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이번엔 청렴한 교육감이다

사회 변화는 정치 변화로 이어진다. 왕조시대, 종교시대, 전체주의시대, 마침내 민주주의시대에 도달했다. 시대 변화의 길목에서 늘 발견되는 것은 커다란 부패였다. 부패는 불신을 만들고 갈등을 만든다. 왕조를 무너뜨린 것도 부패고, 종교시대를 무너뜨린 것도 사제들의 부패였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전체주의 사회도 부패로 붕괴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 만연한 부패 탓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느새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진보가 선이면 보수가 악이 되고, 보수가 선이면 진보를 악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쳐온 건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부패’였다. 진보와 보수의 이론적 가치는 학문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책 분류와 비교 연구 분야에서 꼭 필요하며 진보나 보수 중 하나를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치 않는다. 특정한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가치는 충돌하기도 한다.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심판은 국민이 한다. 진보와 보수 가치 충돌의 승자는 민심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패자가 되었다고 악이라 규정할 수 없다. 승자든 패자든 그들 안에 부패가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악이고 적폐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진보 성향의 후보, 보수 성향의 후보라는 용어가 선거가 격렬해지면 패거리 정치로 전락한다. 마침내 자기 패거리가 아니면 전부 악으로 본다. 진보와 보수라는 학문적 용어가 패거리 정치 용어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더욱이 인천 교육은 보수 교육감도 진보 교육감도 똑같이 부패한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보수 교육감도 뇌물수수로 구속됐고 이를 비난하며 탄생한 진보 교육감도 똑같이 부패로 구속됐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린 쓰라린 교훈 하나를 얻었다. 진보든 보수든 모두 부패할 수 있다는 것.또, 패거리 교육감은 위험하다. 측근 패거리에 의해 탄생한 교육감은 그 패거리에 의해 조종당한다. 능력도 없고 정의롭지 않아도 자신의 선거를 도와준 패거리의 신세를 갚기 위해 교육감 권력을 악용하게 된다. 마침내 멀리 있는 시민과 학부모의 이익보다 가까운 패거리의 이익을 더 챙기게 된다. 결국, 진보 정신도, 보수 정신도 모두 사라지고, 패거리 이익만 남게 된다. 물론 학부모와 시민 앞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가면을 쓰고 선한 체 하겠지만. 연이어 부패한 전임 교육감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탓일까. 올해 인천교육감 선거엔 바른 교육감, 좋은 교육감, 촛불 교육감으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그 이면은 바뀐 게 없다. 그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에서 인천 학부모들은 어떤 교육감을 선택해야 할까. 적어도 끊임없이 보수 진보로 양분해 학부모의 눈을 가리는 후보, 겉으론 그럴듯한 온갖 미사여구와 공약을 내세우지만 속으론 자신의 입신양명과 패거리 이익만을 챙기려는 후보는 아닌지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이번엔 오로지 우리 아이들의 교육만 생각하는 깨끗하고 청렴한 교육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인천교육의 불행 두 번으로 족하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

[함께하는 인천] 새로 태어나는 경인고속도로

인천항 기점에서 경인고속도로를 진입하여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60㎞ 제한속도의 감시카메라가 등장한다. 그동안 많은 준비 끝에 일반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모습이다. 경인고속도로의 일반화사업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시민이면 몹시 당황해 할 것이다. 1968년 12월12일 개통된 경인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로 인천항과 서울을 잇는 산업화의 대동맥으로 그 역사적 의미는 다양한 측면에서 매우 높다. 건설 당시 인천의 외곽에 있었으나 현재는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인천을 동서남북으로 단절하였고 도로교통 소음과 비산먼지 등으로 환경적 피해는 물론 주변 지역의 심각한 슬럼화를 가속화 시켜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천시와 국토교통부는 수차례의 협의를 통해 일부 구간의 인천시 이관을 추진하였다. 마침내 2015년 인천항 기점부터 서인천나들목까지의 시설물을 인천시에 이관하기로 합의하였고 2017년 12월1일부로 이관철차를 마무리하여 말 그대로 일반화사업이 시작되었다. 전 구간에 걸쳐 동시에 전면적인 일반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방음벽을 철거하고 교차로를 신설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일반화 사업의 추진 목적은 주변지역의 도시 활성화를 지원함으로써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과 지역발전을 도모하여 그간 고속도로로 인해 고통받은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여 조금이나마 보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천시민은 각자의 입장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려도 크게 하고 있다. 주변지역의 주민들은 당장 도시재생 또는 도시개발을 통한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기대하면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반대로 일반화함으로써 일부 지역에서는 접근성이 현저히 저하하여 도심의 기능이 더욱더 악화될 것을 걱정하고 졸속적인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다가오는 6월13일 지방선거에서는 이 이슈가 중요하게 부각될 여지가 매우 높다. 인천지역의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으로 그 이해관계가 매우 민감한 지역 이슈이기 때문이다. 자칫 정치적 이슈로 단편적인 표만 고려하고 정파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매우 높아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가장 큰 걱정은 기존의 교통 수요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인데 세밀하게 모니터링하고 면밀한 대책이 현실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특히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화물 교통량의 우회처리 방안은 무척 우려되는 과제인데 아직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현재 민자를 유치하여 추진하는 지하대심도로건설은 과연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제기된다.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건설기간도 오래 걸리고 그 기간 동안의 교통처리는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일반화의 추진 목적이 일거에 무력화되고 그 피해가 전부 시민에게 되돌아가는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그저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욱더 안타깝다. 기본구상이 마무리되고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오리무중인 상황은 미리 앞서 걱정하는 과민한 염려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애관극장, 정말 괜찮은 것인가

