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아이디어를 처음 갖고 나서 논문이나 칼럼의 원고를 쓰기 시작하기까지 며칠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로 미루곤 한다. 서론이나 글의 도입부에 무엇부터 써야 할지 첫 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럴 때마다 논문이나 수필을 쓰는 데에 도가 통하거나 깨달음을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자로나 문인으로나 대성할 수 있을 터인데하는 생각이 든다. 다녀본 절 중에 가장 아늑하였던 곳은 가람의 배치가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마루로 연결되어 있으며 툇마루가 있어 앉아서 메모지에 글도 끄적거릴 수 있었던 봉정사 영산암이었다. 이러한 아늑함 때문이었는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승려를 통하여, 또 산사를 둘러싼 자연 풍경을 통하여 삶과 죽음, 해탈과 자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인가?는 선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로서, 불법의 요지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제자가 스승에게 이 질문을 던졌으나 스승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 곧이곧대로 친절하게 알려주기는커녕 각각 다르게 대답하였으며, 제자를 서판으로 후려치기도 하였다. 달마는 실존인물로서, 520년경 중국에 도착하여 기존 불교인 교종과는 전혀 다른 선종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번역은 물론 대중설법도 하지 않았지만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이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작성된 여러 종의 『달마어록』이 유포되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성(自性)이 없다. 그것은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그대로 비어 있다. 본래 온 곳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니다.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사라지는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곧 깨달음이다. 그런데 왜 많은 수행자가 이 간단한 깨달음의 길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 달마가 지적한 대로 그들이 깨닫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온전한 체득, 자아의 존재를 말끔히 무화시키는 것만이 해탈의 길, 대자유의 길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만, 깨닫고자 하는 자기의 의지마저 먼저 지워버리는 경지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의사로서 신들린 것처럼 칼춤을 추며 수술을 멋지게 하고 싶었다. 해부학자로서 시신을 해부하여 수술에 필요한 구조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어 유명해지고 싶었다. 논문을 쓰는데 도가 통하여 서론과 고찰을 거침없이 완성하고 싶었다. 소재만 잡으면 몽테뉴처럼 후대에 남는 수필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고 싶었다. 이제 은퇴가 삼 년도 남지 않은 이때에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최고의 외과의사, 최다 논문의 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먼저 버려야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네가 장황하게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연유는 무엇인가? 아마 여전히 글을 제대로 다루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사회단체 소기의 목적달성은 어디까지

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 침략의 잔재를 청산하고 과오를 바로잡겠다며 사회활동에 전념하는 자들이 있다. 이전 정부의 잘못을 조사하여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나아가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며 활동하는 단체, 노사관계에서부터 여성, 어린이 등의 약자, 나아가 동물의 삶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나서는 수많은 단체가 있다. 이제는 학창시절의 인간관계도 밝혀보겠다며 나서는 자들이 있으니, 언제가 조상의 잘잘못도 따져보자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그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은 중요하다.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나서는 행위는 정의의 실천이요 용기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민도 존중한다. 어느덧 한국 사회가 부유해져 다소의 기부나 봉사에 인색해하지 않아, 각종 사회단체에 도움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TV의 공익광고라며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차마 보기 불편한 장면을 연출하며 후원을 요구하는 광고도 부쩍 늘었다. 명분만 잘 만들어 내면 사회단체를 결성하여 뜻있는 자들의 후원을 받아 어엿한 활동을 전개하며 일터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분명 현대사회의 발전에 시민들의 의식이나 사회활동의 역할은 지대하여, 그 덕에 부조리한 사회가 일정 부분 개선되고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덧 각 단체가 사회에 던지는 명분과 행동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 볼 시점이 온 듯하다. 피해나 불이익에 신음해도 개인의 힘은 미약하여 이를 사회에 알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정의감에서 출범한사회단체에 국민도 성원을 보내왔다. 작은 출발이 거대한 사회단체를 이뤄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체설립에는 목표가 있을 터, 활동이 궤도에 올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판단된다면 그 시점에서 역할의 종료를 선언하고 퇴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도 충분히 다한 역할을 지속해 나가려 한다면 국민에게피로감을 주며 그간의 공과마저 왜곡시킬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사회 분열을 감수하며 단체에 끌려가는 상황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단체의 사업이 늘 순항할 듯 보여도 정의에 반하는 한순간의 실수에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단체는 불의에 경종을 불러일으켜 사회가 바르게 기능 하도록 하는 토대를 열면 되는 일로, 완전무결한 해결을 얻어낼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피해단체를 위해 많은 국민이 아낌없는 성원을 보여 왔다면, 단체들도 일정한 시기가 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시점에서, 그간의 성원에 고맙다며 머리 숙이고, 더 이상 자신들의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칠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며, 모든 것은 가슴에 담고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목적달성을 선언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야 국민도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정의연이라는 단체의 활동은 커다란 성과를 이뤘다. 위안부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일본의 만행을 충분히 꾸짖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이제는 정부에게 국제적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고 그간의 업적을 유종의 미로 장식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직도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시작해야 할 사회운동은 많지만, 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활동이 고이는 일 없이 순환되는 구조 속에서작동되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아직도 수술을 하십니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료 교수가 다가와서 대각선으로 앉았다. 나보다 아래 연배인 그가 내게 아직도 수술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하며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전공의 수련을 받던 시절, 그러니까 약 30년 전에 강남이 화려해지고 소득이 올라 윤택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을 때 유행했던 아직도 시리즈 질문이 있었다.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강남으로 이사 안 했나?), 아직도 테니스 치십니까?(골프 안 치나?), 아직도 그 여자와 사십니까?(젊은 여자와 재혼 안 했나?)가 그 시리즈였다. 내가 어제는 광대뼈 골절 3개, 코뼈 골절 두개로, 수술 5개 했는데요 라고 답하자, 그는 교수님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으셨지요? 저희 배울 때는 외과교수님들이 50대 후반이 되면 수술 거의 안 하고 쉬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옛날 어느 큰 절에 어른이 되시는 스님이 계셨어요. 그 스님은 연세가 높아져도 밭에 나와서 일하셨지요. 노인이 땀 흘려 일하는 게 안쓰러워서 어느 날 제자들이 그 스님이 사용하는 쟁기와 호미 등의 농기구를 숨겼어요. 그랬더니 그 노스님은 그날 밥을 전혀 드시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제자들은 숨겼던 농기구를 다시 내놓았답니다. 그 스님처럼 저도 밥값은 하고 살아야지요 내가 말한 그 스님은 평생 밭을 갈고 참선하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로 유명한 백장선사(749-814)이다. 전공의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일 수술은 코뼈 수술로 비개방교정술을 시행 받을 환자 2명, 턱뼈 골절로 개방교정술을 받을 환자 1명입니다. 