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와 함께해야

권력에 따라 춤추고 예체능의 놀이터처럼 변해버린 한국의 방송은, 철 지난 정보를 제공하며, 변화라며 정도나 표준의 일탈을 서슴지 않고, 강자에 굴하듯 객관성을 버리는 태도마저 보이고 있어, 국민의 화합을 저해하고 언행마저 가볍게 만들고 있다. 방송의 새로움은 놀고먹자는 것과 준비 안 된 자들의 거침없는 진출이다. 예체능인들과 주변인들의 오락에 요리와 음식, 언제부턴가 개와의 공생마저 중요한 방송거리라며 주요 시간대를 점하고 있다. 식상하기만 한 출연자들의 놀이와 수다, 고향 엄마의 요리 솜씨를 망각한 듯, 이름만 고상한 세프라는 감히 상대도 되지 않을 자들의 요리자랑에 방송시청은 안녕이다. 잘 시청하지 않는 국민의 수준을 이해한 듯 방송은 관계자들만이 북 치고 장구 치는 놀이터로 변질되어 소중함을 몰랐던 자연처럼 파괴됨을 느낀다. 방송이 올바른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충분한 훈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 받는 정보전달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일천한 경험에 준비 안 된 젊은 남녀의 방송 진행은 단순전달에 언어조차 가벼워 어설프기만 하다. 인기인을 내세우는 손쉬운 방법으로 그저 놀고 먹거나 가치 없는 정보나 전달하는 방송과 출연자들에 허탈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분노는 남아있는 애정의 표현으로 그마저 없어진다면 방송은 영영 국민과 이별일지도 모른다. 나훈아가 나온다 하여 오랜만에 음악방송을 시청했다. 대중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다 자평한다. 노래 외에도 연출 등 전체적으로 훌륭하여, 그간의 개그 희극 프로그램처럼 가수들의 노래보다 불필요한 양념만을 선사하는 주객이 전도된 볼썽사나운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훈아의 언어와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수답게 무대에서 노래와 함께 말하고 있다. 일탈하지 않고 가수의 길만을 걸어온 자의 깊은 삶에서 나오는 발언이어서인지 무겁게 다가온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망국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위정자며, 국민의 눈높이를 외면하는 KBS며, 근거 없는 소설을 쓰는 기자며 그의 일침이 노래가 주는 감동과 똑같은 무게로 전달된다. 늘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단순한 재미나 선사하는 오락예능프로그램이 아니라 예체능인은 자신의 무대에서 능력으로 말해야 함도 일깨워준다.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스포츠인은 스포츠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함을 말이다. 국민들은 나훈아에 열광하듯 또 다른 출중한 가수를 갈망한다. 자신들의 세계를 갈고 닦아 결실을 이뤄내면 누구라도 나훈아와 같은 무대를 연출하며 국민들의 환호를 받을 것이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독감 예방접종, 올해는 더더욱 필수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에 독감 유행까지 겹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독감의 증상이 유사해 코로나19를 독감으로 또는 독감을 코로나19로 오해할 때 치료에 혼선이 올 수 있고, 의료기관에 유증상자가 급증하는 등 더 큰 혼란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매년 겨울에 찾아와 우리에게 감기 중 하나로 오인하기 쉬운 독감, 일반인에게는 독감으로 알려졌지만 정식명칭은 인플루엔자(Influenza)이다. 코로나19와 같이 공기 중 비말을 통해 전파되는 호흡기질환으로 기침과 고열 등 증상이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바이러스로 인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의 유형에 따라 A, B, C형으로 구분되고, 주로 A형과 B형이 사람에게 인플루엔자를 유발한다. 유전자변이를 통해 매년 유행을 초래하는게 특징이기에 독감 예방접종을 작년에 했더라도 올해 다시 접종하는 것이 좋다. 인플루엔자는 감염되면 1~4일 후 38도 이상의 발열, 두통, 근육통, 마른기침, 코막힘, 오한 등의 증상을 보인다. 젊은 층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자연치유를 기대할 수 있지만, 어린이, 노령, 만성질환자 등은 합병증 발생 등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무서운 점은 합병증이 동반되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주요 사망원인으로는 호흡기 합병증(주로 폐렴)과 심폐질환의 악화 등이다. 드물지만, 호흡기 이외의 중증 합병증으로 근육염, 횡문근융해증, 심근염, 독성쇼크중후군, 중추신경계 이상, 라이 증후군 등이 있다. 이러한 합병증 또한 65세 이상의 고령자, 심장 또는 폐질환, 당뇨, 신기능 이상, 면역저하와 같은 특정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하며 2세 미만의 영아 및 임신부도 인플루엔자 합병증 발생의 위험군이다. 흔하게 발생하지만 심각한 합병증을 가진 독감이기에 국가예방접종 또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부터는 그 범위가 더 확대돼 생후 6개월부터 만 18세 어린이와 청소년, 만 62세 이상 고령층, 장애인(1~3급)은 물론 임신부까지도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아직 예방백신이 없지만 독감은 백신접종으로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독감백신은 통상 접종 2주 후부터 예방 효과를 보며, 6개월간 면역이 유지된다. 따라서 늦어도 11월까지는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독감백신을 미리 접종하는 것이 좋고 특히 고위험군인 65세 이상 고령자, 임신부, 만성질환자 등은 필수적으로 접종해야한다. 홍은희 한국건강관리협회 인천지부 원장

[함께하는 인천] 지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2020년 7월에 들어서자마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중국발 저기압성 집중호우, 연이은 태풍 마이삭, 하이선으로 전국에서 시군 단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강풍으로 바닷물은 육지를 올라타고, 폭우로 산사태가 속출하고 비탈면과 옹벽이 무너지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각 지자체에서는 즉각 현장기동반을 운영하는 등 응급복구와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다. 발 빠른 일부 지자체장은 시군 본청 상황실이 아닌 현지 읍면동 사무소와 피해현장에서 지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자체장이 간과하는 게 있다. 각종 재난으로부터 관할 모든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복지라는 것을 잊은 듯하다. 사회복지란 한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향상과 행복을목표로 하는 직접간접적인 방책을 통틀어 일컫는다. 필자는 광역자치단체 도시계획위원회를 이끈 적이 있다. 도시에 방재의 개념을 융합시킨 첫 주자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건설업자들이 토지를 점령하고 있다. 개발이 불가능한 토지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 같은 해 시군과 밀착해 가능하게 만든다.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을 산출하는 게 경제의 원리지만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지가 오래다. 국토환경성지도와 토지적성평가도가 양호한 토지가 시행사의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 한다는 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해당 지자체에서 기준을 정하고 규제하는데도 각종 위원회를 통과시키면 끝이다. 결국 집중 호우나 태풍에 맥없이 허물어져 막대한 재정적 손실과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도로를 지나다 보면 옹벽 높이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다. 임상이 양호한 산림에 물류창고,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업자들의 양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규정을 강화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지자체별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기준을 설정운영하고 있다. 도시화 진행에 디딤돌 역할을 하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예방하는 위원회가 돼야 한다. 표고와 경사는 기본이고 국토환경성지표와 토지적성평가도를 엄격한 심의 잣대로 평가해 개발과 재난안전이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 집중 호우와 태풍이 닥칠 때마다 예산과 조직 타령을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재난대비는 일상에서 생활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자체에서는 원칙에 입각한 행정처리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건설 업자들이 언감생심을 아예 근절시키는 길만이 점차 자연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전하고,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은 누구든 어디서든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 국가가 난개발의 대명사에서 재난안전에 강한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자체장과 공직자들의 사명감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김진영 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함께하는 인천] 개성 있는 이름 찾기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는 지난 7월 인천시 남쪽 5개 구(區)인 중구동구미추홀구남동구연수구의 110여 개 동네 이름 유래를 밝힌 책 미추홀은 물골이다를 펴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첫판으로 인쇄한 1천권이 금세 동나는 바람에 요즘 서둘러 2판 500권 인쇄를 추진하고 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중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미추홀을 책 제목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유는 미추홀구 때문이었다. 