80년대까지 우리들의 가장 큰 문화향유는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였다. 동인천 부근에만 총 19개의 극장이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나 둘 사라지고, 필자의 기억 속에는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현대극장, 인형극장, 애관극장 등 많은 극장이 살아 있다. 그중에서 국산영화나 해외 영화가 개봉할 때 인천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는 극장 중 하나가 애관극장이었다. 그만큼 인천에서 애관극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일반적으로 한국 최초의 극장은 1902년에 세워진 협률사(協律社)로 알려져 있다. 협률사는 1902년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의식을 거행하고자 당시 한성부 야주현(漢城府 夜珠峴:현재의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던 황실건물 봉상사(奉常寺)의 일부를 터서 마련된 2층 500석 규모의 상설극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극장은 서울의 협률사(協律社)가 아니라 인천의 애관극장의 전신이었던 협률사(協律舍)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마도 서울보다 인천에서 최초의 극장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서울중심 사고체계, 둘째 인천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인천의 협률사(協律舍)가 한국 최초의 극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천 내리교회의 존스 목사가 1901년 ‘The Korean Review’ 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존스 목사는 ‘The Korean Review’에 기고한 ‘The New Century’라는 글에서 1900년 인천에는 3개의 영사관, 2개의 극장 등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1900년 이미 인천에는 2개의 극장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조선사람 정치국이 설립한 협률사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주거리에 일본인들을 위한 인천좌(仁川座)를 말하고 있다. 정치국은 1895년 청일전쟁 때 지었던 창고를 개조해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의 극장을 개관했다. 협률사는 1912년 축항사(築港舍)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다시 1926년 애관(愛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고, 영화와 공연, 강연 등으로 사용되어 오던 애관은 1950년대 이후부터 애관에다 극장을 붙이며 영화 상영 전용극장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이러한 애관극장이 매각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동안 자체적으로 운영해왔던 극장주 측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매각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듯하다. 만약 애관극장이 민간인에게 넘어가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면 인천사람으로서 마음 참담하기 그지없다. 100년 역사의 숨결이 각인되어 있던 애경사가 철거당해 주차장으로 변모했고, 인천지역 민주주의운동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톨릭회관을 새롭게 신축하고자 철거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있던 근·현대 유산들이 경제논리에 의해 힘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제는 애관극장도 누군가의 손에 매각될 처지에 놓여 있다. 많은 사람이 사라져 가는 근·현대 유산들을 살리기 위해 공공자원화 하자고 주장해도 허공에 흩어지는 외침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렇게 인천에 존재하던 근·현대 유산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존재를 알리는 작은 현판 하나로 만족할 것인가. 정말 괜찮은 것인가.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70%의 노인이 ‘노인차별이 사회에서 실제로 있다’고 응답했다. 또 직접 차별을 경험한 노인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통한 경우가 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노인차별의 이유에 대해서는 노인에 대한 낮은 사회적 지위와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이 1·2순위를 나타냈다. 우리나라에는 노인에게 간접적인 소득보장 정책의 일환으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교통 혼잡과 운영적자에 대한 원인을 무료이용 노인들에게 찾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징수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논의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한 방송사 뉴스의 팩트체크라는 코너에서 ‘노인들에게 실제로 지하철 요금을 받으면 지하철 운용에 따른 실제 적자가 해소될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노인들에 대한 지하철 요금 징수로 적자가 해소될 것이라는 가설은 기각됐다. 그럼에도, 지하철공사 적자에 대한 원인을 노인에게만 귀결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인 차별에 대한 원인이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효용성으로 볼 때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노인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실 지하철에서 노인을 위한 배려석으로 경로석을 별도로 만들어 놓았는데, 외국의 한 교수가 우리나라 지하철 경로석을 ‘격리석’이라고 비판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노인이나 장애인, 임산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굳이 칸을 비워놓고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며, 배려한다면 왜 구석으로 배치해 놓고 격리하듯이 운영하느냐는 것이다. 노인들의 보충적인 소득보장 차원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매월 2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하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27만원까지 활동비를 파격적으로 올렸다. 내년에는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25만원까지 상향해서 지급한다고 한다. 노인들의 최저생계 및 소득보장정책 차원에서 중요한 시도이긴 하지만, 재원마련을 위한 경제활동인구의 부담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에 노인들이 나타나기만 해도 짜증 난다는 얘기들도 들려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옴니버스 단편소설 ‘나무’의 ‘황혼의 반란’ 편에선 프랑스 정부가 점점 늘어나는 노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면서 노인들을 영원한 휴식과 행복을 준다는 구실로 ‘영원휴식안락센터’를 설치해 안락사를 시킨다. 이제는 생산능력이 떨어진 노년층을 멸시하고,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래판 고려장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이에 반기를 든 노인들이 투쟁을 하고 서로 힘을 모으지만 결국 영원휴식센터에 끌려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너희들도 노인이 될 거야.”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명이 세상을 뜨면 도서관 하나를 불태우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노인들이 젊은이에 비해 생산력이나 노동력이 뒤처질지 모르지만,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우리는 물질 그 이상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늙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새해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환경보호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탓에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이 상당히 약해졌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엄동설한의 계절이다. 이 추위를 견디어내면 레이첼 카슨(R. Carson)여사의 불후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절규한 침묵의 봄이 아니라 벚꽃이 하얗게 핀 아름다운 봄, 생동하는 봄을 기대하며, 제10차 헌법개정의 쟁점 중에서 환경권 조항이 주목을 받기를 희구해본다. 현행 헌법상의 환경권 조항은 비교헌법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제8차 개헌에 해당하는 1980년 헌법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규정으로 현행 헌법인 1987년 제9차 개헌에서 추가적으로 보완된 조항이다. 제9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 후 30년 만에 여야의 합의에 따라 발족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국회개헌특위’)에서 제10차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와중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여 국회개헌특위 활동이 중단된 사태를 놓고 서로 상대방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인류 공동의 관심사인 환경보호에 관한 헌법개정은 여야로 나누어져 다툴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합의하기가 쉽다. 이번 제10차 개헌에서 현행 제35조 제3항의 쾌적한 주거생활권은 환경권보다는 인간다운 생활권에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제34조 인간다운 생활권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9차에 걸친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헌법 개정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과거의 행태를 지양하고, 적어도 이번 제10차 개헌논의는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통일과 미래세대 보호 등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헌법개정에서 민의의 대변자인 국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국회는 개헌논의에서 민의를 최대한 수렴하여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개헌안을 마련하여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제10차 개헌에서 헌법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합의를 하려고 하다가 개헌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합의가 가능한 쟁점을 중심으로 개정하려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과업을 정치권에만 맡겨 두게 되면 자칫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포획되어 개헌이 표류하지 않도록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헌법학회에서도 이러한 과정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개헌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여야 할 역사적 책무를 지고 있다. 필자가 지난 12월 1일 한국헌법학회 회장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가칭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대정신을 담은 한국헌법학회의 독자적인 헌법개정안을 2018년 2월 중에 마련하여 국회 등 관계기관에 전달하려는 것도 이러한 방향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한 고려와 미래세대를 포함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개헌에 대한 공론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정치적 쟁점 중심으로 개헌문제에 접근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인 환경보호라는 공익이 제10차 헌법개정에서 체계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다루어져 제2의 노아(Noah)의 홍수 사태를 미리 예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문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감

