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詩여, 더 깊이 전율하라

“소중한 내 사랑, 당신 앞에 전율하며 서 있게 해주세요.” 수메르 점토판에서 발견됐다는 이 시구는 지금 봐도 놀랍다. 풍요와 다산을 비는 종교의식 후 여흥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4천년 전 누군가의 몸짓이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게다가 “침실로 데려가줘요”라는 또 다른 구절은 “날 가져봐”하는 요즈음의 가요 이상으로 직접적이고 당돌하다. 사실 이런 사랑에는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사뭇 떨리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안절부절 못하는 심정을 말이 아니면 무엇으로 또 세세히 전하랴. 더욱이 사람은 무엇이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족속이니, 그 모든 것을 말로 하고 글로 새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뇌기 좋고 전하기 좋은 말이 시가 되고 사랑이나 주술 등 모든 기록의 시초이자 원전이 시로 남은 것이리라. 그런 여정을 돌아보면 시의 힘은 실로 무궁한 바가 있다. 그렇지만 시의 힘이 갈수록 미미하다. 오랫동안 시 중심이던 판이 소설에 이어 영상으로 중심을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시가 사라진 적 없고 예술의 성감대임을 포기한 적도 없으니, 시는 계속 살아 남아 소임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도 하고 잠든 세상을 깨우기도 하고 다친 속 맺힌 속을 풀어주는 일들을 계속할 것이다. 미약한 대로 누군가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삶을 어루만지며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로 인해 세상도 구원의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시의 오랜 힘이려니, 무용(無用)의 유용(有用) 아니겠는가. 시는 현실적인 쓸모 없으므로 인해 더 오래 산다. 무릇 예술이 그러하듯, 무용(無用)이 오히려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는 바쁘고 즐거울 때보다 힘들고 외로울 때 말을 걸어온다. 실연 뒤면 모든 가요가 내 마음의 노래이듯 말이다. 하여 시시각각 피어나는 봄꽃들 앞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길 다시 꿈꾸곤 한다. 간혹 “봄날에는 사랑이 살짝 들키기도” 하기를 바라거나,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산꽃을 애틋이 돌아보다가, 문득 마음에 꽃물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가끔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에 기대어 고단한 이승을 건너가는 것이다. 이렇듯 시는 두고 온 그리움만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세상을 한결 아름답게 만드는 은근한 힘을 지니고 있다. 수업시간에 시를 띄워 놓으면 금방 촉촉해지는 학생들 눈빛이나 4천년 전 점토판에 잠자던 사랑이 새삼 회자되는 것 역시 시의 힘을 보여주는 예다. 그러니 현대시가 난해하다고 멀어진 사람도 이 봄에는 좋아하는 시부터 다시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시와 더 친해지면 시심을 갖고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시와 노닐다 보면 무미한 나날도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시를 통해 자기 정화나 승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는 이러한 전율을 늘 그리워한다. 그러므로 시는 자신 앞에 전율할 오직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산다. 먼지에 파묻힌 시조차 항상 누군가의 영혼을 향하고 있다. 시를 쓴다는 건 그래서 외롭지만 황홀하다. 어느 영혼과의 만남을 꿈꾸는 봄날, 저 꽃들과 더불어 전율할 시들이 그립다. 하여 4천년 전 점토판의 시구처럼 외쳐본다. 시여, 전율하라! 새로운 언어의 꽃으로 세상을 더 깊이 전율케 하라! /정 수 자 시 인

문화카페/식민지의 저녁

어느 국회의원이 술자리에서 탈선행위를 해 망신을 당하고, 정치적으로 낙마했다. 여론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의 일어난 일 또는 실수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하던 우리 사회가 달라진 것이다. 그나마 약간의 동정적인 시선은 그가 잘못된 우리의 음주문화의 희생자라는 점이다. 그러한 생각도 잘못 얘기됐다가는 따가운 여론의 역풍을 만남으로 모두들 조심한다. 잘못된 음주문화니 나아가 잘못된 군사문화 유산이니 하는 말들도 나왔다. 필자는 잘못된 음주문화니, 군사문화니 등의 표현들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음주 관습이라든가 비문화적 뭐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해야지 잘못된 것, 버려야 할 것, 반문화적인 것까지 일단 문화로 얘기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폭음과 그렇게 술을 마셔야 사내답다고 생각하는 음주관습은 마땅히 시정되고 버려져야 할 유산이지만, 그 잘못된 관습은 언제부터 비롯된 것인가? 여러 가지로 얘기될 수 있지만, 필자는 뭣보다도 식민지의 역사속에 그 씨앗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들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고 한다. 그러한 정책의 하나가 저항정신을 가질만한 야무진 사내들을 주정뱅이로 만드는 것이다. 주정뱅이가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그는 이미 저항정신을 상실하고 길들여진 것이다. 그는 요경계 인물 리스트에서 빠지고 매장되는 것이다. 일제도 우리나라를 다스리는데 그러한 수법을 썼다고 생각되고 우리의 유능한 청년들이 자포자기로 폭음족에 가담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식민정책을 뒷받침해 준 것이다. 지난해 몽골 울란바토르에 갔는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중국이 몽골을 지배할 때, 그리고 러시아가 몽골을 지배할 때 폭음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서 적당히 술을 마시는 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폭음은 오히려 동사의 위험이 있는데도 폭음을 해야 칭기즈칸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폭음을 예찬했으며, 그것도 그들의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한탄하는 얘기도 들었다. 지난 80년대 아직도 소련의 공산체제가 건재할 무렵, 필자는 연극관계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동백림(동베를린)에 갔었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돼 그곳 연극인 친구와 거리에 나갔는데 깜짝 놀랐다. 카페나 비스트로가 조용히 술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한 것이다. 공산국가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오락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술 마시는 것은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고 술을 마신다는 건 평범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요주의 인물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요주의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알코올 중독을 가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 중국 역사에서도 대권에 뜻이 없다는 것으로 가장하기 위해 술에 취해 주정뱅이를 연기하고 때를 기다리던 왕자나 대군 등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폭음과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음주관습은 식민지 통치자만 아니라 독재자들에게도 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통치시대, 독재정권에서 폭음과 그 결과 일어나는 추태에 대해 관대했지만 민주사회 여론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폭음의 관행은 이제 우리 사회 정치판을 위시한 모든 분야에서 추방될 때가 왔다. 폭음은 일종의 열등의식의 발로라면 이제 식민지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이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장·예술원 회원

