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질병과 음악가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야심 차게 준비한 크고 작은 연주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연주를 통해 근근이 생활을 영위하는 연주자들은 생계대책이나 지원이 없어 우울하다. 근심에 가득 찬 프리랜서 연주자들의 표정을 마주하며 마음이 어둡다. 이런 의미에서 오는 23일 베토벤의 최대 역작인 장엄미사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는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그야말로 The Show Must Go On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꽃 피우는 음악을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이다. 위기라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음악사를 통해 많은 작곡가가 질병과 싸운 기록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다한 덕분에 오늘의 콘서트 홀에서는 품격있는 음악이 풍성하게 이어질 수 있다. 26세에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각장애인 판단을 받은 베토벤은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41세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을 포기했고, 54세에는 청각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베토벤이 청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70년 이상을 살아서 (그는 57세로 생을 마쳤다) 더 많은 작품을 남겼더라면 음악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청각장애는 베토벤에게만 부여된 재앙이 아니다.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와 몰다우를 작곡한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도 청각장애로 고난을 겪었지만 출중한 작품을 남겼다. 바흐(1685-1750)와 헨델(1685-1759), 음악인에게는 청각만큼 치명적인 시각을 60대에 들어 잃게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대가들의 우연은 불행도 함께 이어져 갔다. 뇌질환으로 고생한 작곡가들도 많다.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은 바흐와 헨델 그리고 베토벤을 전수받았지만 자기만의 진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38세라는 짧고 행복한 생을 뇌출혈로 마감하였다. 같은 시대의 또 다른 독일 작곡가 슈만(1810-1856)은 브람스라는 대 작곡가를 발견하고 키워냈다. 슈만은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판을 통해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하는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인물이다. 그도 정신착란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등 결국 환상과 환청의 정신병으로 46세에 생을 마감한다. 뉴욕출신 작곡가로서 재즈를 클래식에 접목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거쉬인(1898-1937)도 39세의 나이에 뇌종양 수술 중 사망했다. 글린카, 베를리오즈,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당대 최고 작곡가들도 우울증으로 고생하였다. 이 중 차이콥스키는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20세기 들어 교향곡의 형태를 진화시킨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50년의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무수한 고통을 겪었다. 심장질환을 앓았으며 형제ㆍ자매들의 죽음을 어릴 때부터 겪었다. 그리고 어린 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 길이 기억될 영웅 같은 작곡가들도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질병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이 겪은 질병이 창작에 도움이 되었는지 또는 그 반대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술의 발달은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더 나아가 완치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연약한 인간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이번 중국 우한에서 날아오는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하며 새삼 새겨본다. 이런 질병을 벗어나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연주 할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오기를 기원해본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지역 공공 미술관들의 딜레마

국제뮤지엄협의회(ICOM)가 채택한 정의에 따르면, 뮤지엄은 인류가 창출한 문화적 소산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구이다. 이러한 공적 기능 때문에 사립 뮤지엄에도 공공재원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환경 아래 뮤지엄들은 줄어드는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영역처럼 경영마인드의 도입을 요구받아 왔다. 또한, 과거의 전문가 중심의 뮤지엄에서 관객 중심의 뮤지엄으로 변모되고 있다. 점점 더 새로운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들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영역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여건하에서 공립 미술관들은 저마다 새로운 전시콘텐츠 생산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장품과 재원, 학예직의 전문성이 필수 요건이지만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춘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경우, 차별화된 자체기획전은 물론,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국제 순회전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구겐하임이나 루브르처럼 소장품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유명 도시들에 분관을 조성하기도 한다. 좋은 소장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미술관 운영의 경쟁력이 되고, 미술관들도 점점 빈익빈 부익부의 양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공립 미술관들의 경우,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체계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소장품, 예산, 전문성 측면 모두 미흡하기 짝이 없다.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은 대개 평균 5억 원 미만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물며 몇 년째 소장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문 인력인 학예사나 관장은 대부분 2~3년 계약직 신분으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 2~3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전시콘텐츠 생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개는 전임자가 계획한 전시를 처리하다 떠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려고 인기 있고 화제가 될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를 유치하도록 요구받는다. 몇 해 전 대구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전이나 작년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의 성공 사례가 반추된다. 이런 전시들은 대개 외부 기획사나 화랑을 통해 들여온 흥행위주의 상업적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 유치는 부분적으로 필요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미술관 내부의 학예 역량 축적에는 역행되는 전시들이다. 또한 이런 대형 전시는 지자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외부 기획사와 공동주최를 하게 되고, 기획사는 수익을 맞추려고 높은 입장료를 책정하게 된다. 그나마 수익을 맞출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적자를 감수하며 실적 쌓기에 만족한다. 하지만, 미술관들은 여전히 이런 블록버스터형 반짝 전시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정체성 구축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내부의 학예역량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며, 내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전시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체 역량을 쌓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공공 미술관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네 번째 스무 살, 아름다운 반짝임