인천의 학교이전 재배치 관련해 시공권을 넘기는 대가로 건설사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고, 2014년 교육감 선거과정에서도 선거홍보물 업체와 유세차량 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 2천만 원을 받은 이청연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6년 징역형을 확정받아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불행하게도 인천은 두 명의 민선 교육감이 모두 뇌물수수로 징역형을 받았다. 인천교육은 도대체 왜 이렇게 부패한 지 인천시민과 학부모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모든 선출직도 마찬가지지만 교육감은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을 책임진 한 시도의 교육수장으로서, 가장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현직 교육감이 뇌물수수로 줄줄이 구속되고 중형을 선고받는 불행한 인천교육 적폐는 이제 모두 청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년엔 정말 청렴하고 깨끗한 교육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최근 내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소위 보수진영 진보진영 단체들이 각각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아이들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후보를 진보 보수의 기준만으로 양분해 교육감 후보를 뽑을 경우 청렴한 교육감후보를 제대로 선별해 낼 수 있을까. 좋은 교육실현을 위해선 때로는 진보적 정책을, 때로는 보수적 정책을 펴야 한다. 허나 이들 단체가 기존 정치권 정당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공천하듯 교육감출마 후보들을 진영별로 줄 세워 경선 후 ‘진보교육감 단일후보’ 또는 ‘보수교육감 단일후보’로 정하는 것은 자칫 그 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고, 인천의 학부모와 시민들이 다양한 후보 중 높은 청렴도와 좋은 교육정책을 보고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더욱이 인천은 보수교육감 부패를 근절하겠다며 나온 진보교육감 역시 3억원 뇌물수수를 해 인천 학부모들은 ‘도대체 보수교육감과 진보교육감이 뭐가 다른가’란 회의를 갖게 했다. 인천의 대다수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감은 진보 보수만을 내세워 당선된 후에는 부패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청렴하고 깨끗한 교육감 오직 아이들 교육만 생각하는 좋은 교육감이다. 청렴한 교육감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전국 시도교육청 청렴도 평가에서 인천시교육청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2위를 했다. 지난 10년간 인천시교육청 청렴도는 늘 하위권에 머물렀다. 왜 그럴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말이 있다. 앞에선 모두가 행복한 교육과 교육비리 근절을 외치지만 뒤로는 교육감부터 억대의 검은 돈을 받는 상황에선 절대 인천교육 청렴도가 향상될 수 없다. 교육감이 먼저 본을 보여야 그 아래 관료와 학교가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한 명을 잘 뽑으면 4년간 인천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육감 한 명을 또다시 잘못 뽑으면 인천 교육의 불행은 4년간 더 계속될지 모른다. 인천시교육청이 비리교육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도록 내년엔 진보 보수를 앞세운 부패 교육감이 아닌 청렴도를 철저히 검증해 좋은 교육감을 우리 학부모 손으로 뽑자.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

[함께하는 인천] 홀대받는 인천의 도시재생 뉴딜정책

요즈음 전국의 도시에서 핫이슈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이다. 도시마다 도시재생관련 포럼과 세미나가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 의해 봇물처럼 터져 한창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 어젠다로 설정하고 연간 10조원씩 5년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정책을 발표한 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과거의 정책 방향에서 전환하여 도시재생을 통한 주거혁신을 모토로 하여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지역과 주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각 시도는 치열한 경쟁을 통한 자금 확보와 실질적 추진의 대안 모색을 위해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유의 자금을 동원하면서 거국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으로 여러 차원에서 준비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적극 참여가 요청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지역에서도 의회를 비롯해 대학, 시민단체, 도시공사, 민간기업 등이 활발하게 정책의 이해와 준비 및 구체적인 방법의 모색을 위해 분주히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가장 책임 있게 선도적으로 나서야 할 인천시는 주변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로 과거 담당조직인 도시재생국이 도시재생과로 축소되었고 전국 광역시도가 모두 갖춘 도시재생지원센터조차도 이제야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중앙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자금에만 의존하여 군구에서 준비한 계획서의 교통정리에만 국한하는 매우 소극적인 행정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취지와는 배치되는 모습이다. 시정부와 중앙정부의 집권정당이 다른 것이 그 원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전근대적인 핑계일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간 10조원의 자금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주거여건을 자력으로 재생하기 어려운 지역에 최소한으로 지원하는 일종의 종자돈으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마중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역 전역의 도시재생을 선도하고 주민과 민간기업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여 도시재생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이다. 이를 위해서 인천시는 인천시 도시재생에 대한 확고한 공공 의지를 확립하고 방향을 설정하여 그 추진 기반을 초기에 구축하여야 한다. 인천의 미래와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으로써 도시재생은 시정 최고책임자의 강력한 의지를 기반으로 주민, 공공, 민간, 그리고 대학이 함께 참여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여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역주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성공적 도시재생이 가능하다. 인천시가 과거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추진한 도시개발사업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을 큰 기우일까? 루원시티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말고 인천 가치창조의 새로운 대안인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신 패러다임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우선 선결 과제로서 전담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도시재생특별회계를 설치하여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며, 지역의 대학과 연계하여 주민과 공공의 재생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누군가가 잡은 때이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도시재생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

