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문화콘텐츠와 정신의 밥값

“헉, 00서적이 없어졌어요”, “나도 인터넷으로 사는 걸, 쯧” 많은 새해 인사 속에서 지금도 어른거리는 문자다. 휴대폰의 좁은 행간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우리의 현실이 이 짧은 교신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마 그 친구도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을 것이다. 바쁘다고, 책이 너무 무겁다고, 대부분 즐겨 찾던 서점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바쁜 것도 큰 이유지만, 편리하고 싼 맛에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책값은 영혼의 값과 같아 깎을 수 없다고 한 게 언제냐는듯 말이다. 책도 상품이니 값이야 어쩔 수 없이 매기지만, 그 값은 흥정하는 게 아니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책값을 남보다 더 주고 사면 정보에 어두운 바보가 된 기분이다. 비싸다는 게 분명 정가이거나 그에 가까운 금액인데도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책값의 비교 구매 역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소비행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으로도 책을 사지 않는 가정이 꽤 많은가 보다. 지난해 3·4분기 가구당 소비지출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믿지 못할 게 통계라지만, 가구당 도서구입비가 1만397원이란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나마 신문구독료 1만2천원이 포함된 금액이란다. 이에 비해 가구당 이·미용비는 6만원 정도, 외식비는 무려 24만원 정도나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한달에 책 한권도 사지 않는 가정이 그렇게 많다니, 믿기지 않는 수치다. 자녀 교육비에 허리가 휘어 정작 필요한 책은 사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외식비 비중이 너무 높으니, 몸만 대접하고 정신은 지나치게 홀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문화콘텐츠 얘기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는 역설도 도처에서 만난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이니 당연한 진단이다. 콘텐츠가 부족하면 새로운 문화상품도, 이를 받쳐줄 자본도 창출할 수가 없다. 세계시장에 내놓을만한 문화상품이 없는 나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문화제국주의 상품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 빈국은 문화 부국의 새로운 식민지화되는 게 작금의 실정이다. 이런 판에 문화콘텐츠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콘텐츠는 맨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만한 지적 문화적 토양이 있어야 지속적인 창조가 가능하다.

책은 인류의 문화가 총망라된 최고의 집적물이다. 문화콘텐츠 역시 이러한 책 속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오래된 고전 속에서 ‘오래된 미래’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준비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책 속에 미래가 있다면서, 날마다 독서를 강조하면서, 어른들은 책을 너무 읽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독서를 권할 때마다 어린 학생들의 빈정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이다. 자신은 ‘바담 풍(風)’ 하면서 자녀에게 ‘바람 풍’을 요구하는 건 일종의 횡포다.

연초에 우리는 “복 많이 받으세요”를 “복 많이 지으세요”로 나눴다. 그 복을 독서와 더불어 지어가면 좋겠다. 그래서 책과 친해진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토론하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는 모습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몸만 아니라 정신에도 때때로 밥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의 밥값이 높아지면 영혼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문화콘텐츠 또한 한결 풍성해질 것이다.

/정 수 자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