인지도 있는 프로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가요계에서 비주류로 평가되던 장르인 트로트, 무명가수, 나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주부, 꿈을 잃지 않은 일반인 등이 그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친근함이 먼저 다가온다. 뛰어난 성량과 음률을 더해 끼를 발산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이 살아낸 삶이 함께 녹아 있기에 뭉클한 울림은 더 크게 일렁인다. 그들이 버텨낸 삶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내 이웃의 삶이기도 하기에 공감의 눈물과 박수로 더 세찬 응원을 보내게 됨은 당연지사다. 스타라는 소실점을 향해 집중하던 대중의 시선이 나와 내 주변으로 향하는 이러한 현상의 흐름은 출판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름하여 순천소녀시대라고 불리는 스무 분의 할머니들이다. 대부분 팔순을 넘긴 이들은 지난해에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5년까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나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에서 김순자 선생님한테 글을 배웠고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책작가인 김중석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웠다는 점이다. 은행 일도 혼자 못 보던 할머니들은 글을 알게 되자 말로 읊조리던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종이 가득 글로 써내려 갔다. 그리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도 그리기 힘들어했던 할머니들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장면들을 형형색색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2018년 서울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미국 뉴욕의 미켈슨갤러리와 필라델피아 등 4곳에서 순회전시를 했으며,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살아낸 세월은 가난, 차별, 노동이 동반되는 가정 내에서 딸이었다가, 며느리가 되었으며,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시간이기도 하다. 긴 삶에서 억눌림 속에 살았던 이들이 글과 그림을 배워 책을 출간하고 나를 찾아가는 모습에 독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물론 할머니들의 맑고 순수한 글과 그림 실력도 한몫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작가가 되어 그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전시된다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점은 그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면 그리고 싶다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일상에서 느끼며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순천소녀시대 할머니들은 절대 특별한 분들이 아니다. 시골 어디에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 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의 불씨가 점화된 곳은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월에 웃장상인 그림책을 펴냈다. 순천의 전통시장 웃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떡집, 방앗간, 국밥집 등의 상인들이 그들의 삶을 직접 담아낸 그림책이다. 순천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반짝임은 소실점과 원근법을 중요시하는 서양화보다는 개별적인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는 우리의 민화와도 결이 닮아 보인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입춘과 대보름을 맞이하며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도 지나고 이제 24절기(節氣) 중 첫째 절기인 입춘(立春)을 맞이하니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물론 아직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본격적인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부터 봄을 준비하는 기지개가 시작되었고 또한 휘영청 달 밝은 대보름도 이어지니 이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할 때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지켜지던 절기(節氣)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 멀어지고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활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입춘이 되면 한 해의 소망을 담은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그 내용을 보면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등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입춘 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간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으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며 겨우내 웅크렸던 몸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대보름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절식으로는 오곡밥과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달집태우기를 비롯해 지신밟기, 별신굿, 기세배(旗歲拜), 쥐불놀이, 오광대놀이 등의 제의와 놀이를 즐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준비하기 전 흥겨운 마을잔치로 단합을 도모하고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처럼 새해를 맞이하며 마을 공동체의 번영과 집안과 개개인의 소원과 다짐을 하며 한해를 준비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다양한 계획과 다짐을 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이를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초심을 잃지 않고 한 해 동안 다짐을 지킨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도에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중도에 포기한 사람보다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다. 습관을 바꾸려고 21일간의 반복적인 노력과 적응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쑥과 마늘을 가지고 어두운 동굴에서 삼칠일을 인내한 곰은 사람으로 변신하고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단군 신화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내 몸에 체화하려면 인내와 분발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혁신(革新)은 불편함과 동시에 낯선 것이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일 수 있다. 상나라의 시조인 탕(湯)왕은 세숫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글을 새겨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미리 작심삼일을 걱정하거나 중도에 실패했다고 포기하거나 그만둘 일이 아니라 다시 이를 악물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시간이 지나 소기(所期)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난 것이 아니라 아직 열한 달이 남았다. 새해의 다짐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리셋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딱 좋은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설날 세배다례

설은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르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설이 왜 설이라고 했는지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첫째, 삼간다(아무 탈 없이 지내고 싶어 삼간다). 둘째, 섧다(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 서럽다). 셋째, 낯설다, 설다(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 넷째, 서다(立歲日: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해가 서는 날)에서 생겼을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세시풍속 편)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차를 이용하여 예를 올린다는 말이다. 즉, 제사(祭祀)에는 밥과 국이 올라가고 술을 올리지만, 차례에는 밥, 국 대신 명절 음식(떡국, 송편)과 제철과일을 올리고 차(茶)가 중요 제물로 올라간다. 또 제사에는 신위가 있고 돌아가신 영혼이 집을 잘 찾아오시도록 불을 켜고 문을 열어놓으며 자정이 되어야 지내지만, 차례에는 신위가 없으며 이른 아침에 지낸다. 이때 정성껏 차린 차례상에 차는 없고 술만 올라간다면 이는 주례(酒禮)이지 차례(茶禮)라고 하기가 마땅하지 않은 일이다. 현대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차례(茶禮)를 명절날,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조상 생일에 간단히 지내는 낮 제사라 하였고, 삼명절(三名節:임금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동지)과 육명절(六名節: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는 영희전(永禧殿)에 차례를 올리도록 하였다. 실록에는 차(茶)가 놓인 진설도가 있고 실제로 1천300회 이상 올려진 것으로 나타난다. 설날 대표적 음식인 긴 가래떡(떡국)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의 뜻이 있고 어린이 설빔으로 색동저고리는 오방색(五方色)으로 오복을 누리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남자 아이들의 연날리기와 여자들의 널뛰기는 겨우내 움츠린 하체가 튼튼하게 하는 놀이다. 무엇보다 설날의 하이라이트는 가족세배다. 설날 아침에는 집안 어른이나 동네 어른 또는 선생님, 선배에게 새해 인사의 절을 올리고 멀리 계신 분에게는 일일이 세배 드리기 어려우므로 연하장과 안부전화를 드리지만, 가족은 부부맞절과 자손이 어른에게 또는 형제자매끼리 절을 함으로써 서로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세배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어른은 자손에게 덕담을 내리고 설음식과 차(茶)를 나누는 의례를 세배다례라고 한다. 세배다례는, 시집와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잘 보살피고 한결같이 무탈하게 살아준 고마움을 서로에게 표현하는 부부맞절(평절)과, 모든 자손들이 다 함께 큰절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올리는 세배, 그리고 동서끼리 형제끼리 서로 마주 보고 가족의 화목과 안녕을 나누는 절(평절)은 일품가족이 아닐 수 없다. 아들 형제는 무병장수의 손 편지를 써서 용돈과 함께 부모님께 드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에게 덕담과 가훈을 내리고 며느리는 차와 다식으로 그 분위기를 북돋우면 이게 바로 진정한 설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번 설에는 조상과 부모와 종가를 찾아 올리는 차례에 반드시 차(茶)가 주인공이 되어 3대가 한자리에서 자칫 소홀히 지내기 쉬운 가족 간의 예절을 익히는 우리 고유의 세배다례로 건강한 가족형성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베토벤 250주년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을 깨워 피아노로 끌고 간다. 함께 들이닥친 아버지의 친구들도 취한 상태이다. 9살 소년은 그들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한 음 틀릴 때마다 내리치는 아버지의 주먹이 소년이 받는 유일한 보상이다. 11살 때부터는 오르간 주자로 가계를 책임지며 전문연주자로 나선다. 13살 때는 아버지가 죽을 지경에 이르는 폭행을 한다. 17살 때,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유소년 시기를 보낸다. 