그리스의 산토리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원래 산토리니는 하나의 큰 섬이었는데 기원전 1500년 전 화산의 대폭발로 산토리니의 지반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5개의 섬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산토리니 섬은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에 속한다. 산토리니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아무래도 산토리니만이 가진 색채의 풍광이지 않을까 싶다. 산토리니가 갑자기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농산물은커녕 간단한 생산품조차도 없는 좁은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관광을 선택했다.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적인 호텔 등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달동네의 건물들과 골목길 등을 그대로 살리면서, 건물에 대한 채색을 통해 문화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아름다운 에게해의 보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산토리니의 관광사업에서 배제되지 않고 사업에 주체로 나서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산토리니라는 관광지가 거대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도 주체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여 관광지역이 운영되는 것이다. 경남 통영에 가면 동피랑이라는 마을이 있다. 동피랑은 통영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마을이다 보니 항구 경관을 헤친다고 본 행정당국은 재개발 지구로 고시하고 철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통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행정당국과 시민단체들, 동피랑의 주민들이 손을 잡고 동피랑 마을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골목 문화를 살리기로 하고 벽화사업을 추진했다. 전국 각 대학의 미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로 하여금 허름하고 쓰러져 가는 동피랑 마을의 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재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달동네 동피랑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여행객들이나 마을 만들기 활동가들이 몰려드는 지역이 되었다. 모든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건축할 때 살기 좋고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으되 벽화사업을 통해 지역민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동네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동피랑 마을의 사례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벽화 그리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공동사업으로 소품들을 제작하여 판매사업들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던 벽화마을의 상당수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거부당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도시재생사업이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높고 깨끗한 신축 건물들로 채우는 것만이 올바른 도시재생사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필요에 따라 철거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선 산토리니와 동피랑마을 등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도시재생 과정에서 첫째,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계속 살아야 하고, 둘째, 그곳의 공동체 문화가 파괴되지 않고 지속해야 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 그곳의 도로와 골목길 등이 가능한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시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지역 주민들과 끝없는 소통의 과정을 거쳤을 때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재생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도시의 경계 너머 유랑민으로 끊임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사각지대 노인 위한 성년후견인제도 정착을 위해

정희남 올해 우리나라는 3대 인구재앙이 찾아왔다. 신생아 수가 처음으로 40만명이 붕괴하고, 노인인구가 14%가 되는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또 하나는 생산가능인구가 올해부터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제는 부양하는 사람보다 부양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노인인구가 전체 국민의 14%가 넘는 사회를 고령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도 고령사회로 접어든다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진입을 했다. 이는 예측했던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저출산 문제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부양시스템이 미흡한 상황에서 급속한 고령화로 홀몸노인 및 부부세대가 증가하게 됐다. 결국, 노인에 대한 사회안전망 불안으로 제도권 내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인들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에 정부는 가족이 곁에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치매와 같은 심신미약 상태가 됐을 때 보호할 수 있는 ‘성년후견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질병이나 노령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제약을 받아 본인 스스로 사무처리 능력이 모자라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얼마 전 롯데그룹 전 회장의 자산관리를 위한 후견인 신청을 통해 후견인제도가 일반인들의 관심이 된 건 사실이지만, 이 또한 우리나라에선 많은 재산을 가진 노인에 대한 자산관리 측면에서 제도가 활용되는 게 한계다. 정작 후견인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이다. 성년후견인제도는 지원하는 방법에 따라 자산관리와 신상보호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산관리는 신 전 회장의 경우와 같이 자기의사 결정능력이 없게 된 경우 자산의 적절한 관리를 위한 한정후견이 있으며, 치매와 같은 정신적인 자기결정의사가 힘든 상황을 대비해 후견인을 미리 지정하는 임의후견이 있다. 하지만, 정작 후견이 필요한 노인들에게는 제도를 이용하는데 비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가족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이 돌봄서비스를 받거나 필자가 근무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의 학대노인들의 경우와 같이, 신체적 학대로 긴급하게 병원의 입원 및 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 병원은 응급한 상황과 관계없이 보호자부터 찾는다. 노인이 병원비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와, 혹은 응급처치가 필요한 경우 가족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은, 병원 치료와 같은 응급상황에서 법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후견인이 필요하다. 또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부모의 기초생활 수급비나 국가유공자연금 등을 자식들이 착취하는 경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대신 자산관리 할 수 있는 법적자격 및 법정후견인 제도가 운용돼야 한다. 성년후견인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노인들을 대표하는 한 단체에서 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이는 노인 개인의 신상과 재산문제는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정문제로만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노인 600만명 중 한 달 생활비가 70만원이 안 되는 빈곤노인이 전체 노인의 50%를 차지하는 OECD 빈곤율 1위 국가, 대한민국 노인의 70%가 가족과 같이 살지 않은 홀몸노인이거나 단독가구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사고인 것이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다시 읽는 ‘어떤 왕진’

황건 선배 의사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수십 년 전 의료계 상황과 의사의 역할을 글에서 실감하기도 하고, 행간에서 필자의 심경을 읽을 수도 있어서다. 최근 한 연예인의 애완견에 물린 이웃이 사망하는 사례와 사망의 원인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여러 해 전 읽었던 박문하 선생(1918~1975)의 ‘어떤 왕진(1961)’이 기억나 책장을 다시 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요즘 불경기가 심해 환자들의 주머니 상태가 마치 7, 8월 가뭄에 말라붙은 논바닥같이 쪼들려서 외상치료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개업의들에게 김 사장같이 자가용으로 왕진을 청하는 여유 있는 단골 환자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사모님이 신경통이 도진 것인가 하고 갔더니 자기 집 순종 영국산 포인터를 치료해 달라고 했단 것이다. 고급 개라서 사람에게 쓰는 고급 항생제가 아니고선 잘 듣지 않을 것 같아 특별히 부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화자는 가축 치료는 해본 적이 없어 개를 평소에 친면이 있는 수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가축의 수술은 한 번도 구경조차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에서 가만히 수의사 등 뒤로 가서 그가 하고 있던 수술을 엿보았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가축용 수술대 위에서 수의사가 남루한 중년 부인의 유종(乳腫)을 수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의사는 “요즘에는 하도 딱한 환자들이 많아 병원 갈 형편은 못되고 나를 찾아와서는 애원을 하기에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수술을 해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화자는 돈 있는 집 개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의사에게 갈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수의사에게 치료받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은 “서늘한 거리에 나왔으나 내 가슴속은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를 삼킨 듯이 답답했다. 가축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그 여인의 영양실조에 일그러진 얼굴은 언제까지나 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녀의 괴로운 신음소리는 무슨 원한의 주문같이 지금도 나의 고막을 바늘 끝으로 찌르고 있다”며 끝을 맺는다. 가까운 생활주변 소재와 섬세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플롯에 의해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면, 화자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절실함을 느낀다. 화자의 비판의식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후배 의사인 나에게도 “너는 인술을 베풀고 있느냐?”고 준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56년 전 수필을 읽으며 작금의 의료 현실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시대, 환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 시작하는 문진.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면 “어제 넘어졌는데 CT를 찍으려고 왔어요” 라든가, “가끔 머리가 아픈데 MRI를 찍어보려고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시대다. 개를 유모차에 싣고 다니며 개가 아파 동물병원에 데려가면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이 시대. 책장을 덮고 창문을 열었다. 초저녁 바람이 서늘했으나, 내 가슴도 납덩어리를 삼킨 듯이 답답하기만 하다. 살아 계셨다면 올해 99세이신 박문하 선생이 이 시대 의료 상황과 무슨 케어(Care)라는 정부 발표를 보셨다면 어떤 위트와 해학으로 멋진 글을 선보였을지 궁금하다.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교육