문화카페/전통문화, 현재 속에 살게 하자

최근 영화 ‘왕의 남자’가 화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천만 관객동원 신기록을 제치고 한국영화 관객동원 1천2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단다. 영화 ‘왕의 남자’의 흥행이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전통놀이, 사극요소가 이렇게 바람몰이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쨌든 영화의 흥행을 등에 업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줄타기뿐만 아니라 남사당놀이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이런 연유로 남사당놀이 공연에 연일 매진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으며, 심지어 안성 바우덕이 풍물단은 140년 만에 경복궁에서 공연을 했다. 이러한 사례는 전통문화의 원형 보존과 함께 그것의 응용과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통놀이는 지금까지 과거의 것, 시대 뒤떨어진 것으로 편협된 시선이 있었으나,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영상 속에서 활용됨으로써 현재의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과거는 현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현재 속에서 살아남게 된다. 우리 전통문화의 문화원형 그대로의 보존은 물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고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영원히 과거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급속한 고도성장의 뒤안길에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크게 인식하지 못해 우리 조상의 우수한 많은 문화유산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역사적으로 우수한 문화가 많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수한 문화를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발굴치 못하고 있으며, 설사 발굴되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해도 그것의 마땅한 활용, 응용방안을 찾지 못하여 여전히 과거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문화관광부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인식아래 ‘한브랜드’ 지원전략이나 문화강국(C-KOREA)전략 등을 발표하고 세계 5대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함으로써 문화를 21세기의 성장원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한브랜드’ 지원전략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콘텐츠, 즉 한국어, 한식, 한복, 한지, 한옥, 한국학 등의 생활화 및 세계화를 통하여 공용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이미지 향상에 목표를 두고 있다니 실로 기대될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가치 재인식과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소비패턴을 통해 국가이미지,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잊혀져 가고 있던 전통문화가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시각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전통문화에 관한 부분은 보존과 계승이라는 원형 그대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활용이나 응용이 쉽지 않다. 이제는 전통문화의 원형그대로의 보존 및 계승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현재 속에서 어떻게 숨쉬게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박제된 문화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력을 갖고 자생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 결론적으로 전통문화가 현재 속에서 활용되고 응용될 때 보존과 계승은 물론 더 나아가 발전도 함께 동반할 것이다. 이는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이를 육성 및 보존, 계승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하여 응용과 활용방안까지 하나의 시스템에 의해 총체적으로 연구되어야만 그 전통문화가 발전하고 영원히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

얼마 전 타계한 백남준이 남긴 말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작가로 그의 이름은 너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그런 그가 왜 ‘예술은 사기다’라는 풍자적인 표현을 했을까? 천재적인 예술가의 천재적인 표현인가? 비디오 예술로 일컬어지는 그의 예술은 어쨌든 매우 복합적이다. 그의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그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한국에 선을 보이기 전까지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가끔 해외토픽으로나 소개되는 괴이한 행동을 하는 작가로만 알려져 왔다. 그런 그가 처음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뱉은 말이 이 말인데 그의 예술에 대한 이 풍자적인 선언은 그의 세계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현대미술의 끊임없는 변모와 해체와 자기 확장은 그 스스로를 생존케 하는 원리다. 당연히 현대미술은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을 때 그 생명력이 다 한다. 새로움과 더 새로움을 위하여 관객들에게 온갖 충격들을 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전혀 엉뚱한 것이나 같은 것들끼리의 혼성 모방과 근친상간, 이종교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현대미술의 충격적인 변화의 한 가운데 백남준이 놓여 있다. 그가 한국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들고 온 것은 하나의 방송 기술을 들고 들어 온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소개되지 않은 전혀 새롭고 충격적인 ‘미술’을 세계적인 방송 네트워킹을 통해 소개한 것이다. 그가 오웰의 ‘1984년’을 소재로 선택한 데는 가공할 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매스미디어의 세계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인공위성을 통해 국경을 넘어 같은 시간대에 수 억 명이 볼 수 있게 방영된 이 프로는 세계를 빠르게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데 미술이 어떻게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내 뱉으며 입국했던 1984년은 조지 오웰이 가공할 감시 세계를 그린 빅브라더의 ‘1984년’과 일치한다. 그 당시 한국은 총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군부독재 하에 있을 때였다. 그가 만든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그는 “여전히 좋은 아침입니다. 오웰씨.”라고 1984년 새해인사를 건넨다. 그는 여기서 아직도 세상이 건재함을 알리면서 동시에 한국의 정치상황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는 한국의 군부 독재 하에 숨죽이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제도권 예술계에 ‘예술은 사기’라는 화두를 던져 충격을 준 것 같다. 원래 예술은 대중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절대왕권시대에는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고객과 관객이었다. 그러나 19세기 20세기로 거쳐 오면서 모든 것이 대중화되었다. 예술도 예외 없이 그들의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그들이 후원자이며 동시에 관객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술의 대중화에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남준은 이런 매스미디어의 막강한 힘을 알고 이를 그의 예술에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든 현대인들과 그들의 삶을 사로잡고 있는 TV매체를 이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빠른 속도로 과학 기술이 달라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어쨌든 대중들은 이러한 하이테크의 세계와 그것을 이용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더욱 이해하기 힘들고 결국은 소통부재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어차피 대중들에게 백남준예술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괴이한 행동들(일종의 퍼포먼스)과 같은 신화화된 상징으로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알고 ‘예술은 사기’라는 선언을 미리 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천재적 예언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문화카페/‘문화판의 편식을 넘어’

영화 ‘왕의 남자’가 연일 화제다. 관객이 1천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수십 번 본 마니아를 비롯해 10대에서 중·장년까지 관객층도 다양하다. 영화가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 때문일 것이다. 그뿐인가. 영화 바깥에서도 패러디나 유행어 등을 만들며 신나게 놀고, ‘이준기 현상’을 비롯한 사회적 현상이나 새로운 문화 담론 등을 낳기도 한다. 역시 오늘날 가장 활발한 문화담론의 장은 영화판인듯하다. 그만큼 영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긴 벤야민의 예견대로 20세기부터 기술의 무한복제인 사진의 시대가 열렸으니, 영상의 힘은 갈수록 세어질 것이다. 그런 판이니 영화를 모르면 웬만한 대화에 낄 수가 없고 젊은 층과는 교감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수업중에도 책이 아닌 영화를 예로 들어야 이해나 소통 등이 쉬워지니 말이다. 앞으로도 영상은 그렇게 문화의 중심에 설 것 같다. 사학이나 철학 같은 근엄한(?) 학문에도 영화가 깊이 들어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대중적인 전파력도 막강해 문화이자 산업으로서의 부가가치가 다른 장르들을 압도한다. 이때문에 영화를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거듭 나온다.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따르면 국민 75.6%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에 반대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이런 여론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주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스크린 쿼터제도는 문화주권이나 문화다양성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이 현재와 미래세대 구성원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호 작용하기 위한 필요수단임을 천명했다. 문화다양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창조의 바탕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세계화에 따른 문화 획일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이미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한 할리우드는 더 큰 독식을 위해 자꾸만 수를 쓴다. 가히 스크린을 통한 세계 지배가 아닌가. 이 막강한 독식을 막지 않으면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팽창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 중에도 한국 영화가 이만큼 자란 건 다행이다. 물론 영화인들의 공로지만 관객의 사랑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영화판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과제가 많은 것 같다. 취약한 시스템이나 돈 되는 영화만 살아남는 등 문제들이 산적한 것이다. 이런 영화판의 구조에는 관객들의 책임도 있다. 그동안 관객들이 주로 재미나 볼거리에 쏠렸기 때문이다(‘왕의 남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지만 쏠림현상은 여전하다). 관객의 편식은 영화판의 편중과 왜곡을 재생산하고 흥행 위주의 시장을 공고하게 한다. 그러면 관객이 없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은 살아 남을 수 없다. 결국 작품성 높은 외국영화를 당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독식 혹은 편식 등의 구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우선은 약간의 개입, 즉 정부의 지원으로 가능할 것 같다. 정부가 대도시에 전용극장 하나씩만 지속적으로 지원해줘도 실험영화나 예술영화 등 돈과 거리가 먼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면 다양한 영화들이 더불어 살게 되고, 그것을 고대하던 관객들의 갈증도 해소될 것이다. 나아가 어느 판에도 좋은 문화공간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든 다양한 문화와 더불어 놀 수 있는 곳, 그곳으로 종종 놀러가고 싶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시간(時間)의 여행