음악의 삼위일체라고 불리는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을 비교할 때 바흐와 모차르트는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악보로 신속하게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원본 악보를 보면 별다른 수정 없이 깨끗하게 남아있다. 신이 그들에게만 선물한 악상을 무리 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는 지저분하게 지운 잉크 자국 위에 또 고치고, 그 위를 다시 고치는 험난한 작업을 반복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음 그리고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씨름한 전쟁터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베토벤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빛깔로 옷 입혀 기적의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신이 내린 재능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불굴의 집념을 불태운 베토벤의 음악에는 인간의 땀 냄새가 악보 전체에 흥건히 베어져 있다. 베토벤은 세계사적 음악의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바꾸었다. 고전파 시대의 편안함에 취해 있던 정체 상태의 음악을 새로운 낭만파 시대로 끌어올린 혁명가였다. 그는 참된 휴머니스트였다. 나폴레옹 중심의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베토벤은 혁명 이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고자 작곡 중이던 교향곡 3번 영웅의 악보표지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당시의 작곡가들이 작곡하던 주요 이유는 왕 또는 부호 군주 등 후원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3번 교향곡 영웅의 초연 후 쏟아진 셀 수 없는 혹평에도 베토벤은 단 한 줄도 수정하지 않았다. 후세에 평가될 작품의 가치를 예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진실은 삶 속에 가득한 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그는 본인의 예술적 그리고 지적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까지 싸웠으며 인류가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음악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게 해주었다. 법규와 관행 그리고 귀족 중심의 폐쇄된 사회로부터 자유를 주었다.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도 진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없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이라는 단어 자체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함신익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가 최근 개봉됐다. 미국 신표현주의의 스타작가 줄리앙 슈나벨이 감독을 맡은 반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그것이다. 슈나벨은 일찍 세상을 뜬 동료 화가, 장 마이클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로 영화에 입문했다. 그는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이 영화에서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에게 제75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는 러빙 빈센트등 몇 편이 제작된 바 있고, 반전 가수 돈 맥그린(Don Mclean)의 팝송 빈센트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우리에게 고흐는 생전 단 한 점밖에 작품을 팔지 못했던 무명작가로,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하는 등 광기와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 젊은 나이에 스스로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천재 예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신화적으로 가공됐으며 실제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는 최근의 연구도 있다. 이번 영화는 고흐가 말년을 보낸 남프랑스의 아를르(Arles)와 생 레미(Saint-Rmy) 수도원에서의 요양 시절의 2년간(1888~1890)을 다루면서 이러한 신화를 걷어내고 고흐의 순수한 인간적 면모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생전 무명과 빈곤의 삶을 살았지만, 사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선 미화 1억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작품들을 남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연간 19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하는 세계적 미술관이 됐다. 또한,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개발한 문화상품은 수백 종에 달하고 있어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부가가치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작가가 되기 전 목사수업을 위해 벨기에 보리나쥬라는 오지의 탄광촌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의 신앙적 열정은 탄광촌의 빈민들에게 자신의 숙소를 내주고 허름한 창고에서 생활하거나 그들의 생활비를 부담하며 헌신하는 삶으로 구현됐다. 극단적 희생을 보인 이웃사랑의 실천은 결국 지역 교회로부터 신권의 존엄성을 해친 것으로 간주돼 목회중단을 통고받게 된다. 목회 포기라는 큰 좌절을 경험한 후 늦은 나이에 그는 화가가 되어 종교를 대신할 구원의 빛을 그림에서 얻게 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동료작가나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그를 깊은 고독과 정신적 장애로 몰아넣었다. 함께 새로운 환경 아를르로 이주했던 고갱과의 트러블은 급기야 그와의 결별을 불러온다. 결별에 대한 심각한 실의와 좌절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적 자해소동을 낳기도 한다. 영화는 말년의 그가 깊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남불의 건강한 자연풍경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자 노력한 정상인으로서의 예술가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흐는 자신의 광기나 정신질환을 관찰하여 요양원에서의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제에게 말한다. 하느님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든 것 같다라고. 예술가 중에는 운 좋게 당대에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대를 앞선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 사후인정을 받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이러한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숨겨져 있던 멋진 작가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그들의 소명이고 기쁨이다. 우리 시대 고흐가 기다렸던 진정한 미래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나친 열정이 광기로 몰이해 되는 상황에서 오늘도 고흐처럼 자신의 열정 때문에 좌절하고 고뇌하면서도 묵묵히 미래에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며 작업에 매진하는 미의 사도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오늘의 고흐를 만나 행복하고 싶다.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새해를 맞으며 쓰는 ‘책’

새롭게 맞은 한 해는 1월 1일로 시작해 12월 31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는 겨울로 시작해 역시 옷깃을 여미는 겨울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모두 다 안다. 하지만 매일 다가오는 하루가 어제와 같으면서도 새롭듯 새해도 그렇다. 새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백지를 마주한 작가에게 글을 써내려 가고 싶은 마음이 일듯 새해는 백지와도 같은 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이 시간 위에 있다면 누구나 새해라는 이름을 가진 저마다 책을 쓰게 된다. 한 장 한 장의 백지 위에 채워진 이야기들은 편집의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초고를 쓰며 반복되는 퇴고, 그리고 교열과 윤문의 과정을 거쳐야만 책다운 책이 된다. 백지의 시간과도 같은 새해의 하루들은 기쁨으로 눈물로 땀으로 때로는 송곳 같은 날카로움 등으로 채워져 나갈 것이다. 이미 겪어낸 새해였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이는 드물 것이리라. 그 시간을 그저 버텨내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작가가 퇴고하듯 반복되는 다채로운 감정들 틈에서 하루하루를 돌아보고, 편집자의 편집 과정처럼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그 시간들의 페이지를 채워나갈 때 자신이 담긴 오롯한 책이 완성되게 된다. 책 속 이야기에 기승전결의 틀이 있듯 새해 역시 시간적 요소의 틀이 있다. 봄이 오면 지천에 꽃이 필 테고, 녹음과 더불어 매미 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여름 한가운데로 밀려갈 터이다. 석양이 지는 어느 때 서늘한 바람에 더위는 잊혀지고 높디높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은 찬양되겠지. 그러다 눈발이 날리고 그에 첫눈이라는 이름을 더하며 마음의 풍선을 띄울 것이다. 그러나 그 비슷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저마다 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우리는 안다. 서가 한편에 꽂혀 있는 네모난 책들이 비슷하게 보여도 그 책마다 품은 이야기는 다른 것처럼, 같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해 보여도 각각의 삶 또한 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익숙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새해라는 책을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로 바라보며 각각의 이야기에 공감을 보낼 수도, 호기심이 일 수도 있다. 때론 아주 낯선 책을 보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말자. 우린 당연히 다 다르니까. 책의 탄생에는 그 기여 각도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등의 몫이 있다. 우리가 채워갈 새해라는 책도 혼자 완성하지는 못한다. 각자 다른 내용의 책을 쓰면서도 주변인들의 시간에 등장하고 주연과 조연의 몫을 다해가며 한 권의 책을 완성하겠지. 하지만, 내 책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 자신임을 잊지는 말 일이다. 그러나 책과 달리, 우리가 써 내려갈 새해라는 책에는 정가가 없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당연히 베스트셀러도 없고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도 없다. 내가 담긴 나만의 책이다. 그러니 다른 어느 누구의 새해 책과도 비교 따위는 하지 말자. 나는 내 책을 가지고 있고, 그는 그의 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 쓰여지고 있는 모두의 새해에 건투를 보낸다. 2020년, 그 첫 장은 시작됐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동지다례와 섣달 납향제

