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역병에 약초 되어

며칠 전 예방의학교수를 마주쳤기에 작금의 바이러스19 사태가 얼마나 갈 지 물었다. 그는 내 코가 석자라고 하였다. 자신은 가족들이 대구에 사는 주말부부인데 병원에서 공문을 받았기에 주말마다 보던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한 소설과 그에 관련하여 내가 발표하였던 논문이 생각났다(Hwang K, Hong HS, Heo WY. Would medical students enter an exclusion zone in an infected district with a high mortality rate? An analysis of book reports on 28(secondary publication). J Educ Eval Health Prof. 2014;11:15).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의학전문대학원 면접시험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의 간추림을 수험생들에게 제시하고, 당신이 의사가 된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폐쇄된 화양시에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들어가겠는가? 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28은 전염병에 대한 소설로서 그 배경은 수도권 인근 도시, 화양(火陽)이다.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병한다. 최초의 환자는 발병 직전에 아픈 개에게 물린 이후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의 장기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화양에 번져나가고, 국가는 화양을 봉쇄한다. 화양은 마침내 지옥이 된다.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한 도시에 들어가겠다고 답하였다고 결과를 알려주었다. 합격한 학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 3학년이 돼서도 초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폐쇄된, 치사율 높은 전염병 지역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가 반드시 포함 되도록 하였다. 결과를 보면 위험 지역에 기꺼이 가겠다는 학생은 36%로 가지 않겠다는 학생(64%)의 수보다 적었다. 주목할 점은 비록 위험 지역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답변한 학생들도 그 지역 밖에서라도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역할은 하겠다고 한 점이다.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개발 되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퍼져 동료 의사들이 그 도시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환자의 구토를 손으로 받아내고 고름이 얼굴에 튀는 상황에서도 견뎌왔으며, 수술 중에 바늘에 찔려 장갑 안에 배인 피를 보면서도 내 아픔을 걱정하기보다 환자에게 오염시키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며 살아온 의사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는데도 환자를 들이밀며 간호사와 다투어 본 적이 있는 의사는, 인공호흡기 옆에서 모니터의 알람 소리에 날밤을 새며 환자의 침대에 이마를 대고 쪽잠을 잔 적이 있는 의사는, 지금 그 도시에 있는 동료가 얼마나 힘들지 머리보다 몸이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아침 출근할 때 불교방송에서는 8세기 당나라 때의 선승 이산혜연(怡山惠然) 선사(禪師)의 발원문(發願文)이 나오고 있었다. 모진 역병 돌 때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리 (疾疫世而現爲藥草 求療沈 饑饉時而化作稻梁 濟諸貧) 나도 환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스러움, 동료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에 작으나마 정성을 모으는 데 동참하였다. 어서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끝나길 기도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코로나19를 마주하는 아파트의 삶

날로 진화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이 인간의 나약함을 시험이라도 하듯 우리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상이 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멈춰서고, 그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늘 그랬듯이 이번 사태도 지혜롭게 극복해낼 것이다. 질병이 잠잠해지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그간의 힘든 싸움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질병의 도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개인은 잊고 살더라도 국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환자 발생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상황에, 혼돈스러운 방송과 관계기관의 브리핑을 방안에 틀어박혀 종일 뚫어지게 응시한다. 어느덧 머릿속에는 집단감염,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개념이 각인되고, 마스크의 중요성마저 절감하며, 내가 이 아파트에 격리된다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스친다. 집단생활이 일상인 구조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직장의 일도 다수가 모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거주하는 아파트의 삶도 다수가 함께해야 하는 구조이다. 배달로 버텨 보며 난생처음 며칠간씩 반복해보는 아파트에서의 격리 생활은 마치 감옥과도 같아 견디기 쉽지 않다. 개인주택이라면 마당에라도 나가 볕이라도 쬐고 뛰어라도 보련만, 현관 앞이 바로 이웃과 공유해야 하는 공간이다 보니 바깥은커녕 1층 로비에조차 타인을 피해 나갈 수가 없다. 운동 삼아 방안과 거실을 걸어 다녀 보지만 층간소음으로 조심스럽기만 하다. 비로소 아파트가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주거시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관을 나서 복도를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반드시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내 집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타인과 함께 사는 집이었다.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타인과도, 쓰레기나 동물들과도 함께 이동해야 하며, 마주치고 싶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지 않은 타인과 늘 일정 부분 동선을 같이 해야 하는 아파트의 삶이다. 과연 많은 이들이 살아야 하는 집이 이런 공동주택으로 괜찮나 하는 의문이 든다.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는 이상적 행동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개인의 이기적 행동마저 자유의 영역이라 외치며 이웃의 불편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주거형태가 공동생활을 강요받는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 정부는 인구집중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 공동주택의 폐해에 눈을 감고, 여전히 수도권에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며 대규모 아파트 건설의 신도시 정책을 남발한다. 언젠가 모든 국민을 수도권의 밀집된 아파트에 살도록 할 기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집단감염과 자가격리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전염력과 치사율이 더 높은 무서운 질병이고, 지방이 아닌 서울수도권에서 시작된 대규모 전파였더라면 한국은 대혼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지역 균형발전의 참다운 가치를 인식하고 선거를 위한 입발림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대도시에 밀집해 사는 구조를 해소하고, 대규모 공동주택인 아파트도 개인주택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회색마스크를 통해 본 대한민국 신분계급

