립박물관과 전문사립박물관의 자원이 공유되도록 해야 한다. 공·사립박물관의 전문 인력의 안정화는 물론 교육의 전문화가 이루어져야하며 현실적인 박물관제도에 의한 설립운영의 기준이나 평가인증제가 실시되어 규제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1999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개정 된 후 일부 오랜 박물관제도에 의해서 국·공립과 사립박물관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관람료 무료화나 학예사 자격제도와 지원, 세법등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사회적 변화에 대응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제도의 전환으로 양적 성장에 따른 내실의 부족함을 안정적으로 채워나가면서 박물관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지속성장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백남준을 오래 살게 하는 집

용인 상갈동에 가면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을 기념하는 ‘백남준 아트센터(이하 아트센터)’가 있다.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지난 10월11일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대개 10주년 행사는 매우 뜻깊고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매우 조촐한 내부행사로 치러졌다. 백남준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VIP는 아니더라도 주무 장관이나 도지사, 재단 대표 등이 참석하고 역대 관장들과 한국미술계의 중요 인사들의 참여를 기대한 자리였다. 하지만 관련 인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재단의 본부장들과 관장, 그리고 백기사라 불리는 원로 몇 분과 아트센터를 거쳐 간 큐레이터들과 직원들, 기념전시에 출품한 작가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전부였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야외 기념식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관심도와 백남준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재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독일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백남준을 자국의 작가처럼 존경하며 아낀다. 그가 활동하던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선 대중교통 랩핑 광고로 백남준의 이미지를 도시브랜드화하며,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작가로 출품시켜 황금사자상을 수상키도 하였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엔 아트센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수의 백남준 컬랙션을 가지고 있다.일본에서는 이미 1984년 도쿄도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어 그가 선(禪)사상의 구현을 통해 일본예술의 국제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로 추앙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거나 무심한 것은 아닐까? 그는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미래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경을 개척한 거인이다. 이것이 세계가 그를 존중하는 이유이다. 아트센터의 별칭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다. 그의 정신과 예술의 가치를 오래도록 기리며 생동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를 오래 살게 하려면 그의 작품과 사료를 기반으로 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재해석 작업이 핵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트센터는 현재 영양실조의 형국이다. 몇 년째 소장품 구입예산이 없어 구입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겨우 4억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여 두서너 점 정도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간 작품 가격은 점점 올라 구입예산은 점점 더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예술가의 집이 경기도에 유치된 이유는 그가 ‘수원 백씨’라는 이유로 당시 도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후 경기도는 이를 지속 발전시키지 못하고 산하재단인 경기문화재단으로 이관하였고, 재단은 뮤지엄 운영에 소요되는 재원의 부담 때문에 오랫동안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재원과 인력이 부족하니 작품 수집은 물론, 전시나 연구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아트센터의 운영은 근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할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절감한다. 최근 쉔베르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쓴 백남준의 동경예술대학 졸업논문이 독일미술관의 아카이브에서 개인 연구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수개월간 자비를 들여 이를 필사하여 번역 중이다. 아트센터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런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세기의 예술의 존재 방식과 의미를 개척한 백남준의 가치와 의미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조국인 대한민국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남준만큼의 국가브랜드로서의 경쟁력을 가진 인물이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국립으로 격상시켜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는 노력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백남준을 오래오래 살게 할 수 있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인간 사회에서 말은 소통의 수단이다. 그래서 말을 정확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사실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려는 이유는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오해를 최소한으로 줄여 보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대화할 때는 사실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시하지 않을 때도, 심지어 단어 한마디만 내뱉어도 의사소통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아무리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장시간에 걸쳐 대화를 하더라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도 벌어진다. 