우리나라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대학진학률은 80%다.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준비를 못하는 한이 있어도 자녀교육엔 아낌없이 쓴다. 아이들은 쏟아지는 잠을 줄이면서 하루에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매달린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교육비를 들여 ‘과거 지식’을 암기하며 대입을 향한 한줄서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학습과정을 거치고 값비싼 교육투자를 기꺼이 하건만 그렇게 얻은 지식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 엄청난 노력과 비용은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 과연 우리는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2천년 전 소크라테스 시대엔 배워야할 과목이 불과 몇 개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수십개로 늘어났다. 지식변화의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인공지능, 뇌 과학, 유전자학, 분자생물학 등 새로운 학문이 생겨나자마자 이들을 결합한 융합학문이 곧바로 탄생한다. 매일 쏟아지는 연구들은 화학과 의학을, 전자와 생물학을,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고 있다. 이런 시대엔 한 사람이 그 엄청난 지식을 다 익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도 순식간에 폐기되고 새로운 지식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러한 빠른 지식변화는 우리 사회의 윤리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변화시키며, 가정과 개인의 삶까지 바꿔 놓고 있다.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나 교과서만이 아니라 휴대폰 검색창을 통해 쉽게 지식을 습득한다. 지식을 검색하는 방법이 교과서를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너무나 빠른 지식습득 환경변화로 인해 미래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사회의 초고속 변화에 적응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빠른 사회변화에 우리 아이들이 적응토록 하기 위해선 현재의 교육내용과 방식은 물론 교사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 교사 자신도 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회에서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살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과거처럼 주입식 교육이나 무조건적인 암기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학습하도록 하여’(learn to learn), 그를 통해 새로운 지식세계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실수와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미래사회엔 ‘지식의 새로운 활용’이 더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창의력,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업이 필수적이다. 소통과 협업에 의한 교육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려는 인성의 토대 위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아이들의 미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미래에 별로 쓸모없는 과거지식 교육을 답습하고 있는가. 지식의 빠른 변화로 인해 학문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남과 소통하고 협업하지 못하는 똑똑한 개인’을 만드는 교육으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변화무쌍한 미래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현재 우리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되돌아보고 바꾸어야 한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

[함께하는 인천] 인천판 ‘내로남불’의 조기종결

요즘 언론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유행어 중의 하나가 ‘내로남불’이다. 정치판에서 이전투구 식으로 시작한 유행어가 사회 전반에 걸쳐 상대를 비판할 때 거침없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관인사청문회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국감현장 등에서 그 용어는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는데 마구잡이식 비난과 자기모순을 덮어버리는 용어로 도용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현상은 인천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연일 국감현장과 시의회 특위에서 조사 중인 경제청의 특혜시비에 관한 사항도 ‘내로남불’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조용하게 지내온 송도6·8공구 토지매각의 문제가 인천경제청 고위간부의 폭로로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을 확산시켜 급기야 국감현장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검찰 고발에 이르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폭로와 정치적 공세로 지역의 언론과 시민의 관심을 집중하는 데는 성공하였는지 몰라도 인천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구태의연한 정치적 처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여러 통로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을 토대로 당시 그 배경과 상황에 근거하는 판단이 수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확인과 검증 없이 이전투구 식으로 ‘내로남불’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들이다. 특히 상당한 폭로 내용들은 일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발취해서 호도하고 있는 것은 인천시민과 송도주민을 무시하는 것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행정처분의 사실들을 담은 관련문서들이 존재할 것인데 근거나 검증자료 없이 작의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특혜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인천의 발전과 경제청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치열한 자본유치 전쟁에서 경쟁의 우위를 점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게 매력적인 인센티브의 제공은 필수적인 것이다.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실한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특혜로 단정하는 것은 어렵게 유치한 건전한 투자를 투기로 매도하는 것과 다름없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초기의 자본유치 계약에서 다소 불공정한 독소조항을 바로잡고 진행과정에서 여건과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원칙 없는 특혜로 단정하는 것도 경제청의 업무를 위축시키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 많은 직원들이 경제청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폭로에 대해서 해명하는데 집중하느라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시민의 활력을 엉뚱한 곳으로 호도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송도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논쟁을 조기에 종결시켜야 한다. 물론 과거의 잘못을 덮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진상과 책임을 밝혀 바로잡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검찰에 고발되었으니 사법적 판단에 맡기고 행정의 모든 분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경제청도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하여 의혹을 스스로 해명하는데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과 언론은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주장과 송도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서 제시하는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필요 없는 소모적인 정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배다리의 기억과 흔적

인천에서는 동인천역 부근에서 시작하여 도원역 부근까지의 철길 옆 부근을 배다리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행정명칭은 아니나 인천시민 대다수가 그 지역을 이야기할 때 배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과거 조선말까지의 인천시 지형은 오늘과 달랐다. 과거에는 월미도가 섬이었지만 지금은 매립해서 직접 갈 수 있다. 매립하기 전까지 주안 염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배를 타기 위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배다리라는 지명은 바로 배를 타기 위한 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 철도 부설구간인 경인선의 종착역은 사실 인천역이 아니라 제물포역이었다. 배다리 도원역 부근에 가보면 한국 최초의 철도 종점이었다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이곳에는 한국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영화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초등과정은 없어지고 여자중학교와 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창영초등학교도 역사가 100년이 넘으며 본관은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영화학교 본관 역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900년 전후에 건축된 미국감리교 여선교사 숙소가 근대 건축물로 보존되어 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 야유회나 술좌석에서 흥얼거리던 노래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한국 최초의 성냥공장이 들어섰던 배다리다. 지금은 건물만 남아 있지만 1920년대에 만들어진 인천 최초의 양조장이 있는 곳도 배다리다. 이 양조장 건물은 현재 스페이스빔이라는 문화단체가 임대해 사용하며 다양한 문화강좌나 강연회, 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장소로도 사용하고 있다. 배다리에는 아직까지 아벨서점이라는 헌책방이 남아 있다. 인천지역 학생들의 상당수가 아벨서점을 비롯한 여러 헌책방의 신세를 졌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50~60개에 달했던 많은 헌책방들이 사라지고 아벨서점을 비롯한 서너 개만이 남아 있다. 이런 배다리는 2010년 전후 홍역을 치른 적 있었다. 인천시가 도심을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도시계획을 세우고 도로부지에 속하는 주택들을 매입하며 철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천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과 재개발을 반대하는 배다리 지역 주민들이 뭉쳐 산업도로 개설을 위한 도시계획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반대의 이유 중 하나는 배다리가 갖고 있는 삶의 역사와 문화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시 강력하게 뭉쳤던 주체들에 의해 중단되었던 산업도로 건설이, 2017년 다시 추진되고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많은 문화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천막을 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대다수의 과거 문물들은 경제논리로 부정당했고, 화려한 현대문물만이 절대 진리인양 우리에게 강요되었다. 인천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근대문명의 자산들이 경제논리로 철거당하며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우리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의 기억과 흔적이 일방적으로 소거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다리의 진행 상황을 주시한다. 과거의 기억과 삶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배다리의 풍경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곽경전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사회적 교환이론으로 본 부모와 자식