최근 거리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노인분을 만나 몇 마디 나누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그분도 마스크 구하기가 힘들어 2주째 똑같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고 하셨다. 대형마트나 약국에 줄을 서서 기다려도 도저히 구입할 수가 없었고, 지금 있는 마스크도 작년에 구입한 황사마스크 몇 개중 남은 한 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스크로 2주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이 노인이 착용한 흰 마스크의 색깔은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그 노인은 불만에 가득 차서 TV에 나오는 높은 양반들은 우리처럼 가진 거 없는 사람들과 같이 동네 약국에서 새벽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서봐야 그 고통을 알 거야, 방역대책이다 선거다 해서 나오는 노란색 잠바 입은 양반들이 자기 돈으로 마스크를 사기나 했겠어? 누가 가져다주는 마스크로 거저 사용하다 보니 진정 우리의 마음은 죽어도 모를겨라고 했다. 최근 코로나19 공포로 인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처음 우리 사회에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대책과 실시간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바이러스가 조기 종식되는 것으로 인식하던 중, 신천지 대구교회 성도인 31번 확진자를 통한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수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되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 가는 현실이 되었고. 깊고 어두운 터널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이 막막한 상황은 국가적 위기이자 극복해야 할 난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의 하나 된 힘으로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왔었다. 반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우리 국회의 현실을 보면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코로나 사태를 본인의 이해관계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생명의 동아줄로 여기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각자의 당리당략에 의해 대안 없는 비판만 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아무리 욕을 먹어도 의원직이 지니는 기득권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는 부모 찬스를 통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 기득권 세력에 진입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스웨덴이나 일부 유럽 국가의 국회의원들은 보좌관이나 차량 지원 없이 의정활동을 하기에 늘 야근에 시달리고 힘들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진세에 대한 공포보다 무서운 현실은 마스크를 약속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정책과 이로 인한 국민의 불신이다. 개인위생과 감염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꼭 착용할 것을 권장하면서,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되었을 때 정부는 건강한 사람들은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며칠씩 사용해도 괜찮다라는 식의 일관되지 않은 입장 발표는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다. 회색빛 마스크를 쓴 노인, 정부와 정치권을 대조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진정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마스크 하나로 느껴지는 대한민국 신분계급 차이의 갈등과 박탈감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인권의 완성을 위한 언론의 사명

최근 국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정보화 시대에 이와 관련된 뉴스가 국민들에게 공유가 되고 때론 정보의 홍수 속에 가짜 뉴스가 난무하면서 이를 검증 하는 것도 일이 됐다. 코로나19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해 중국 내 사망자가 최근 2천5백명에 이른다.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중국의 언론 통제 상황을 감안했을 때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재앙과 같은 상황을 예견했던 중국의 의사 리원량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사망했다. 중국 전역에서 언론을 억압하며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관련 기사와 SNS를 더욱 강하게 검열하고 있지만 추모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이어지고 중국 일부 교수들은 언론자유가 보장됐다면 이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원량 사망일을 언론자유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은 정치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집단 아래 벌어지는 민주주의 파괴와 정의, 공정, 알권리의 유린 행위를 알리고 비판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른 불법비리와 권력남용을 때론 현장으로 소환해야 한다. 언론이 사명을 다하는데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리원량의 죽음을 통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희생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는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성찰할 수 있다. 사회학자 토인비의 역사는 창의적인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라는 말처럼 인권의 시대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여기에 언론은 감시견인 워치독(Watch dog)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언론들은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랩독(Lab dog)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다. 다만 우리사회에는 경비견과 같은 가드독(Guard dog)의 역할을 하는 일부 언론이 있다.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서 권력화 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다. 얼마 전 우한 동포들을 진천과 아산지역에 격리치료 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주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도지사와 장관에게 계란을 투척하면서 격렬히 항의하는 영상을 방영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역이기주의 표상으로 폄하 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는 격리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과의 협의가 없었던 것의 항의다. 실제로 입소 할 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화합을 얘기 할 때 분열과 불안을 조장한 것은 언론이다. 우리사회가 이만큼 차이와 차별을 혐오하고 평등한 사회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고 지켜 내려고 희생한 창의적인 소수의 언론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공무원의 보수인상 재고해야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 결정되는 일그러진 사회가 되어, 직장도 일의 내용보다 임금수준으로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많지만, 임금 수준은 한국이 단연 높은 편이다. 한국의 고임금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렵지만 이에는 사회의 왜곡된 임금구조가 한몫한다. 고임금의 대기업이나 별로 힘든 일은 없고 월급은 많으며 평생 잘리지 않을 공기업, 아니면 임금이라도 높은 기업이라야 갈 수 있다는 구직자들이 많다.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만을 원하고 있어, 취업현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이 높은 회사는 인건비 탓에 일자리를 줄이거나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임금이 낮은 회사는 인력이 필요한데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경제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고임금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우려하며, 많은 회사가 정부의 강요와 같은 요구가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을 태세이다. 회사가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어도 과도한 임금 탓에 경영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은 고임금구조 탓에 인력채용을 꺼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심해지면 인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기업이 비슷한 임금수준에서 출발하는 구조이어야 고용시장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기업의 고임금 구조와 이를 추구하는 구직자들의 욕구 탓에 고용에 많은 문제를 낳고 있어,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적절한 임금구조를 정착시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해소시키고 청년들의 취업목표도 다양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가 공무원의 보수를 물가 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리겠다니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인지 이해할 수 없다. 월급이 오르기는커녕 동결 또는 깎일 처지인 직장도 많다. 나의 직장도 월급 오른 적이 있었는지 까마득한 옛날 일로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국가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관계없이 국민의 혈세로 매년 꼬박꼬박 보수를 올리고 있으니 정상적인 처사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를 동결하고 한국사회의 임금시스템을 개혁해 내야 할 정부가 기업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혈세를 더 많이 거둬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겠다니 이것이 정부가 주창하는 제대로 된 나라 세우기의 올바른 모습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복지국가를 핑계 삼아 과하리만큼 거둬들인 세금을 물 쓰듯 펑펑 쓰고 있다며 분노하는 국민이 많다. 공무원들의 혈세 가로채기나 낭비도 끊이지 않는 뉴스거리이다. 보수를 올려야 하는 직종의 공무원이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투명하게 밝히고 그 분야만을 현실화하면 되는 것이지, 모든 공무원의 일괄적인 보수인상은 안 될 말이다. 고위직의 인상분 반납도 국민을 속이는 기만행위와 같다. 반납할 정도의 보수라면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자신들만의 결정으로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발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고 무슨 소리냐고 하는 격이다.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할 공무원의 급증으로 걱정하는 국민이 하나 둘이 아닌데 공무원의 보수인상이라니 믿기 어렵다. 고임금구조를 조정해내야 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한술 더 뜨는 자신들의 보수인상은 재고함이 마땅하다. 한국인들의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한두 달의 월급으로 낼 수 있는 정도의 대학등록금은 아주 싼 편이다. 대학등록금이 비싸다며 마치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무색하기만 하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행동

