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야외음악회 그리고 아, 내 악기!

매년 여름이면 미국이나 유럽의 휴양지는 크고 작은 음악축제로 붐빈다. 전통을 자랑하는 다양한 축제는 음악애호가들을 들뜨게 한다. 연주자들은 본인들이 시즌 내내 속해 있던 도시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과 영롱한 별들과 머리를 가깝게 하고 짙은 숲 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벗 삼아 연주를 하는 낭만을 즐긴다. 이런 축제는 청중들에게도 큰 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 또는 연인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보듬으며 야외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와인과 치즈를 곁들이며 음악을 즐긴다.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긴장과 반복적인 도시의 일상생활과 콘크리트 군단에서 탈출하여 자연과 함께 듣는 음악은 분명코 우리의 삶에 자양분이 되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야외 여름축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콘서트 홀이 일반적인 연주 홀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대형 텐트로 만들어져 있는 축제이다. 무대와 분장실 등 시설이 완벽하고 텐트 밖의 청중들은 무대를 직접 볼 수 없지만, 대형화면과 스피커로 잔디밭에 편히 앉거나 누워 텐트 안의 음악의 향연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연주자나 청중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텐트 위를 거니는 빗소리는 연주되는 음악에 방해되지 않고 지극히 낭만적인 또 다른 악기 소리로 들린다.

두 번째, 무대는 완벽하지만, 청중들은 노출된 야외 잔디에서 감상하는 형태이다. 무대는 일회용의 조립식이 아닌 영구적이다. 무대는 천장을 갖추고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벽도 갖추고 있어서 바람에 악보가 날아가는 등 연주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는 이런 야외음악당(Amphitheater-원형극장이라고도 부른다)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런 시설들은 연주 당일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던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는 미국 독립기념일 연주를 준비하여 티켓은 매진되었지만, 연주 당일 내린 폭우로 연주가 취소되어 주최 측은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대비하는 손해보험도 생겼다.

야외음악회가 우리 주변에도 많아지고 있다. 내가 지휘하는 심포니 송도 야외음악회 요청을 많이 받는다. 연주자들이 청중과 접하는 다양한 형태의 콘서트를 마다할 리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모한 야외음악회가 연주의 질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생명처럼 아끼는 악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대부분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있는 실내에서 연주하도록 제작됐다. 전통적으로 야외에서 빈번한 연주를 하는 군악대나 마칭밴드의 금관 악기도 오랜 시간 동안 야외에 노출되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특히 바닷가 해변은 최악이다. 바람에 날아오는 염분이 악기에 흡수되면 그 난감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악기들과 목관 악기들은 섬세한 나무로 만들어져 수백 년에서 수십 년 동안 세밀한 관리를 받아왔다. 그런 악기들이 햇빛에 잠시라도 접촉이 되거나 가랑비라도 맞기 때문에 입는 상처는 크다. 간혹, 야외무대를 멋지게 만들었다고 초청하여 현장에 가보게 되면 천장이나 방풍벽도 없이 조명만 설치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면 스쳐가는 바람에도 악보는 날리고 단원들은 한 곡이 끝나면 악기를 감싸고 우는 아기 달래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상황보다는 오히려 소란한 지하철역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연주자들은 야외음악회는 본인의 주악기가 아닌 보조악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여러 척도 중에 이제는 수준 높은 콘서트 홀을 건설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질 좋은 야외음악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신중히 고려해 적절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것을 알리고 싶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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