이번 책 내용의 대상으로 삼은 5개 구의 이름 가운데 그 의미의 범위가 가장 넓어서 전체를 대표하기에 적합한 이름이 미추홀이었기 때문이다. 미추홀구는 이전의 남구(南區)를 대신해 2018년 7월1일부터 새롭게 쓰이고 있는 이름이다. 2천여 년 전 비류(沸流)가 처음 자리를 잡은 미추홀의 중심이 지금의 문학산 일대였고, 그 뒤로도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인천의 중심은 줄곧 관아(官衙)가 있었던 지금의 미추홀구 관교동문학동 일대였다. 미추홀구라는 이름은 이에 더해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인천시 북구가 1995년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눠진 것과 같은 식이다. 하지만 미추홀구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남구라는 개성 없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 찾아가진, 이름다운 이름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인천에 처음으로 구(區) 제도가 실시된 것은 1968년이다. 그때 인천은 중동남북구로 나누어졌다. 동네마다 갖고 있는 역사나 특색은 철저히 무시한 채 그저 그때의 방위(方位)에 따라 무미건조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여느 도시에나 흔히 있고, 있을 수 있는 이런 이름은 사실 이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동네든 무릇 이름이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추홀구가 남구를 대신한 것은 바로 이렇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이름을 찾아가진 좋은 사례이다. 이런 면에서 아직 인천에 남아있는 개성 없고, 실제 방위와도 맞지 않는 구 이름-중구동구서구-들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이름을 새로 찾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마침 미추홀구가 그 훌륭한 선례(先例)를 보여주었으니 그대로만 따라 하면 그다지 어려울 일도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이런 뜻에서 인천시가 이들 구에 어떤 이름을 새로 붙이면 좋을지 시민에게 물어본 일도 있었다. 이때 중구는 제물포구, 동구는 화도진구, 서구는 연희진구가 좋겠다는 등의 의견들이 있었다. 시민의 뜻을 좀 더 물어보고, 미추홀구가 먼저 겪었을 문제들을 잘 보완하면 뜻깊고, 입에 올릴 때 감칠맛이 나는 좋은 이름들이 생기지 않을까.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 인천] 유령대학 학위 장사, 일그러진 학벌사회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미 연방정부가 인가한 대학이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이 대학은 30년 전통에 전 세계 24개국에 글로벌 캠퍼스가 있는 명문대로 전직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원 등 쟁쟁한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다. 1년 동안 4학기 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소 4년이 걸리는 정규학사 과정을 2년에 마칠 수 있고, 석사과정은 1년 3개월, 박사과정은 1년 8개월 만에 학위취득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에, 미국에 갈 필요도 없다고 한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할 이 대학의 이름은 바로 템플턴대학교이다. 미국 명문대학의 학위를 받고 싶어 했던 이들은 이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그중에는 유력 정치인이나 방송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론을 통해 템플턴대의 우수한 교수진과 수준 높은 수업을 칭찬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템플턴대학교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 유령대학이었다. 이사장 김씨가 캘리포니아에 템플턴대학교라는 이름의 일반회사를 법인으로 설립한 뒤, 현지 인가받은 학교라고 속여 학생을 모집하고 학비를 받아온 것이었다. 또한 김씨는 총장이사장이라는 허위 직함으로 버젓이 사회 지도층 행세를 하며, 각종 대외활동에 나섰고,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종잇장에 불과한 학위장을 미끼로 2015년 5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총 199명으로부터 10억원이 넘는 금액을 편취한 잘못으로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학벌보다는 실력으로 경쟁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틀에 박힌 미사여구만으로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학벌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이력서의 최상단을 차지하는 학력란부터, 이성을 소개받을 때도 늘 따라붙는 어느 대학 나왔어?라는 질문까지, 학벌이 곧 신분처럼 취급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심지어 결혼을 미끼로 이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 중 상당수가 명문대 출신임을 가장하고, 가짜 졸업장이나 가짜 학위증명서를 만들어주는 사업들까지 번성할 정도이니 대한민국은 가히 학벌공화국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템플턴대학교를 거쳐간 학생들 역시 선량한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다. 그들은 학벌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대신, 손쉬운 방법으로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의 행위는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것이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할 것을 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산업혁명기의 점수별 줄세우기를 떠올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성실한 노력보다 간판과 학맥이 한평생을 좌우한다는 학벌주의 시스템이 존속하는 한 제2, 제3의 템플턴대학교가 어디선가 또 나타날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함께하는 인천] 고독한 마라토너

올해에 나의 첫 시집 질그릇과 옹기장이와 이를 영어로 번역한 Clayware and a Potter가 출간됐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들을 보며 내가 가장 처음 글을 쓴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일기를 숙제로 내어 우리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선생님께서는 40여명의 일기를 모두 읽어보시고는 잘 쓴 부분에는 빨간색으로 물결무늬의 밑줄을 쳐 주셨다. 며칠에 한 번은 잘 쓴 일기를 전체 학생 앞에서 발표하게 하셨다. 당시 우리 반에는 서울대학교 국어과 교수의 아들도 있었는데 그의 부모님은 그가 쓴 일기를 모아 그의 생일에 맞춰 생일선물이라는 책으로 발간해 준 일도 있었다. 내가 처음 일기를 쓸 때는 그날 일어난 일들을 시간대별로 기술하고 나서 잘 썼다고 혼자 자부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글에 대하여 조금 이상하다며 개선할 점을 지적해 주셨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날에 발생한 가장 중요한 일을 상세히 쓴 다음에, 그 사건에 대하여 네가 느낀 바를 써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글 쓰는 요령을 터득한 나는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약수터에 올라갔던 일과 그때 느낀 바를 적었더니 한 페이지 전체에 빨간 물결무늬와 동그라미가 쳐진 일기장을 돌려받고 또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낭독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선생님은 또 우리에게 동시도 써 보도록 시켰다. 방법이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떤 사물을 보고 쓸 때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적지 말고 다른 눈으로 보고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기린의 목은 전기선대 고동색 얼룩진 전기선대(전봇대)라는 동시를 적어냈고, 교실 뒤의 게시판에 한동안 붙여졌다. 학년이 바뀌고 5학년이 됐을 때 그 선생님의 동시집 바닷가 게들이 나왔다. 나는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의사가 돼 대학병원에 근무하기 시작하고서야 신문에 칼럼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첫 동시를 쓴 지 오십여 년이 흘러 내 시집이 나온 것이다. 그때 내게 일기를 쓰라고 시킨 그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검색해 보았다.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 후 수련을 시작하던 해에 59세로 작고하신 것을 알게 됐다. 그의 동시선집을 주문했다. 1968년의 바닷가 게들과 1980년의 장다리꽃밭이 한 권에 묶여 있었다. 오십여 년 전에 읽었던 아름다운 동시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평론가 이용희가 쓴 표지를 옮긴다. 윤부현은 1957년 등단 이후 살아생전 꼭 30년간 창작활동을 하면서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동시집을 남겼다. 하지만, 시단이나 동시단 어디에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교직 생활을 하면서 고독한 마라토너처럼 시 쓰기와 동시 쓰기에만 충실했다. 그의 묘지에 세워진 시비에 적힌 달걀을 소개한다. 껄쭉껄쭉한 새 도화지 예쁘게 말아 논 그 안에는 푸른 바다가 하나 가득 출렁이고 있었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인가 정부인가