올해는, 아니 지난해 12월이니까 지난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르지만 추위가 빨리 찾아 왔다. 마치 시베리아의 동장군이 기습이라도 해오듯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초겨울에 영하 10℃ 이상 내려가는 한파를 몰고 쳐들어 온 것이다. 젊었을 때 같으면 견딜만하다고 버텼을텐데, 필자 부부는 혼비백산, 어딘가 더운 나라로 피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갔다 오고 다시 필리핀을 찾았다. 필리핀은 섬 7천여곳으로 이뤄진 섬나라지만 우리 부부가 찾아간 곳은 레이테섬의 올목이란 소도시였다. 필리핀은 동장군의 맹위를 피하는데는 알맞은 곳이었다. 더운 날씨지만 해변이라고 바람이 불어오면 서늘해 상쾌했고 무엇보다 물가가 저렴해 마음이 편안했다. 사람들도 마닐라. 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소박하고 친절했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치안이었다. 하지만 심각하진 않았다. 물가가 싸긴 하지만 그만큼 가난하고 못산다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그러니까 반세기 전에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다는 필리핀이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어 보이는가…. 광장에 자리 잡은 노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마닐라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데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몇자리 되지 않는 노천카페를 아르바이트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필리핀의 현실을 통탄하고 필리핀의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첫째로 인구문제를 들었다. 필리핀 인구가 30년 전 3천만명이었는데 지금은 9천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구 증가율이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비해 일자리는 늘지 않으니 실업문제가 심각하고 교육문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교육시설이나 교사들이 태부족, 교육이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권력층의 부패문제, 언어와 인종문제, 그리고 과거의 식민통치 등이 국민들을 망쳐 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스페인이 400년, 미국이 100년, 일본이 50년 등”으로 열변을 토하길래, “스페인의 400년은 몰라도 미국은 50년, 일본은 6년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점령기간과 통치기간은 그럴지 몰라도 그들은 각각 1세기와 반세기동안 식민지통치의 해독을 남기고 갔다”고 맞받아 쳤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반세기 전 우리를 생각했다. 마치 50년이란 시간이 거꾸로 흘러 당시 우리의 어려웠던 현실을 필리핀에 와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 어려웠던 역사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다. 30년새 3배로 늘어난 인구 팽창을 걱정하는 필리핀. 그런가 하면 30년이면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 것이라고 걱정하는 한국. 각기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자랑스럽다. 그러나 반세기 후 또 상황이 역전될지도 모른다. 시간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대지방의 황혼은 짧지만 아름답다. 레이테섬은 미군이 최초로 상륙한 곳으로 격전지였다. 필자가 5년만 더 빨리 태어났어도 일본군에 끌려와 미군들에게 처참하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60여년 전 이 섬에 끌려왔을지 모르는 그들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여수를 달랬다. /김 정 옥 예술원회원·얼굴박물관장

문화카페/문화행정과 도시이미지 창조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 기업 심지어 상품에도 이미지를 부여하여 결국 그 이미지를 사고 팔고 있다. 그만큼 일상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미지생산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거나, 기존의 것을 어느 부분만을 부각시키거나 또는 현재의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 상대방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접근하거나 유사한 이미지를 생산한다. 도시이미지도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얼마전 문화탐사로 일본 삿포로 눈꽃축제를 다녀왔다. 이곳에서 도시 이미지 창조를 위한 문화행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삿포로’하면 삿포로맥주, 눈꽃축제, 야경 등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일본의 한 도시인 삿포로는 눈과 맥주,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도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도시에 비해 아주 특별하거나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집중과 선택을 제대로 펼쳤다는데 놀라운 것이다. 삿포로의 눈꽃축제는 세계에서 유명한 겨울축제 중의 하나로, 일본에서 가장 춥고 눈이 많은 이 지역에서 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축제로 이끌어냈다. 그러면서 공항 활주로는 난방을 해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관광객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오래된 맥주공장은 신식 맥주공장 건설로 필요없게 되자 맥주박물관으로 만들고, 전국의 오래된 삿포로 맥주 지역대리점의 간판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삿포로 맥주가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임을 광고함으로써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또한 부두의 수산물 물류창고가 필요없게 되자 박물관과 각종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공예품에 전자장치를 접목하여 실생활에서의 활용성을 배가시켰다는 것이다. 삿포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야경이었다. 야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주변의 불빛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듯 했다. 시민에 대한 홍보와 협조는 물론 어떤 행정적인 규제가 있는 듯 보였다. 이처럼 지나간 과거가 그냥 과거의 한 장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와 연결시켜 철저히 분석하고 검증하여 현대에 맞게 재탄생 시켜놓았다. 어찌 보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좀더 자세히, 좀더 철저히, 좀더 깊게 다가서는 계획적인 접근과 도시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도시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분야의 행정이 문화적 마인드를 가지고 동원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도시의 미래경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행정은 문화만을 위한 행정이라기 보다는 도시의 과거와 미래뿐만 아니라 시민의 경제까지도 책임질 수 있고 망라할 수 있는 문화행정이 이루어져야 새로운 도시 이미지 창조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설날과 놀이문화