눈 오는 동짓날 밤 [冬至夜雪]동지가 드는 자시 한밤중(冬至子之半)한 자나 깊이 눈이 쌓였네(雪花盈尺深)만물을 회복하는 봄기운 넘쳐흐르고(津津回物意)천심을 보니 크고 광대하구나(浩浩見天心)관문을 닫고 나그네 금하니(關閉爲禁旅)양기가 생겨 막 음기를 깨뜨리네(陽生初破陰)깊은 시름에 한 선이 더해지니(窮愁添一線)동마주를 정히 마실만하구나(馬正堪斟) 소세양(蘇世讓,1486~1562)『양곡집』권9「동지야설(冬至夜雪)」에 나오는 이 시는 동지의 이치와 여러 상징을 잘 표현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동짓날 자정, 천심은 변함없고(冬至子之半 天心無改移)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이 바로 동짓날에서 시작되니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고 행상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임금은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땅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지극히 작은 양기(陽氣)를 보전하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에서 발로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유(馬乳)로 만든 동마주(馬酒)를 기꺼이 마실 만하다는 내용이다. (동마주는 마유(馬乳)로 만든 술인데 위아래로 흔들어서 만들기 때문에 동마주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지는 고대부터 유구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당나라 때 달력을 만들던 이들은 아득한 옛날 자월(子月,11월) 초하루 갑자일(甲子日)의 한밤중 자정(子正 12시)에 동지(冬至)가 드는 때를 달력의 시작으로 삼았다. 1월 1일이 시작이 아니라 11월 1일이 시작인 것이다. 이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현재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이 그에 해당한다. 밤이 가장 긴 것은 겨울의 음기가 가장 극성하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 그 다음 날부터 낮이 점차 길어지므로 양기가 회복된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즉 11월은 세상이 음에 휩싸여 있으나 땅속에서 남모르게 하나의 양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양이 회복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한겨울 속에 싹트는 생명의 봄을 의미한다.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이 된다는 의미 때문에 지금은 동지팥죽을 먹으며 불길한 것을 떨쳐버리는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섣달에 드는 납향제(臘享祭)의 납일(臘日)은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로 1년 동안에 지은 농사나 그 밖의 일어났던 모든 일을 신(神)에게 고하고 무사하게 잘 지내게 해준 데 대하여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다. 또한, 섣달에는 군사들의 몸을 단련시킬 목적으로 사냥하도록 했는데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납일 고기로 꿩, 토끼, 노루, 사슴, 산돼지만을 잡도록 허락했다. 이 고기로 종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납제(臘祭)란 이름이 생겼다. 여기에서의 랍(臘)은 고기를 뜻하는 월(月)자와 수렵을 뜻하는 렵(獵)자를 결합해 만든 글자로 랍(臘)자에는 사냥해서 잡아 온 고기라는 뜻이 들어 있다. 국어사전에는 임금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동지를 삼명절(三名節)이라고 적혀 있다. 또 국조오례의에는 육명일(六名日: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선대왕의 영정이 모셔진 영희전에 다례를 올렸는데 순조는 실제로 동지다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탄신일과 동지를 명절로 간주하여 다례(茶禮)를 지낸 것이다. 수원화성 화령전은 순조 원년(1801년)에 세워져 오래도록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까닭에 국가 보물(제2035호)로 지정되었다. 순조는 화령전응행절목을 개정하여 정기제향으로 탄신제과 납향제를 올리도록 했다. 이제 영희전은 없어졌으나 화령전은 보물이 된 것이다. 동지와 납일이 든 동지섣달을 그냥 팥죽 생각만으로 넘겨야 할 일인지. 동짓날 자정은 길기만 하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문화콘텐츠가 경쟁력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백범 김구, 1947년) 상해임시정부 100주년과 3ㆍ1 독립만세 운동 백 주년이었던 한해를 마감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본다. 평생을 국권회복을 위해 애쓰셨던 분께서 정치적 안정이나 경제적 발전보다 문화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문화의 시대를 예견하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올해 국내 콘텐츠 산업 통계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은 연 125조5천억 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고,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연간 5%의 성장을 기록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03억3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2% 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가고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콘텐츠 산업 3대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콘텐츠 산업 모험투자펀드 조성 △4차 산업과 연계한 실감 콘텐츠 육성 △소비재ㆍ관광 산업과의 동반 성장 도모 등의 내용이다. 또한,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과 예산지원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도 올해보다 9.4% 증액되어 총 6조4천803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한다. 문체부 출범 이래 최초로 6조 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수준으로 중점사업인 한류 콘텐츠 육성 및 세계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 분야 혁신성장 기반 마련과 한류 확산을 통한 문화선진국 위상 확립에 주력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판교의 IT 밸리, 부천의 영상 및 애니메이션 산업단지, 그리고 추진 중인 고양의 한류우드와 화성시의 테마파크 건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문화콘텐츠산업을 통한 고용창출 및 경제적인 부가가치 확대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과 발전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일하는 분야인 문화유산 활용과 관련해서는 2020년도 문화재청의 예산이 1조911억 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문화재청 출범 이래 최초로 1조 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수준이며, 올해 예산 9천8억 원과 대비해서도 1천903억 원 증액된 규모다. 문화재청은 예산 1조 원 시대를 맞아 문화재 활용과 궁능원 관리 분야 등에 예산을 대폭 증액했으며, 또한 취약계층 문화유산 향유 프로그램,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세계유산 축전, 궁궐ㆍ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을 확대하고, 세계유산의 등재ㆍ보존관리, 국제교류와 협력 사업을 확대하여 문화유산 보존 선도국가의 위상을 강화할 계획이다. 수원화성, 남한산성, 조선왕릉 등 다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과 전통문화자원이 소재한 경기도는 그간 문화유산의 보존 계승 및 활용에서 관심이 저조한 편으로 기초지자체가 국비 지원사업을 신청하면 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전통문화도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적극적인 자세로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고독’ 연주자의 외로운 여행

한국사람들은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빡빡한 일정 속에도 원근각처를 찾아 즐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연휴기간에는 평소보다 몇 배 걸리는 고속도로에서의 거칠고 도전적인 여정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는 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세계각지로 여행하는 개척자 정신을 발휘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한국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오랜 비행시간, 생각만 해도 피곤이 몰려오는 시차, 공항에서의 지루한 의례적 통과절차와 그 후의 더 긴 기다림에도 여행용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넘친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니 좋으시죠?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연주자로서 많은 도시를 여행하였다. 그러나 질문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여행과 연주자들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개념의 여행은 새로운 곳 또는 편안한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이라면 연주여행은 장소에 차별 없이 청중에게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며 보상이다.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14일간의 일정으로 아시아 순회연주를 한다. 그 중 12일 동안 12개의 도시에서 연주한다. 이동시간을 빼면 하루도 연주를 거르는 날이 없는 셈이다. 중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미국의 동부를 순회하는 일정을 보니 23일 동안 2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연주하는 강행군이다. 