이 경우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준비된 수술만 하고 나오면 되지만, 그 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은 내게 수련을 받는 제자들의 몫이다. 수술 전에 마취에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여 그 결과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과정을 설명하고 수술동의서를 받는다. 수술실 입구로부터 환자를 수술실로 데리고 이동하여 수술대에 눕히고는 가슴에 심전도를 붙이고, 팔에 혈압계를 감고, 손가락에 맥박산소측정기를 꽂는다.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시키는 동안 옆에서 줄곧 대기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수술하는 동안 조수를 서며 피를 닦고 실을 자른다. 수술 후 환자를 깨우면 회복실에 데려가고, 병실에 올라가서도 수술 후 처방을 입력해야 일이 끝난다. 나의 제자들은 농기구를 숨겨놓는 백장선사 상좌들의 마음으로 나의 수술을 돕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백장은 자신이 깨달은 정법안장을 자신의 노동으로 보여주었듯이, 나도 삼십여년간의 수술로서 깨달은 나의 수술 기법을 내게 배우는 제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전해주려 한다. 그 늙은이는밭을 떠난 적이없었는데도밭에 얽매이지 않았다는데낡은 이 몸은늘 떠나려고 했는데도얽히고설켜서발목의 거미줄을 훑어버리려버둥거리지만쇠사슬처럼점점 조여들기만 졸시 「백장과 나」가 생각났다. 일하면서도 그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 백장선사 같은 도인들에 비해, 세속에 살면서도, 벗어나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일상에 아등바등 얽매인 마음을 그 늙은이가 경작을 통해 해방해탈 시켰듯이, 나도 마지막까지 내 수술칼로 수술하며 번뇌를 잘라내려 한다. 아직도 수술을 하노라고 자부하면서.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대의민주제 직접민주제로 보완해야

국민발안제가 국회에서 폐지됐다는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국민의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망을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거부한 것이다. 국민이 국회의원 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뽑을 만한 훌륭한 후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 제도하에서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법을 바꿔 국민이 원하는 제도하에서 국회의원을 뽑고 싶지만, 입법권을 틀어쥐고 꿈쩍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 탓에 어쩔 수 없이 현 제도하에서 움직이는 것뿐이다. 국민 손으로 직접 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번 선출이 되고 나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해도 국민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국회의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권력 쟁취에만 몰두했었다. 그 결과는 늘 국가 분열로 이어지고 남북통일 및 국가경쟁력 고양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회의원을 선출만 할 수 있고 어떠한 잘못에도 이를 번복시킬 수 없는 제도 탓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회의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 국민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한 이유이다. 똑같은 민주주의를 하고 있으면서도 나라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역사 속에서 승리를 써가는 나라와 패배를 써가는 나라가 있듯이, 다른 나라에서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제도가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같은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고, 다른 제도가 있으면서 우리보다 좋은 정치체제를 보이는 나라가 있다. 한국의 정치는 그간 한 번도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고 권력 쟁취를 위한 극한 대립만을 보여왔다. 내용은 팽개치고 선진 제도의 무늬만 가져와 운용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국민도 이성을 잃어가듯 권력 싸움에 가세하여 국가보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 상대의 결점 잡기에 열을 올리며 국민 화합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인적 청산과 강한 저항이 반복되며 바람 잘 날 없는 국가를 반복한다. 북한이나 일본과의 화해가 아니라 우리 국민 간의 화해가 먼저인 상황이다. 바른 국민의 뜻은 받들고 그릇된 국민의 뜻은 거부하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지려면 국회의원이 멸사봉공의 자세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섬기며 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간의 국회의원들이 보인 모습은 국민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탐닉하며 한번 맛본 권력 유지를 위한 집착 속에서 결국은 국가나 국민보다 본인의 미래를 위한 행보뿐이었다. 선출되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아도 국민을 대표하는 권한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맹점 탓이라 하겠다. 제도를 바꿔내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풍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 등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가들이 국민의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구현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민의를 받들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의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것이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의 도입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게 하는 개헌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코로나로 본 국가의 존재 이유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는 전체주의적 국가관과 절대 권력의 위험성을 그린 소설로 주인공 윈스턴은 빅 브라더라 불리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다. 1949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최근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빅 브라더는 국민들의 사고(思考)의 폭을 좁혀 개인의 모든 정신과 생활까지 철저히 감시하는 상황, 또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사회체계를 비유하는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코로나사태 초기의 외국 언론은 우리나라 상황을 빅브라더에 비유하면서 우리 정부의 확진자에 대한 동선 공개 및 강력한 격리수용 조치에 대해 정보의 독점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비인권국가 행동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지금은 전 세계가 우리의 방역체계를 벤치마킹하는 상황이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수준 높은 진단과 검사, 병원비 걱정 없는 치료로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선진성이다. 반면 무상의료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의료 선진국가인 영국처럼 조세 방식의 보편적 의료제도(NHS)를 채택한 국가에서 코로나19의 전파속도와 사망률이 높은 원인으로는 수준 낮은 저비용 의료시스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 같은 고비용 의료체계 국가에서 의료접근성 저하 및 치료기회 상실에 의한 사망과 같은 비극적 결과가 많이 초래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는 국민들이 자유권적 기본권을 가지고 자유로운 행동과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국가는 사회전반의 경제 및 의료 등의 정책들을 자유방임주의 원칙하에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앙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국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6년 전 4월 16일을 기억한다. 혹자들은 세월호 사건을 운이 나빠 발생한 해상교통사고 정도로만 치부하고 노란 리본만 보면 진저리를 내지만 국민이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핵심은 국가 최고 리더가 국민들의 위기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과 국가가 진정 국민들을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앞서 2015년 병원을 중심으로 메르스 확진환자가 연이어 발생하고 초기 확진환자와 그 접촉자들에 대한 격리조치 미흡 및 불투명한 의료정보는 문제를 확산시켰다. 이후 정부는 국가적 재앙을 되풀이 않겠다는 의지를 국가적 차원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령의 개정, 질병관리본부의 차관급 조직으로의 격상, 감염병 관련 조직 확대 및 공무원 증원, 감염병 관련 연구 개발 예산의 확충 등 많은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갔다. 감염병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 지금은 세계가 의료계뿐만 아니라 문화, 체육계에서도 칭찬하는 수범적인 국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잘사는 나라는 GNP가 높은 나라가 아닌 국민들이 안전한 나라일 것이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갈대와 주사기