설이 돌아와 가족들과 윷 한 판을 놀다보니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부산 피란시절의 필자, 아니 우리들의 놀이는 무궁무진했다. 아침에 눈을 떠 학교에 갈 때부터 놀이가 시작된다. 학교도 자기가 직접 구해온 굴렁쇠를 굴리면서 가는 것이다. 그 당시 부산(釜山)은 지명에 불 화(火) 자가 들어가 불이 잘난다고 할만큼 큰 화재가 잦았다. 학교에 갈 때도 굴렁쇠를 굴리며 꼭 불난 데를 거쳐 가곤했다. 무언가 놀잇감으로 구할 것이 없어서였다. 피난 시절 천막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은 모두 노는 시간이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도 온 몸을 바쳐 놀았다. 여럿이 같이 노는 데는 말타기 놀이가 단연 으뜸이었다. 이외에도 구슬치기는 대단한 인기종목이어서 방과 후 구슬치기를 하다 겨우 장만해준 새 가방을 잃어버리기조차 했었다. 상대편 아이도 나만큼 열중해 캄캄해질 때 까지 서로가 남의 구슬 따먹는 재미로 학교 교정을 한 바퀴 돌아 왔더니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어른들한테 혼날까봐 밤새 밖에서 눈치를 보다 어른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방으로 들어가 한켠에서 쭈그리고 잔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동네로 돌아오면 초량역으로 나가 쌓아놓은 원목더미 사이를 뚫고 들어가 빈 공간에 만든 자기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른 아이를 초대하거나 남의 아지트를 방문하기도 한다. 때로는 여러명이 진지놀이를 하기도 한다. 동네 놀이중에는 여러 명이 같이 노는 연날리기가 단연 으뜸이었다. 물론 연은 혼자 날리지만 방패연(당시 가오리연은 연 축에도 끼지 못했다)의 얼레 만들기와 연 만들기, 사 메기기(유리가루를 풀을 쑤어 연실에다 메긴다. 이는 남의 연실을 끊어 방패연 따먹기 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꼭 여럿이 날을 잡아 공동 작업해야 한다. 이처럼 만들어져 연이 동네 여기저기서 올라오면 옆 동네가 이에 질세라 연이 날려진다. 거기서 동네 대장연이라 할 가장 큰 연들은 위로 위로 솟구쳐 오른다. 가물가물 해질 때 까지 오르다 갑자기 “탱금아”를 외치며 다른 동네 연 위를 덮치듯 꽂혀 내린다. 다른 동네 연이 맥없이 끊어져 힘없이 바람에 실려 떠내려간다. 동네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전리품(연)을 차지하려고 마라톤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많은 놀이가 있었다. 여름이면 바닷가에 물놀이 겸 수영하러 다니기부터 함석으로 물 호루라기 만들기, 헌 권투글러브 얻어다 엉터리 권투시합으로 동네 아이들 랭킹 정하기, 인근에 있는 화교학교에서 밤중에 야외 영화 상영할 때 영화에 몰두해 있는 화교학생 뒤통수 때리고 도망가기,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기에 가까운 원자재인 폐타이어 굴려오기(필자 아버지가 폐타이어로 슬리퍼 만드는 가내수공업 공장을 운영하셨다), 무허가 판잣집(당시는 이를 일본말 그대로 ‘하코방’이라고 불렀다) 지을 못을 들고나가 하는 못치기, 못을 기차 레일 위에 올려놓고 칼 만들기, 심지어는 기차역 저탄더미에서 탄가루 뭉쳐 훔쳐오기 등 생계형 놀이까지 많은 놀이를 하며 자랐다. 지금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이런 놀이들을 통해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유달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 소위 잡기가 많았다. 필자가 그렇기도 했지만 좀 거창하게 이유를 대자면 다른 사람들과의 놀이를 통해 사회적 공공성의 원리와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잘 노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 민속명절이 복원됐듯 설을 전후해 모여든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놀이문화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문화카페/문화콘텐츠와 정신의 밥값

“헉, 00서적이 없어졌어요”, “나도 인터넷으로 사는 걸, 쯧” 많은 새해 인사 속에서 지금도 어른거리는 문자다. 휴대폰의 좁은 행간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우리의 현실이 이 짧은 교신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마 그 친구도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을 것이다. 바쁘다고, 책이 너무 무겁다고, 대부분 즐겨 찾던 서점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바쁜 것도 큰 이유지만, 편리하고 싼 맛에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책값은 영혼의 값과 같아 깎을 수 없다고 한 게 언제냐는듯 말이다. 책도 상품이니 값이야 어쩔 수 없이 매기지만, 그 값은 흥정하는 게 아니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책값을 남보다 더 주고 사면 정보에 어두운 바보가 된 기분이다. 비싸다는 게 분명 정가이거나 그에 가까운 금액인데도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책값의 비교 구매 역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소비행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으로도 책을 사지 않는 가정이 꽤 많은가 보다. 지난해 3·4분기 가구당 소비지출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믿지 못할 게 통계라지만, 가구당 도서구입비가 1만397원이란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나마 신문구독료 1만2천원이 포함된 금액이란다. 이에 비해 가구당 이·미용비는 6만원 정도, 외식비는 무려 24만원 정도나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한달에 책 한권도 사지 않는 가정이 그렇게 많다니, 믿기지 않는 수치다. 자녀 교육비에 허리가 휘어 정작 필요한 책은 사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외식비 비중이 너무 높으니, 몸만 대접하고 정신은 지나치게 홀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문화콘텐츠 얘기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는 역설도 도처에서 만난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이니 당연한 진단이다. 콘텐츠가 부족하면 새로운 문화상품도, 이를 받쳐줄 자본도 창출할 수가 없다. 세계시장에 내놓을만한 문화상품이 없는 나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문화제국주의 상품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 빈국은 문화 부국의 새로운 식민지화되는 게 작금의 실정이다. 이런 판에 문화콘텐츠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콘텐츠는 맨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만한 지적 문화적 토양이 있어야 지속적인 창조가 가능하다. 책은 인류의 문화가 총망라된 최고의 집적물이다. 문화콘텐츠 역시 이러한 책 속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오래된 고전 속에서 ‘오래된 미래’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준비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책 속에 미래가 있다면서, 날마다 독서를 강조하면서, 어른들은 책을 너무 읽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독서를 권할 때마다 어린 학생들의 빈정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이다. 자신은 ‘바담 풍(風)’ 하면서 자녀에게 ‘바람 풍’을 요구하는 건 일종의 횡포다. 연초에 우리는 “복 많이 받으세요”를 “복 많이 지으세요”로 나눴다. 그 복을 독서와 더불어 지어가면 좋겠다. 그래서 책과 친해진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토론하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는 모습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몸만 아니라 정신에도 때때로 밥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의 밥값이 높아지면 영혼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문화콘텐츠 또한 한결 풍성해질 것이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현상을 염려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내용이 올해 신년사에 포함됐다. 대통령이 통치자로서 국민을 위해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고민하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러한 대통령의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나라의 어려움을 풀어 주는 실마리가 됐으면 한다. 양극화문제는 거론하기는 쉽지 않지만 실제로 풀어 나가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불리 원칙론이나 평소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일을 더 꼬이게 만들 수도 있다. 양극화문제는 비단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갈등이 있고 테러가 있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양극화를 이끄는 기수들은 원칙을 내세우고, 원리를 내세우고 신념을 내세운다. 이같은 양극화현상은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엿볼 수 있지만 최근 돌출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여론의 양극화현상도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이러한 여론의 행방 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감사기관이나 검찰, 조사위 등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여론은 그들의 기대만큼 가지 않으면 미지근한 봉합이니, 타협이니 할 것이고 그렇다고 어느쪽으로 치우치면 여론의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에겐 잘 이해되지 않는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원리원칙으로만 해결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리원칙이나 법조문은 입장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통치자 또는 법관이 원리원칙대로 모든 일들을 집행한다면 크게 고민할 것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원리원칙을 존중하되, 나라와 국민을 위해 고민하는 통치자로서의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원리원칙과 법이 왜 만들어 졌는가를 생각하는 법관으로서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란 양극화 속에서 흔히 중간세력은 발을 붙일 데가 없다. 그러나 경제분야에서 중간층의 폭이 넓어져야 건전한 성장을 이룰 수 있듯, 다른 분야에서도 중간세력이 힘을 얻어야 사회가 혼란을 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중간세력이 중심을 잡아야 갈등과 파멸을 면할 수 있다. 통치자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그들대로의 소신과 취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소신을 굽히는 것이 보다 큰 통치자의 철학이요, 법의 정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 관장·예술원 회원