이들에게는 관광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다. 전문연주단체 또는 연주자들의 연주여행을 들여다보면 무대에서의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숨 막히는 이동의 적응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이 필수조건이다. 지난주 사천성의 청두에서 사천성 심포니를 객원지휘 하였다. 통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객원지휘자의 한 주간의 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일요일 늦은 밤 공항에 도착하여 호텔로 향한다.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온종일 연습을 한다. 연습 후 간단한 식사를 호텔로 돌아와 나 홀로 만의 식사를 한다. 저녁 시간에는 스트레칭 또는 산책으로 몸을 푼 후 악보를 보며 오늘의 연습을 분석하고 내일 연습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의 연습기간을 거친 후 금요일 저녁 연주를 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공항에 나가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 관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상의 연주를 위해 모든 체력과 신경을 비축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며 집중력을 모은다. 연주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고독과 외로움은 나의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 관광지로 가득한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를 마음껏 다녔지만, 전문연주자의 외로운 일상의 연속이었음을 인지한다. 과연 무엇으로 이런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라고 자문해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간이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라고 하였다. 시인 황동규는 홀로움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이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온 인류를 형제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베토벤의 합창교항곡과 처절하게 상처받은 영혼을 보석처럼 맑게 해주는 말러의 교향곡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직 연주회를 위한 여행이 가슴에 떨림으로 남아있음은 이 외로움과 고독이 내 음악에 양분이 되어 주기 때문이리라.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꿈은 이루어진다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일본의 소도시에 연간 이용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도서관이 있다. 이 중 40만 명은 외지로부터 찾아온 이용자라 한다.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이 그곳이다. 도서관 안에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스타벅스 매장이 입점해 있고 자유롭게 열람실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일부 열람석에서는 자유롭게 대화도 할 수 있다.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복합적인 커뮤니티 공간인 셈이다. 이 도서관이 이렇게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민간의 파격적 아이디어와 운영 능력이다. 일본 최대 DVD 대여업체인 쓰타야(屋)가 2013년부터 위탁 운영 맡아 평범한 공립도서관을 획기적으로 변신시켰다. 이 탓에 지역의 경제가 20% 상승하고 숙박업소도 늘었다고 한다. 이렇듯 소도시의 변신을 주도한 사람은 히와타시 게이스케(渡啓祐ㆍ49) 시장이다. 도쿄대 출신 중앙부처 공무원이던 히와타시는 2006년 당시 최연소 민선시장에 당선된 후 민간의 힘을 활용해 활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도서관은 물론, 적자가 누적된 시립병원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통해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일본 내에서 가장 이주를 원하는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초기에는 공공영역을 상업화한다는 이유로 반발도 거셌지만, 결과적으로 적자를 해소하고 경쟁력 있는 병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은 한 젊은 리더의 의지와 비전이 얼마나 세상을 살맛 나게 변화시키는지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지난달 29일 의정부시에는 미술도서관이라 명하는 새로운 공간이 건립됐다. 민락지구 신도시에 조성된 이 도서관은 명칭 그대로 미술전시실과 미술 중심의 도서를 갖춘 이색적인 도서관이다. 총 20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전체면적 6천565.20㎡,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완공된 이 도서관은 조형미가 강조된 건축설계를 자랑하고 있다. 개관식에는 수원 출신의 신사실파 작가로서 말년을 의정부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던 고 백영수 화백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타지역의 공립미술관장이 기증한 2천여 점에 달하는 고가의 해외미술 전문서적이 기증실을 장식하고 있고 3층엔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어 미술관과 도서관이 융합된 복합공간이다. 그런데 개관식의 환영사에서 밝힌 시장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 도서관의 건립은 열정적인 의지를 가진 담당 팀장의 노력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뒷받침한 시장의 시정 철학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다. 경기북부 인구 45만의 도시를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시장은 일본의 사례를 담은 팀장의 보고서를 접하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너무도 좋은 계획이지만 담당 팀장으로서는 설계비도 마련할 수 없는 열악한 의정부의 재정으로 언감생심 이런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시장께 우려스런 보고를 하였는데, 시장은 예산을 걱정하는 팀장의 열정을 높이 사며 수년간 재정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이 결과 건립비의 확보는 물론, 도서협동조합 등 관계 기관들이 도서를 기증하고 해외 도서관으로부터도 도서가 기증되는 등 예기치 못한 환상적인 일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새로운 기능의 도서관을 조성하는 일에 비전을 가졌던 의정부시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를 잘 운영하여 지속적으로 한국의 명소로 만들어 가는 일이 여전한 과제로 남지만, 시민들 중심에서 생각하고 끝없이 변화를 도모하는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고 주저하고 있는 담당자나, 좋은 아이디어지만 실현불가능함을 미리 예단해 버리는 평범한 리더라면 꿈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자 지금 우리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인 어른이라는 말이 흔치 않게 보인다. 공중파 TV 프로그램 이름에도 쓰이니 말이다. 출판계에서 어른이들이 많이 보이는 장르 중 하나는 그림책일 것이다. 그림책 세계에서는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독자층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여백을 주며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장르로 대부분 40페이지 내외의 구성을 갖춘다. 때론 글이 아예 없이 그림만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 본위의 책인 것이다. 그랬기에 글자를 익히지 못했거나 서툰 아이들이 즐겨 보게 되는 책으로 그림책이 받아들여졌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대형서점 역시 유아 섹션에 그림책을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여겨졌던 그림책이 근래에 어른으로 독자층이 확산되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그 그림책에 마음을 훅 빼앗긴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고 자란 90년대생이 성인이 된 이유도 있을 것이며, 이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른들은 왜 그림책에 빠지는 걸까? 그림책은 함께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분량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 그림책을 가져가서 읽어주는 분이 있다. 아이, 남편, 연예인 이야기를 주로 나누던 친구들한테 자신에게 울림을 주었던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의아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다음 그림책을 기대하고 또 자신들이 다른 그림책을 소개하게도 되었다. 덕분에 책과 함께 일상과 나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되어갔고, 은근히 생겨나곤 했던 모임의 피로가 보람과 충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십 분이면 모두 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그 또한 그림책의 매력이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어서 어른들이 마음을 빼앗긴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십 분이면 된다. 그림책카페를 운영하시는 어느 분은 그곳을 방문하시는 손님께 그림책을 읽어드리곤 한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러 온 40대 중반의 남자분께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반응이 어땠을까? 그는 삶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첫 경험이었고, 그게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책이 이런 책이었느냐며 놀라워했다. 활자에 익숙한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먼저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청각으로 내용을 소화하고 시각은 자연스럽게 그림에 더욱 더 머물게 된다. 그림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을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40대 중반의 남성분은 자신이 속한 업무커뮤니티에 매주 두세 권의 그림책을 꾸준히 소개하는 그림책 전도사가 되었다. 일에 지친 동료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그림책카페를 찾는 것으로 그의 활동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책으로 어떻게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 받느냐고?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그림책은 내면의 어린 나를 마주하게 하게도 하고, 어른이 된 나를 다독이기도 하며 어른들의 세계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아이들만 볼 것 같은 그림책이 어찌 그런 일을 해내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한결같다.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수능 후 찾아가는 성년례