말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생각을 보여줄 수 있지만 전부 담아낼 수는 없는 작은 그릇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말’에 집착하게 되고 수많은 상처를 입는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리어왕은 세 명의 딸에게 재산과 권력을 나눠주는 조건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라고 명령한다. 첫째 딸 고너릴은 리어왕에게 “제 사랑은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모든 한계를 넘어 전하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둘째 딸 리건은 영리하게도 여기에 추가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만 “행복”하다는 단서를 달아 고너릴을 다시 넘어서고 있다. 리어가 가장 사랑하는 셋째 딸 코딜리어는 모든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고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리어왕은 미칠 듯이 분노하여 고너릴과 리간에게만 왕국을 절반으로 나눠 물려주고 코딜리어는 빈손으로 내쳤다. 고너릴과 리간은 리어왕이 원하는 대답을 했지만 진실이 아니었고, 코딜리어는 리어왕이 원하지 않은 대답을 했지만 진실을 말했다. 진실이 항상 승리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이 때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어왕의 비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하라고 요구하는 순간에 시작되었고, 말이 곧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었던 순간에 이미 파국에 이르렀다. 리어왕은 스스로 함정을 파놓고 자기 자신이 빠지고 마는 실수를 범한다. 우리는 ‘장미’라는 이름으로 어린왕자가 사랑하는 꽃을 지시할 수 있지만, 단지 장미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없으며, 사유의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말이나 글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나 우리가 사유하는 것들 중 어떤 일부나 특정한 부분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는 사유의 단편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말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에 따라 말은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진실이 아닌 거짓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빙산에 비교하면서 의식은 바다 위로 돌출된 표면이지만, 무의식은 바닷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실체라 말한다. 인간의 영혼 속은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대는 모든 길을 다 밟아보아도 영혼의 한계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생각조차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타자와 소통할 때 ‘말’은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은 단지 우리의 영혼을 보여주는 창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할지는 각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경기도의 가을축제로 떠나자

대한민국 기상 관측이 시작되고 가장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고 이제 가을에 접어들자 들판의 곡식이 누렇게 익어간다. 지난여름은 무더위에 야외보다는 시원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 야외활동을 즐기기 적당한 날씨가 되었으니 먼 곳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경기도의 구석구석에서 진행되는 축제의 현장으로 여행이나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선사시대부터 하늘에 기원하고 감사하는 종교적 제의에서 시작한 축제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의 민속이나 명절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제의적 기능과 별개로 축제는 현대인이 즐기는 문화 활동이자 놀이로서 다양하게 진화 발전하고 있다. 지친 도시의 일상에서 탈출해 축제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문화 체험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살려주는 축제의 순기능은 축제의 발전에 큰 동력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축제는 하나의 문화관광산업으로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도시 브랜드가치 제고 등 다양한 유무형의 가치를 갖게 되었고, 특산품이나 볼거리, 먹거리 등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치열한 아이디어 개발과 모객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은 때때로 축제 본연의 정신을 벗어나 양적 성장과 성공한 축제 베끼기 등 부작용을 낳기도 하고 지역 축제가 개성을 상실하는 폐단에 이르기도 한다. 한강을 품고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경기도는 도시와 농촌, 산과 강, 바다 등 다양한 자연환경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올 가을 다양한 축제가 지역의 정체성과 차별화된 콘텐츠로 도민들은 물론이고 수도권 주민들에게 축제를 통해 일탈과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면 한다. 지난 태풍 콩레이의 북상에 따라 많은 축제들이 취소 내지 축소 운영됐다. 오랜 시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준비해온 축제가 천재지변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면 허탈감은 물론이고 축제를 기다렸던 도민이나 주최측 모두 맥이 빠지며 재정을 낭비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의 대표 축제를 테마에 따라 추천해보니 가족들과 함께 축제의 장으로 떠나 함께 웃고 즐기며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한다. 경기 북부지역에 위치한 양주시는 회암사지 일원에서 태조 이성계와 함께하는 힐링여행이라는 주제로 회암사지 왕실축제를 개최하며, 인접한 의정부시도 제33회 회룡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두 축제 모두 조선시대 궁중문화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과 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경기 남부에 위치해 남한강을 끼고 있는 이천시에서는 예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이천 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친환경 재배한 쌀을 중심으로 전통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이천쌀문화축제를 열며, 이웃한 여주 또한 다양한 농산물을 중심으로 옛 나루터를 재현한 흥겨운 장터형 축제인 여주오곡나루축제를 개최한다. 