몇해 전에 성형외과 선생님들과 가사문학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목소리가 고운 해설사가 우리를 안내하였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외우다시피 공부하였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이 고운 목소리로 읊어질 때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며 따라하게 되었다.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ㅎㄴㅅㅇ 緣分(연분)이며 하ㄴㄹ 모ㄹㄹ 일이런가/나 ㅎ나 졈어 닛고 님 ㅎ나 날 괴시니/이 ㅁ음 이 ㅅ랑 견졸 ㄷ 노여 업다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ㄷ ㅂ라보니/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사미인곡 부분 당시 사대부들은 왕을 찬미하는 시나 문학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사미인곡에서 님(미인)은 왕(선조)이며, 송강은 뛰어난 글 솜씨로 아름다운 가사를 다수 남겨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권주가인 장진주사를 듣고 나서 전시품을 돌아보았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송강이 선조(宣祖)에게서 하사 받은 은으로 만든 술잔(銀杯, 165.0cm)이었다. 술잔이라고 하기엔 사발만큼 크며, 잔을 받치는 부분에 비하여 술을 담는 부분의 두께가 얇고 비대칭적이었다. 송강이 과음하는 바를 안 선조가 잔을 하사하며, 그대가 술을 좋아하나 너무 과함이 걱정되니 앞으로 이 잔으로 하루에 한 번만 마시라고 하였다는데 그 잔으로 마시다 보니 양이 성에 안 차 송강이 망치로 펴서 잔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큰 잔에 술을 마셔서인지 결국 송강은 흑달(간경변으로 인한 황달)로 작고했다고 하였다. 해설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4대사화에서 처형당한 사람이 100여명 정도였는데, 기축옥사(1589, 정여립의 난)때는 3년동안 1천여명이 처형당했다. 이것은 서인이 동인을 박해한 사건으로 이를 주도한 우두머리가 송강 정철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에 보면, 정철은 중년 이후로 주색에 병들어 자신을 충분히 단속하지 못한 데다가 탐사(貪邪)한 사람을 미워하여 술이 취하면 곧 면전에서 꾸짖으면서 권귀(權貴)를 가리지 않았다. 편벽된 의논을 극력 고집하면서 믿는 것은 척리(戚里)의 진부한 사람이었고, 왕명을 받아 역옥(逆獄)을 다스릴 때 당색(黨色)의 원수를 많이 체포하였으니, 그가 한세상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족히 괴이할 게 없다. 그의 처신은 정말 지혜롭지 못했다 하겠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철처럼 화려한 미사여구와 수사들로 치장한 글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글을 쓴다고 그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외모가 아름답다고 마음도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고, 아름다운 마음은 그 사람이 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이나 외모가 아니라 정녕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선거연령 18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는 민의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므로 올바른 민의가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해도 국민의 총의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일정 연령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도, 제한된 일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도 문제될 일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바른 정치가를 뽑는 데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일지는 논의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늘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말한다. 판단력이 갖춰진 유권자들의 선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대 청소년들의 판단력이 성인들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선거연령은 좀 더 낮추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일부 청소년들의 판단력에 우려할 점도 있겠지만, 기존유권자들의 판단력도 완전하여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을 규정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무늬 이상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평도 많다. 선거제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 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현재의 모습은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쟁탈에 국민이 동원되어 기득권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처럼 변질되어 있다. 대의기관의 막강한 권한 탓에 당선만을 위한 혼탁한 선거가 이어지고 있어, 대의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일 잘하라고 뽑는 선거가 포퓰리즘, 흑색선전, 맹목적 추종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며 바람직한 정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늘 우매한 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 현 대의민주주의의 결과이다. 모든 국민은 후보자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만들어진 선전에 의해 이미지로 선택을 하고 마는, 어찌 보면 초등학교의 반장 선거만도 못한 정보공유로 치러지는 것이 공직선거의 현주소이다. 선거의 전제조건이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면 국민 모두가 선거에 참여하는 방법만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다. 적절한 연령대의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열과 분열을 막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간접선거도 고려해볼 문제이다. 오천만 인구에 천명의 여론조사에도 신뢰를 말하는 시대이다. 이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선거에 참여해야 제대로 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논리와 배치되는 모습이다. 선거연령 문제가 그저 권력쟁취를 위한 진영논리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정치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권력이나 권한이 없이, 국민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봉사하는 그런 자리가 된다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지금처럼 첨예하게 대립할 리도 없고, 선거연령층의 확대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기준에 의해 상식적인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실현된다면 비용만 드는 선거연령의 확대는 불필요할 것이다. 15세 청소년이나 백세의 노인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경로사상으로 노인들이 공경 받는 사회가 건설된다면, 일부 정해진 연령층의 선거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사회를 차분히 지켜보며 음미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요보호 노인을 위한 성년후견제도 사용법

얼마 전 NCEA(National Center Eelder Abuse)소속 직원이 필자가 재직하는 기관의 홍보 SNS를 통해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인천에 살고 계셔 휴가차 방문한 이 직원은 미국 노인국(Administration On Aging) 산하 NCEA에서 노인학대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국 34개 노인보호전문기관처럼 노인학대 상담 및 현장조사, 일시보호 등의 사례관리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학대업무를 전담하는 경찰을 위해 교육매뉴얼개발, 학대판정 스크리닝지표 등을 연구하고 지역사회 노인학대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교육 및 홍보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 직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에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사기나 보이스피싱과 같은 경제적 학대가 크게 증가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독거노인이나 가족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노인세대 및 치매노인들이 점점 증가하는 우리사회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인구변화추이로 볼 때 2030년이 되면 약 100만 명, 2050년에는 약 300만 명의 치매 환자가 기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매년 늘어나는 치매 환자를 위해서 성년후견제도의 제대로 된 활용이 절실한 것이다. 치매 환자를 보호하는 가족의 경우, 간병하는 가족의 부양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거나 노인과 동반 자살하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반대로, 치매 노인들의 재산을 의도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후견인이 된 후 치매 노인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후견인으로 지정이 되면, 피후견인 대신 법률행위를 할 수 있으며, 금융이나 부동산 거래와 같은 매매 계약의 대리권 행사도 가능하다. 피후견인의 신변은 물론 재산 또한 보호하는 역할이므로 피후견인의 재산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자녀나 친지들이 재산을 함부로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령의 노인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학대는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울과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학대 이후 정부의 지원은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의 경우 경제적 학대는 정서적 학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연금에 의존하는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그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여러 연구자료에 의하면 선진국에서는 별도의 관련법을 제정하여 노인학대에 대한 신고의무부터 다양한 대응방안을 정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고령자에게 발생하는 금융피해 및 금융사기까지 경제적 학대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일본도 고령자의 재산을 부당하게 처분하거나 부당하게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경제적 학대가 의심되면 주요 신고의무자로 금융기관을 포함시키기도 하다. 우리도 물리적인 학대나 착취의 개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미인, 어린 모습인가 평균화된 얼굴인가?