요즈음 그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두개 대륙 이상에서 창궐하여 세계적 유행(pandemic)이라고 부른다. 이 판데믹의 어원을 살펴보았더니 목동의 신(牧神) 판(Pan)과 관련이 있었다. 판은 숲과 들판, 양떼와 양치기의 신으로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한밤 중에 들판이나 어두운 숲을 지나갈 때 괜히 공포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판의 장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공포(Panic)란 말이 생겼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났으므로, Pan으로 시작하는 말은 모두(all)의 뜻도 갖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역병 판데믹(Pandemic)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외모가 흉측한 이유는 목동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나 반인반수(半人半獸) 종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상체는 인간이나 하체는 염소이며 이마에는 조그만 뿔이 나 있고 염소처럼 매부리코에다 귀는 뾰족하며 몸에는 털이 무척 많았으므로 혐오감을 주는 인상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 BC 43 - AD 17)가 저술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AD 8)를 보면, 판은 어느 날 들판에서 나무의 님프인 쉬링스(Syrinx)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미 순결을 맹세한 그녀는 무서운 외모를 한 판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다 강가에 다다랐다. 그가 그녀를 따라잡자 그녀는 자매인 물의 요정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가 그녀를 덮쳐 껴안는 순간 물의 요정이 그녀를 갈대로 만들어버렸다. 실망하기 짝이 없게 된 판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이 쉬링스가 변신한 갈대 속을 통과하자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판은 그 소리를 필시 그가 사랑하였던 그녀의 슬픈 목소리라고 생각하여 그는 갈대를 길이를 다르게 잘라 다발로 묶어 피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Syrinx는 판이 불던 피리 판플룻(pan-flute)을 뜻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 Syrinx가 복수형이 되면 갈대와 같이 속이 빈 주사기(Syringes)가 되므로 신기한 언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음악과 의학에 깊숙이 연루된 판이 오늘날 판데믹의 이름으로 우리를 공포에 떨고 만든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판을 세계의 문인들이 즐겨 찬양해서 밀턴은 대자연의 화신으로 그렸고 쉴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찬하는 중에 판을 언급하였고 기독교 시인 배리트 브라우닝 부인은 죽은 판(The dead Pan)이라는 시를 지어 고대 신들의 죽음을 알렸다. 전설에 의하면 판은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나서 올림프스 신들이 암흑세계로 쫓겨날 때 죽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며칠 전 해외 뉴스에서, 각자의 집에 고립되어 있는 중에, 베란다에 나와서 노래를 하거나 플루트를 불어 역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웃들을 위로하는 연주자들을 보았다. 나도 김소월의 작시 엄마야 누나야를 불러주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의 시에 나오는 갈잎은 갈댓잎이니 요절한 소월도 생전에 오비디우스의 글을 읽었으며, 강변의 갈대가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빠른 시일 안에 치료제 뿐 아니라 시린지(syringes)에 담긴 백신이 개발되어 인명을 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비상시 한국의 방송 함께할 만한가?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몸 상태도 괜찮은데 집에서 가족과의 대화도 삼가며 홀로 보내야 하는 일상이다. 집에 틀어박혀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 그저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TV를 보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매일 보는 인터넷 기사도 별반 새로운 것이 없고, 방송도 유익한 것이 없어 눈의 피로만 가중되고 있다. 중요 방송사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같은 내용의 반복되는 뉴스나 연예오락이 주로, 해외방송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 각 분야의 변화와 발전이 눈부신데 방송은 애써 지켜오던 인간사의 귀한 가치마저 변질시킨 채, 사회 감시기능이나 정보 전달기능에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세태의 무절제를 반영하는 오락적 요소로 승부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 만연에 감당못할 정도로 내보내는 건강정보와는 정반대의 음식요리 관련 프로그램, 가족해체를 당연시하며 개나 고양이를 가족 삼으라는 듯한 프로그램, 예체능인의 놀이에 더해 그들의 가족마저 등장시켜 사유화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프로그램 등이 누구나가 쉽게 접할 방송 시간대의 주 메뉴이다. 엄중해야 할 내용마저 정중함과 겸손함은 타파해야 할 구태인양 가벼운 언행의 개그프로그램처럼 연출되고 있다. 재미만을 선사하면 되거나, 젊고 멋진 진행자들로 승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적 식견이나 경륜이 요구되는 경우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경험 부족에서 오는 내용전달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이 두드러져, 뉴스보도 등도 안정감이나 신뢰감, 나아가 행간의 의미라 할 수 있는 주변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고, 이미 인터넷에 떠 있는 사실의 단순한 전달에 그치고 있다. 주어진 대본에 따라 열심히 말만 하는 느낌으로는 시청자의 신뢰나 감동을 끌어내기 어렵다.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어나가는 환자가 끊이질 않고, 타국에서 입국하는 확진자를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인데, 뉴스는 한국이 모범국가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국민의 위기의식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뉴스도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내용 일색이다. 흉악범죄나 성범죄를 뉴스의 메인으로 전개하며, 별 듣고 싶지 않은 사항들을 매일 대서특필한다. 국민 모두를 범죄연구가로 보는 듯한 보도 태도이다. 무엇이 알권리인지 늘 알권리라 주장하며 무슨 최고의 가치라도 실현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 악영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자극함으로써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방송 같다. 모두가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런 국민을 더 지치게 하는 보도내용과 연예오락에 치우친 프로그램으로는 비상시 일상을 같이할 동반자로서의 방송은 실격이다. 과연 국민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방송이 국민에게 전해야 할 내용 선정이나 그 전달 방법이 옳은지, 늘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기로서의 방송에 의문이 간다. 방송이 곧잘 정의, 차별, 부조리를 지적하며 그를 개선하라 주장하지만, 정작 방송의 모습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일쑤이며 예체능의 오락이나 담아내는 그다지 얻을만한 것도, 배울만한 것도 없는 존재처럼 되고 있다. 방송이 사익이나 추구하는 일그러진 정치집단처럼 공정과 균형을 잃고 국민을 자극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듯한 모습에서 벗어나, 방송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되짚어 보고 국민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가치 있는 매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정치는 곧 올바름이다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사회는 초기의 공포스런 상황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 외국으로부터 한국의 입국은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코로나로부터 안전지대로 인식되는 반전의 상황을 맞고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별 방역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매뉴얼에 따른 정부 통제와 지시에 자율적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국민의 자세는 세계적인 수범사례가 되고 있다. 확진자와 의심환자들은 사회연대의식 가운에 통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자가격리 지침을 따르면서 추가 감염을 예방하기에 노력했고 국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코로나사태 조기 종식에 함께 동참했다. 또한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외국처럼 사재기가 없는 상황은 큰 위기에서 발휘되는 국민들의 저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 의식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집단 감염의 위험을 무시하고 종교집회를 강행하면서, 이를 제지하는 공권력에 대해서 욕설을 하는 등 국가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례도 있다. 또 만우절에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면서 SNS에 허위로 글을 올리는 개념없는 연예인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일주일 뒤에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최고의 입법기관의 주체인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의 정치인을 보면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에는 관심이 없고, 또 한번 해먹을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국면에서 정부 방침에 따르지 않는 이들처럼 말이다. 