또한 단풍이 물들고 억새꽃이 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축제도 개최되니, 경기 동북부지역의 포천시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축제와 동두천시 소요산단풍문화제는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편안함과 휴식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잣향기 가득한 가평 자라섬 일대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공연예술축제 중 하나인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진행되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수준높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도내 곳곳에서 진행되는 축제는 도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있어야 성장하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니, 가을이 깊어가는 경기도의 들과 산으로 축제를 즐기러 떠나봅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팬 사인회

연주 후에 팬들과 종종 갖는 사인회는 외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고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바람직한 일이다. 외국에서는 주로 지휘자나 협연자들을 연주자 접견실 (Green Room) 또는 연주자 대기실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콘서트 홀 후면에 있는 연주자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악수를 하는 정도이다.무대에서 청중에게 감동을 전하는 연주과정에서 청중의 관점에서 볼 때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정장을 갖춰 입은 연주자들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대’들이 직접 로비에 나와 청중과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좁히는 것은 연주회장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기억에 남을 일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의 팬들과의 만남은 흥미롭다. 한국 청중과 여러모로 다른 면이 있지만 그 중 콘서트홀 뒤편 출입구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년남성들이었던 것이 신선하게 기억된다. 일본의 팬들은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깊은 지식을 갖기 위해 꾸준한 준비를 한 후 연주회장에 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클래식 마니아들이 연주회장을 찾아 깊이 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며 느낀 바가 많다. 일본의 오케스트라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오케스트라들도 팬들의 높은 수준의 연주와 청중들의 교육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튼튼한 팬층의 확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내게도 이런 열렬 팬들이 많다는 것은 복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중 이맘때면 떠오르는 한 팬이 있다. 1992년 예술의 전당 데뷔연주부터 한 60대 초반의 신사는 젊은 팬들이 주축인 나의 사인을 기다리는 긴 줄의 맨 뒤쪽에 서 있었다. 내게 사인을 받을 때 바라본 그의 붉어진 얼굴은 분명 연주회를 통해 진한 감동을 받았음이 분명하였다. 그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작고 큰 도시에서 내가 지휘하는 연주회장 객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그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연주회장에 나타났다. 점점 연약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우려하였고 그는 나의 염려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연주회장에 나타나 기립박수와 함께 사인을 받으러 긴 줄에 동참한다. 그는 다른 청중들이 받는 감동까지도 직접 체험하고 깊었을까? 다만 그가 연주회장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를 바란다. 몇 년 전부터 그를 연주회장에서 볼 수 없다. 지팡이에 의존하며 늦은 시간까지 기차역, 버스터미널, 또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가 연주하는 전국의 연주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 무리에 섞여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서 있을 필요도 없다. 나의 아버지는 아주 평범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지속적인 팬으로서 아들의 연주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젠 더 높고 편안한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나의 연주를 즐기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립다. 나는 오늘 연주에서도 그를 만난다. 소록도의 병동 앞에서, 탈북자를 교육하는 하나원 운동장에서, 가파른 정릉3동의 고갯길에 걸쳐있는 초등학교에서, 아버님이 매일 가꾸던 텃밭이 있던 동두천의 군부대 연병장에서 나는 연주를 계속한다. 아버지는 그곳의 청중에 섞여 뜨겁게 나의 연주를 응원하고 있다. 그가 열망했던 일들을 내가 대신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아버지는 나와 연주생활을 함께 한 행복한 팬이자 파트너였다. 그가 내게 남긴 말 중 기억나는 것은 두 마디다. “사랑한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박물관미술관 지원정책의 현실

정부수립 이후 국가체제가 정비(1949)되기 시작하면서 국립박물관의 새로운 구축과 함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1991)이 개정되었고 문화성장의 기대를 위한 박물관 자원의 중요성이 대두하였다. 박물관의 대상이 귀족중심에서 서민들의 민속생활문화까지도 인식되면서 국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공·사립 박물관이 급격히 증가했다. 문화의 보고(寶庫)인 박물관이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보급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1990년 박물관과가 설치되었지만 1994년 도서관·박물관과로 전환되었고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 관할로, 2008년 문화 여가 정책과, 2014년 박물관 정책과에서 문화기반시설을 전담하는 ‘문화기반과’로 정착하면서 그동안 이원화되었던 박물관·미술관의 이기적 사고를 통합하였고 전담부서의 연구계획에 의한 박물관정책을 기대하게 되었다. 