국민이 주인이 되자는 민주주의 운동은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며 다수의 민을 지배해 온 사회를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권력자에 대해 민이 느끼는 억압이나 압박이 해소되리라는 기대 속에서 대가를 지불해가면서까지 추구해온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이전 정부에 비해 민이 주인 된 사회를 더 구현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일반인들이 경제정책에 부담을 느끼는 삶은 아니었다. 현 정부의 역할은 없었지만, 국민 모두가 좀 더 나은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일부 국민들의 경제행위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차분한데, 위기라 과대포장해 제도를 바꾸고 세금이라는 칼을 들이대며 전에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세금이 진정 필요한 곳에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권력 재집권을 위한 도구처럼 사용된다는 평가가 많으니 증세 저항은 당연하다. 선을 행하더라도 강제적 방법은 옳지 않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현 정국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집단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시대로의 회기와 같다. 권력을 쟁취하더니 자신들이 투쟁할 때의 구호와는 정반대로 무엇이든 법을 들이대며 강제로 밀어붙인다. 핑계는 하나, 너희는 나빴으니 지금도 나쁜 것이고 우리는 정의로웠으니 지금도 정의롭다는 것이다. 민을 위한다며 민을 압박하는 형국으로, 민이 다시 정부의 아래에 놓였다.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이란 법에 정해진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며 모두를 위해 내려야 하는 결정일 것이다. 오히려 비민주정부 시절에는 국민들의 비판이나 저항을 두려워해 권력 행사에 신중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권력은 여론을 고려하기는커녕 법이 보장하는 권리라며 국민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한을 마음껏 행사한다. 타의 인사에는 공정성을 들이대며 재단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인사에는 정치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며 원하는 대로 밀어붙인다. 부당함을 감추는 옹색한 변명이다. 타 조직에 들이대는 부당함의 기준이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에 설득력이란 없다. 정치철학을 같이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면 정치철학을 공유하지 않는 국민은 어찌할 셈인가. 그렇다면 모든 기업이 회사의 철학을 내세워 직원 채용에 자체의 기준만 적용해도 될 일 아닌가. 경영의 성패에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기업 등의 민간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공무를 벗어난 일탈행위일 수 있다. 정부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정도의 관리로 충분하다. 민주 정부가 민이 주인인 사회를 받쳐주는 것이라면 정부가 관여할 일을 엄격히 제한하고, 지금처럼 국민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국민들 간의 다툼이 조정되지 않을 때 개입해 공정하게 처리하면 된다. 계급사회의 백성을 지배하던 관료도 아니고, 여느 직종처럼 그저 평범한 일을 하는 정치가나 공직자들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필요 이상으로 먹여 살려야 하는지 이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구현일듯싶다. 그 어떤 공직자의 일도 일반인의 일보다 가치 있을 수는 없다. 만민이 평등한 민주국가에서의 애국자는 공사 구별 없이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자들이다. 모세종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언택트 시대, 노인들이 불안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나온 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우리 사회 곳곳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인과 장애인, 노숙인 등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은 5개월째 문을 닫아야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노인복지관과 노숙인 이용시설, 장애인 보호시설 등 사회보호계층이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에 휴관을 권고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상호작용은 주로 대면 즉 접촉(contact)을 통해서 이루어 졌으며, 얼마나 Contact를 잘하는지가 사회복지사의 역량과 기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근래의 사회복지 서비스는 비대면, 즉 언택트(untact)로 이루어지는 상황이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라는 언택트(untact) 상황 속에서 특히 고립되기 쉬운 노인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노인 학대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2019년 노인학대현황보고서에 의하면 연도별 노인학대신고접수 건수는 최근 6년간 평균 8.6% 증가하였으며, 인천 또한 학대사례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의 확장 시기인 최근 6개월간 학대신고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더욱 증가된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적 관계는 개인의 정체성과 타인과의 연결성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고 이런 연결이 긍정적인 감정과 안정감을 불러온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이같은 연결은 끊어진 상태다. 특히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생활환경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서비스 제한과 이동제한 같은 격리조치는 노인들을 집에만 있게 하면서 보호자 및 배우자를 대면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가족 간 갈등상황과 스트레스 요인 증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학대유형 중 자기방임학대에 해당하며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는 노인자살문제로 연결될 개연성이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국가 평균보다 2.1배 높으며 노인의 자살률은 2.9배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자살노인 성비 중 70%가 남성이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자살한 남성노인의 가족형태는 독거인 경우보다 동거 가족이 있는 경우가 70% 넘게 분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자살의 원인이 고독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관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한 남성노인의 연령분포로 보면 60, 70대가 전체의 23정도로 집중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던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상황에서 본인이나 가족들이 서로 반기지 않는 상황과 관련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진 부양자의 심리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가운데 부양부담이 더해져 피부양자인 노인들은 정서적인 위협이나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노인학대 예방을 위해서 위기대상 노인뿐만 아니라 가해자라고 말하지만 피해자일 수 있는 부양가족을 위한 통합적인 지역사회 자원 연계망을 강화하고 실천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젊은 베르테르와 자살