문화카페/도시문화운동-생활공간의 예술화

거리의 담벼락이나 학교담장 등에 벽화를 그리는 게 한창일 때가 있었다. 간혹 무분별한 낙서가 유행됐지만 거리의 벽화는 그 시대를 관통했던 문화현상이었다. 당시의 벽화 등은 예술적 측면보다도 도시의 환경적 이미지를 밝게 할 목적으로 기획된 측면이 강했다. 건물 한 모퉁이에 뜬금없는 조각품이 서 있는 건 건축법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품들은 도시의 환경적 이미지를 밝게 하고 시민들이 잠시 생각의 여유를 갖게 해 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나마도 목적의식을 잃은 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선 충분한 문화 인프라와 인적구성, 프로그램 등도 중요하지만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화를 지향하는 도시문화운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거리의 미술품은 문화도시 형성을 위한 도시 이미지의 창출과 일체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며 그 역할은 재조명돼야 하고 광범위하면서도 전문적인 기획이 필요한 시기다. 미술이 거리로 나와 공공장소에서 표현될 경우 그 효과는 전시장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차원을 달리 한다. 작가들에겐 갇혀있는 전시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게 되며, 도시 공간 전체가 신나는 창작공간이 될 것이며,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도시 공간과 삶의 현장 속에서 길을 가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다가도 미술품을 대하게 될 때 향유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문화도시에 사는 자신을 자랑스러워도 할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도화지가 된 도시를 상상해 보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따름이다. 이러한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선 도시의 생활공간을 예술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 건물과 주변환경과의 조화, 가로수, 공원, 녹지 등 도시경관 등까지도 장기적이고 전문적으로 기획해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게 함으로써 도시 전체가 생활문화공간화, 예술화 등을 시도해 진정한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최근 부천문화재단은 생활공간 예술화의 첫 시도로 지역작가들의 그림을 옥외홍보물로 제작해 ‘아름다운 부천, 건강한 아침’이란 카피와 함께 걸어 놓았다. 이러한 거리미술관은 거리를 오가는 많은 시민들에게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들에겐 무한한 공간의 자유로움과 관객과의 새로운 소통채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도시 전체로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미술로 인해 도시가 시각화되고 도시 전체가 예술작품화돼 지역 주민들이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그들이 원하는 문화향수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그런 문화도시가 되길 새해를 맞아 기대해 본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황우석 사태와 대한민국의 에너지

지난해는 그 황당하고 기괴스러운 황우석 사태로 마무리됐다. 병술년 새해가 밝았다고 이 문제가 우리들의 뇌리에서 그렇게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진 않다. 그만큼 황우석 사태가 온 국민들에게 준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난자 출처 의혹으로 시작된 황우석 사태는 드디어 사이언스에 제출한 지난해 논문이 조작으로 판명되더니 서울대 조사위 발표로 황우석을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던 그 유명한 발명품인 배아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황우석 사태는 온 국민들의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지만 사건의 전개가 잘 짜여진 영화처럼 너무 드라마틱하게 전개돼 이것이 마치 가상현실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 사태가 몰고 온 공황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모든 것이 거짓으로 드러 났는데도 대다수 국민들은 이 사태가 황우석의 파멸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데서도 이 사태는 불란서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가상현실(시물라크르)에 가깝다. 더구나 모든 주요 언론 매체들이 황우석의 이 가상현실과 기괴스러운 환타지가 마치 이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거품으로 부풀려 포장했으니 이 모든 것이 거짓과 조작으로 드러 났을 때 국민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공황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실 지난해 말미를 지겹도록 장식한 이 황우석 사태를 해가 바뀌었는데도 다시 거론한 건 1개월여를 매일처럼 이 황우석 보도를 접한 필자로선 한 번이라도 이 사건을 표현하지 않으면 병이라도 날 것 같아서다. 사실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테라토마’, ‘줄기세포’, ‘배반포’ 등 전문 용어를 일생에 몇 번 읊조려 보겠는가. 필자만이 아니고 온 국민들이 이런 전문 용어들을 알게 되고 그와 더불어 황우석 사태의 진전에 따라 얼마나 많은 감탄과 탄식, 기쁨과 울분, 환호와 저주 등을 내보냈는가. 어느 주간지 표현대로 ‘황우석 거짓말 스펙터클’은 우리가 ‘빨리빨리’란 성장제일주의를 달려온 결과이다. 성장제일주의에선 성과와 성장 등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용도가 폐기될 수밖에 없다. 때로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환각과 환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불행스럽게도 황우석에겐 얼핏 세계적인 성과물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의 환상이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 만들어 질 수 있다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환상을 좇아 황우석 팀은 내리 달렸던 것인데…. 이 브레이크 없는 황우석 팀을 정부와 언론은 또 얼마나 부추기고 거들었는가. 아무곳에서도 브레이크를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부른다. 전국이 ‘황우석 거짓말 스펙터클’로 들끓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이제 차분히 이 사태로 인한 손익계산서를 작성해 볼 때다. 주요 언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국가이익’이 이 사태로 인해 무엇을 남겼는지 또는 손해를 봤으면 얼마를 봤는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태가 우리나라에 심각한 타격보다는 국가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확신도 일종의 환상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지칭하는 국가이익이란 국가의 ‘기’, 즉 에너지를 말한다. 에너지란 물질이 융합할 때도 생기지만 분열할 때도 만들어진다. 또한 조력발전과 같이 엄청난 낙폭이 생길 때도 만들어진다. 이번 사태는 엄청난 낙폭과 반전을 만들어냈다. 다들 아는바와 같이 황우석 신드롬이라고 할만큼 그에 대한 찬양은 냄비처럼 들끓다 하루아침에 그의 거짓말에 대한 비난과 비판으로 들끓었다. 어쨌든 필자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거짓이 진짜 거짓으로 판명되는 이러한 진실의 규명과정이 우리에게 엄청난 ‘문화적 에너지’를 가져다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진실로 향하는 이런 과정을 여러번 거쳐야 ‘위험사회’로부터 ‘문화사회’로 갈 수 있으리라.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문화카페/‘두고 보자’론(論)

우리 속담에 ‘두고 보자는 양반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뒤가 무른 사람에게 흔히 쓰인다. 순발력이 뒤지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물론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고 미리 말만 하는 건 소용없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대체로 마음 약한 사람의 위기 모면용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두고 보자’고, 입술을 깨물며 물러선 경험들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센 상대가 있고 들이받거나 넘어서기 곤란한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사실 상사나 선배 혹은 동료라도 대단한 강적이라면 화가 치솟고 약이 올라도 일단 꼬리를 내리는 게 보통사람의 방식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과 똑같이 뜰 수 없을 때 또한 그렇다. 그때 무른 사람은 ‘두고 보자’고 힘없는 협박을 한다. 아니 혼잣말을 되뇌곤 한다. 그런 언행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때론 비겁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무섭지 않다’는 빈정거림이 따라다니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건 ‘두고 보자’에 숨겨진 또 다른 힘을 무시한 선입견이다. 쓰디 쓴 눈물을 삼키며 한 다짐을 자위로만 끝내지 않고 계속 다져간다면 그게 대기만성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두고 보자’를 면피용이 아닌 진정한 도약의 지렛대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거듭 속다짐을 하는 것이다. 단전에 힘을 주면서, ‘그래, 두고 보자!’고 말이다. 삶은 때로 이런 자신과의 약속으로 나아간다. 일찍이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고 말했지만, ‘두고 보자’ 역시 자신을 키우는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냉철한 자기 진단이 전제돼야 한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후하거나 약한 사람은 자기합리화에 빠져 안주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처럼 오로지 복수의 칼을 가는 게 아닌 한, ‘두고 보자’며 자신을 다지는 건 삶의 큰 동력이 된다. 상처가 오히려 자신을 기르는 자양인 것이다. 그야말로 물러나되 더 크게 나가는 격이다. 이같은 뚝심이 이즈음 문화판에서도 절실하다. ‘너 그렇게 했지. 난 다르게 해 보겠어. 두고 봐’하는 식의 함부로 들뜨지 않는 뱃심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쉴 새 없이 뒤섞이는 유행의 회오리 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왕이면 이런 흐름을 잘 타면서 살아남기도 하려니까 문화판도 덩달아 조급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아류가 금세 범람한다. 하지만 얄팍한 베끼기나 짜깁기는 1회용 소모품에 불과하다. 진정한 고수는 오직 진검승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다. 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 거둔 게 신통찮거나 누구에게 진듯한 사람은 자책을 딛고 다시 단전에 힘을 줄 일이다. ‘두고 보자’고, ‘내년에 멋지게 갚아 주리라’고 말이다. 이렇게 멀리 내다보며 자신이 택한 길을 꿋꿋하게 가다 보면 누구든 대기만성의 명품을 만들지 않을까. 그래서 ‘두고 보자는 사람도 꽤 무서운 걸’이란 말이 나오면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뒤엎는 것이다. 이런 전복이 늘수록 우리네 삶이나 문화판에도 새로운 신명이 생길 것이다. 새해에는 홀로 깊되 함께 넓어지는 뿌리 깊은 나무가 많아지는 멋진 판을 꿈꿔본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 /손의 표정