국·공립 종합박물관과는 달리 대부분 사립박물관은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한 건물이나 시설운영비를 충당해가면서 전문 인력을 위한 정기적 지출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이에 대한 지원예산(약 33억)으로 전문 인력(2018년 학예사, 교육사) 223명이 차등 지원되고 있지만 개개인에겐 일반사회의 평균 임금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에 자격증을 소지하고 석사 이상을 마친 고학력출신의 자존감을 지켜나가기 어려운 현실이다.특히 정부주도의 소장품 DB화 사업이나, 추경예산으로 지원되는 인력은 기존의 인력과 형평성에 맞지 않게 높이 측정되다 보니 대부분 사립박물관들은 차등 된 지원 분야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한 관에서 2년 이상 3년 이내 지원된 학예인력의 재지원이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급여가 적어도 전문인의 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는 학예인력에 대한 실제적인 대책 없이 실적을 위한 신규 고용만 인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규채용만 인정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실직자의 숫자를 늘리는 풍선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에 박물관의 현실이 고려되지 않은 정책으로 인하여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인력지원을 받아도 지역적인 접근성 문제로 인해 고용의 어려움을 겪거나 자부담률을 감당하지 못하는 관들의 고민이 있듯이 현재 5천여 명이 넘는 학예사자격증 소지자들도 저임금과 안정되지 않은 박물관 취업을 기피하고 있는 현상이다. 자국문화의 정체성으로 독창성을 갖게 된 K­POP의 탄생이 세계인을 열광시키듯 문화는 글로벌화 되어 소수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도구다. 정부는 지식기반사회에서 문화콘텐츠의 파급 효과를 기대하는 박물관·미술관의 지원을 위해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에 필요한 제반시설보수비나 인건비, 관리비의 지출로 오랜 시간 견뎌온 사립 관들은 폐관을 고민하는 시점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타계하신 1세대 박물관의 유물이 그대로 사회에 기증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모든 사립 관에 표본이 될 수 없듯이 고령화된 사립 관 1세대의 문제도 심각한 현실이다. 2017년(문화부조사) 1천186개관이 넘는 박물관·미술관 시대다. 이제는 수요보다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평가인증제나 경력인증제도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고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관람료 유료화로 사립박물관·미술관과의 형평성 고려는 물론 박물관운영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 2008년 국립박물관 관람료 무료화의 시작으로 국·공립박물관의 관람객 폭은 증가했지만 이제는 무료에 익숙한 국민과 외국인의 문화의식을 바꾸고 우리 문화의 자존과 자립을 지켜나가야 한다. 박물관정책은 국민의 문화 향유와 국가의 문화정체성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지만 포퓰리즘 지배 없이 인류문화의 보존과 계승 및 창달을 위해서 조사되고 연구되어야 한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미술관에 자주 가시나요?

지난 여름 공과대학 교수들의 워크숍에 현대미술 특강을 요청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대학의 총장인 고교 선배의 부탁이라 쉽게 승낙은 했지만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걱정이 컸다. 강의에 앞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질문을 해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미술관에 가십니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멋쩍어 한다. “그럼 1년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가시겠죠?” 몇 분을 제외하곤 모두가 역시 먼저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 정부의 국민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연간 미술관 방문 횟수는 평균 2.23회(2016년 기준)라고 하는데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미술관이나 화랑에 전시관람을 자주 가지 못하는 이유로 비용의 문제나 바쁜 이유를 들고 있으나 기실은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관심과 흥미가 유발되지 않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친한 친구들마저도 미술관이나 화랑에 갈 때 어떤 복장을 하고 가는지를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미술관과 화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고학력 사회지도층이란 분들도 전시관람에 따른 기본적 문화나 정보를 체득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미술관 정책의 중점과제는 관객개발과 관객들에게 양질의 미술문화를 향유케 하는 것이지만 관객 수의 증가는 그리 쉽지 않다. 미술관마다 다양한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만 노력만큼 관객은 늘지 않는다. 미술관의 초기 형태는 개인이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여 보관하는 캐비넷(cabinet of curiosities)의 기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진기한 사물을 수집하는 일은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소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상 서랍 안의 학용품 배치가 개개인마다 다르듯 사물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관점을 키워가는 것은 오늘날 큐레이터의 역량과 유사한 것이었다.왕실이나 귀족들이 소장하던 물건들을 일반 국민을 위해 개방함으로 근대적 의미의 미술관이 탄생했다. 근대의 미술관은 구조적으로 현실공간과는 격리된 특별한 공간이었다. 미술관 건물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신전에 올라가듯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구조를 가졌었지만, 오늘날은 계단을 없애고 마치 동네 슈퍼마켓을 드나들듯 일상공간과 구별되지 않는 구조의 건축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가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술작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과 흥미가 유발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는 기계의 작동원리와 그 원리 속에 내재된 지식과 정보를 숙지하고 있고, 외국어 전공자들은 그 언어의 문법과 활용을 잘 알고 있다. 