나이가 들어 주름성형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은 대부분 젊게 만들어 달라고 하며, 동시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젊게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청소년기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다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고 이해하며 수술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말에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아기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해치지 못할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어머니들도 아기의 외모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즉 매력적인 외모의 아기들은 어머니의 애정을 많이 받는데 반해 못생긴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냉대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학대 받는 아이의 상당수가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기답지 못한 얼굴이 보호와 보살핌이라는 어른의 자동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서만이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한 동물의 새끼들도 나름대로 특별한 표시를 가지고 태어난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1934~ )에 의하면 아기 침팬지들은 하얀 꼬리털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표시를 가지고 있는 한 어른침팬지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기들을 대할 때 커다란 눈, 부드러운 피부, 포동포동한 뺨과 작은 코 등 아이들이 가지는 특성을 선호하며, 아이들이 성장과정을 통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특성을 지닌 미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별히 예쁜 여성들은 보통의 여성들에 비하여 이와 같은 아기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은 진화론적인 관점에 반하여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미를 살펴보는 상반되는 의견도 있다. 폭풍으로 죽은 새를 조사해보면 평균치보다 크거나 작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월등히 많다고 한다.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새들은 평균치의 날개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최상의 비행능력으로 생존하였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사람의 경우에도 평균치의 체중을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의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체의 특성 중 최적의 것이 바로 평균값이라고 생각된다. 일산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근무하던 고 이승철 교수는 2011년 컴퓨터작업을 통하여 유명 연예인들의 디지털화 된 사진과, 이들의 평균값을 구하고 이를 토대로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설문조사를 통하여 개개인의 얼굴보다 평균화된 얼굴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두세 명의 얼굴을 합성한 것보다 4050명의 얼굴을 합성한 인물이 나아 보였다. 합성된 인물보다 나아 보이는 경우는 아주 소수였다. 개성을 추구하고 독창성에 환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의외였겠지만, 현대인의 미적 취향은 평균치, 즉 형태의 평균치를 선호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합성사진의 숫자를 늘릴수록 형태는 점점 더 평균치에 근접하게 된다. 우리는 잘생긴 얼굴을 보고 평균적 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평균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슈퍼모델의 얼굴은 평균적인 수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어린 모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균적인 모습을 선호한다. 주름성형수술을 받고 어색하다고 하는 환자들이 많다. 주름이 펴져서 젊어지기는 하였으나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뜻이다. 즉 아이의 특성으로 회복되었지만, 다수의 평균치에서는 벗어난다는 뜻일 것이다. 주름을 펴보아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주름이란 정녕 세월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것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차라리

얼마 전 한 종교신문에서 여러 박사학위를 취득한 어느 종교인이 쓴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의 취지와 달리 비판과 분석을 멀리하는 작금의 종교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서, 그 종교의 구성원들을 비판하는 대신 1천300여 년 전의 선배인 원효대사와 그 사상을 폄훼하는 글이었다.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과는 크게 다른 내용이어서 관련 논문을 찾아봤더니, 그 저자의 논지는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 며칠 뒤 한 일간지에도 그 저자의 칼럼이 게재됐는데, 그 역시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었다. 고심 끝에 그 종교신문에 실린 그 저자의 논지에 대한 나의 다른 의견을 투고하게 됐다. 나의 글이 특별기고란에 반론으로 실리고 나니 몇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중 하나로 저런 글을 이렇게 친절하게 반박할 가치도 없어요. 묵빈대처(默賓對處)가 딱 어울립니다라고 했다. 평소에 묵언이라고는 들어보았는데 묵빈대처라는 용어가 생소하기에 찾아봤다. 석가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간명하게 설명한 유교경(遺敎經, 佛入涅槃略說敎誡經)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 경전의 첫머리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해 유명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싯다르타 태자의 마부였다가 나중에 출가해 제자가 된 찬타카(車匿)는 붓다가 출타하시어 계시지 않을 때만 제자들에게 내가 새벽에 싯다르타 태자를 말에 태워 성을 넘지 않았다면 그 분은 출가를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덕분에 부처가 되신 거야라고 공치사하며 다른 제자들을 업신여겼다. 아난다는 붓다가 입적하기 직전에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붓다는, 위세를 부리는 나쁜 승려(惡性比丘)에게는 묵빈대처(默賓對處)하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그 마부처럼 교활하며 앞뒤가 다른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사람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왕따를 시키는 사례가 많다. 지속적으로 억지를 부리는 경우 일체 대응하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으로 대처하면 스스로 깨달아 고치게 되리라는 기대의 교육방법이리라. 그 댓글을 다시 보고 나니, 나도 효과 없는 글을 쓰느라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넌지시 들었다. 바로 그때 만해 한용운의 시 차라리가 떠올랐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랴거든 차라리 큰 소리로 말씀하야 주서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 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이번 논쟁이 그 박사님으로 하여금 근거에 바탕을 둔(Evidence based) 글을 쓰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사회일자리를 위한 교육체계 재편해야

교육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에도 절대적이다. 그 최종 종착역과도 같은 대학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학교육이 중요하다 하여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은 전문역량이 필요한 분야와 인력을 토대로 설계되고 이루어져야 한다. 대졸자가 과잉되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양성한 전문 인력이 별 효용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폐기처분되어 개인의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 대학교육은 사회의 수요에 맞게 조절되어야 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데 취업은 안 되는 고비용저효율구조의 많은 한국의 대학은 병든 환자를 손 놓고 지켜보고 있는 교육환경이다. 더하여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교육 없이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로 교육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대학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기이다. 어떤 일이든 대학교육을 받은 자가 더 잘해내리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일자리는 초중고의 보통교육을 이수한 신체건강하며 교양과 상식을 갖춘 자들로 충분하다. 사회의 다양한 일에 대학전공분야에 관계없이 능력을 발휘하며 직장생활을 잘 영위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 전공을 무기로 삼는 대학교육은 가치를 바랜다. 그런 점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인성을 함양하고 지식을 제공하는 초중고의 공교육에 충실해야 하고, 학벌이라는 형식만을 추구하는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입시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대학의 역할자체를 재정립해야할 문제이다. 한국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안고 있는 교육문제는 허상을 쫓게 하는 대입제도에서 비롯된다. 학벌사회의 병폐 탓에 대입에 목을 매지만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사회의 변화로 난관을 뚫고 성취해낸 대학입학이 제대로 된 공부는커녕 사회진출도 이뤄내지 못하는 허무한 결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현재의 대학은 백명으로 충분한데 천명을 양성하는 처음부터 부실이 예견되는 구조로, 많은 대학이 발버둥을 쳐도 전공에 맞는 일자리는커녕 사회의 부름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사회에 일자리가 적지 않지만 대졸자들에게 전공교육을 받은 전문가라는 탈을 씌워 선뜻 도전도 못하게 하고, 취업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해 생기는 어설픈 전공능력 탓에 대학교육의 효과도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대학교육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허무한 과정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국가경쟁력유지를 위한 인재양성은 필수적이지만 국민모두가 짊어져야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웬만한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보통교육정도로도 성실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우리사회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한때 배워야 먹고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배운다고만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아, 사회의 부름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대학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대학교육을 받아야 이룰 수 있는 일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후회하지 않을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부조리한 학벌사회를 타파할 엄중한 책무가 있다. 변화해가는 사회에 부응하는 인재양성구조를 시야에 넣고, 보통교육으로 충분한 직업, 2년제 대학교육으로 충분한 직업, 4년제 대학교육이 필요한 직업을 분석하여, 인구감소와 산업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교육체계를 재편해내고, 학벌이 아닌 능력이 평가받는 공정사회 구축을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휴머니튜드 케어’와 인간 존엄