작년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괴테(1749-1832)가 대학을 졸업한 곳이라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었고, 그가 즐겨 다녔기에 파우스트에도 등장하는 술집에서 마시기도 하였다. 내가 학생시절 읽으며 가슴 아파하였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은 그가 친구의 약혼녀 샤르로테에 대한 자신의 실연체험과, 그와 함께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공부하던 한 학생이 유부녀에게 실연당해 자살한 사건(1772)을 소재로 써서 1774년 발표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가 상속사건을 처리하다가 약혼자가 있는 처녀 로테를 사랑하게 되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순환성성격자 내지 양극성정동장애 환자였던 괴테가 우울했던 시기에 느낀 정서로 주인공의 심정을 묘사하였는데 독자는 이러한 병적 측면을 알 수가 없었기에 작품에 매혹되었고 서유럽 청년들이 소설 출간 이후 30년간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유행처럼 번졌다. 근대 철학자 중에 쇼펜하우어는 자살할 권리가 있음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는 점이다고 자살을 옹호하였으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는 자살에 반대하였다. 최초로 자살을 관대하게 용서해준 법이 그 유명한 나폴레옹법전(1804)이다. 그 이전까지 천 년간 내려오던 자살 조항이 모두 삭제된 이 법의 공표 후에 유럽 각국은 도미노처럼 법전의 자살조항을 덩달아 삭제하였다. 그러나 아직 서양에서는 종교적, 사회문화적으로 수치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남아있다. 즉, 자살한다는 말을 할 때 저지른다, 범한다(commit)는 단어를 붙여 자살을 저지른다(commit suicide)라고 표현하고 있다. 1897년 자살론이라는 책을 출간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개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자살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3가지 자살유형을 들었다. 첫째, 이기적 자살로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융화하는 정도가 부족한 경우(편집형 조현병, 우울증 등). 둘째, 이타적 자살로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지나치게 융화결속되어 그 사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심정이 되는 경우 (육탄테러, 일본의 할복자살). 셋째, 무통제적 자살(anomic suicide)로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적응이 갑자기 차단되거나 와해된 경우이다(존경받던 인물이 갑자기 지탄받게 된 경우 등). 그는 개인이 사회집단과의 결속에서 끊겨나온 결과 생기는 사회심리적 고립현상을 아노미(anomie)라 하여 자살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였다.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6.6명으로 OECD국가중 1위이며 OECD평균(11.5명) 보다 2.1배 높다. 한때 내가 팬이었던 유명 연예인의 자살 뒤에 유가족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보이는 자살이 이어졌던 안타까운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는 평균 600명 자살의 베르테르 효과가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2013 연합뉴스).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비단 연예인뿐이겠는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부터 사람의 생명을 더욱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하겠다고 다짐하여 본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바른 교육만이 인간의 일탈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저 지나쳤을 타인들에 민감해졌다. 감염의 우려 탓에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꺼려지고, 마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사람을 안 만나며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우리 모두 타인에 노출된 포로나 다름없다. 아파트라는 대규모 공동주거시설의 일상은 입주민뿐 아니라 급증한 배달업무 종사자 등도 함께 타야 하는 엘리베이터 이용에 밀접 접촉을 피할 길이 없다. 타인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스크는 물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건만, 멈춰야 할 사적인 대화를 거리낌 없이 하는 자가 많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자도 있다. 대화나 기침에서 나오는 침방울이 감염원인데 그럼에도 타인이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전화나 대화를 하는 자들은 여전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커피숍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교육이 어떻게 된 것인지, 타인의 배려 속에 누리는 것이 나의 자유임을 잊고 많은 자가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 전파력이 높은 탓에 신규확진자의 동선이 방역의 주요 대상이다. 확진자는 격리도 되고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누구라도 확진 판정을 받으면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다. 확진자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모든 동선을 빠짐없이 밝혀야 하니, 사생활을 감출 일도 있고 추후에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생각하여 대강의 것만을 말하고 싶어질 수 있다. 공포에 빠져있을 확진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비정상이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의 동선 파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닐 수 있는 확진자가 좀 더 안심하고 동선 모두를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짓말에 비난받아 마땅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사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비난에 가세하는 자가 급증하고 있다. 모두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정직함은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만들어내야 하는 인간의 기본품성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바르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내고 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법과 질서, 도덕과 양심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교육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을 부추기는 승리만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무한한 인권을 누리고 불편 없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주장하며 자제나 절제는 자유나 인권의 구속인 양 비이성적, 비인간적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개인의 불편한 삶은 사회의 잘못으로 몰아가며, 개인의 노력은 뒷전으로 하려 한다. 정치권이 부추긴 측면도 크다. 결국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많은 곳에서 대립과 반목으로 충돌과 일탈 행위들이 벌어지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믿기 어려운 가정 내 폭력, 성범죄, 살인사건 등 인간으로서 벌이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들이 일상처럼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온 국민이 다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한국의 방송은 범죄를 재구성이라도 해주듯 반복적이며 자세하게까지 전한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데 방송이 늘 가르쳐 주니 마치 부정행위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양새이다. 퇴색해가는 방송의 역할이지만, 부정적 일색인 뉴스보도는 재고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인간의 일탈을 막아내야 할 교육이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보고 배운다. 바른 교육 없이는 바른 인간을 만들 수 없다. 비인간적 행태의 사회문제를 줄일 해법은 바로 교육에 있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인 돌봄 정책

매년 6월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기념행사를 주관 하고 있다. 올해도 코로나 19로 인해 행사 스텝과 참석자를 50명 정도로 제한해 행사를 진행했다. 기념행사의 모든 순서들이 유투브 채널을 통해 송출됐고, 전국에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 및 시민들 2천명 이상이 시청하면서 과거에 진행한 오프라인 기념행사보다 더욱 효과있다는 평이다.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집해 형식적인 축사와 지루한 내빈소개, 의전 등으로 행사의 주객이 전도돼 원래 행사의 의미가 퇴색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 행사를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각종 기념식이나 행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과 삶의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던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된 것이다. 일반화되고 보편적인 사고에 대해 새로운 정상을 얘기하는 뉴-노멀(New-Normal)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 가운데 필자의 노인복지현장 또한 복지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고 예고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최근 정부는 지역사회보호를 기반으로 하는 통합돌봄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활용한 커뮤니티 케어와 비대면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안부 및 안전 확인, 서비스정보 제공 등은 기존의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돌봄 서비스를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부분은 일상생활 가운데 가사 및 정서 지원 등의 생활 밀착형 서비스다. ICT 기술을 활용한 정기적 혈압, 맥박 체크와 같은 건강관리, 심장박동이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을 때 컨트롤타워로 응급 신고를 보내는 지금의 형태는 주로 응급 상황 지원 측면에만 한정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ICT기술에 대한 노인들의 정보접근성 문제와 스마트폰 보급률이다. 