오로지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을 위한 정책공약은 없고 당리당략에 의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새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있다. 정치는 곧 올바름이다라는 의미다. 노나라의 계강자라는 대신은 군주의 권력을 빼앗아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지자 공자에게 찾아가 해법을 물었다. 이에 공자는 지도자가 원칙을 어기면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당신이 백성을 정도로 이끈다면, 누가 감히 정도를 걷지 않겠느냐(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그 뜻을 설명했다. 계강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타난 공자의 뜻은 분명하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욕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를 비롯해서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조직에서 가정의 가장이나 조직의 리더가 진정한 모범과 리더십을 발휘할 때 구성원들의 행복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력있는 국민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참 행복을 위해서 진정성 있게 노력해 준다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바로 일상이 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역병에 약초 되어

며칠 전 예방의학교수를 마주쳤기에 작금의 바이러스19 사태가 얼마나 갈 지 물었다. 그는 내 코가 석자라고 하였다. 자신은 가족들이 대구에 사는 주말부부인데 병원에서 공문을 받았기에 주말마다 보던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한 소설과 그에 관련하여 내가 발표하였던 논문이 생각났다(Hwang K, Hong HS, Heo WY. Would medical students enter an exclusion zone in an infected district with a high mortality rate? An analysis of book reports on 28(secondary publication). J Educ Eval Health Prof. 2014;11:15).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의학전문대학원 면접시험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의 간추림을 수험생들에게 제시하고, 당신이 의사가 된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폐쇄된 화양시에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들어가겠는가? 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28은 전염병에 대한 소설로서 그 배경은 수도권 인근 도시, 화양(火陽)이다.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병한다. 최초의 환자는 발병 직전에 아픈 개에게 물린 이후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의 장기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화양에 번져나가고, 국가는 화양을 봉쇄한다. 화양은 마침내 지옥이 된다.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한 도시에 들어가겠다고 답하였다고 결과를 알려주었다. 합격한 학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 3학년이 돼서도 초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폐쇄된, 치사율 높은 전염병 지역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가 반드시 포함 되도록 하였다. 결과를 보면 위험 지역에 기꺼이 가겠다는 학생은 36%로 가지 않겠다는 학생(64%)의 수보다 적었다. 주목할 점은 비록 위험 지역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답변한 학생들도 그 지역 밖에서라도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역할은 하겠다고 한 점이다.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개발 되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퍼져 동료 의사들이 그 도시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환자의 구토를 손으로 받아내고 고름이 얼굴에 튀는 상황에서도 견뎌왔으며, 수술 중에 바늘에 찔려 장갑 안에 배인 피를 보면서도 내 아픔을 걱정하기보다 환자에게 오염시키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며 살아온 의사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는데도 환자를 들이밀며 간호사와 다투어 본 적이 있는 의사는, 인공호흡기 옆에서 모니터의 알람 소리에 날밤을 새며 환자의 침대에 이마를 대고 쪽잠을 잔 적이 있는 의사는, 지금 그 도시에 있는 동료가 얼마나 힘들지 머리보다 몸이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아침 출근할 때 불교방송에서는 8세기 당나라 때의 선승 이산혜연(怡山惠然) 선사(禪師)의 발원문(發願文)이 나오고 있었다. 모진 역병 돌 때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리 (疾疫世而現爲藥草 求療沈 饑饉時而化作稻梁 濟諸貧) 나도 환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스러움, 동료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에 작으나마 정성을 모으는 데 동참하였다. 어서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끝나길 기도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코로나19를 마주하는 아파트의 삶

날로 진화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이 인간의 나약함을 시험이라도 하듯 우리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상이 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멈춰서고, 그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늘 그랬듯이 이번 사태도 지혜롭게 극복해낼 것이다. 질병이 잠잠해지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그간의 힘든 싸움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질병의 도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개인은 잊고 살더라도 국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환자 발생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상황에, 혼돈스러운 방송과 관계기관의 브리핑을 방안에 틀어박혀 종일 뚫어지게 응시한다. 어느덧 머릿속에는 집단감염,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개념이 각인되고, 마스크의 중요성마저 절감하며, 내가 이 아파트에 격리된다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스친다. 집단생활이 일상인 구조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직장의 일도 다수가 모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거주하는 아파트의 삶도 다수가 함께해야 하는 구조이다. 배달로 버텨 보며 난생처음 며칠간씩 반복해보는 아파트에서의 격리 생활은 마치 감옥과도 같아 견디기 쉽지 않다. 개인주택이라면 마당에라도 나가 볕이라도 쬐고 뛰어라도 보련만, 현관 앞이 바로 이웃과 공유해야 하는 공간이다 보니 바깥은커녕 1층 로비에조차 타인을 피해 나갈 수가 없다. 운동 삼아 방안과 거실을 걸어 다녀 보지만 층간소음으로 조심스럽기만 하다. 비로소 아파트가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주거시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관을 나서 복도를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반드시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내 집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타인과 함께 사는 집이었다.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타인과도, 쓰레기나 동물들과도 함께 이동해야 하며, 마주치고 싶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지 않은 타인과 늘 일정 부분 동선을 같이 해야 하는 아파트의 삶이다. 과연 많은 이들이 살아야 하는 집이 이런 공동주택으로 괜찮나 하는 의문이 든다.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는 이상적 행동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개인의 이기적 행동마저 자유의 영역이라 외치며 이웃의 불편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주거형태가 공동생활을 강요받는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 정부는 인구집중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 공동주택의 폐해에 눈을 감고, 여전히 수도권에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며 대규모 아파트 건설의 신도시 정책을 남발한다. 언젠가 모든 국민을 수도권의 밀집된 아파트에 살도록 할 기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집단감염과 자가격리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전염력과 치사율이 더 높은 무서운 질병이고, 지방이 아닌 서울수도권에서 시작된 대규모 전파였더라면 한국은 대혼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지역 균형발전의 참다운 가치를 인식하고 선거를 위한 입발림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대도시에 밀집해 사는 구조를 해소하고, 대규모 공동주택인 아파트도 개인주택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회색마스크를 통해 본 대한민국 신분계급