올해부터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노인인권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인권교육 콘텐츠 중 인권존중케어 섹션이 있는데, 교육목적은 노인생활시설에 종사하면서 노인들을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서비스 및 케어의 단순대상자로만 취급하면서 겪게 되는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다. 최근 국내의 요양원에서 치매 증상으로 인해 공격성을 보이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억제대를 사용하는 기존의 관리법에서 벗어나, 구속을 배제하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환자 존중과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휴머니튜드 케어가 주목받고 있다. 휴머니튜드는 휴먼(Human)과 에티튜드(Attitude)의 합성어로 창시자인 프랑스의 이브 지네스트가 얼마 전 국내 최초로 인천소재 치매전문병원에서 두달 간 휴머니튜드케어법을 적용해, 공격적이고 일어서지 못했던 치매 노인들이 웃음과 활력을 되찾았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치매 환자의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보고, 말하고, 만지고, 서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활용해 400여 가지의 케어 방법을 매뉴얼화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휴머니튜드 케어를 시행한 인천시립 노인치매요양병원에서는 2개월 만에 14명의 환자 중 5명이 신경안정제 사용이 절반 이상 줄었으며, 활력을 되찾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브스트는 어떠한 노인도 처음부터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낯선 환경에서의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방어적 자세다. 이 케어 방법은 먼저 사람을 인지시키고 눈빛을 마주치면서 이뤄질 서비스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스킨십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고 결국 침대를 탈피해 침대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스스로 일어나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노인복지 현장에서 시설 내 학대문제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시설학대 가해자에 대해서 때로는 연민이 들 때가 있다. 서비스 제공시 매번 온몸으로 저항하고 때론 폭력을 행하는 노인들을 대하는 심정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국내의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가 처음 입사해서 배우는 케어 기술이 억제대 사용법 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래서 노인돌봄 시장을 국가가 직접 관리한다는 취지에서 사회서비원을 설립해 직접 운영 하면서 노인요양 및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 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사회서비스원이라는 하드웨어만 구축 할게 아니라 휴머니튜드 케어법과 같은 전문성 있고 검증된 돌봄 소프트웨어가 운용되어 질때 돌봄 시장의 공공성이 담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천에서 전국 최초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를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시는 내년부터 휴머니튜드 전문가를 양성하고 치매 관련 시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을 추진하려 예산을 세웠지만, 편성된 3억 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된 현실은 선진화된 케어기법 도입을 전국 최초로 실현한다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 또한 크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요양원에서 소리치고 공격하는 할머니를 향해 성질 괴팍한 노인네라고 말 하지만, 그들도 예전엔 16세 이쁜 처녀였고, 소중한 아이들의 엄마였으며, 사랑스런 남편의 배우자였던 걸 기억 했으면 한다. 정희남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핸드볼의 두 남자, 술과 산수를 느끼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외국에 가게 되면, 가는 날부터 오는 날까지 선수들과 같은 일정으로 생활하게 되어 인근을 둘러볼 짬도 내기 힘들다. 지난 9월 말 10일간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추저우(州)에서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 여자핸드볼예선전에 한국팀의 의무위원으로 참여했다. 선수단이 묵는 숙소 뒤로 그리 험하지 않아 보이는 산이 펼쳐져 있었는데 낭야산(琅耶山)이라고 하였다. 팀을 인솔하는 C단장은 선수들의 건강과 부상 상태에 대해 의사인 나보다 더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훈련 때 선수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면 슬며시 내게 그 선수의 부상력을 알려주며 걱정하였고, 경기 중 선수가 넘어지면, 휴식시간에 꼭 나를 동반해 그 선수에게 가곤 했다. 경기가 없는 날 추저우 박물관에 들렸더니, 마침 건국 70주년 미술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중 200호도 넘어 보이는 산수화가 눈에 탁 들어왔다. 처음 보는 그림인데도 어디서 여러 번 본 듯 했다. C단장이 말했다. 여기 우리가 매일 보는 통신탑과 절이 있네요!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의 뒷산인 낭야산을 그린 그림이었다. 숲길을 따라가면 취옹정(醉翁亭) 이라는 정자가 보이고 더 가면 연못이, 산꼭대기 바로 밑에는 낭야사라는 절이 보였다. 그림의 스케일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당송팔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북송(北宋) 때의 시인사학자정치가였던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석상과, 그가 즐겨 찾던 취옹정을 실제 크기로 재현해 전시한 구조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며칠 뒤 오전에 겨우 시간이 났다. 산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관광구로 입장했다. 숨차지 않을 정도의 평탄한 포장길이 이어져 있었다. 울창한 숲과 작은 시내를 따라 걷다 보니 취옹정이 나타났다. 구양수가 추저우의 태수로 근무할 때 낭야사에 있는 지천(智遷)이라는 스님이 태수를 위해 정자를 지었다는데 구양수가 자신의 호(醉翁)를 따서 취옹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담에는 그가 지은 취옹정기(醉翁亭記)가 새겨져 있었다. 태수가 친구들과 함께 여기 와서 술을 조금만 마시고도 취했고, 또 나이도 가장 많은지라 스스로 호를 취옹이라 하였다며, 술을 마시는 목적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를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서, 술기운을 빌려 아름다운 산수를 마음속으로 느끼면서 즐겁게 취한다고 하였다(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평소에 독한 술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았으나, 구내 판매점에서 노인이 그려진 술을 한 병 샀다. 선수들이 열심히 뛴 덕분에 마지막 날 주최국인 중국과의 경기를 이기며, 우리 대표팀은 5전 전승으로 내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 10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부상당한 선수가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이 되었다.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숙소의 베란다로 옮기고 C단장과 산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시원하였다. 긴장이 풀렸다. 술병의 마개를 뜯었다. 그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막고 있는 담도 없이 산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주위가 어두워 베란다의 등을 켰다(秉燭夜遊). 천년 전에 구양수는 낮에 주연을 벌이고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갔을 터인데, 우리는 어두워져 풀벌레 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술기운을 빌려 아름다운 산수를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술병이 비었다. 이곳의 특산물인 마른 국화를 더운물에 넣어 차를 우려내어 마시며 낭야산을 바라보았다(采菊 悠然見琅耶山). 취한 두 남자가 천년 전의 그 노인을 만난 것 같았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대일외교 지혜로워야