최근의 원격진료를 통한 비대면 의료서비스 지원 및 계획 또한 노인의 신체 및 정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인 것이다. 최근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의 재확산이 되면서 재난에 가장 취약한 노인은 다양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에 대한 노인의 취약성과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서만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역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이 코호트격리나 보호자 면회금지가 장기화 될 수 있는 상황으로 이는 가족들의 왕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입소노인의 우울 및 스트레스 증가와 불안장애 등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정의 달을 맞아 어버이날 요양원에 계신 부모를 찾아 뵙지 못하는 상황은 보호자뿐 아니라 노인들에게는 깊은 슬픔이다. 이에 개별 요양원의 노력으로 스마트폰과 테블릿PC를 활용해 입소노인과 보호자간의 화상통화 등의 소통기제를 마련하고 야외 천막에서 비대면 방식의 면회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노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부차원의 맞춤형 돌봄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보다 적극적역동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정책적인 방안과 실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아이디어를 처음 갖고 나서 논문이나 칼럼의 원고를 쓰기 시작하기까지 며칠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로 미루곤 한다. 서론이나 글의 도입부에 무엇부터 써야 할지 첫 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럴 때마다 논문이나 수필을 쓰는 데에 도가 통하거나 깨달음을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자로나 문인으로나 대성할 수 있을 터인데하는 생각이 든다. 다녀본 절 중에 가장 아늑하였던 곳은 가람의 배치가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마루로 연결되어 있으며 툇마루가 있어 앉아서 메모지에 글도 끄적거릴 수 있었던 봉정사 영산암이었다. 이러한 아늑함 때문이었는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승려를 통하여, 또 산사를 둘러싼 자연 풍경을 통하여 삶과 죽음, 해탈과 자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인가?는 선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로서, 불법의 요지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제자가 스승에게 이 질문을 던졌으나 스승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 곧이곧대로 친절하게 알려주기는커녕 각각 다르게 대답하였으며, 제자를 서판으로 후려치기도 하였다. 달마는 실존인물로서, 520년경 중국에 도착하여 기존 불교인 교종과는 전혀 다른 선종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번역은 물론 대중설법도 하지 않았지만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이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작성된 여러 종의 『달마어록』이 유포되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성(自性)이 없다. 그것은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그대로 비어 있다. 본래 온 곳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니다.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사라지는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곧 깨달음이다. 그런데 왜 많은 수행자가 이 간단한 깨달음의 길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 달마가 지적한 대로 그들이 깨닫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온전한 체득, 자아의 존재를 말끔히 무화시키는 것만이 해탈의 길, 대자유의 길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만, 깨닫고자 하는 자기의 의지마저 먼저 지워버리는 경지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의사로서 신들린 것처럼 칼춤을 추며 수술을 멋지게 하고 싶었다. 해부학자로서 시신을 해부하여 수술에 필요한 구조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어 유명해지고 싶었다. 논문을 쓰는데 도가 통하여 서론과 고찰을 거침없이 완성하고 싶었다. 소재만 잡으면 몽테뉴처럼 후대에 남는 수필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고 싶었다. 이제 은퇴가 삼 년도 남지 않은 이때에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최고의 외과의사, 최다 논문의 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먼저 버려야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네가 장황하게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연유는 무엇인가? 아마 여전히 글을 제대로 다루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사회단체 소기의 목적달성은 어디까지

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 침략의 잔재를 청산하고 과오를 바로잡겠다며 사회활동에 전념하는 자들이 있다. 이전 정부의 잘못을 조사하여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나아가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며 활동하는 단체, 노사관계에서부터 여성, 어린이 등의 약자, 나아가 동물의 삶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나서는 수많은 단체가 있다. 이제는 학창시절의 인간관계도 밝혀보겠다며 나서는 자들이 있으니, 언제가 조상의 잘잘못도 따져보자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그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은 중요하다.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나서는 행위는 정의의 실천이요 용기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민도 존중한다. 어느덧 한국 사회가 부유해져 다소의 기부나 봉사에 인색해하지 않아, 각종 사회단체에 도움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TV의 공익광고라며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차마 보기 불편한 장면을 연출하며 후원을 요구하는 광고도 부쩍 늘었다. 명분만 잘 만들어 내면 사회단체를 결성하여 뜻있는 자들의 후원을 받아 어엿한 활동을 전개하며 일터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분명 현대사회의 발전에 시민들의 의식이나 사회활동의 역할은 지대하여, 그 덕에 부조리한 사회가 일정 부분 개선되고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덧 각 단체가 사회에 던지는 명분과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볼 시점이 온 듯하다. 피해나 불이익에 신음해도 개인의 힘은 미약하여 이를 사회에 알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정의감에서 출범한사회단체에 국민도 성원을 보내왔다. 작은 출발이 거대한 사회단체를 이뤄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체설립에는 목표가 있을 터, 활동이 궤도에 올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판단된다면 그 시점에서 역할의 종료를 선언하고 퇴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도 충분히 다한 역할을 지속해 나가려 한다면 국민에게피로감을 주며 그간의 공과마저 왜곡시킬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사회 분열을 감수하며 단체에 끌려가는 상황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단체의 사업이 늘 순항할 듯 보여도 정의에 반하는 한순간의 실수에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단체는 불의에 경종을 불러일으켜 사회가 바르게 기능 하도록 하는 토대를 열면 되는 일로, 완전무결한 해결을 얻어낼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피해단체를 위해 많은 국민이 아낌없는 성원을 보여 왔다면, 단체들도 일정한 시기가 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시점에서, 그간의 성원에 고맙다며 머리 숙이고, 더 이상 자신들의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칠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며, 모든 것은 가슴에 담고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목적달성을 선언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야 국민도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정의연이라는 단체의 활동은 커다란 성과를 이뤘다. 