최근 거리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노인분을 만나 몇 마디 나누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그분도 마스크 구하기가 힘들어 2주째 똑같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고 하셨다. 대형마트나 약국에 줄을 서서 기다려도 도저히 구입할 수가 없었고, 지금 있는 마스크도 작년에 구입한 황사마스크 몇 개중 남은 한 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스크로 2주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이 노인이 착용한 흰 마스크의 색깔은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그 노인은 불만에 가득 차서 TV에 나오는 높은 양반들은 우리처럼 가진 거 없는 사람들과 같이 동네 약국에서 새벽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서봐야 그 고통을 알 거야, 방역대책이다 선거다 해서 나오는 노란색 잠바 입은 양반들이 자기 돈으로 마스크를 사기나 했겠어? 누가 가져다주는 마스크로 거저 사용하다 보니 진정 우리의 마음은 죽어도 모를겨라고 했다. 최근 코로나19 공포로 인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처음 우리 사회에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대책과 실시간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바이러스가 조기 종식되는 것으로 인식하던 중, 신천지 대구교회 성도인 31번 확진자를 통한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수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되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 가는 현실이 되었고. 깊고 어두운 터널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이 막막한 상황은 국가적 위기이자 극복해야 할 난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의 하나 된 힘으로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왔었다. 반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우리 국회의 현실을 보면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코로나 사태를 본인의 이해관계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생명의 동아줄로 여기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각자의 당리당략에 의해 대안 없는 비판만 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아무리 욕을 먹어도 의원직이 지니는 기득권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는 부모 찬스를 통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 기득권 세력에 진입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스웨덴이나 일부 유럽 국가의 국회의원들은 보좌관이나 차량 지원 없이 의정활동을 하기에 늘 야근에 시달리고 힘들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진세에 대한 공포보다 무서운 현실은 마스크를 약속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정책과 이로 인한 국민의 불신이다. 개인위생과 감염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꼭 착용할 것을 권장하면서,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되었을 때 정부는 건강한 사람들은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며칠씩 사용해도 괜찮다라는 식의 일관되지 않은 입장 발표는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다. 회색빛 마스크를 쓴 노인, 정부와 정치권을 대조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진정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마스크 하나로 느껴지는 대한민국 신분계급 차이의 갈등과 박탈감이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인권의 완성을 위한 언론의 사명

최근 국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정보화 시대에 이와 관련된 뉴스가 국민들에게 공유가 되고 때론 정보의 홍수 속에 가짜 뉴스가 난무하면서 이를 검증 하는 것도 일이 됐다. 코로나19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해 중국 내 사망자가 최근 2천5백명에 이른다.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중국의 언론 통제 상황을 감안했을 때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재앙과 같은 상황을 예견했던 중국의 의사 리원량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사망했다. 중국 전역에서 언론을 억압하며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관련 기사와 SNS를 더욱 강하게 검열하고 있지만 추모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이어지고 중국 일부 교수들은 언론자유가 보장됐다면 이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원량 사망일을 언론자유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은 정치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집단 아래 벌어지는 민주주의 파괴와 정의, 공정, 알권리의 유린 행위를 알리고 비판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른 불법비리와 권력남용을 때론 현장으로 소환해야 한다. 언론이 사명을 다하는데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리원량의 죽음을 통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희생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는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성찰할 수 있다. 사회학자 토인비의 역사는 창의적인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라는 말처럼 인권의 시대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여기에 언론은 감시견인 워치독(Watch dog)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언론들은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랩독(Lab dog)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다. 다만 우리사회에는 경비견과 같은 가드독(Guard dog)의 역할을 하는 일부 언론이 있다.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서 권력화 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다. 얼마 전 우한 동포들을 진천과 아산지역에 격리치료 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주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도지사와 장관에게 계란을 투척하면서 격렬히 항의하는 영상을 방영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역이기주의 표상으로 폄하 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는 격리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과의 협의가 없었던 것의 항의다. 실제로 입소 할 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화합을 얘기 할 때 분열과 불안을 조장한 것은 언론이다. 우리사회가 이만큼 차이와 차별을 혐오하고 평등한 사회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고 지켜 내려고 희생한 창의적인 소수의 언론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공무원의 보수인상 재고해야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 결정되는 일그러진 사회가 되어, 직장도 일의 내용보다 임금수준으로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많지만, 임금 수준은 한국이 단연 높은 편이다. 한국의 고임금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렵지만 이에는 사회의 왜곡된 임금구조가 한몫한다. 고임금의 대기업이나 별로 힘든 일은 없고 월급은 많으며 평생 잘리지 않을 공기업, 아니면 임금이라도 높은 기업이라야 갈 수 있다는 구직자들이 많다.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만을 원하고 있어, 취업현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이 높은 회사는 인건비 탓에 일자리를 줄이거나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임금이 낮은 회사는 인력이 필요한데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경제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고임금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우려하며, 많은 회사가 정부의 강요와 같은 요구가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을 태세이다. 회사가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어도 과도한 임금 탓에 경영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은 고임금구조 탓에 인력채용을 꺼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심해지면 인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기업이 비슷한 임금수준에서 출발하는 구조이어야 고용시장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기업의 고임금 구조와 이를 추구하는 구직자들의 욕구 탓에 고용에 많은 문제를 낳고 있어,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적절한 임금구조를 정착시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해소시키고 청년들의 취업목표도 다양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가 공무원의 보수를 물가 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올리겠다니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인지 이해할 수 없다. 월급이 오르기는커녕 동결 또는 깎일 처지인 직장도 많다. 