문외한들은 그 영역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미술 역시 그것이 가진 문법을 이해한다면 결코 난해한 영역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미술작품이라도 도슨트들의 해설을 들으면 쉽게 이해되고 흥미가 유발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독자적으로 어려운 현대미술에 대한 감상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미술관과의 거리감을 가지게 된 요인은 우리에게 어린 시절부터의 감상교육이 부족한 점일 것이다. 해외미술관에서는 어린이들이 전시장 내에서 교사들의 지도로 수업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과 쉽게 접하며, 감상의 방법을 익히고 일상화하는 것이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술관을 새로 짓고 규모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미술문화에 새롭게 눈을 뜨고 그 경험들을 삶에 녹여냄으로 그들의 일상이 창의적이고 풍요로워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술관의 의무이다. 이번 주말엔 가족들과 가까운 미술관을 한번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인생이라는 극장과 오디션 철학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좋아 보이는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좋은 삶이란 흔히 ‘잘 사는 것’, 즉 성공적인 삶과 동격이라 여겨지고, 성공의 척도는 특히 인기와 연봉에 좌우된다. 성공에 이르는 길이 과거보다 다양해진 요즘, 우리는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일상에서 인생의 축소판을 쉽게 만나곤 한다. 최근 수년간 다양한 종류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었다.특히 경쟁적 요소를 도입한 오디션에는 삶의 서사가 스며 있어 더욱 드라마틱하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강력한 특징들 중 하나는 경쟁(agon)”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축제에서 올림픽 경기나 비극 경연대회 등은 철저하게 경쟁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간의 능력은 경쟁을 통해 가장 탁월하게 발휘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춤이나 노래와 같은 특정 영역에서 남과 다른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때 환호한다. 오디션이 인생이라는 드라마와 닮은 점은 실력이나 노력이 인기를 얻거나 성공하는 데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디션 참가자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대중들에 의해 평가된다. 전문가의 경우에는 특정한 기능이나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면이 있지만, 대중의 경우에는 말이나 성격 또는 행동 등 다른 요소들에 의해 상당히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나아가 프로듀스101이나 프로듀스48과 같이 특정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한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춤이나 노래와 관련된 특정한 기능이나 능력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연출자나 편집자의 목적에 따라 어떻게 조명되고 편집되는가에 따라 대중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삶도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듯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라고 한다. 우리에게 달린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들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바꿔질 수 있다. 반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은 “신체, 재산, 평판, 지위” 등과 같이 개인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곤 한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과 마주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화 속의 영웅들처럼 괴물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이다. 현실에서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때, 아니 최선을 다해 견디어낼 때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영혼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가진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을 반복적으로 훈련해서 마침내 지혜와 용기 및 절제 등을 발휘하게 될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판단에 영향받지 않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생에서 오디션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과 마주하며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가장 탁월하게 발휘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삶을 즐길 수 있고 행복하게 될 수 있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학부 교수

[문화카페] 베토벤의 홀수와 짝수

현대사회의 교양인으로서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문헌과 예술이 있다. 그 기준과 선호도가 다를 수 있지만 음악 부분을 논할 때 베토벤의 존재는 기승을 넘어 전결이 되는 핵심적인 포인트라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베토벤은 당시 대문호 괴테와 쉴러 등의 작품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승화시켰으며 교향곡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이 기회에 베토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여 보자. 첫 번째 질문, 베토벤은 몇 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가? 둘째, 교향곡 중 몇 개를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는가?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인류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꾸준히 음반과 연주를 통해 우리 귀에 익숙한 9번 교향곡 ‘합창’, 5번 교향곡 ‘운명’, 3번 교향곡 ‘황제’ 등을 작곡하였다. 덧붙여, 1번 교향곡과 7번 교향곡도 자주 연주된다. 한 번쯤은 ‘운명 교향곡’(베토벤이 직접 붙인 제목은 아니다. ‘빠빠빠 빰’ 하고 시작되는 부분이 운명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하여 생긴 제목으로 일본과 한국에서만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의 시작부분 또는 매년 연말이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합창 교향곡’에서의 주요 멜로디 부분에 익숙하거나 더 나아가, 웬만한 부분은 소리 내어 노래할 수 있는 수준급의 애호가도 있을 것이다. 