위안부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일본의 만행을 충분히 꾸짖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이제는 정부에게 국제적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고 그간의 업적을 유종의 미로 장식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직도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시작해야 할 사회운동은 많지만, 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활동이 고이는 일 없이 순환되는 구조 속에서작동되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아직도 수술을 하십니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료 교수가 다가와서 대각선으로 앉았다. 나보다 아래 연배인 그가 내게 아직도 수술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하며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전공의 수련을 받던 시절, 그러니까 약 30년 전에 강남이 화려해지고 소득이 올라 윤택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을 때 유행했던 아직도 시리즈 질문이 있었다.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강남으로 이사 안 했나?), 아직도 테니스 치십니까?(골프 안 치나?), 아직도 그 여자와 사십니까?(젊은 여자와 재혼 안 했나?)가 그 시리즈였다. 내가 어제는 광대뼈 골절 3개, 코뼈 골절 두개로, 수술 5개 했는데요 라고 답하자, 그는 교수님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으셨지요? 저희 배울 때는 외과교수님들이 50대 후반이 되면 수술 거의 안 하고 쉬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옛날 어느 큰 절에 어른이 되시는 스님이 계셨어요. 그 스님은 연세가 높아져도 밭에 나와서 일하셨지요. 노인이 땀 흘려 일하는 게 안쓰러워서 어느 날 제자들이 그 스님이 사용하는 쟁기와 호미 등의 농기구를 숨겼어요. 그랬더니 그 노스님은 그날 밥을 전혀 드시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제자들은 숨겼던 농기구를 다시 내놓았답니다. 그 스님처럼 저도 밥값은 하고 살아야지요 내가 말한 그 스님은 평생 밭을 갈고 참선하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로 유명한 백장선사(749-814)이다. 전공의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일 수술은 코뼈 수술로 비개방교정술을 시행 받을 환자 2명, 턱뼈 골절로 개방교정술을 받을 환자 1명입니다. 이 경우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준비된 수술만 하고 나오면 되지만, 그 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은 내게 수련을 받는 제자들의 몫이다. 수술 전에 마취에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여 그 결과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과정을 설명하고 수술동의서를 받는다. 수술실 입구로부터 환자를 수술실로 데리고 이동하여 수술대에 눕히고는 가슴에 심전도를 붙이고, 팔에 혈압계를 감고, 손가락에 맥박산소측정기를 꽂는다.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시키는 동안 옆에서 줄곧 대기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수술하는 동안 조수를 서며 피를 닦고 실을 자른다. 수술 후 환자를 깨우면 회복실에 데려가고, 병실에 올라가서도 수술 후 처방을 입력해야 일이 끝난다. 나의 제자들은 농기구를 숨겨놓는 백장선사 상좌들의 마음으로 나의 수술을 돕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백장은 자신이 깨달은 정법안장을 자신의 노동으로 보여주었듯이, 나도 삼십여년간의 수술로서 깨달은 나의 수술 기법을 내게 배우는 제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전해주려 한다. 그 늙은이는밭을 떠난 적이없었는데도밭에 얽매이지 않았다는데낡은 이 몸은늘 떠나려고 했는데도얽히고설켜서발목의 거미줄을 훑어버리려버둥거리지만쇠사슬처럼점점 조여들기만 졸시 「백장과 나」가 생각났다. 일하면서도 그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 백장선사 같은 도인들에 비해, 세속에 살면서도, 벗어나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일상에 아등바등 얽매인 마음을 그 늙은이가 경작을 통해 해방해탈 시켰듯이, 나도 마지막까지 내 수술칼로 수술하며 번뇌를 잘라내려 한다. 아직도 수술을 하노라고 자부하면서.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대의민주제 직접민주제로 보완해야

국민발안제가 국회에서 폐지됐다는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국민의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망을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거부한 것이다. 국민이 국회의원 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뽑을 만한 훌륭한 후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 제도하에서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법을 바꿔 국민이 원하는 제도하에서 국회의원을 뽑고 싶지만, 입법권을 틀어쥐고 꿈쩍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 탓에 어쩔 수 없이 현 제도하에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국민 손으로 직접 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번 선출이 되고 나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해도 국민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국회의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권력 쟁취에만 몰두했었다. 그 결과는 늘 국가 분열로 이어지고 남북통일 및 국가경쟁력 고양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회의원을 선출만 할 수 있고 어떠한 잘못에도 이를 번복시킬 수 없는 제도 탓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회의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 국민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한 이유이다. 똑같은 민주주의를 하고 있으면서도 나라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역사 속에서 승리를 써가는 나라와 패배를 써가는 나라가 있듯이, 다른 나라에서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제도가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같은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고, 다른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좋은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다. 한국의 정치는 그간 한 번도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고 권력 쟁취를 위한 극한 대립만을 보여왔다. 내용은 팽개치고 선진 제도의 무늬만 가져와 운용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국민도 이성을 잃어가듯 권력 싸움에 가세하여 국가보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 상대의 결점 잡기에 열을 올리며 국민 화합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인적 청산과 강한 저항이 반복되며 바람 잘 날 없는 국가를 반복한다. 북한이나 일본과의 화해가 아니라 우리 국민 간의 화해가 먼저인 상황이다. 바른 국민의 뜻은 받들고 그릇된 국민의 뜻은 거부하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지려면 국회의원이 멸사봉공의 자세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섬기며 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간의 국회의원들이 보인 모습은 국민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탐닉하며 한번 맛본 권력 유지를 위한 집착 속에서 결국은 국가나 국민보다 본인의 미래를 위한 행보뿐이었다. 선출되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아도 국민을 대표하는 권한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맹점 탓이라 하겠다. 제도를 바꿔내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풍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 등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가들이 국민의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구현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민의를 받들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의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것이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의 도입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게 하는 개헌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코로나로 본 국가의 존재 이유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는 전체주의적 국가관과 절대 권력의 위험성을 그린 소설로 주인공 윈스턴은 빅 브라더라 불리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다. 1949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최근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빅 브라더는 국민들의 사고(思考)의 폭을 좁혀 개인의 모든 정신과 생활까지 철저히 감시하는 상황, 또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사회체계를 비유하는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코로나사태 초기의 외국 언론은 우리나라 상황을 빅브라더에 비유하면서 우리 정부의 확진자에 대한 동선 공개 및 강력한 격리수용 조치에 대해 정보의 독점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비인권국가 행동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지금은 전 세계가 우리의 방역체계를 벤치마킹하는 상황이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수준 높은 진단과 검사, 병원비 걱정 없는 치료로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선진성이다. 