나의 직장도 월급 오른 적이 있었는지 까마득한 옛날 일로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국가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관계없이 국민의 혈세로 매년 꼬박꼬박 보수를 올리고 있으니 정상적인 처사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를 동결하고 한국사회의 임금시스템을 개혁해 내야 할 정부가 기업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혈세를 더 많이 거둬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겠다니 이것이 정부가 주창하는 제대로 된 나라 세우기의 올바른 모습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복지국가를 핑계 삼아 과하리만큼 거둬들인 세금을 물 쓰듯 펑펑 쓰고 있다며 분노하는 국민이 많다. 공무원들의 혈세 가로채기나 낭비도 끊이지 않는 뉴스거리이다. 보수를 올려야 하는 직종의 공무원이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투명하게 밝히고 그 분야만을 현실화하면 되는 것이지, 모든 공무원의 일괄적인 보수인상은 안 될 말이다. 고위직의 인상분 반납도 국민을 속이는 기만행위와 같다. 반납할 정도의 보수라면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자신들만의 결정으로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발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고 무슨 소리냐고 하는 격이다.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할 공무원의 급증으로 걱정하는 국민이 하나 둘이 아닌데 공무원의 보수인상이라니 믿기 어렵다. 고임금구조를 조정해내야 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한술 더 뜨는 자신들의 보수인상은 재고함이 마땅하다. 한국인들의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한두 달의 월급으로 낼 수 있는 정도의 대학등록금은 아주 싼 편이다. 대학등록금이 비싸다며 마치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무색하기만 하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행동

몇해 전에 성형외과 선생님들과 가사문학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목소리가 고운 해설사가 우리를 안내하였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외우다시피 공부하였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이 고운 목소리로 읊어질 때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며 따라하게 되었다.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ㅎㄴㅅㅇ 緣分(연분)이며 하ㄴㄹ 모ㄹㄹ 일이런가/나 ㅎ나 졈어 닛고 님 ㅎ나 날 괴시니/이 ㅁ음 이 ㅅ랑 견졸 ㄷ 노여 업다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ㄷ ㅂ라보니/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사미인곡 부분 당시 사대부들은 왕을 찬미하는 시나 문학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사미인곡에서 님(미인)은 왕(선조)이며, 송강은 뛰어난 글 솜씨로 아름다운 가사를 다수 남겨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권주가인 장진주사를 듣고 나서 전시품을 돌아보았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송강이 선조(宣祖)에게서 하사 받은 은으로 만든 술잔(銀杯, 165.0cm)이었다. 술잔이라고 하기엔 사발만큼 크며, 잔을 받치는 부분에 비하여 술을 담는 부분의 두께가 얇고 비대칭적이었다. 송강이 과음하는 바를 안 선조가 잔을 하사하며, 그대가 술을 좋아하나 너무 과함이 걱정되니 앞으로 이 잔으로 하루에 한 번만 마시라고 하였다는데 그 잔으로 마시다 보니 양이 성에 안 차 송강이 망치로 펴서 잔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큰 잔에 술을 마셔서인지 결국 송강은 흑달(간경변으로 인한 황달)로 작고했다고 하였다. 해설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4대사화에서 처형당한 사람이 100여명 정도였는데, 기축옥사(1589, 정여립의 난)때는 3년동안 1천여명이 처형당했다. 이것은 서인이 동인을 박해한 사건으로 이를 주도한 우두머리가 송강 정철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에 보면, 정철은 중년 이후로 주색에 병들어 자신을 충분히 단속하지 못한 데다가 탐사(貪邪)한 사람을 미워하여 술이 취하면 곧 면전에서 꾸짖으면서 권귀(權貴)를 가리지 않았다. 편벽된 의논을 극력 고집하면서 믿는 것은 척리(戚里)의 진부한 사람이었고, 왕명을 받아 역옥(逆獄)을 다스릴 때 당색(黨色)의 원수를 많이 체포하였으니, 그가 한세상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족히 괴이할 게 없다. 그의 처신은 정말 지혜롭지 못했다 하겠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철처럼 화려한 미사여구와 수사들로 치장한 글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글을 쓴다고 그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외모가 아름답다고 마음도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고, 아름다운 마음은 그 사람이 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이나 외모가 아니라 정녕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선거연령 18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는 민의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므로 올바른 민의가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해도 국민의 총의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일정 연령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도, 제한된 일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도 문제될 일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바른 정치가를 뽑는 데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일지는 논의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늘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말한다. 판단력이 갖춰진 유권자들의 선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대 청소년들의 판단력이 성인들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선거연령은 좀 더 낮추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일부 청소년들의 판단력에 우려할 점도 있겠지만, 기존유권자들의 판단력도 완전하여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을 규정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무늬 이상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평도 많다. 선거제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 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현재의 모습은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쟁탈에 국민이 동원되어 기득권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처럼 변질되어 있다. 대의기관의 막강한 권한 탓에 당선만을 위한 혼탁한 선거가 이어지고 있어, 대의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일 잘하라고 뽑는 선거가 포퓰리즘, 흑색선전, 맹목적 추종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며 바람직한 정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늘 우매한 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 현 대의민주주의의 결과이다. 모든 국민은 후보자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만들어진 선전에 의해 이미지로 선택을 하고 마는, 어찌 보면 초등학교의 반장 선거만도 못한 정보공유로 치러지는 것이 공직선거의 현주소이다. 선거의 전제조건이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면 국민 모두가 선거에 참여하는 방법만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다. 적절한 연령대의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열과 분열을 막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간접선거도 고려해볼 문제이다. 오천만 인구에 천명의 여론조사에도 신뢰를 말하는 시대이다. 이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선거에 참여해야 제대로 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논리와 배치되는 모습이다. 선거연령 문제가 그저 권력쟁취를 위한 진영논리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정치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권력이나 권한이 없이, 국민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봉사하는 그런 자리가 된다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지금처럼 첨예하게 대립할 리도 없고, 선거연령층의 확대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기준에 의해 상식적인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실현된다면 비용만 드는 선거연령의 확대는 불필요할 것이다. 15세 청소년이나 백세의 노인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경로사상으로 노인들이 공경 받는 사회가 건설된다면, 일부 정해진 연령층의 선거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사회를 차분히 지켜보며 음미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요보호 노인을 위한 성년후견제도 사용법