내가 접한 많은 연주자들도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전체를 연주해 보았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마찬가지로 음악애호가들도 9개의 교향곡 전체를 골고루 감상하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1, 3, 5, 7, 9번의 홀수번호 교향곡들이 2, 4, 6, 8번 짝수번호 교향곡보다 콘서트에서 더 빈번하게 연주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다른 작곡가들도 유사한 경향이 있지만 과한 열정을 쏟아부은 특정작품 뒤에 따라오는 작품들은 한결같이 부드러우며 여유가 넘치고 정겨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베토벤은 홀수번호와 짝수번호를 한 세트로 보고 작곡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3번 교향곡 ‘영웅’은 드라마틱하고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어서 작곡한 4번 교향곡은 편안하고 큰 감정의 기복없이 원만하게 진행된다. 5번 교향곡과 6번 ‘전원 교향곡’은 같은 무대에서 같은 날 초연한 것이다. 특히 6번 교향곡 ‘전원’은 다양한 감정의 폭을 지닌 5번 교향곡과 달리 베토벤은 다섯 개의 매 악장에 목가적인 자연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직접 세밀하게 설명한다. “시골에 도착하여 유쾌한 기분”, “개울가의 정경”, “농부들과 유쾌하게 함께함”, “폭풍”, “폭풍 후의 기쁘고 감사하는 분위기”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베토벤이 특별히 사랑하였던 ‘전원생활의 추억’을 나타낸다. 7번 교향곡은 소위 ‘자유정신의 해방’을 노래하듯 뜨거운 리듬이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반복되는 독특한 향을 내뿜어낸다. 반면 8번 교향곡은 애정이 풍부하게 담긴 표현을 통해 7번 교향곡의 뜨거운 열기를 잠시 식히고 이어서 9번 합창 교향곡이라는 대서사시를 향해 달린다. 청중들은 익숙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기를 원하며 연주단체들은 티켓판매 등을 이유로 프로그램 선곡에 있어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홀수번호 교향곡이 선택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약간은 소외된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에 취해 있다. 올해부터 짝수번호 교향곡을 시리즈로 연주한다. 격정적인 곡 또는 자극이 있는 곡들을 선호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베토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짝수번호의 교향곡의 진미를 아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몇 개의 교향곡을 감상하고 또는 단편적인 연주를 자랑하며 베토벤의 모든 음악적 표현을 이해하려는 접근보다는 차분히 베토벤이 우리에게 남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베토벤은 우리의 영혼에 꼭 필요한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전문가의 역할

프랑스의 단면을 보면 대단히 허술한 사회다. 지하철이야 입구에 승차권을 넣고 들어가지만 길거리를 달리는 전차는 승차권을 확인하는 이가 없다. 차를 타고나서 가운데 기둥에 놓인 검표기에 직접 표를 넣고 검표를 한다.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에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정기권을 가진 이는 이 과정마저 건너뛴다. 주차딱지를 끊었다. 장애우 전용 표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차를 세웠는데 한 시간 남짓 돌아보고 오니 적잖은 금액의 벌금 고지서가 붙어 있다. 난감해하니 프랑스에서 제법 오랜 기간 거주한 지인은 그냥 찢어버리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사면이 있는데 주차 벌금은 그때 다 사면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란다. 사회 구조가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고 하니, 그러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시스템은 돌아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1% 내외의 전문가가 검증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이니 그들이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도마에 올랐다. 연수를 위한 일정을 작성하고, 방문지를 선택하고, 연수보고서까지를 여행사에 위탁한단다. 직무를 위한 연수지 선정은 당연히 해당 업무를 잘 아는 담당자가 정할 것이고, 방문할 기관의 선정이나 면담대상을 정하는 것도 업무에 기반을 두는 것이 상식일텐데 이를 외부에 위탁하는 것이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일까. 외국을 가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음식이다. 개인차가 있으니 누구는 익숙지 않은 음식으로도 충분히 버티지만 누군가는 도저히 입맛을 살리지 못해 가방 한 켠에 챙겨온 고추장과 라면이 등장한다. 일단 개인차라고 해두자.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한식을 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외 없이 산낙지와 홍어가 등장한다. 그리고는 한국 음식이 낯선 이들이 당황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면 제대로 먹을 줄 모른다고 하고, 어찌어찌 한입 삼키는 이를 보면 한식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대접한다. 그럼에도 이방인들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 음식에 대한,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문화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 문화가 옳고 우월하다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한식이 입맛에 잘 맞다기보다는 한국문화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와 관심으로 전문성이 살아난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자문회의를 가면 많은 전문가들이 모인다. 너무 많이 모여서 한마디씩만 해도 한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다. 사회자는 이후에 잡힌 식사시간을 지키기 위해 간단히 요점정리를 요구하고, 이러한 상황에 이골이 난 전문가들은 시간 맞추기 위해 말을 아끼고, 기념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고…. 진짜 자문이 필요한 걸까,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이 모였다는 사진이 필요한 걸까. 참여와 실천이 없이는 경험이 생기지 않는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경험을 쌓기 위해 연수도 가고, 여행도 간다. 익숙지 않은 음식도 먹어봐야 하고….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한 문제인데 왜 우리는 그냥 사진만 찍고 마는 걸까.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카페] 근육론

[문화카페] 누구를 위해 음악을 울리나