징용배상판결문제가 그간 한일 간에 면면히 이어져오던 우호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켜, 양국 간에 드물게 실력행사라는 실제적 마찰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한일갈등의 책임은 일본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원인제공이 일본 측이라는 한국인의 사고에 다른 견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한일 간에 맺은 합의나 협정도 그 결과는 일본 책임이 먼저이다. 하지만 한일양국의 협정이나 합의는 한국 정부가 참여해야 맺어지는 것이기에 결과에는 당사자인 한국의 책임이 빠질 수 없다. 한일갈등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생하자 한국은 정부와 국민 모두 분개하며 거국적인 일본 배척운동에 돌입했다. 그간 일본의 협의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한국정부가 일본의 규제조치 착수에 허겁지겁 협의를 요청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일본에 비난을 해왔다. 한국이 WTO제소, 지소미아 파기 등을 대응책으로 들고 나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랭하다. 협상카드로 작용할 줄 알았던 지소미아 파기에 대수롭지 않다는 일본의 반응에, 허공에 주먹만 날린 모양새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국민들이 많다. 지소미아는 결국 미국의 패권대열에 일본과 한국이 함께한다는 상징성의 문제일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의 갈등관계를 청산해 내지 못한다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군사적 동반자관계가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고, 언젠가 서로 정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이 북한과 통일을 이뤄내고 중국과도 지금이상으로 돈돈한 관계를 만들어낸다면, 중국, 러시아, 북한을 적으로 삼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일본으로서 한국과의 관계정립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국민들의 상황에 맞는 대일 전략과는 달리, 정부의 대일 전략은 여전한 감성적 방식으로 시대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전처럼 국민정서를 내세우며 일본과의 문제를 천편일률적으로 대응해갈 시대가 지났는데, 최근 한일 관계에서 보여주는 한국정부의 대처는 구태의연할 뿐 어느 하나 지혜를 엿볼 수 없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자는 주장도, 나쁜 자들이라며 정치적으로 비난하면서 먹는 문제는 협력하자는 이야기처럼 될 수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도 일본에 위협을 줄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분야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일본의 저력에 아직은 한국이 많은 부분 열세라는 평이다. 한국이 취해야할 전략의 출발점이어야 하다. 사실 수출규제를 하면 수입규제로 당당히 맞설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 팔겠다는데 팔라하고, 파는 것은 안사겠다며 불매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으니, 정부의 잘못된 외교에 국민들만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국민들끼리 애국논쟁까지 벌이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시민운동에 찬사를 보내왔다. 그 덕에 시민들의 권익이 보호받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일부 구태에 빠져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면만을 바라보며 주장을 펼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변하는데 기존사고만이 진실인양 그 속에 갇혀 있어서는 국민들의 바람을 왜곡할 수 있고 한국을 구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진부하지만, 다른 생각은 잘못됐고 자신들의 생각만이 옳다는 사고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거부임을 되새겨야 한다. 국제관계에도 사고의 폭을 넓혀 한국의 미래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 교수

[함께하는 인천] 공동체·연대의식이 전제가 되는 인권

매년 입시 때마다 찾아오는 동장군의 위엄 속에 지난주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예전 학력고사 세대였던 필자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동아줄이었던 학력고사 시험 날 하루를 위해 몇 년 동안을 준비하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좋은 대학은 고액연봉의 직장을 보장하고 희망하는 주택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 학업 외에 다양한 공동체 및 봉사활동, 연수 등의 경험 등이 근거가 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학생들의 대학입학의 기회를 넓혀 왔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 스스로의 정보와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또한 부모의 정보력과 인맥과 경제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게 됐고, 결국 시험보다도 용이하게 대학을 입학하게 된 통로가 됐다. 교육과 입시가 부의 대물림의 통로가 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져 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우리 사회 큰 이슈가 됐던 조국사태를 보면서, 이를 자녀에 대한 빗나간 사랑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강남에서 늘 일상적으로 행해져 왔던 일인데 운이 나빠서 걸린 일인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들이 있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이백만원대의 월소득가정을 이백충, 삼백만원대 가정을 삼백충이라 부르고 거주지에 따라 월거지, 전거지라 부른다. 전거지는 전세 사는 거지를, 월거지는 월세사는 거지, 휴거는 휴먼시아에서 월세로 사는 거지, 엘사는 LH아파트에서 사는 거지를 일컫는다. 주거형태나 가계소득에 따른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말이다. 이런 현상은 부모들의 의식이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투영돼 나오는 말이며, 이러한 의식 가운데 같은 반 학우를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 대우하거나 또래 집단을 형성한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의 평소의 의식적 아니면 무의식적 행동과 말 등이 자녀의 의식으로 전이된다. 최근의 이슈가 되는 인권교육의 내용이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찰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인권교육의 현주소는 개인의 침해받는 인권에 대한 지식과 개념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인권의 기본개념은 인간은 모두 소중한 존재로서 차이와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는 개인이나 이해 당사자의 보호받아야 할 인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다. 이에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연대의식을 갖도록 하는 공동체가 전제가 된 인권교육은 빠졌다. 1등만 한다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사회다. 그렇게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해 왔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부모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건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왜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하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를 갖게 만든 건 바로 우리 기성 세대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가르치지 못하고 무조건 1등만 하라고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인권의 진정한 가치인 모든 사람은 차이와 차별 없이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공동체와 연대의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정희남 인천 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대학입시 복잡할 이유 없어