수능이 끝났다. 오늘은 실로 장대한 기도의 시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고등학교 교정을 찾았다. 두 아이를 키웠던 그 옛날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능 후 고등학교 분위기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어디에서나 천천히 느릿느릿 걷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손발 입 어느 한 부분 굳어 있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수능 후 고등학교 교정은 희망의 2020년을 보는 듯했다. 이번 수능시험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은 앞으로 한 달 남짓만 있으면 대체로 19세 전후가 된다. 성년의 나이를 만 19세로 정한 것은 법적으로 자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로 인정한 것이며 현행법상 만 18세가 되면 부모의 동의 없이도 혼인을 할 수 있는 것도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옛 예서(禮書)에는 남자가 15세에서 20세가 되면 어른의 복색을 입히고 관을 씌우는 관례와 여자에게 어른의 복색을 입히고 비녀를 꽂아주는 겨레를 올려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일깨우는 책성인지례(責成人之禮)를 올렸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생활풍습이 변화하여 상투를 틀고 관을 쓰거나 쪽을 지는 일이 거의 없어져 관례나 계례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어른이 되는 의식이라는 근본 뜻을 살려성년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1973년 이후에 매해 오월의 셋째 주 월요일 하루뿐인 성년의 날을 1997년부터는 성년주간(셋째 주간)으로 일주일 동안으로 설정했으며, 성년의 나이도 20세에서 2013년부터는 19세로 정해 확대 시행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오월의 성년주간 고등학교 3학년은 긴장의 연속이며 빈틈없는 공부시간표로 꽉 차 감히 성년례를 꺼내기가 민망할 때이다. 성년례란 유년기와 성년기를 일정한 의식을 통해 명확히 구분 지어 줌으로써 개인의 의식변화와 함께 성년에 걸 맞는 행동의 변화까지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어 사회 구성원으로 바른 몫을 해내도록 권고하는 절차다. 사회에 나가면 타율보다는 아무래도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어서 친구도 사귀고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며 술자리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안산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수능 후, 찾아가는 전통성년례를 기획했다. 이제 곧 제도권 밖으로 나가기 직전의 12개 고등학교 4천5백여 명의 학생들에게 성년례를 올려주게 된다. 성년의식 바로 전에는 호감 이미지연출, 멋진 인사 악수예절, 자기소개와 명함 주고받기, 술(차) 마시는 예절 그리고 성년례의 참 의미를 설명하는 틈새 특강을 한다. 수능 후, 찾아가는 전통성년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누구나 거치게 되는 관혼상제 중 첫 번째로 절차상 세 번에 걸쳐 의복과 관모를 바꿔 착용하는 의식이며 초가례(初加禮)는 아동복에서 심의복으로, 재가례(再加禮)는 심의복에서 관리의 출입복으로, 삼가례(三加禮)는 선비복으로 갈아입히며 각각의 축사를 내린다. 그리고 술은 향기로우나 과음하면 실수하기 쉽고 몸에 해가 되니 항상 분수를 지켜 알맞도록 마셔야 한다는 초례(醮禮)와 축사를 내린다. 성년자는 축사 후에 삼가 명심하여 성심으로 받들겠습니다 하고 다짐한다. 또 저는 이제, 성년이 됨에 있어서 오늘을 있게 하신 조상과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손의 도리와 사회인으로서 정당한 권리와 신성한 의무에 충실하여 성년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성년선서를 한다. 성년례는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유산이다. 길한 달 좋은 날에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니 이제부터는 어린 마음을 버리고 성인의 덕을 지녀야 합니다. 이 초가례 축사를 들고 학교마다 찾아갈 요량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장

[문화카페] 문화가 있는 송년 모임을 권하며

연말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나 회식을 알리는 연락이 잦아지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감사함과 축하를 전해야 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관행이 되었다. 모처럼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름진 음식과 함께 술도 마시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띄우고 주도하는 사람도 있으니 간혹 우리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불러주며, 기꺼이 이들의 주도하에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풍류(風流)와 유흥(遊興)은 다른 것이니 유흥이 오락과 놀이로서 단순하게 즐겁게 노는 것이라면, 풍류는 속된 일을 떠나 풍치(風致) 또는 운치(韻致)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을 의미한다. 또한,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시서화(詩書畵)와 가무악(歌舞樂)에 대한 예술적 조예를 바탕으로 인문학적인 이해와 성찰까지 아우르는 것이 진정한 풍류이며 이렇게 풍류를 즐기는 사람을 풍류객이라 부른다. 즉 풍류는 유흥과는 다른 수준 높은 예술과 정신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 옛 선비들의 풍류는 그 자체가 수양의 방편이기도 했다. 주 52시간 근무의 확대와 워라벨과 소확행을 중시하는 트랜드에 맞추어 최근의 송년 모임이나 직장인의 회식문화도 바뀌고 있다. 식사와 2차로 이어지는 획일적이며 구태의연한 회식보다는 편안하게 즐기는 방향으로 회식문화가 바뀌고 있다. 이제 식사와 2차 노래방을 고집한다면 당신은 꼰대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2030의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1%는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회식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였다. 자리가 불편해서, 재미가 없어서, 자율적인 참여 분위기가 아니므로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직장인 87%는 먹고 마시는 회식보다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회식을 선호했다. 젊은 직장인이 불편해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는 회식은 문화 회식(23%)과 힐링 회식(21%)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문화 회식의 경우 뮤지컬연극영화전시회 관람 등을 즐기고, 힐링 회식은 심리치료테라피마사지 등을 받으면서 평소와 달리 나를 돌보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색 회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실내외 스포츠를 즐기는 레포츠 회식(16%), 보드게임, PC방, 오락실 등 게임 회식(12%), 공방, 퍼스널 컬러 테스트 등 체험 회식(10%) 등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획일적이며 즐겁지 않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회식보다 조직원들이 선호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송년회식의 방향도 바뀌어야겠다. 조직원의 여론을 수렴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주도하며 준비하고 진행하는 방향으로 회식문화를 바꾼다면 만족도 또한 높아질 것이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예술적인 만족감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문화회식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예술과 함께하는 회식을 통해 예술가를 응원하고 예술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단순한 유흥(遊興)이 아닌 유흥(幽興, 그윽한 흥취)이 가득한 회식이라면 그 또한 도심 속의 풍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의리의 사나이 베토벤과 루돌프

작곡 또는 연주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극소수의 고명한 아티스트를 제외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다. 세계의 많은 음악가는 빈궁함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베토벤 당시의 18세기나 오늘의 21세기, 그 사정은 별다름이 없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당시의 내로라 하는 작곡가들에게 지속적인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들의 작품이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이든은 에스터하치 후작과 평생 파트너로 작품활동을 하고 살았다. 그런 이유로 방대한 문헌이 생성되었다. 하이든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행복하며 그 음악 속에 여유 있는 유머와 독자적인 재치가 넘쳐 흐른다. 특히 말년의 음악들은 오히려 밝고 명랑하다. 어떤 수사나 찬사도 어울리지 않는 천재 모차르트는 지기스문트 대주교와의 갈등과 지원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다 결국은 독립하여 모차르트가 원하는 음악 세계를 꾸며 나갔지만, 말년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예술가로서의 독립은 어려운 고행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베토벤에게는 특별한 스폰서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왕자인 루돌프 대공(후에 모라비아의 대주교가 됨)은 베토벤의 천부적 재질을 인정하고 15년간 피아노와 작곡을 사사하는 제자가 된다. 경제적지원은 물론 베토벤의 남다른 성격으로 인한 정치적 문제들을 감싸주고 경제적 후원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독야청청, 안하무인, 그리고 자신 외에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유아영세로 시작하여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도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았다. 