지난 일주일간 태국의 수도 방콕에 체류하면서 지금까지 갖고 있던 ‘무덥고, 약간은 무질서하며 한국보다 가난한 그런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라는 인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이곳에서 타일랜드 필하모닉 단원들과의 연습과 연주를 통해 태국의 문화수준을 실질적인 측면에서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유능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심포니 송은 다양한 작곡가들의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낯설지 않다. 팬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신기하게 여기고 감사하다는 인사가 섞인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과 이와는 반대로 불편한 표정과 함께 소음에 가까운 이런 음악들을 극히 혐오한다는 두 부류로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다. 나의 연주에서 현대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은 5%도 되지 않는다. 21세기 청중들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등 수백 년 전에 작곡된 음악을 귀에 익어 친근하다는 이유로 선호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기 원치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편한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산업개발의 목표가 되어왔다. 일부 청중들은 예술활동도 그런 범주에 속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새로운 작곡가와의 최소한의 음악적 만남을 거부하고 소위 ‘자주 들어서 듣기 편한 음악’을 우리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의 귀에 지극히 익숙하며 연주할 때마다 늘 새로운 모차르트와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도 18세기 당시,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하여 연주하면 그 시대의 현대음악이 되었다. 이들의 음악이 꾸준히 연주되어 오늘까지 전수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음악사는 지금처럼 이어져 가지 못했을 것이다.같은 맥락으로, 우리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우리가 연주하지 않으면 이들의 음악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현대음악을 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에 넣는 시도는 청중들에게 부담되는 숙제를 주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오케스트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세계주요 오케스트라들의 움직임은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재정을 투자한다. 내가 지휘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등의 방송교향악단들은 현대음악의 녹음과 연주에 적극적인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나 음악인들은 역사적 소명에 소홀한 것이 아닐까? 이런 서양음악의 흐름은 우리보다 음악적 콘텐츠와 기반이 심히 열악한 태국에서 이미 14년 전부터 실행하고 있다. 국가와 각종 음악단체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일체가 되어 자국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계적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이들을 후원하는 최상의 방법인 신작 연주와 음원을 만드는 축제를 만들었다. 베토벤 한 명이 세계의 역사를 지배하듯, 한 나라의 우수한 작곡가 한 명을 배출하는 것은 실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국가적 유산이 된다. 같은 맥락의 움직임은 내가 수년간 지휘하고 있는 상하이 국제 음악제에서도 볼 수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어디에 서 있는가? 축제와 격려는 어렵더라도 우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들이 의무적으로 한 연주에 그리 길지 않은 현대음악 한 곡이라도 연주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음악을 울리는가? 나는 이번 방콕 방문을 통해 흔한 관광객의 관점이 아닌 예술인의 눈으로 바라본 태국인들의 꾸미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과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천연적 미소에 감탄하였으며 최첨단 서양예술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참 곱고 감사했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을 기억하며

8월15일은 로이 토비아스(이용재)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2년이 되는 날입니다. 1년 전 로이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자는 취지를 담아 제자들과 지인들이 모여 헌정 공연을 했습니다.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생님의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제자들이 모였고 선생님의 사랑이 매개체가 되어 제자들을 한자리로 모아 주신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매년 공연을 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4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자는 약속과 함께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올해는 큰 공연이나 행사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업적과 제자들을 사랑해주신 마음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싶습니다. 로이 토비아스 (Roy Tobiasㆍ한국이름 이용재) 선생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조지 발란신의 직계 제자로 뉴욕 시티 발레단 창단 멤버이자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셨습니다. 