백년지대계의 교육이 교육부의 실험적 정책 탓에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온 국민이 목숨을 걸다시피 한 교육문제에 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철밥통을 유지하려는 부처 이기주의가 적폐처럼 이어지면서 한국의 교육문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발버둥만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 모든 교육이 입시를 위한 과정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청문회로 불거진 장관자녀의 대입문제로 입시제도의 불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개악으로만 치닫는 대입제도는 늘 지적받아오던 일이지만 교육부의 문제투성이인 제도운영이 대통령의 잘못으로 돌아갈까를 우려한 정치논리 탓인지 정작 사태를 야기한 교육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듯 비켜가고 있다. 학교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내야 하는 공교육의 기본목적조차 수행해내지 못하고, 겨우 학생들의 입시나 보조적으로 준비해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개인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가 아니라, 입시가 교육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대입만이 목적인 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왜곡된 사교육시장의 발전은필연이다. 교육 탓에 개인과 가정이 피폐해지고 수많은 사회문제를 낳고 있지만, 교육부의 정책은 아무 이상 없다는 듯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어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체념상태에 놓여 있다. 교육의 문제점은 차고 넘쳐 들춰보기가 무서울 지경이다. 정시니 수시니 하는 다양한 대입제도가 고교생들의 능력향상이나 대학의 학생선발에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대학교육에는 학생들의 수학능력 외의 입시를 위해 행해지는 어떤 결과물도 중요하지 않다. 자기소개서를 잘못 쓰고, 면접을 잘못 보고, 봉사활동을 안 하고, 상을 못 받는 것들이 대학공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이를 학생선발과 연결 지을 이유는 없다. 입시전형의 다양성은 수험생들에게 불필요한 행위를 강요하고 대학에도 번거로움과 비용만을 들게 할 뿐 내세울만한 장점이 없다. 초중고에서 배운 지식이 평생 간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공교육이 입시을 위한 편법적인 과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모든 교과목을 빠짐없이 공부하고 그 성과를 평가받는 시험제도가 바람직하다. 학습 성과를 평가하는 단순하지만 공교육정상화에도 꼭 필요한 대입제도를 마련하여,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중지시켜야 한다. 교육하기 위해 뽑는 절차에 불과한 입시제도의 복잡함은 무의미하고, 개인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준비하게 되는 수시전형은 입시의 공정성을 해쳐 적절하지 않다. 입시제도는 개인의 학습외적 요소가 반영되거나 개인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사항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정의사회 구현에 배치되고 실질적인 의미도 없는 복잡한 입시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입시를 단순화해도 학생선발에 문제 될 리 없다. 교육부는 수학능력시험만을 주관하고 학생선발은 대학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 교육부의 개입은 그렇게 필요하다고 주창하는 개인이나 대학의 창의력을 말살하여 한국교육을 망가트리고 있다. 정부는 교육부를 어떻게 재편해낼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인구 고령화 현상은 기뻐해야 할 일

인구 고령화 현상은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 전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스리니바스 타타(55) 사회개발국장이 신문사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필자는 노인복지 실천현장에서 20년을 넘게 일하면서 급속한 고령화는 국가적 부양 부담을 심화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가운데 이 같은 타타 국장의 언급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물론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대책을 준비하지 못한 나라들도 있지만 한국은 연금제도를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했음에도 제도를 매우 빠르게 발전시켜 단기간 내 보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또 그는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정년이 연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인과 젊은 세대가 주로 일하는 일자리 분야가 달라 일자리 경쟁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은 65세, 태국 63세, 싱가포르의 정년은 62세이며, 최근 우리사회도 60세인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보장의 의미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망을 연장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통계청 산하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고령화와 노년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연구에 따르면 50세 이상 한국인의 사회적 관계망 보유 비중은 OECD에서 조사한 33개 국가 평균 87.1%보다 훨씬 낮은 60.9%로 조사국가 중 가장 낮게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 비중이 50세 이후 고령층으로 진입하면 다른 연령대보다 전반적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국가와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던 기성세대들이 퇴직으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고 하루 세 끼를 집에서 먹는 소위 삼식이가 되면서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다. 노인자살률 중 60, 70대 남성 노인의 자살률이 다른 성별 및 연령계층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조기퇴직한 50대 중후반 고령자의 자살률이 최근 급속히 중가함을 볼 때 정년연장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을 연결 및 유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정책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개발된 사회적 시스템이 모든 사람들이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할 때 직원 대신 기계를 사용한다거나 영화관에서 영화 티켓을 출력하고 팝콘을 먹기 위해 기계를 이용할 때의 느끼는 편리함은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배달해 시켜 먹는 젊은 세대에게 한정된 것이다. 노인들에겐 불편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최근 SNS(social netwoking sevice)는 사회 관계망을 확충하고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은 이용할 수 서비스 접근성은 연령계층으로 볼 때 제한적이다. 노인들은 고독할 때 정신 건강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심리적으로 지지를 해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까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가 연대의식을 가지고 가족을 대신한 사회가 지지체계가 되어 사회관계망을 구축하고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 개발과 우리들의 따뜻한 시선, 관심이 필요하다. 정희남 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우현 고유섭의 ‘아름다움’