반면 무상의료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의료 선진국가인 영국처럼 조세 방식의 보편적 의료제도(NHS)를 채택한 국가에서 코로나19의 전파속도와 사망률이 높은 원인으로는 수준 낮은 저비용 의료시스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 같은 고비용 의료체계 국가에서 의료접근성 저하 및 치료기회 상실에 의한 사망과 같은 비극적 결과가 많이 초래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는 국민들이 자유권적 기본권을 가지고 자유로운 행동과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국가는 사회전반의 경제 및 의료 등의 정책들을 자유방임주의 원칙하에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앙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국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6년 전 4월 16일을 기억한다. 혹자들은 세월호 사건을 운이 나빠 발생한 해상교통사고 정도로만 치부하고 노란 리본만 보면 진저리를 내지만 국민이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핵심은 국가 최고 리더가 국민들의 위기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과 국가가 진정 국민들을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앞서 2015년 병원을 중심으로 메르스 확진환자가 연이어 발생하고 초기 확진환자와 그 접촉자들에 대한 격리조치 미흡 및 불투명한 의료정보는 문제를 확산시켰다. 이후 정부는 국가적 재앙을 되풀이 않겠다는 의지를 국가적 차원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령의 개정, 질병관리본부의 차관급 조직으로의 격상, 감염병 관련 조직 확대 및 공무원 증원, 감염병 관련 연구 개발 예산의 확충 등 많은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갔다. 감염병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 지금은 세계가 의료계뿐만 아니라 문화, 체육계에서도 칭찬하는 수범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잘사는 나라는 GNP가 높은 나라가 아닌 국민들이 안전한 나라일 것이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갈대와 주사기

요즈음 그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두개 대륙 이상에서 창궐하여 세계적 유행(pandemic)이라고 부른다. 이 판데믹의 어원을 살펴보았더니 목동의 신(牧神) 판(Pan)과 관련이 있었다. 판은 숲과 들판, 양떼와 양치기의 신으로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한밤 중에 들판이나 어두운 숲을 지나갈 때 괜히 공포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판의 장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공포(Panic)란 말이 생겼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났으므로, Pan으로 시작하는 말은 모두(all)의 뜻도 갖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역병 판데믹(Pandemic)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외모가 흉측한 이유는 목동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나 반인반수(半人半獸) 종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상체는 인간이나 하체는 염소이며 이마에는 조그만 뿔이 나 있고 염소처럼 매부리코에다 귀는 뾰족하며 몸에는 털이 무척 많았으므로 혐오감을 주는 인상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 BC 43 - AD 17)가 저술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AD 8)를 보면, 판은 어느 날 들판에서 나무의 님프인 쉬링스(Syrinx)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미 순결을 맹세한 그녀는 무서운 외모를 한 판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다 강가에 다다랐다. 그가 그녀를 따라잡자 그녀는 자매인 물의 요정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가 그녀를 덮쳐 껴안는 순간 물의 요정이 그녀를 갈대로 만들어버렸다. 실망하기 짝이 없게 된 판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이 쉬링스가 변신한 갈대 속을 통과하자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판은 그 소리를 필시 그가 사랑하였던 그녀의 슬픈 목소리라고 생각하여 그는 갈대를 길이를 다르게 잘라 다발로 묶어 피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Syrinx는 판이 불던 피리 판플룻(pan-flute)을 뜻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 Syrinx가 복수형이 되면 갈대와 같이 속이 빈 주사기(Syringes)가 되므로 신기한 언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음악과 의학에 깊숙이 연루된 판이 오늘날 판데믹의 이름으로 우리를 공포에 떨고 만든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판을 세계의 문인들이 즐겨 찬양해서 밀턴은 대자연의 화신으로 그렸고 쉴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찬하는 중에 판을 언급하였고 기독교 시인 배리트 브라우닝 부인은 죽은 판(The dead Pan)이라는 시를 지어 고대 신들의 죽음을 알렸다. 전설에 의하면 판은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나서 올림프스 신들이 암흑세계로 쫓겨날 때 죽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며칠 전 해외 뉴스에서, 각자의 집에 고립되어 있는 중에, 베란다에 나와서 노래를 하거나 플루트를 불어 역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웃들을 위로하는 연주자들을 보았다. 나도 김소월의 작시 엄마야 누나야를 불러주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의 시에 나오는 갈잎은 갈댓잎이니 요절한 소월도 생전에 오비디우스의 글을 읽었으며, 강변의 갈대가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빠른 시일 안에 치료제 뿐 아니라 시린지(syringes)에 담긴 백신이 개발되어 인명을 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비상시 한국의 방송 함께할 만한가?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몸 상태도 괜찮은데 집에서 가족과의 대화도 삼가며 홀로 보내야 하는 일상이다. 집에 틀어박혀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 그저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TV를 보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매일 보는 인터넷 기사도 별반 새로운 것이 없고, 방송도 유익한 것이 없어 눈의 피로만 가중되고 있다. 중요 방송사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같은 내용의 반복되는 뉴스나 연예오락이 주로, 해외방송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 각 분야의 변화와 발전이 눈부신데 방송은 애써 지켜오던 인간사의 귀한 가치마저 변질시킨 채, 사회 감시기능이나 정보 전달기능에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세태의 무절제를 반영하는 오락적 요소로 승부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 만연에 감당못할 정도로 내보내는 건강정보와는 정반대의 음식요리 관련 프로그램, 가족해체를 당연시하며 개나 고양이를 가족 삼으라는 듯한 프로그램, 예체능인의 놀이에 더해 그들의 가족마저 등장시켜 사유화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프로그램 등이 누구나가 쉽게 접할 방송 시간대의 주 메뉴이다. 엄중해야 할 내용마저 정중함과 겸손함은 타파해야 할 구태인양 가벼운 언행의 개그프로그램처럼 연출되고 있다. 재미만을 선사하면 되거나, 젊고 멋진 진행자들로 승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적 식견이나 경륜이 요구되는 경우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경험 부족에서 오는 내용전달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이 두드러져, 뉴스보도 등도 안정감이나 신뢰감, 나아가 행간의 의미라 할 수 있는 주변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고, 이미 인터넷에 떠 있는 사실의 단순한 전달에 그치고 있다. 주어진 대본에 따라 열심히 말만 하는 느낌으로는 시청자의 신뢰나 감동을 끌어내기 어렵다.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어나가는 환자가 끊이질 않고, 타국에서 입국하는 확진자를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인데, 뉴스는 한국이 모범국가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국민의 위기의식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뉴스도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내용 일색이다. 