얼마 전 NCEA(National Center Eelder Abuse)소속 직원이 필자가 재직하는 기관의 홍보 SNS를 통해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인천에 살고 계셔 휴가차 방문한 이 직원은 미국 노인국(Administration On Aging) 산하 NCEA에서 노인학대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국 34개 노인보호전문기관처럼 노인학대 상담 및 현장조사, 일시보호 등의 사례관리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학대업무를 전담하는 경찰을 위해 교육매뉴얼개발, 학대판정 스크리닝지표 등을 연구하고 지역사회 노인학대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교육 및 홍보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 직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에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사기나 보이스피싱과 같은 경제적 학대가 크게 증가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독거노인이나 가족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노인세대 및 치매노인들이 점점 증가하는 우리사회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인구변화추이로 볼 때 2030년이 되면 약 100만 명, 2050년에는 약 300만 명의 치매 환자가 기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매년 늘어나는 치매 환자를 위해서 성년후견제도의 제대로 된 활용이 절실한 것이다. 치매 환자를 보호하는 가족의 경우, 간병하는 가족의 부양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거나 노인과 동반 자살하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반대로, 치매 노인들의 재산을 의도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후견인이 된 후 치매 노인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후견인으로 지정이 되면, 피후견인 대신 법률행위를 할 수 있으며, 금융이나 부동산 거래와 같은 매매 계약의 대리권 행사도 가능하다. 피후견인의 신변은 물론 재산 또한 보호하는 역할이므로 피후견인의 재산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자녀나 친지들이 재산을 함부로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령의 노인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학대는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울과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학대 이후 정부의 지원은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의 경우 경제적 학대는 정서적 학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연금에 의존하는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그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여러 연구자료에 의하면 선진국에서는 별도의 관련법을 제정하여 노인학대에 대한 신고의무부터 다양한 대응방안을 정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고령자에게 발생하는 금융피해 및 금융사기까지 경제적 학대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일본도 고령자의 재산을 부당하게 처분하거나 부당하게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경제적 학대가 의심되면 주요 신고의무자로 금융기관을 포함시키기도 하다. 우리도 물리적인 학대나 착취의 개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함께하는 인천] 미인, 어린 모습인가 평균화된 얼굴인가?

나이가 들어 주름성형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은 대부분 젊게 만들어 달라고 하며, 동시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젊게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청소년기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다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고 이해하며 수술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말에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아기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해치지 못할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어머니들도 아기의 외모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즉 매력적인 외모의 아기들은 어머니의 애정을 많이 받는데 반해 못생긴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냉대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학대 받는 아이의 상당수가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기답지 못한 얼굴이 보호와 보살핌이라는 어른의 자동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서만이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한 동물의 새끼들도 나름대로 특별한 표시를 가지고 태어난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1934~ )에 의하면 아기 침팬지들은 하얀 꼬리털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표시를 가지고 있는 한 어른침팬지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기들을 대할 때 커다란 눈, 부드러운 피부, 포동포동한 뺨과 작은 코 등 아이들이 가지는 특성을 선호하며, 아이들이 성장과정을 통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특성을 지닌 미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별히 예쁜 여성들은 보통의 여성들에 비하여 이와 같은 아기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은 진화론적인 관점에 반하여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미를 살펴보는 상반되는 의견도 있다. 폭풍으로 죽은 새를 조사해보면 평균치보다 크거나 작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월등히 많다고 한다.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새들은 평균치의 날개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최상의 비행능력으로 생존하였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사람의 경우에도 평균치의 체중을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의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체의 특성 중 최적의 것이 바로 평균값이라고 생각된다. 일산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근무하던 고 이승철 교수는 2011년 컴퓨터작업을 통하여 유명 연예인들의 디지털화 된 사진과, 이들의 평균값을 구하고 이를 토대로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설문조사를 통하여 개개인의 얼굴보다 평균화된 얼굴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두세 명의 얼굴을 합성한 것보다 4050명의 얼굴을 합성한 인물이 나아 보였다. 합성된 인물보다 나아 보이는 경우는 아주 소수였다. 개성을 추구하고 독창성에 환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의외였겠지만, 현대인의 미적 취향은 평균치, 즉 형태의 평균치를 선호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합성사진의 숫자를 늘릴수록 형태는 점점 더 평균치에 근접하게 된다. 우리는 잘생긴 얼굴을 보고 평균적 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평균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슈퍼모델의 얼굴은 평균적인 수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어린 모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균적인 모습을 선호한다. 주름성형수술을 받고 어색하다고 하는 환자들이 많다. 주름이 펴져서 젊어지기는 하였으나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뜻이다. 즉 아이의 특성으로 회복되었지만, 다수의 평균치에서는 벗어난다는 뜻일 것이다. 주름을 펴보아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주름이란 정녕 세월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것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차라리

얼마 전 한 종교신문에서 여러 박사학위를 취득한 어느 종교인이 쓴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의 취지와 달리 비판과 분석을 멀리하는 작금의 종교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서, 그 종교의 구성원들을 비판하는 대신 1천300여 년 전의 선배인 원효대사와 그 사상을 폄훼하는 글이었다.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과는 크게 다른 내용이어서 관련 논문을 찾아봤더니, 그 저자의 논지는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 며칠 뒤 한 일간지에도 그 저자의 칼럼이 게재됐는데, 그 역시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었다. 고심 끝에 그 종교신문에 실린 그 저자의 논지에 대한 나의 다른 의견을 투고하게 됐다. 나의 글이 특별기고란에 반론으로 실리고 나니 몇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중 하나로 저런 글을 이렇게 친절하게 반박할 가치도 없어요. 묵빈대처(默賓對處)가 딱 어울립니다라고 했다. 평소에 묵언이라고는 들어보았는데 묵빈대처라는 용어가 생소하기에 찾아봤다. 석가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간명하게 설명한 유교경(遺敎經, 佛入涅槃略說敎誡經)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 경전의 첫머리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해 유명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싯다르타 태자의 마부였다가 나중에 출가해 제자가 된 찬타카(車匿)는 붓다가 출타하시어 계시지 않을 때만 제자들에게 내가 새벽에 싯다르타 태자를 말에 태워 성을 넘지 않았다면 그 분은 출가를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덕분에 부처가 되신 거야라고 공치사하며 다른 제자들을 업신여겼다. 아난다는 붓다가 입적하기 직전에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붓다는, 위세를 부리는 나쁜 승려(惡性比丘)에게는 묵빈대처(默賓對處)하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그 마부처럼 교활하며 앞뒤가 다른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사람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왕따를 시키는 사례가 많다. 지속적으로 억지를 부리는 경우 일체 대응하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으로 대처하면 스스로 깨달아 고치게 되리라는 기대의 교육방법이리라. 그 댓글을 다시 보고 나니, 나도 효과 없는 글을 쓰느라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넌지시 들었다. 바로 그때 만해 한용운의 시 차라리가 떠올랐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랴거든 차라리 큰 소리로 말씀하야 주서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 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이번 논쟁이 그 박사님으로 하여금 근거에 바탕을 둔(Evidence based) 글을 쓰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사회일자리를 위한 교육체계 재편해야