일본 순회공연에 참가하면서 동양의 매력에 푹 빠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30여 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발레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1988년 유니버설 발레단 제3대 예술감독으로 초청되어 8년간 단원들을 이끌어 주셨으며 다양한 작품을 안무하면서 창작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갖도록 제자들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과 함께 예술감독 취임하여 어려운 민간 발레단 운영에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전원생활을 좋아하셨던 선생님께서는 경기도 여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한복을 입고 마당에 나와 앉아 계시다가 제자들이 방문하면 환한 미소로 제자들을 맞아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희귀병으로 고생하셨는데 15년 전만 해도 저는 사람이 나이 들고, 일을 못하고, 몸이 아픈 거에 대해서 진지하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고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15년 전 내 나이가 지금 나이였다면 훨씬 더 많이 선생님을 이해하고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국적까지 바꾸신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을 좀 더 이해해 드리고 사랑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너무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 더 오래 사시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 해 드린 것 같아 많이 죄송합니다. 발레와 제자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신 푸른 눈의 한국인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이 한국 발레 발전을 주도한 역사적 인물로서 반드시 기억되길 희망합니다. 저는 지금 막내 언니 가족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13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치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엄마는 같은 질문을 계속 하시는 것과 화장실에서 넘어져 골반뼈 골절로 수술을 받으신 뒤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하신 것 외에는 다행히도 일상생활을 하시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친정아버지와 로이 선생님과의 슬픈 이별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고 이미 먼저 떠나신 분들께 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는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리허설 없이 단 한 번 사는 삶을 사는데 이렇게 멋진 선생님을 만났고 100% 저를 믿고 응원해준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새벽 2시라도 전화하면 달려 나와줄 친구들과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김인희 발레 STP 협동조합 이사장

[문화카페] 버려진 채석장과 공장, 미디어아트로 되살아나다

유례없는 더위를 이 정도라도 피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더위를 먹고 한참을 고생했다. 대학이 방학을 시작한 지는 한 달 남짓이나 지났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밀린 연구를 위한 유예기간뿐이다. 이런저런 출장으로 벌써 3주 이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한여름의 유럽은 날씨가 선선해서 환영할 만 출장지였지만 올여름은 예외인가 보다. 서울에 버금가는(!) 남프랑스의 더위를 피해 찾아간 곳은 프랑스 남부 아를 인근에 있는 빛의 채석장이다. 석회석 채석장이 폐장된 곳을 명화의 이미지와 음악으로 입힌 미디어 공연장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멀티미디어 전시를 통해 버려진 공간을 새로운 개념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채석장의 벽면과 바닥을 스크린으로 사용하여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재로 한 미디어 프로젝션 작품을 보여준다. 올해는 피카소를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고, 미켄란젤로, 클림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전시를 매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동굴에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을 선보이면서 관람객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고 지역의 활성화까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파리 시내에는 폐공장을 개조한 미디어 전시가 진행되는 곳이 있다. 빛의 아틀리에(atelier des lumieres) 주물공장이었던 곳을 디지털 미디어 전시장으로 개조한 곳이다. 개장시간에 맞춰 찾아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 앞을 채우고 있었고, 그 중 반 이상은 이미 계약권을 가지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전시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것이다.클림트의 작품과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디지털 작품이 천평 정도의 공간에서 보여진다. 출입문을 이중으로 해서 깊은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 사방과 바닥을 가득 메우는 영상, 그리고 음악은 어느 순간 깊은 감동으로 몰입시킨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지만 영상으로 재탄생하면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작품을 느끼게 된다. 공연장 한쪽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스튜디오와 바가 있다. 간단한 음료와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운 형식의 예술은 융합과 관용에서 나온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허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혁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셈이다. 프랑스는 이미 미디어를 가장 먼저 예술로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퐁피두 센터는 미디어아트를 본격적으로 전시한 최초의 공간이다. 그리고 채석장과 공장을 아트의 공간의 변모시키는 내공을 보여준 것이다. 창조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잘 묶어서 세상에 없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채석장과 공장에서 본 것은 비디오기술과 영상의 결합이고, 명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각각의 것은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결합하고, 이 공간을 채우도록 하는 발상은 기존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기인한 것이다. 올가을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빛의 벙커는 성산포에 위치한 900평 규모의 벙커를 미디어 전시시설로 개편한 곳이다. 빛의 채석장과 빛의 아틀리에에 이은 세 번째 공간이며, 프랑스 밖에서는 처음 개관한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후에 또 어떤 새로운 공간이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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