성형외과 학술대회의 연제로나 또 학술지에 심심치 않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바로 아름다움이다. 진료실에서도 외상 치료나 기형의 재건이나 외모의 향상을 위하여 찾아온 환자들이 상담 끝에 진료실을 나가며 내게 던지는 인사말 가운데 가장 공통적인 주문이 바로 예쁘게 해 주세요이다. 이렇게 흔히 쓰이는 예쁘다의 사전적 정의는 아름답고 귀엽다 이며, 아름답다의 뜻은 마음이 즐겁고 기쁜 느낌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이다(연세한국어사전, 2003). 아름답다와 예쁘다는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돌고 있는 강아지처럼 그 정의에서조차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작년에 Archives of Plastic Surgery라는 학술지에 사설(editorial)을 쓰면서, 이 학술지의 전신인 대한성형외과학회지의 창간호(1974년 10월)의 표지와 누런 갱지에 7편의 논문 목차를 사진으로 찍어 실은 일이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 창간된 학술지를 여태 지니고 있는 연유는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시던 성형외과 선배님이 은퇴하며, 소장한 책과 학술지를 모두 인하대 성형외과 의국에 기증하셨기 때문이다. 학회장을 역임하시기도 한 그 선생님은 우리 과의 집담회에도 가끔 참석하여 후배 교수나 전공의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말씀해주셨는데 특히 미학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에는 조리가 있고, 내용이 심오하였다. 한참 뒤에야 그 선생님이 인천 출신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1905~1944)의 사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현 선생의 자녀 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이어 미학을 전공한 따님과 결혼하여 아들만 둘을 두었고,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앉아서 도자기를 살펴보는 동상이 바로 외조부를 가장 닮은, 그 선생님의 둘째 아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신을 예쁘게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과연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참구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찾아 읽어보는 책이 바로 한국미술문화사논총 (고유섭, 통문관, 1966)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말은 미의 본질을 탄력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아름이란 것은 안다의 변화인 동명사로서 미의 이해작용을 표상하고, 다움이란 것은 형용사로서 격, 즉 가치를 말하는 것이니, 아름다움은 지의 정상, 지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이 추상적 형식논리에 그침과 달라서, 종합적 생활감정의 이해작용에 근저를 둔 것을 뜻한다. 나는 고유섭 선생이 말한 안다는 것은 지식만이 아닌 자신의 본질과 대상의 본질을 앎으로써 더 나은 진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을 아름답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국립박물관 특별전 개막식에서 가끔 뵙던, 국립개성박물관이 그려진 명함을 주시던, 고유섭 선생님의 따님이 생각난다. 그리고 고유섭 선생의 미학을 전공한 따님이 투병 끝에 작고하였을 때 연세대 영안실에 조문하였던 것이 벌써 여러 해 되었다. 사람은 가도 그 업적은 남으니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를 곱씹을 때마다 그 부녀가 생각날 것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본 우리사회 인권레짐

가치, 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레짐은 인간의 행태나 인간 간의 상호관계를 일정한 방향으로 결정하는 틀을 제공한다. 최근 매스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인권레짐은 그 사회가 갖는 특성과 환경에 맞는 인권에 대한 상대적 가치, 규칙 등을 의미한다. 얼마 전 일본의 노인인권 관련 단체와의 국제학술 포럼은 인권레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였다. 우리나라는 요양시설 학대 신고자가 보호자인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은 신고자가 보호자인 경우가 극소수라고 한다. 또 일본 시설 내 폐쇄회로(CC)TV 설치에 대한 인권레짐은 반인권적인 행위로 보며, 노인에 대한 억제대 사용도 반인권적 행태로 간주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체적 구속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이러한 환경이 특별한 인권적 관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시설 내에서 행해지는 서비스의 가치와 매뉴얼에 의한 행위라고 인식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CCTV 설치는 시설 내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 크다. 일본의 경우 보호자를 통한 시설 내 학대신고 및 민원이 거의 없다는 점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인권레짐이다. 물론 보호자에 의한 신고가 없다는 것은 일본의 개호보험 시장 내에서 인력 및 시설인프라가 완벽하다는 전제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노인 요양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개인이나 여러 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이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급속히 추진된 산업화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고 사회적 약자 가운데 사회적 효용성이 없는 노인들은 경제발전 이라는 우선과제 속에서 소외됐다. 결과적으로 OECD 국가 중 빈곤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권과 복지에 대한 논의는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당선 전략이 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인권과 복지라는 이슈가 필승전략이 됐다. 하지만 최근의 인권에 대한 가치와 제도들이 우리들의 의식과 가치관과 호흡을 같이 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성평등에 대한 가치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이슈였다면, 최근의 성평등은 남자와 여자의 양성평등만이 아닌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같은 가치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의 미투 운동전개나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등이 시행되면서 사회와 조직내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당사자들을 보호하고 차이와 차별을 당하는 반인권적인 행태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인권의 절대적 가치는 존엄한 인간 가치에서 평등의 이념을 추구하는 것이지 인권이라는 규범을 만들어 이를 지키지 않는 자들을 심판자로서 심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인권교육 또한 침해받는 인권에 대해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더불어 평등하게 살아가야 할 가치를 가르치는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정희남 인천시노인전문보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펠로우가 누리는 특권

황건 얼마 전 맷 브라운 감독이 제작한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를 봤다. 인도출신 수학자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1887-1920)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의 스승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하디교수(Godfrey Harold Hardy, 1877-1947) 사이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다. 수학천재인 인도의 라마누잔은 정식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수학 난제들을 독학으로 풀어 우편으로 영국의 하디교수에게 보냈다. 그 실력을 알아본 하디가 라마누잔을 초청해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하게 됐다. 그가 강의실로 가는 길에 인도 대신 잔디밭을 걸어가자 경비원이 그를 제지했다. 펠로우만이 잔디를 밟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펠로우라는 직책이 무급조교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하디는 트리니티의 펠로우가든(Fellows Garden) 주변을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보였다라든가 라마누잔이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가 됐다! 그는 높은 식탁(high table)에 앉았다. 그가 펠로우가 되어 콤비네이션 룸(펠로우홀)에 처음 입장했을 때 말굽모양으로 배열된 좌석에 앉아있던 선배 펠로우들은 신입회원인 라마누잔을 열렬히 환영했다 등이다. 그 대학의 펠로우들은 몇 가지 특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만이 펠로우 가든이라는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식당에서도 높은 테이블에 앉았고 또 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펠로우 홀에서는 말굽모양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헌장,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통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모토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나라의 가장 오래된 두 대학 중 한 곳에서 특수한 동료에게 특권을 부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첫째, 이러한 특권은 학문적 업적 또는 공공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 학자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다. 둘째, 분초를 아껴 쓰는 학자들의 시간을 절약을 위해 잔디밭도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각 분야에 뛰어난 연구자들이 식사 중에도 토의함으로써 서로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는 예상에서 나온 배려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 식당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예약석이 있어 그곳에 교수들이 모여 앉아 자연스럽게 타과에 의뢰하는 환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영국에 왕립외과학술원(Royal Colleges of Surgeons, 1368년 설립)이 있는 것처럼, 미국에는 미국외과학술원(American College of Surgeons, 1912년 설립)이 있다. 외과의사로서 이들 단체의 펠로우가 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한민국의학한림원(NAMOK, 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이 2004년 창립됐으며, 2016년 의료법상 법정단체가 됐다. 이곳에 모인 의학관련 학계의 석학들이 우리나라의 의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후학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리라 기대된다. 이 글은 Hwang K. The Privileges Enjoyed by Fellows. J Craniofac Surg. 2019;29:1396를 편집인의 동의를 얻어 2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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