인간은 항상 비용과 보수에 바탕을 두고 행동한다는 것이 ‘사회적 교환이론’이다. 모든 행동에는 반대급부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10여 년전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주제발표를 한 교수가 우리나라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사회적 교환이론으로 이해하는 시점이 곧 올 것이라는 강연을 들었다. 당시에는 어찌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보상과 반대급부로 해석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대받은 노인들 사례를 접하면서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경제적 이해관계로 설명되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늘어간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노인자살과 우울증은 자녀의 부모 왕래 횟수가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영향 요인임을 발표했다. 물론 관계가 좋기에 왕래가 잦아지고, 가까이 있기에 자녀와의 건강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학적으로 살펴보면 자녀들이 자주 왕래하는 부모는 상대적으로 학력과 경제수준이 높다.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부모에게 얻을 만한, 또한 사후에 기대할 만한 재산이 있기에 자녀가 근처에 살고, 잦은 왕래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늙으면 재산을 자녀에게 다 주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얼마 전 긴 추석연휴가 있었다. 추석명절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올해 추석만 해도 연휴가 길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여유 있게 찾아뵙기가 좋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뉴스에서 보듯이 역대 최고로 110만명 이상의 인파가 추석연휴 기간 중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점점 부모를 찾아뵙는 유대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명절 때 예전만큼 귀성길 정체가 덜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핵가족 중심으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기에, 우리 자녀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 전 초등학생 대상으로 가족의 범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보다 순위에 밀리거나 아예 가족 범위에 들지 않는 것이 이런 현실을 반증하고 있다. 자녀들은 부모를 사회적 교환 차원에서 반대급부를 바라는 존재일 수 있겠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가치가 있다. 바로 내리사랑인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키워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잘 되기만을 바라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하고 있다. 10년 전 보도됐던 기사가 생각난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노부부에게, 어느 날 할머니가 치매라는 질병을 앓게 되고 할아버지가 간병하다가 2년여 간의 수발에 지친 나머지 농약을 마시고 동반자살을 했다. 자살 전 마지막 식사했던 밥공기에 1남3녀를 위해 장례식 비용 250만원을 남겨 놓았고, 달력 뒷장에는 유서를 남겨 놓았다. 그 유서의 내용은 “50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 이제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는 내용이다. 마지막까지 자녀들 걱정뿐인 우리들 부모의 마음인 것이다. 정희남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횃불과 신의를 노래한 군의관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벨기에의 인접지역인 플란다스에는 연합군과 독일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1915년 5월 캐나다군 포병장교 알렉시스 헬머 중위는 독일군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마침 군종장교가 출장 중이라 군의관 존 맥크레 중령(John A. McCrae)이 그날 저녁에 장례식을 집전하게 됐다. 장례식이 끝난 뒤 그는 시를 썼다. 죽은 전우가 피흘려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살아남은 이들이 신의로 완수해 달라는 유지를 생각하고 시로 표현했던 것이다. ‘플란다스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s)’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이네 하늘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저 밑에 총소리로 새소리 잘 들리지 않아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까지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보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았지만 지금 우리는 플란다스 전장에 누웠네 적과의 싸움을 계속해주게 기력 없는 내 손에서 그대들에게 횃불을 넘기니 높이 들게나 그대가 죽은 우리와의 신의를 버리면 우리는 눈을 감을 수 없으리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자라더라도 시를 지은 맥크레 중령도 전쟁이 끝나가던 1918년 전장에서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1918년 시집 ‘플란다스 전장(In Flanders Fields)’이 발간됐으며, 시를 읽고 감명받은 조지아 대학 모니카 마이클 교수가 ‘그들을 기억하며(We Shall Remember)’란 답시를 지어 붉은 양귀비(Red Poppy)를 가슴에 달자고 제안했다. 3년 후 영국의 조지 호슨 총리 때 공식화돼 시와 꽃의 상징이 널리 퍼지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에서는 종전일 11월11일을 ‘회상의 날(Remembrance day), 포피데이(Poppy day)’로 정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가진다. 시를 읽고 또 읽다 보니 1983년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 부르던 군가 ‘전선을 간다’가 귀에 울렸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행군 도중 아픈 다리 이끌며 이 군가를 불러본 이라면, 고된 유격훈련 중 전우들과 이 군가를 목놓아 불러본 이라면 수십년이 지나도 가사와 곡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처연하지만 힘찬 멜로디, 슬프면서도 숭엄한 결의가 엿보이는 노랫말이 듣고 부르는 이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군가 작사자는 죽은 전우가 피흘려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아남은 우리가 잊지 말고 완수해 달라는 유지를 생각하고 노랫말을 지었을 것이다. 전방에서 복무 중인 내 아들도 행군이나 훈련 중에 ‘전선을 간다’를 목청껏 부르고 있을 것이다. 목놓아 부르다 보면, 선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이 나라와 민주주의를 우리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민주주의 시대에 필요한 소통교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의 거대한 의식 흐름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회의 모든 분야는 좋든 싫든 이러한 의식 흐름을 타야 한다. 만약 거부할 경우 커다란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가 그렇게 흐른다. 교육 분야도 그러하다. 민주주의 시대의 발달한 SNS와 다양해진 미디어들은 집단화된 목소리를 더욱 집단화하게 한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사회현상들이다. 이러한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덕목은 ‘집단적 갈등 해소에 필요한 소통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장치를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만 건강한 사회로 성장할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다양한 목소리와 의식 차이는 많은 갈등을 낳는다. 의식의 차이는 교육 목표의 차이로, 교육 책임의 차이로 나타난다. 아이들의 생활은 보통 절반은 가정에서 절반은 학교와 학원 등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아이들의 교육 역시 가정과 학교, 사회 모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좋은 교육은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나 ‘건전한 인격 형성’도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함께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아이들 교육문제나 갈등이 발생하면, 학교는 학부모를 탓하고 학부모는 학교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권리는 주장하면서 책임은 서로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평소 아이들 교육에 대한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소통과 협력 부재의 결과인 것이다. 과거 교육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절대적 교육권이 스승에게 주어졌다. 지금은 그러하지 않다. 학교도 변하고 있고 학부모도 변하고 있다. 학교 밖 다양한 민주주의 의식의 흐름과 변화가 학교 담장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른 다양한 목소리와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할 것인가가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선 문제가 발생한 후가 아닌 일상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 학부모와 학교 간 존중과 상호협력의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부모를 교육의 한 파트너로 존중하고 학부모도 학교를 믿고 신뢰해야 한다. 이런 상호존중과 소통 관계 속에선 어떠한 교육문제가 생겨도 합리적인 해결이 쉽지만, 소통 부재는 상호불신으로 일을 꼬이게 만들기 쉽다. 소통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학교도, 학부모도 아이들 문제를 위해 서로 자세를 낮추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진솔한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부나 교육청 역시 시대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교육주체 간 갈등 해소를 위한 소통 장치를 늘 점검하고 잘못된 장치는 과감히 바꿔 나가야 한다. 공문이나 내려보내는 군림하는 교육행정기관이 아닌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고 갈등 해소와 소통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혁신’이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