교육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에도 절대적이다. 그 최종 종착역과도 같은 대학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학교육이 중요하다 하여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은 전문역량이 필요한 분야와 인력을 토대로 설계되고 이루어져야 한다. 대졸자가 과잉되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양성한 전문 인력이 별 효용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폐기처분되어 개인의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 대학교육은 사회의 수요에 맞게 조절되어야 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데 취업은 안 되는 고비용저효율구조의 많은 한국의 대학은 병든 환자를 손 놓고 지켜보고 있는 교육환경이다. 더하여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교육 없이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로 교육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대학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기이다. 어떤 일이든 대학교육을 받은 자가 더 잘해내리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일자리는 초중고의 보통교육을 이수한 신체건강하며 교양과 상식을 갖춘 자들로 충분하다. 사회의 다양한 일에 대학전공분야에 관계없이 능력을 발휘하며 직장생활을 잘 영위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 전공을 무기로 삼는 대학교육은 가치를 바랜다. 그런 점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인성을 함양하고 지식을 제공하는 초중고의 공교육에 충실해야 하고, 학벌이라는 형식만을 추구하는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입시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대학의 역할자체를 재정립해야할 문제이다. 한국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안고 있는 교육문제는 허상을 쫓게 하는 대입제도에서 비롯된다. 학벌사회의 병폐 탓에 대입에 목을 매지만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사회의 변화로 난관을 뚫고 성취해낸 대학입학이 제대로 된 공부는커녕 사회진출도 이뤄내지 못하는 허무한 결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현재의 대학은 백명으로 충분한데 천명을 양성하는 처음부터 부실이 예견되는 구조로, 많은 대학이 발버둥을 쳐도 전공에 맞는 일자리는커녕 사회의 부름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사회에 일자리가 적지 않지만 대졸자들에게 전공교육을 받은 전문가라는 탈을 씌워 선뜻 도전도 못하게 하고, 취업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해 생기는 어설픈 전공능력 탓에 대학교육의 효과도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대학교육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허무한 과정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국가경쟁력유지를 위한 인재양성은 필수적이지만 국민모두가 짊어져야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웬만한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보통교육정도로도 성실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우리사회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한때 배워야 먹고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배운다고만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아, 사회의 부름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대학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대학교육을 받아야 이룰 수 있는 일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후회하지 않을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부조리한 학벌사회를 타파할 엄중한 책무가 있다. 변화해가는 사회에 부응하는 인재양성구조를 시야에 넣고, 보통교육으로 충분한 직업, 2년제 대학교육으로 충분한 직업, 4년제 대학교육이 필요한 직업을 분석하여, 인구감소와 산업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교육체계를 재편해내고, 학벌이 아닌 능력이 평가받는 공정사회 구축을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함께하는 인천] ‘휴머니튜드 케어’와 인간 존엄

올해부터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노인인권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인권교육 콘텐츠 중 인권존중케어 섹션이 있는데, 교육목적은 노인생활시설에 종사하면서 노인들을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서비스 및 케어의 단순대상자로만 취급하면서 겪게 되는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다. 최근 국내의 요양원에서 치매 증상으로 인해 공격성을 보이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억제대를 사용하는 기존의 관리법에서 벗어나, 구속을 배제하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환자 존중과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휴머니튜드 케어가 주목받고 있다. 휴머니튜드는 휴먼(Human)과 에티튜드(Attitude)의 합성어로 창시자인 프랑스의 이브 지네스트가 얼마 전 국내 최초로 인천소재 치매전문병원에서 두달 간 휴머니튜드케어법을 적용해, 공격적이고 일어서지 못했던 치매 노인들이 웃음과 활력을 되찾았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치매 환자의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보고, 말하고, 만지고, 서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활용해 400여 가지의 케어 방법을 매뉴얼화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휴머니튜드 케어를 시행한 인천시립 노인치매요양병원에서는 2개월 만에 14명의 환자 중 5명이 신경안정제 사용이 절반 이상 줄었으며, 활력을 되찾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브스트는 어떠한 노인도 처음부터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낯선 환경에서의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방어적 자세다. 이 케어 방법은 먼저 사람을 인지시키고 눈빛을 마주치면서 이뤄질 서비스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스킨십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고 결국 침대를 탈피해 침대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스스로 일어나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노인복지 현장에서 시설 내 학대문제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시설학대 가해자에 대해서 때로는 연민이 들 때가 있다. 서비스 제공시 매번 온몸으로 저항하고 때론 폭력을 행하는 노인들을 대하는 심정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국내의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가 처음 입사해서 배우는 케어 기술이 억제대 사용법 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래서 노인돌봄 시장을 국가가 직접 관리한다는 취지에서 사회서비원을 설립해 직접 운영 하면서 노인요양 및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 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사회서비스원이라는 하드웨어만 구축 할게 아니라 휴머니튜드 케어법과 같은 전문성 있고 검증된 돌봄 소프트웨어가 운용되어 질때 돌봄 시장의 공공성이 담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천에서 전국 최초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를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시는 내년부터 휴머니튜드 전문가를 양성하고 치매 관련 시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을 추진하려 예산을 세웠지만, 편성된 3억 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된 현실은 선진화된 케어기법 도입을 전국 최초로 실현한다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 또한 크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요양원에서 소리치고 공격하는 할머니를 향해 성질 괴팍한 노인네라고 말 하지만, 그들도 예전엔 16세 이쁜 처녀였고, 소중한 아이들의 엄마였으며, 사랑스런 남편의 배우자였던 걸 기억 했으면 한다. 정희남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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