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문학산과 승기천 등 인천의 땅 이름 다섯 곳에 대한 문의를 받았다. 이들이 일제(日帝)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지어 붙인 ‘일제 잔재(殘滓) 지명(地名)’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아니어서 그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그 내용이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보내진다니 ‘일제 잔재 지명 없애기’ 같은 이름으로 전국적인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왜 그들 다섯 이름이 뽑혔는지 궁금했다. 진짜 ‘일제 잔재 지명’들이 널려있는데, 하필 그게 아닌 이름들만 고르게 된 이유가 있었을 테니.... 물어볼 기회를 갖지는 못했는데, “아닌 것을 알게 해줬으니 됐다”고 넘기자니 찜찜한 뒤끝이 남는다. 일제 잔재 지명을 없앤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쓰여 익숙하고, 다른 대상과 연결돼 있는 사례가 워낙 많아서 그렇다.
인천만 해도 연수동·귤현동·송도·효성동 등 일제가 만든 동네 이름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일제 잔재 지명’인데 지금 이들을 새롭게 바꿀 수 있겠나. 동구 창영동도 일제가 1936년에 만든 이름인데, 이 때문에 그 이전의 ‘인천 제일 공립보통학교’가 ‘인천 창영 공립보통학교’로 바뀌어 오늘날 창영초등학교가 됐다. 창영동이라는 이름을 이제 바꾸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창영초등학교의 이름도 그에 맞춰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은 전국 어디서든 생기게 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다.
일제 때 쓰던 용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처럼 성공적인 개명(改名)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제들도 모두 그렇게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誤算)이다. 또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싶다면 우선 무엇이 진짜 잔재인지, 그것들이 왜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해방되고 77년이 지난 이제는 일본에 대한 대응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좋든 싫든, 일본은 우리와 영원히 얽혀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나라다. 그곳 일부 세력들의 행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욕 나올 때 욕을 하더라도, 그 한편으로는 일본을 깊이 연구해 그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연구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 백지상태라는 말이 나온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번 일제 잔재 지명 문의에 답하면서 문득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여전히 해묵은 감정만 너무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정작 필요한 일에는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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