그의 장례도 가톨릭 식으로 하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종교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자세를 거부하였다. 심지어 예수는 그저 십자가에 매달린 유대인일 뿐이라는 신성모독발언으로 비밀경찰의 사찰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인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베토벤과 루돌프 대공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긴밀하고 의리 속에서 이루어져 나갔다. 베토벤은 그를 위해 많은 곡을 헌정하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20년은 처절한 신체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루돌프 대공의 관대함과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마감할 수 있었다. 베토벤의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4번과 5번은 루돌프 대공을 위해 작곡되었다. 3개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특히 고별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루돌프 대공을 향한 지극한 개인적 애정을 표현하는 대표작인 사례이다.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는 1819년 루돌프 대공이 대주교로 즉위할 때 그 절정에 이른다. 베토벤은 그의 취임식에 쓰일 장엄미사를 작곡한다. 인류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합창교향곡을 작곡하는 같은 시간에 공을 들인 이 작품은 그 깊이와 난이도가 평범함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한 작품이다. 베토벤 탄신 25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작품들을 새로운 접근으로 공부하며 베토벤의 천재성을 마음껏 키워준 후원자들, 특히 루돌프 대공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21세기를 보내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베토벤의 곡을 마음껏 연주하게 길을 열어주는 오늘의 루돌프 대공들 에게 사랑과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며 필자는 그나마 행복한 예술가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민간오케스트라를 꾸려 나가면서 다양한 후원자들을 선한 파트너로 삼은 축복은 연주활동을 폭넓게 할 수 있는 극소수 예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어진다. 자칫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연주활동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후원이 양분의 뿌리가 됨을 절실하게 인지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넘치는 열정의 음악을 표현할 놀이터가 없었을 것이니.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관장님, 미술관 운영 참 힘드시죠

국내 사립미술관의 사업평가를 맡아 가끔 지역 소재 미술관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 지난 주말 화성시 봉담에 있는 한 미술관을 방문하였다. 작가이신 퇴임교수의 작업실 부지 일부를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으로 건축도 짜임새가 있었지만, 수준 높은 전시 또한 감동적이었다. 기획전으로 세계적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의 말년 초상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임종 2년 전부터 네덜란드 사진작가와 협업으로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 작품들인데 그녀가 예술가로 겪었을 숱한 풍상의 무게가 큰 울림을 주었다. 개관 4년밖에 되지 않고 도심도 아닌 곳에 있는 미술관에서 이런 전시를 관람하게 될 줄이야. 수원에서도 차로 20~3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주변에 수원대학교도 있고 융건릉도 있어 관객들이 아주 없는 외진 곳은 아니었다. 공립미술관이 없는 화성시의 유일한 미술관으로서 힘겹게 위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뮤지엄들 중에는 이곳보다도 더 열악한 오지의 공간들이 많다. 오지이다 보니 학예사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숙명처럼 최선을 다하는 관장님들을 만나 뵐 땐 참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공립미술관에서 미처 다 감당치 못하는 영역을 자발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전시콘텐츠를 생산하고 운영을 지속한다는 일은 미술관장의 예술적 안목과 경영철학, 그리고 사명감이 없인 불가능한 것이다. 지역의 사립 뮤지엄들의 여건과 상황들은 대동소이하다. 처음엔 관장의 열정과 사명감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운영은 그리 녹록지 않다. 뮤지엄은 건물과 일정의 소장품만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획전이나 특화된 전시프로그램을 조성하는 운영비, 전시와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들의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가 만만치 않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사업비,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게 된다. 부유한 개인들이 자신의 의지로 뮤지엄을 건립, 운영하는데 정부가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립 뮤지엄은 정부나 지자체의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공적 기능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비영리적 공공재이다. 이 때문에 국고나 공적 자금의 투입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역의 뮤지엄들은 문화유산의 생산자라는 본래 역할 이외에 지역 주민들의 귀중한 문화체험 공간이며 평생학습센터이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 센터이며 높은 수준의 복지인 문화 복지의 허브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전국 1천124개 뮤지엄 중 가장 많은 194개 관을 가지고 있다. 수도권이 가지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많은 문화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수도권이라고 타지역보다 운영이 나은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 지원금 중 비중이 가장 높은 큐레이터나 에튜케이터 등 전문 인력 인건비는 그 일부를 지원하는 데, 제대로 된 전문 인력 육성을 목표하기보다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머물고 있어 최저임금 수준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그들 역시 열정페이를 요구받는 셈이다. 그나마 그들의 계약은 1년 미만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철새처럼 다른 관의 일터를 구해 옮겨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뮤지엄 핵심인력들의 고용안정화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인데 천 개가 넘는 뮤지엄 숫자만 자랑한들 무슨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정부는 한 해가 멀다 하고 뮤지엄 발전방안과 정책을 내놓지만 시원한 답은 없다. 지방정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의 뮤지엄을 활성화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본 미술관 뜰의 감나무엔 언제나처럼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여행과 동네책방

동네책방에서 책을 살 때엔 늘 책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덤으로 따라온다. 그 무언가는 책을 사는 순간보다도 책이 집의 서가에 꽂혀 있을 때 더 진가를 발한다. 온라인서점에서 산 책들을 볼 때는 없었던, 책을 둘러싼 공간의 이야기를 하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나눴던 책방주인과의 대화, 책방의 풍경, 소리 등이 그 책에는 담겨 있다. 책방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함께 이어지며 그 책은 온라인서점에서 배달된 책들 사이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특별한 책이 되어간다. 동네책방에 대한 이러한 경험이 마치 새로운 문화체험처럼 이야기되는 이유는 지역사회에서 작은 책방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변화이기 때문이다. 활자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책을 팔고 사는 책방이야 과거부터 있었겠지만,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최초의 서점은 1880년대 말에 세워진 회동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와 서점, 문구점을 겸했던 회동서관에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불안정한 상황에 처했던 출판문화는 70년대에 들어 경제개발과 함께 조금씩 꽃을 피웠고, 8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 도시에는 대형서점이 중심가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더불어 성장했던 중소서점들은 1997년에 무차별적 할인을 단행하는 온라인서점의 등장으로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동네책방들이 하나둘씩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때 등장한 동네책방의 모습은 참고서를 주로 팔던 과거의 작은 서점과는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색깔이 다양해졌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제주도에서 눈길을 끄는 투어 중 하나가 제주책방여행이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제주에 있는 작은 책방들을 여행하며 제주를 색다르게 만나는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수려한 자연풍광과 테마 박물관들이 즐비한 제주에서 관광객들이 작은 책방을 찾으며 제주의 색과 향기를 만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그러나 지역의 책방들을 찾아 그 공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이 여행을 통해 관광객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제주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 과거에는 속초를 떠올리며 바다와 설악산을 여행지로 생각했다면, 요즘은 그곳에 있는 책방들을 함께 떠올리는 식이다. 