60년대 프랑스 영화의 명장으로 로벨 브레송이란 영화감독이 있었다. 그는 ‘브로뉴 숲의 여인’이나 ‘소매치기’, ‘카르멜수녀원’ 등을 만들었는데 그는 손의 표정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가 ‘소매치기’란 영화를 만든 건 소매치기 범죄단의 이야기나 소매치기단의 액션을 담으려는 게 아니라 소매치기의 심리적 갈등을 손의 영상을 통해 포착하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표정하면 얼굴을 통해서 나타나는 게 보통인데 브레송은 손을 통해 나타나는 표정을 영상으로 포착하려 했고 ‘브로뉴 숲의 여인’이나 ‘소매치기’ 등 대단히 지루한 영화의 전개에도 압축된 손의 표정 영상으로 인해 긴장감이 감돌았다. 손이 갖는 조형미나 표정에 관심을 갖는 예술가들은 많다. 로뎅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얼굴보다도 손의 조형미와 표정으로 인해 ‘생각하는 사람’을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얼굴이 한 인간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면 손은 한 인간의 신분과 현재를 표현해주고 있다. 서구의 조각만이 손의 형상미와 표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이름 없는 석공 또는 조각가들이 만든 우리의 옛 돌조각도 손의 형상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옛 돌조각 가운데 문인석(文人石)이나 동자석(童子石) 등을 보면 몸은 자연석 그대로 두고 얼굴과 손의 형상미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얼굴도 사실주의적으로 조각하지 않고 스타이라이스한 경우가 많지만 손의 경우는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먼 상징적 수법으로 조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손은 표현하려는 인물을 상징하고 그것을 조각한 사람의 심성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문인석이나 동자석과는 어울리지 않게 손은 적게 표현되는가 하면 크게 표현되기도 한다. 손은 인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상징어란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어느 방송사가 방영한 한국의 문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우리의 미륵부처와 관련된 프로그램으로 민간의 미륵신앙사상 등을 다루고 있었다. 불가에선 아미다불이나 미륵불 등 많은 부처님들이 있는데 많은 경우 그러한 부처님이 손의 자세나 모양 등에 의해 구별된다는 점을 알았다. 조각으로서 부처님은 손의 표정에 의해 그 부처님의 성격이 표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손은 조각의 형상미로도 중요하지만 깊은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처님의 손은 마치 안테나와 같이 하늘과 우주와 통신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얼굴의 표정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생각과 감정의 통로라면 손의 표정은 하늘과 통하는 통로인 것이다. /김정옥 박물관 얼굴 관장

문화카페/문화정보화를 통한 문화서비스 확대

21세기 화두는 정보화, 문화, 지방분권화 등이다. 특히 정보화나 문화는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문화정보화가 공식적으로 90년대 후반에 시작됐지만 놀라운 수준의 축적기술이나 서비스방식 등으로 지금 그 풍요의 중심에 서 있다고 본다. 문화정보화는 문화서비스의 양적인 증대는 물론 질적인 성장을 약속한다. 문화서비스는 이제 유통업계는 물론 공공 문화예술기관으로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지방 박물관은 야간무료 개관을 실시하고, 어느 기관은 고객을 위한 문화서비스 공공기관으로 거듭 나기 위해 고객참여 서비스나 고객눈높이 서비스 등을 추진하겠다는 기사가 나오는 현실이다. 이처럼 문화서비스는 사회 전반적인 추세로 서비스업계에서 더 확대 재생산돼 수요자 중심 또는 고객 중심의 문화서비스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서비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정보화는 수요자 중심, 정보 이용의 평등성, 지역 및 공간의 상호소통, 인터넷의 활성화, 웹서비스와 연계, 정보디지털화로 인한 다양한 활용가능성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지역 경쟁력도 높이고 문화서비스를 증대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된다. 좀 확대해 다른 나라 문화정보망 활용도 대부분 정보의 접근 편의성과 참여 등을 유도하고 기구간 네트워크,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커뮤니케이션 교환, 정보의 디지털화 등을 꾀하고 있다. 이런 문화정보화로 특정한 공간 혹은 특정한 사람의 정보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정보로 존재하며 정보의 통합관리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고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현재 부천문화재단의 부천 문화예술정보도서관 다감은 문화예술 정보화사업의 일환으로 부천문화예술 데이터 베이스 구축과 지역 예술인과의 소통채널을 마련, 진행하고 있다. 부천 문화예술정보도서관 다감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지역 문화예술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 시작, 지난달 현재 예술인 672명, 문화단체 21건 등의 콘텐츠를 확보했다. 부천 문화예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의 계기는 부천 문화예술자료 축적,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서비스 부재, 예술과 관련된 인프라 연계, 다양하고 체계화된 문화예술정보 서비스 등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지역사회 문화예술 정보화사업은 지역 예술인들에겐 지역 예술정보 및 메일링 서비스, 소식지 발간, 지역문화단체들에겐 공간 무료 대관이나 동아리 지원, 자료의 자문활동이나 자료 위탁 등의 도움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겐 매월 1차례 진행하는 ‘토요미디어감상’, 연 1차례 심포지엄, 기타 음반이나 도서추천 서비스, 아트멘토 감상석 등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문화관광부의 문화정보 통합검색사이트와 문화예술 종합정보시스템 외 네이버, 엠파스, 다음, 야후 등의 포털사이트에 등록해 문화예술정보를 광범위하게 제공하고 있어 폭넓게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하고 있다. 앞으로 부천 문화예술정보도서관 다감은 문화예술의 전문 도서관으로 이용자들에게 더 전문화된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며 지역문화기반 시설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지역문화예술 정보센터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이제는 문화교육이다