[함께하는 인천] 기본에 충실한 송도국제도시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일 뉴스에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함께 떠오르는 일화가 생각난다. 이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영종도 쪽에서 송도를 바라보고 뉴욕의 맨해튼과 비유하면서 무척 자랑스럽게 칭찬하였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송도가 그때보다도 더 발전되고 성숙된 도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어 그 긍지는 더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송도국제도시 주민들은 자긍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불편함과 실망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먼저 출퇴근 시간에 겪는 교통체증이다. 최근 개통된 김포 통진에서부터 인천항까지 연결된 광역고속도로는 인천의 남북축을 연결해서 원활한 흐름에 크게 기여하고 도시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써의 역할과 기능이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교통편의성의 증대 이면에 송도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교통의 피해를 입고 있다. 광역통과교통의 증대로 송도의 진출입 혼잡은 심각해졌고 인천의 북부지역에서 출발한 화물 교통량이 고잔IC로 진입하면서 송도해안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송도국제도시 내에서 출퇴근 시간대의 신호교차 대기시간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 한번 정도 기다리다 지나던 신호대기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이제 송도 입주 주민이 10만명을 갓 넘었을 뿐인데 계획인구 25만명이 다 입주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모습이다.25만 국제도시라는 단순한 수치에 근거하여 교통처리계획을 고민하면 싱가포르와 같이 승용차의 송도 진입을 제한하는 등의 극단적 조치가 예견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국제도시를 자랑스럽게 긍지를 가지고 계속 정주하는 시민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 와중에 6, 8공구의 사업내용과 방향에 대해서 법적분쟁 등의 요란한 불협화음이 주민들을 더 불편하게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국제도시의 실태가 아닐 수 없다. 송도국제도시는 초기 개발에서부터 주거기능 중심의 과밀개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어려운 여건 하에서 그나마 지금까지 비교적 큰 문제없이 조성된 송도국제도시는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나머지 개발대상지에 대해 기존의 지역과 조화로운 역할과 기능의 배분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사업의 경제성을 앞세우며 주거기능 위주의 개발 방향과 내용들이 주장되고 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 접근은 송도국제도시를 단순히 베드타운으로 전락시키고 나아가 주민과 산업이 공멸하는 국제조롱도시가 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다행히 그 와중에서 인천경제청이 중심을 잘 다잡고 있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된다. 지난 9월20일 인천경제청은 당초 지정 목적과 개발방향에 맞게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기자회견을 통해 표명했다. 송도국제도시의 기본에 충실한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실천의지의 표명은 조기에 혼란을 수습하고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행정의 기본 책무로 당연한 조치다. 원칙의 표명은 일시적인 갈등 모면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책임행정의 첫걸음이다.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편협한 주장과 비합리적인 타협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인천과 송도국제도시의 주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협궤열차에서 얻지 못한 교훈

▲ 곽경전 과거 1980년대 중반, 송도에서 소래까지 협궤열차를 타고 가자는 선배들의 제안으로 난생처음 수인선 열차를 타게 되었다. 처음 탑승하여 목격한 협궤열차는 좁디좁은 장난감 열차 같았다. 인도의 협궤열차를 토이 트레인(Toy Train)이라고 한다는데 그 별칭과 다르지 않았다. 열차의 간격이 장난감 열차처럼 좁아 의자에 마주보고 앉은 사람들 때문에 오가기 불편했다. 두 사람이 서 있으면 오갈 수조차 없었다. 탑승하여 둘러본 열차의 주 승객들은 송도역 부근의 열린 장터에서 농산물들을 팔기 위해 월곶과 달월 등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다수였다. 아마도 이분들에게는 생계를 위해 힘들게 거둬들인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을 것이다. 협궤열차는 한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협궤열차를 운영하는 국가들도 많다. 한국에 협궤열차를 부설했던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인도, 남아공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이 협궤열차를 폐쇄하지 않고 운영하는 것은 개선하여 운영해 나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스위스는 관광대국으로 산악열차인 협궤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가 표준궤열차 대신 협궤열차를 운영하는 것은 아무래도 경사가 가파른 지형적인 조건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를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에게 스위스의 자연 풍광도 풍광이지만 가파른 산악을 오르는 협궤열차의 탑승 경험도 하나의 즐길 거리라고 볼 수 있다면 협궤열차가 갖고 있는 가치는 상당하다. 수인선의 협궤열차는 1995년 12월31일로 운행이 중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협궤열차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천과 여주 등지의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화물노선을 목적으로 부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협궤열차가 갖고 있는 아픈 역사일지라도 역사와 문화의 가치는 고려되지 못하고 오직 수익성과 효율성만이 가치 기준이 되어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가치 기준을 경제성으로만 판단하는 우리 사회는 현재진행형이다. 중구의 동화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목적 하에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애경사라는 건물이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철거당한 일은 인천사회에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다. 이처럼 깊게 내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철거당한 애경사 100년의 역사는 우리가 얻고자 발버둥 친다 해도 얻을 수 없는 역사와 문화가 벽돌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다. 과거가 허름하고 낡았다 할지라도 그 안에는 역사가 있고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철거가 아니라 재생을 통해 오늘과 미래로 연결시켜내야 한다. 인천시는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가 파괴되고 철거되는 상황에서 무슨 비전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협궤열차는 20여 년 전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메마른 팍팍함만이 인천을 미래를 상징할 것이다. 곽경전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목숨은 단가로 따질 수 없다