관광지를 방문하고 향토 음식을 먹으며 다니는 여행이 도시의 외면을 만나고 오는 것이라면 책방을 통해 이어가는 여행은 그 지역의 내면을 마주하고 오는 것만 같다. 그러한 느낌은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을 방문했을 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정갈하고 자그마한 동네책방에서 책방주인이 선별한 책들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고를 때에는 마치 정성껏 마련한 개인 서재를 탐닉하는 것만 같다. 그곳에서 그렇게 골라온 책들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현실과 여행지를 이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기념품이 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으나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때도 가까이 있는 동네책방은 대안이 되어준다. 저마다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독특한 자기 색을 가진 동네책방들은 그 자체로 일상을 여행으로 변화시켜주는 하나의 문화특구이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은 책방주인의 성향에 따른 책 큐레이션이 기본이다. 단순히 책의 진열이 아니라, 서점마다 독자에게 책을 건네주는 방식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일례를 들면, 전주의 동네책방 잘익은언어들에는 책을 포장해서 진열해 놓는 코너가 있다. 독자들은 제목도 모르고 지은이도 모르지만, 책방주인이 책 속에서 골라 겉포장에 써놓은 책 속 문장을 보고 책을 산다. 어떤 책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고 발췌한 글을 음미하며 여행의 시간을 이어간다. 일상을 여행으로, 또 떠나온 여행을 일상에서 다시 느끼는 경험, 동네책방에 가면 알게 된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다문화 전통혼례

안산은 다문화특구 지역으로 9월 현재 외국인주민 현황을 보면 8만7천359명이다. 내국인이 65만4천668명으로 집계됐으니, 8명 중 한 명이 외국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8만7천여 명의 외국인 가운데에는 등록외국인이 65%로 5만7천51명이고 나머지는 고용허가 방문취업 결혼이민자 유학ㆍ연수 전문인력 난민 방문 동거 영주 등 기타가 3만여 명에 달한다. 105개국 나라에서 들어와 있는 거대도시 안산의 9월 현재 전체인구는 약 74만으로 집계된다. 요즘은 남자가 장가들고 여자가 시집가는 혼인문화의 고정관념이 깨진 지 오래다. 과거 우리 조상은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혼상제를 1969년에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로 정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시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2008년에는 허례허식을 버리고 의식절차를 간소화하여 건전하고 합리적인 가정의례보급과 정착을 위하여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후 지금에 이어지고 있다. 혼례(昏禮)란 해질녘에 여자를 만난다는 뜻으로 女+昏=혼(婚=장가든다)이고, 여자는 女+因=인(姻=시집간다), 즉 음양이 만나는 해질녘에 장가들고 매파에 의하여 여자는 시집간다는 의미가 담긴 혼인례(婚姻禮)를 말한다. 가령 혼인의 조건에는 첫째, 반드시 이성지합(二姓之合)이어야 하고 둘째, 음양의 상합은 남자 16세, 여자 14세로 보나 부모 동의 없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는 남자 18세, 여자 16세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근친의 상중(喪中)에는 혼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전통사회에서의 혼인은 남녀의 몸이 합침(婚姻則男女合體之義)으로써 종족보존이 목적이었다. 전통혼례 때 신랑이 신부집으로 기러기를 들고 가는 전안례(奠雁禮)를 보면 기러기는 새끼를 많이 낳고 위계질서를 잘 지키며 살다가 한쪽이 먼저 가면 다른 짝을 찾지 않음의 상징이다. 또 자손을 많이 보기 위해 함 속에는 부정을 막는다는 붉은 팥을 넣은 주머니와 줄줄이 가지마다 많이 달려나오는 콩을 넣어 자손번창을 애써 기원했다. 혼인의 하이라이트를 합궁례(合宮禮)로 간주하는 것 또한 그만큼 자손을 얻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손을 위한 합궁이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성(二姓)이어야 하고 기러기를 들고 장가들게 하여 다산하도록 하며 함 속에는 콩 주머니를 넣은 것이 아니었겠는가.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는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떠나는 딸에게 신행 음식을 싸고 싸서 보내며 지금까진 부모를 따랐지만, 혼인 후엔 지아비를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고 여자의 삼종을 귀에 쏙 박히도록 주문했을 것이다. 요즘 시대의 혼인은 어떠한가. 우선 혼인을 정할 때는 돈과 명예를 보지 말고 당사자만 보도록 한다. 그리고 필수적으로 건강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최종학교졸업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주고받아 양가에서 서로 충분히 검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예물로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변하지 않음을 상징하는 황금 쌍가락지로 한다면 혼인의 정신이 잘 담긴 것으로 봐도 되겠다. 안산시는 105개국의 다문화가 산다. 한 가정의 어느 한 쪽만 외국인이면 다문화 가정으로 간주한다. 한국으로 시집오거나 외국인과 혼인하면 다문화 가정이라는 뜻이다. 안산시행복예절관에서는 10년째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전통혼례를 시행하고 있다. 주민등본상 부부로 되어 있으면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거나 딸이 고3이 되었어도 형편이 어려워 혼례를 치르지 못한 두 가정을 선별하여 예절관 잔디마당에서 무료로 올려주고 있다. 매우 감동한다. 전통혼례를 올린 부부는 다들 잘 산다고 전해 온다. 살맛 나는 안산시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그래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본격적인 가을이 깊어간다. 예년 같으면 지자체마다 다양한 축제를 개최하고 이에 따라 많은 수도권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을 것인데, 아쉽게도 올해는 동아시아를 휩쓰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손해를 입은 축산농가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사후처리가 필요함은 물론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과 지원도 원활하게 이루어져 도내 축산산업이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라 생각하며 피해 농가에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축제를 취소하였지만 이에 따라 지역마다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축제와 함께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할 기회가 무산되었고 관광수입 또한 줄어들어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던 많은 상인과 농업, 수산업 종사자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의 활성화와 온라인 쇼핑몰 등을 통한 다양한 판로개척을 통해 손실을 보전하고 농수축산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행정기관에서는 홍보 및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수심에 빠진 농수축산 농가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축제와 관련한 문화ㆍ관광분야 기업과 예술단체의 피해에도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축제가 취소됨에 따라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해온 많은 기업과 예술단체들이 국가적 재난에 축제가 취소된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지만, 사전에 투입된 인력과 시간, 노력이 무산된 것은 금전적 피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지역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및 공연예술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수년간 태풍 및 폭염으로 인한 야외 축제 및 행사의 취소, 농축산 관련 전염병이나 메르스 사태로 인한 전국 축제의 취소 등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축제가 취소될 때마다 축제관련 기업이나 예술단체는 고스란히 그 피해를 감당해야 했고 때론 행사 취소에 따른 적자와 기회비용의 상실을 통해 폐업하거나 예술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최근 경기ㆍ인천지역의 많은 축제들이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취소 및 축소 운영되면서 축제와 관련한 기획사, 시설 및 장비업체, 문화예술단체 등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축제가 취소됨에 따라 축제 준비에 들어간 시간과 인력 그리고 사전 연습 등에 대한 비용 인정과 기회비용 상실에 대한 보상체계가 명확하지 않음에 따라 민원과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문화기획 및 축제대행을 담당하는 기업과 지역 예술단체의 위축은 지역 축제는 물론이고 문화예술 생태계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기에 지자체나 문화재단 등 축제 주체들은 축제 무산에 따른 사후 평가 및 대책을 세울 때 이런 2차 피해에도 관심을 갖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민과 관광객이 즐기고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축제에는 많은 전문가와 예술가들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들이 쌓아온 네트워크와 콘텐츠는 지금까지 지역의 축제브랜드를 구축하고 축제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축제관련 기업이나 단체를 단순한 대행업체나 하청업체라 생각하기보다는 협력자요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축제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상황에 대비한 행사 취소 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가입, 계약서에 사전 준비와 연습에 대한 비용 인정 등을 명확히 하는 등 현장의 문화기획자 및 공연예술 단체를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심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지역의 축제 및 문화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신뢰 관계를 조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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