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다양한 문화의 힘

한반도에 통일된 나라가 이루어진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 이전에도 영토의 넓이나 국세로 봐서는 더 강국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나 백제가 있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지배한 정권은 통일신라때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 의해서 한반도가 통일되고 왕조가 확립되었지만 백제의 문화와 고구려의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복자의 새로운 권력 앞에 멸망한 두 나라의 문화는 사라졌을까? 두 나라의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왕조는 허물어지고 대가 끊겼지만 두 나라의 문화는 통일신라에 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그것은 고려에 이어 조선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제가 36년 동안 한반도를 통치했지만,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허물어 트리지 못했다. 비록 얄궂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분단국가로 남게 됐지만, 우리 민족이 아직도 하나의 민족으로 이 지구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천년의 세월속에 간직해 온 문화적 정체성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 속에 우리 민족이 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문화적 정체성의 내부에 다양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통의 발달, 정보통신의 발달 등으로 그 다양성은 점차 상실되고 획일화 되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우리 문화는 그 어느 지역, 어느 나라 문화에 비교해도 다양성을 지닌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에 비해서 다양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만나고 충돌하는 반도라는 점이다. 반도의 특성으로 동쪽과 서쪽에 바다가 있어 해가 뜨는 기상과 정경, 해가 지는 황혼의 정경 및 자연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주로 자연환경, 지리적 여건 그리고 민족의 이동과 형성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시대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문화의 뿌리는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많은 잔뿌리가 있겠지만,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룬 것은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 백제, 고구려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구려 문화의 대륙 지향성과 황야를 달리는 자유분방한 기상과 강인성, 신라 문화의 아침햇살처럼 밝은 기상과 조화, 황혼의 정경처럼 아름다운 서정을 지닌 백제 문화, 그러한 특성과 다양성이 복합되고 조화되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이러한 다양성은 축복받을 일이며, 가능하다면 지역의 문화적 특성은 보존되고 옹호되어야 한다. 반대로 이러한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옹졸한 지역주의로 발전해서는 안된다. 다양성을 서로 수용하고 조화시켜 민족적 동질성을 공고히 하는 뿌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을 보라, 우리나라의 몇 십 배가 되는 큰 나라가 하나의 국가로 지탱이 되는 것은 바로 문화의 힘인 것이다. 그들은 정복자도 문화의 힘으로 수용하고 조화시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정복자가 소멸하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다. 조국 통일은 군사력도 아니요, 경제도 아니요, 바로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 관장·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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