나에겐 목사님 조카가 있다. 그는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가 처음 미국에서 돌아와 아주 잘한 일이 하나 있다. 자기애들을 학교 들어가기 전에 글자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다. 주로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나한테 손자뻘 되는 이 어린이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그림책을 보더라도 글자를 모르니 주로 그림을 열심히 보게 됐다. 그래서 카드 짝 맞추기 같은 놀이에선 이 어린이가 아주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됐다. 문자에 매달리지 않음으로써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와 색채 등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는 취학 전 강요된 글자 배우기에서 해방됨으로써 뛰어난 형태와 색채지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생후 몇개월 된 갓난 아기 때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두꺼운 종이로 만든 그림책을 읽어준다. 이렇게 엄마의 글 읽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고 책과 책 속에 있는 형태를 보고 그림책을 손이나 이(齒)와 혀 등으로 느껴 본 아이는 반드시 커 책과 함께 일생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영재교육과 북스타트운동(갓난 아기를 처음 보건소에서 예방접종할 때 책 꾸러미를 주어 엄마들이 이 책들을 읽어 주도록 해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 지도록 하는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우리나라에선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이 이 운동을 시작했다)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감각기관들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러한 감각기관들에 의한 감각능력(판단력과 상상력)은 부모들의 양육이나 학교의 교육에 의해 개발될 수도 있고 오히려 퇴화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능력들은 어린이들이 취학하면서부터 서서히 체계적으로 상실돼 간다. 예를 들면 아동들이 미술학원에서 선생님들에 의해 거의 비슷비슷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경우다. 창의력을 기르는 게 아니고 상투적인 형식을 강요함으로써 아이들이 갖고 있는 감각능력들이 발휘되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4년 전 ‘문화연대’가 시작한 ‘문화교육’운동은 이처럼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감각기관에 의해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감성능력들이 학교교육이란 제도교육 틀에서 상실돼 끝내는 우리가 문화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가로 막는 현재의 교육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교육이념으로 제안됐다. 입시중심교육에서 비롯된 ‘교실붕괴’와 ‘학교붕괴’를 우리는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또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가 ‘20 대 80’의 양극화 사회로 가거나 또는 ‘사회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전조 임을 알면서도 교육에 관한한 하나님도 해결할 수 없다는듯 다들 손들을 놓고 있다. 이미 프랑스같은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문화교육이나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문화부와 교육부가 협의, 예술교육을 학교교육의 기본과목으로 못을 박아 놓았다. 우리나라도 이 문화교육과 관련,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문화연대’가 끊임없이 주장한 문화교육을 문화부가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문화부 안에 문화예술교육과를 신설하고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만든 것이다. 문화부는 이를 시민들의 문화향수권의 신장을 위해 만들었지만 한 정부 부서 안에 이러한 직제 신설과 이에 따른 활동은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학교교육을 장악하고 있는 교육부는 아직도 문화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맹목적 ‘지식기반사회’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유감이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위험사회에서 우리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교육이다. /김 정 헌 문화연대 공동대표·화가

문화카페/절제된 힘과 아름다움

절제는 언뜻 낡고 뒤처진 느낌을 준다. 한편으론 오래된 친구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술로 치면 와인같은 숙성과 기다림이 배어든 말이라고 할까. 어쨌든 절제는 귀가 닳은 갓이나 가방, 보풀이 인 스웨터 등처럼 인내의 느낌을 풍긴다. 그런데 이런 절제가 사라져 가고 있다. 옷 한벌로 사철을 나는 학자는 옛이야기가 됐고 신기료장수 등도 풍속사의 연구 대상일뿐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대에 맞춰 너나 없이 치장에 바빠진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따져 보면 한사람이 사용하는 화장품과 헤어 제품 그리고 샴푸나 세제 등이 수십가지나 된다. 옷, 구두, 가방 등을 제외하고도 그렇게 많은 것들로 우리는 날마다 씻고 바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절제를 내세우는 사람을 근천스럽게까지 보는 세태가 됐다. 그뿐인가. 문화 전반의 무절제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무한자유로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데서 비롯되겠지만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경향도 한몫하는 것 같다. 영화는 노출의 상한선이 사라진 지 오래고 폭력의 강도도 날로 세어지고 있다. 피를 들이 붓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사람 죽이기를 게임하듯 즐기고 팝콘을 맛나게 먹으며 그런 장면을 보는 관객도 엽기적인 문화에 일조를 한다. TV 프로그램 역시 볼썽 사나운 ‘까발림’의 수위를 계속 높여 간다. ‘내숭’이 젊은이들의 혐오 0순위이기 때문이다. 거침이 없는 이런 분출은 ‘디오니소스’의 부활을 환기한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적 세계, 즉 이성 중심의 세계를 해체하면서 부각된 이즈음의 중요한 문화코드다. 절대적인 힘을 누려온 중심들에서 소외된 주변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가 진정한 다양성의 힘으로 예술이나 삶 전반에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중심이 너무나 많은 주변의 억압을 먹고 컸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효율적 수단이자 교묘한 인권 유린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 중심의 횡포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절제란 시대착오적 요청일지도 모른다. 절제가 억압 혹은 억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억제는 강제적인 억압과 달리 의식·의지적인 것으로 자발성을 갖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에는 이런 억제, 즉 ‘넘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한 우리의 전통이 스며 있다. 적절한 선에서 멈추는 것, 그것이 일상의 철학이자 미학적 추구였던 것이다. 특히 절제는 시나 그림 등에서 할 말을 최대한 줄이고 대상 자체가 말을 하도록 하는 중요한 기법이자 태도였다. 바로 그 정점에서 여백의 아름다움이 구현된다. 이러한 절제가 다시금 절실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절제라니, 공허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즈음의 무한 욕망과 무한 분출을 제어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더 황폐해진다. 무절제 폐해가 당장 자연의 보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다고 ‘디오니소스’같은 분방한 표출을 모두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지나친 ‘까발림’이나 폭력 등의 수위를 조절하자는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시장을 바꿔가듯, 일상에서도 작금의 속도와 표현 수위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청빈한 삶으로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조금씩 절제를 해나가는 건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삶의 전반에서 절제를 되찾아 갔으면 싶다. 다 벗은 몸보다 살짝 가린 몸이 아름답듯, 예술의 풍격도 절제에서 나온다. 그동안 방기했던 절제를 이젠 찬찬히 챙겨보며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다양한 문화의 힘