사회복지사업은 공공서비스로써 시민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한 서비스다. 시민 욕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한정된 재원으로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사회복지사업 재정지출에 있어 예산 및 비용절감에 대한 효율성 문제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효과성은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근래에는 예산이 효율성있게 잘 사용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예산이 얼마나 국민 삶 속에서 체감되며 삶의 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효용성과 영향력에 대해 더 깊은 관심과 분석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자체별로 실행하는 자살사업을 예로 들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는 얘기는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언급됐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중 14%밖에 안 되는 노인이 전체 자살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노인자살 비율이 2배 이상 높다. 2015년말 기준 인천시의 노인자살률은 전체 시도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인천시가 대한민국 자살률 순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노인자살 문제를 노인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살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담당부서가 이원화돼 있다. 노인자살은 성인자살과는 달리 원인이나 행태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빈곤이나 건강상, 혹은 사회 관계망 단절로 인한 고독 등으로 야기되는 문제이기에 자살형태 또한 징후를 나타내지 않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살 관련 상담센터를 찾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도움을 얻으려 해도 관련 서비스기관에 대한 정보가 없어 찾아가질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노인자살문제는 자살 고위험군 노인을 발굴해서 그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도 인천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관련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자살을 생각하고 실제로 시도했던 노인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례 중 한 어르신은 5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데, 전문봉사원이 어르신과 하룻밤을 같이 지새우면서 안심시킨 적도 있다. 그 어르신 가정을 방문할 때 마다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있는데, 냉장고에 붙어있던 가장 인상 깊었던 스티커 문구는 ‘도움 받았음을 잊지 말자. 그 도움으로 힘차게 살아보자’ 라는 내용이었다. 종종 음료수를 사들고 사무실에 들르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면서, 이분들의 생명의 가치가 서비스 제공단가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을 느낀다. 인천시가 재정건전화를 위해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유사사업과 중복사업을 검증해 복지재정 효율성을 높였다고 얘기한다.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 재정지출에 대한 출처와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시대에 사회복지복지비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 또 학문간 융합을 통해 복지서비스 질이나 만족도에 대한 평가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이에 노인자살 문제를 노인문제와 자살문제로 이원화시켜서 생각할 게 아니라, 통합적인 지원시스템 뿐만 아니라 공급체계의 다원화를 통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코를 잃으면 어떻게 될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제작한 ‘코(The Nose)’를 관람했다. 이 오페라는 코발로프라는 남자가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보니 밤중에 코가 없어져버린 것으로 시작한다. 얼굴에 붙어있던 코가 사람이 돼 걸어 다니며 높은 관리까지 된다. 천신만고 끝에 경찰관이 그 코를 체포해 코발로프에게 돌려줘 의사에게 데려갔다. 하지만 의사는 코를 다시 붙일 수 없어 고심하던 중, 코를 잃은 후 13일 만에 잠에서 깨어보니 다시 붙어있었다는 황당한 줄거리였다. 이 풍자적 오페라는 니콜라이 고골의 고전 단편 소설에서 기원했다. 이 소설에서 코는 주인공의 자존감의 원천으로 상징되며, 코의 상실은 자신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했다. 사람의 정체성은 주로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에 외모를 대표하는 코가 없어진 사태가 그를 황폐화시켰던 것으로 표현했다. 원작자 고골은 그 자신이 기이한 형태의 코를 가졌기 때문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의 편지들을 보면, 못생긴 그의 코는 기발한 농담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의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고골은 환상적인 코미디라는 장르를 빌어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요새는 절단된 코를 가지고 골든아워(golden hour) 안에만 병원에 도착하면, 미세 혈관 연결로 다시 붙일 수 있다. 잘라진 코 부분이 소실된 경우에는 이마 부위의 피부로 다시 만들 수 있다. 재건성형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코 보형물이 사용됐다. 한편, 브라헤(1546-1601)는 덴마크의 천문학자였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제자 케플러가 브라헤의 천문학 자료를 이용해 행성 운동의 3가지 법칙을 발표했다. 브라헤가 20살 때, 그는 8촌형제인 파스버그와 검술시합을 하다가 코를 잃었다. 파스버그의 칼날은 코의 대부분을 잘라 내어 비강과 코 중격이 노출됐다. 그는 기형을 숨기기 위해 왁스로 코 모양의 보형물을 만들었으나 불편함이 많아, 왁스로 만든 코 거푸집에 놋쇠를 부어 편리한 보형물을 만들었다. 화가를 시켜 자신의 피부색과 일치하게 채색했으며 아교로 고정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격이 방어적이고 우울했으며 비밀스러웠던 것을 보면, 코의 변형이 그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눈 또는 코에 후천적 결함이 있어 얼굴에 보형물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삶의 질은 건강한 대조군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신체 이미지와 자신의 성적인 매력에 대한 평가도 낮게 나타났다. 일부 환자들은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보형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고 믿기도 했다. 코발로프와 브라헤 박사의 예를 살펴보며, 외상을 주로 담당하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생각하는 바가 남다르다.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환자를 치료할 때, 성형외과 의사는 재건뿐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이해해야 한다. 또 재건을 통해 심리적인 도움을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원고는 [Hwang K. What Would It Be Like to Lose One’s Nose? Gogol’s The Nose and the Astronomer Tycho Brahe. Arch Plast Surg. 2017 Jul;44(4):257-258]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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