흉악범죄나 성범죄를 뉴스의 메인으로 전개하며, 별 듣고 싶지 않은 사항들을 매일 대서특필한다. 국민 모두를 범죄연구가로 보는 듯한 보도 태도이다. 무엇이 알권리인지 늘 알권리라 주장하며 무슨 최고의 가치라도 실현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 악영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자극함으로써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방송 같다. 모두가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런 국민을 더 지치게 하는 보도내용과 연예오락에 치우친 프로그램으로는 비상시 일상을 같이할 동반자로서의 방송은 실격이다. 과연 국민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방송이 국민에게 전해야 할 내용 선정이나 그 전달 방법이 옳은지, 늘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기로서의 방송에 의문이 간다. 방송이 곧잘 정의, 차별, 부조리를 지적하며 그를 개선하라 주장하지만, 정작 방송의 모습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일쑤이며 예체능의 오락이나 담아내는 그다지 얻을만한 것도, 배울만한 것도 없는 존재처럼 되고 있다. 방송이 사익이나 추구하는 일그러진 정치집단처럼 공정과 균형을 잃고 국민을 자극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듯한 모습에서 벗어나, 방송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되짚어 보고 국민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가치 있는 매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정치는 곧 올바름이다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사회는 초기의 공포스런 상황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 외국으로부터 한국의 입국은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코로나로부터 안전지대로 인식되는 반전의 상황을 맞고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별 방역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매뉴얼에 따른 정부 통제와 지시에 자율적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국민의 자세는 세계적인 수범사례가 되고 있다. 확진자와 의심환자들은 사회연대의식 가운에 통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자가격리 지침을 따르면서 추가 감염을 예방하기에 노력했고 국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코로나사태 조기 종식에 함께 동참했다. 또한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외국처럼 사재기가 없는 상황은 큰 위기에서 발휘되는 국민들의 저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 의식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집단 감염의 위험을 무시하고 종교집회를 강행하면서, 이를 제지하는 공권력에 대해서 욕설을 하는 등 국가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례도 있다. 또 만우절에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면서 SNS에 허위로 글을 올리는 개념없는 연예인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일주일 뒤에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최고의 입법기관의 주체인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의 정치인을 보면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에는 관심이 없고, 또 한번 해먹을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국면에서 정부 방침에 따르지 않는 이들처럼 말이다. 오로지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을 위한 정책공약은 없고 당리당략에 의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새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있다. 정치는 곧 올바름이다라는 의미다. 노나라의 계강자라는 대신은 군주의 권력을 빼앗아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지자 공자에게 찾아가 해법을 물었다. 이에 공자는 지도자가 원칙을 어기면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당신이 백성을 정도로 이끈다면, 누가 감히 정도를 걷지 않겠느냐(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그 뜻을 설명했다. 계강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타난 공자의 뜻은 분명하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욕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를 비롯해서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조직에서 가정의 가장이나 조직의 리더가 진정한 모범과 리더십을 발휘할 때 구성원들의 행복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력있는 국민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참 행복을 위해서 진정성 있게 노력해 준다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바로 일상이 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역병에 약초 되어

며칠 전 예방의학교수를 마주쳤기에 작금의 바이러스19 사태가 얼마나 갈 지 물었다. 그는 내 코가 석자라고 하였다. 자신은 가족들이 대구에 사는 주말부부인데 병원에서 공문을 받았기에 주말마다 보던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한 소설과 그에 관련하여 내가 발표하였던 논문이 생각났다(Hwang K, Hong HS, Heo WY. Would medical students enter an exclusion zone in an infected district with a high mortality rate? An analysis of book reports on 28(secondary publication). J Educ Eval Health Prof. 2014;11:15).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의학전문대학원 면접시험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의 간추림을 수험생들에게 제시하고, 당신이 의사가 된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폐쇄된 화양시에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들어가겠는가? 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28은 전염병에 대한 소설로서 그 배경은 수도권 인근 도시, 화양(火陽)이다.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병한다. 최초의 환자는 발병 직전에 아픈 개에게 물린 이후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의 장기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화양에 번져나가고, 국가는 화양을 봉쇄한다. 화양은 마침내 지옥이 된다.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한 도시에 들어가겠다고 답하였다고 결과를 알려주었다. 합격한 학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 3학년이 돼서도 초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폐쇄된, 치사율 높은 전염병 지역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가 반드시 포함 되도록 하였다. 결과를 보면 위험 지역에 기꺼이 가겠다는 학생은 36%로 가지 않겠다는 학생(64%)의 수보다 적었다. 주목할 점은 비록 위험 지역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답변한 학생들도 그 지역 밖에서라도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역할은 하겠다고 한 점이다.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개발 되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퍼져 동료 의사들이 그 도시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환자의 구토를 손으로 받아내고 고름이 얼굴에 튀는 상황에서도 견뎌왔으며, 수술 중에 바늘에 찔려 장갑 안에 배인 피를 보면서도 내 아픔을 걱정하기보다 환자에게 오염시키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며 살아온 의사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는데도 환자를 들이밀며 간호사와 다투어 본 적이 있는 의사는, 인공호흡기 옆에서 모니터의 알람 소리에 날밤을 새며 환자의 침대에 이마를 대고 쪽잠을 잔 적이 있는 의사는, 지금 그 도시에 있는 동료가 얼마나 힘들지 머리보다 몸이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아침 출근할 때 불교방송에서는 8세기 당나라 때의 선승 이산혜연(怡山惠然) 선사(禪師)의 발원문(發願文)이 나오고 있었다. 모진 역병 돌 때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리 (疾疫世而現爲藥草 求療沈 饑饉時而化作稻梁 濟諸貧) 나도 환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스러움, 동료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에 작으나마 정성을 모으는 데 동참하였다. 어서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끝나길 기도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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