한반도에 통일된 나라가 이루어진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 이전에도 영토의 넓이나 국세로 봐서는 더 강국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나 백제가 있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지배한 정권은 통일신라때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 의해서 한반도가 통일되고 왕조가 확립되었지만 백제의 문화와 고구려의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복자의 새로운 권력 앞에 멸망한 두 나라의 문화는 사라졌을까? 두 나라의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왕조는 허물어지고 대가 끊겼지만 두 나라의 문화는 통일신라에 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그것은 고려에 이어 조선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제가 36년 동안 한반도를 통치했지만,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허물어 트리지 못했다. 비록 얄궂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분단국가로 남게 됐지만, 우리 민족이 아직도 하나의 민족으로 이 지구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천년의 세월속에 간직해 온 문화적 정체성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 속에 우리 민족이 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문화적 정체성의 내부에 다양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통의 발달, 정보통신의 발달 등으로 그 다양성은 점차 상실되고 획일화 되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우리 문화는 그 어느 지역, 어느 나라 문화에 비교해도 다양성을 지닌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에 비해서 다양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만나고 충돌하는 반도라는 점이다. 반도의 특성으로 동쪽과 서쪽에 바다가 있어 해가 뜨는 기상과 정경, 해가 지는 황혼의 정경 및 자연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주로 자연환경, 지리적 여건 그리고 민족의 이동과 형성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시대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문화의 뿌리는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많은 잔뿌리가 있겠지만,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룬 것은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 백제, 고구려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구려 문화의 대륙 지향성과 황야를 달리는 자유분방한 기상과 강인성, 신라 문화의 아침햇살처럼 밝은 기상과 조화, 황혼의 정경처럼 아름다운 서정을 지닌 백제 문화, 그러한 특성과 다양성이 복합되고 조화되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이러한 다양성은 축복받을 일이며, 가능하다면 지역의 문화적 특성은 보존되고 옹호되어야 한다. 반대로 이러한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옹졸한 지역주의로 발전해서는 안된다. 다양성을 서로 수용하고 조화시켜 민족적 동질성을 공고히 하는 뿌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을 보라, 우리나라의 몇 십 배가 되는 큰 나라가 하나의 국가로 지탱이 되는 것은 바로 문화의 힘인 것이다. 그들은 정복자도 문화의 힘으로 수용하고 조화시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정복자가 소멸하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다. 조국 통일은 군사력도 아니요, 경제도 아니요, 바로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 관장·예술원 회원

문화카페/21세기형 록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국내 최초 경기지역 문화예술회관 공동제작 프로젝트 창작뮤지컬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드디어 오는 25일 과천시민회관을 시작으로 8개 지역 공연장 무대에 올려진다. 이 작품은 21세기형 록뮤지컬의 스탠더드로, 올해 문화관광부 우수기획공연사업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많은 작품이다. 국내 뮤지컬시장에 순수 창작뮤지컬로 승부를 걸어 보는 이 작품은 경기지역 8개 극장(과천시민회관 의정부예술의전당 부천시민회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안양문예회관 고양어울림극장 군포문화예술회관 오산문화예술회관)이 국무총리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 지원금과 각 문예회관 예산을 공동 투자, 기획, 제작한 대형 프로젝트다. 이처럼 지방문예회관들이 처음 시도해 보는 공동제작은 문예회관의 부족한 프로그램을 개발, 프로그램의 질적 성장을 키우고 공연장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공연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도됐다. 국민문화향수 수요는 급증하고 문화의 다양성이 증가하므로 인해 정부의 예산 지원대상분야가 더욱 다양해지고 자연히 지원범위는 확대되며 단위사업당 지원규모는 적어지고 분산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문화부문의 재정과 지출은 경제사정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이다. 굳이 다른 문예회관을 살펴보지 않고 부천문화재단만 봐도 문화사업의 자체예산이 부족한 편이어서 의지만으로 자체 제작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문예회관 실무담당자들이 혼자 하기에 버거웠던 제작사업을 극장단위 공동투자제작으로 이끌어 냈다.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란 말이 있듯 함께 하는 일은 수고로움도 덜어지지만 거둬 들이는 만족감은 배가되는 것 같다. 바로 창작뮤지컬인 록뮤지컬-‘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예에 속한다. 최근 각 지자체가 크고 멋진 공연장들을 개관하고 문화를 전담하는 기관들이 속속 만들어지는 외형상의 문화풍요 속에서도 각 지역 문예회관들은 부족한 예산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완성도가 낮은 작품으로는 흥행이 보장이 되지 않아 자연히 공연장의 연간 가동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단순 대관사업에 치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공동투자제작은 공연장들이 안고 있는 문제해결과 동시에 지역문예회관의 사업기획능력을 높이고 중앙에 비해 경제력이 약한 지방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공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지역간 문화불균형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생활의 질적 향상으로 문화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제 지역의 문화욕구는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고 본다. 이러한 시점에서 각 문화예술기관들은 그들의 욕구를 찾아내어 충족시켜 주고 나아가 그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공동투자제작이 지역간에 지속적으로 확대돼 각 문화예술기관 역할을 충실히 할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공연을 제공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국회의 담장 없애기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화연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담장 없는 국회 만들기’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좀 색다른 기자회견이어서 그런지 통상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의 썰렁한 기자회견장과는 달리 제법 기자들이 모였다. ‘담장 없는 국회 만들기’ 캠페인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이러한 제안을 국회가 받아 들여 그들 스스로 담장 없는 국회를 만들게 하고 이 담장 없애기를 시발점으로 그동안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던 국회 공간을 시민들의 공간으로, 생태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뭔가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서울 시민이 국회를 다녀 오는 가상을 한 번 해보자. 우선 국회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편이 문제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회를 가려고 가상한 용기를 냈다면 어느 정도 낭패를 각오해야 한다. 우선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 값을 아껴) 걸어 가려면 한참을 가야 겨우 정문이 나온다. 겨우 정문에 도착하면 이번엔 경비 근무하는 전경인지 의경인지가 나와 아래 위를 훑으며 “왜 어딜 왔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신분증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통과가 된다. 거길 통과하면 본관까지 또 한참 걸린다. 보돈지 차돈지 알 수 없는 휑뎅그렁한 길을 차를 피해 겨우 걸어 가다 보면 저 앞에 보이는 본관 건물은 왜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위압적인지, 방문객이 도착하기도 전에 피곤하게 만든다. 계단하며, 늘어선 열주하며 석조 건물과 지붕 돔은 틀림없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시대에 만들어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건물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본관 건물에 들어갈 때도 또 한번 검문검색을 받아야 하고 출입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이처럼 접근하기가 어려워서야 누가 감히 그들이 뽑은 선량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참관할 기분이 들겠는가? 어느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 즐겁게 국회를 방문하겠는가? 주차장 시설에 늘어선 수많은 자동차들과 아무 볼거리 없는 ‘들어가지 마세요’란 문구가 적힌 푯말이 있는 황량한 잔디밭만 있는 국회에 어느 유치원이 봄소풍을 가랴. 국회는 그들이 폐쇄적이고 권위적으로 치장하고 있는만큼 시민들로부터 멀어져 있고 그만큼 그들이 시민들의 참여 없는, 그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차량으로 가득 찬 주차장과 아무 볼거리 없는 넓기만한 잔디밭은 선량들이 문화·생태적으로 황량한 스펙터클에 스스로 갇혀 있음을 웅변해준다. 그들이 이러한 황폐한 풍경에 갇혀 있을수록 그들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반문화적인 생태, 즉 자기와 자기가 속한 정파의 이해득실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러니 남는 건 싸움질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가 싸움질의 전당이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번 17대 국회는 스스로 개혁 국회임을 선포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개혁을 하자면 그들이 일하는 터전인 국회 공간부터 개혁하는 게 먼저다. 국회 담장을 허물고 국회 공간을 문화·생태적으로 재구조화해 시민들의 참여와 접근권 등을 높이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놀면서도 어려서부터 정치공간에 친근감을 갖게 해야 한다. 또 단순한 눈 중심의 볼거리 제공을 넘어 여러가지 문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프로그램 기획으로 볼품 없던 정치적 공간을 품격 높은 문화·예술이 상연되는 공원이나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스스로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며 우리의 정치적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일이다. 우리 다 같이 국회 담을 허물자. /김 정 헌 문화연대 공동대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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