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국회의 담장 없애기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화연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담장 없는 국회 만들기’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좀 색다른 기자회견이어서 그런지 통상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의 썰렁한 기자회견장과는 달리 제법 기자들이 모였다.

‘담장 없는 국회 만들기’ 캠페인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이러한 제안을 국회가 받아 들여 그들 스스로 담장 없는 국회를 만들게 하고 이 담장 없애기를 시발점으로 그동안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던 국회 공간을 시민들의 공간으로, 생태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뭔가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서울 시민이 국회를 다녀 오는 가상을 한 번 해보자. 우선 국회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편이 문제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회를 가려고 가상한 용기를 냈다면 어느 정도 낭패를 각오해야 한다. 우선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 값을 아껴) 걸어 가려면 한참을 가야 겨우 정문이 나온다. 겨우 정문에 도착하면 이번엔 경비 근무하는 전경인지 의경인지가 나와 아래 위를 훑으며 “왜 어딜 왔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신분증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통과가 된다. 거길 통과하면 본관까지 또 한참 걸린다. 보돈지 차돈지 알 수 없는 휑뎅그렁한 길을 차를 피해 겨우 걸어 가다 보면 저 앞에 보이는 본관 건물은 왜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위압적인지, 방문객이 도착하기도 전에 피곤하게 만든다. 계단하며, 늘어선 열주하며 석조 건물과 지붕 돔은 틀림없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시대에 만들어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건물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본관 건물에 들어갈 때도 또 한번 검문검색을 받아야 하고 출입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이처럼 접근하기가 어려워서야 누가 감히 그들이 뽑은 선량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참관할 기분이 들겠는가? 어느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 즐겁게 국회를 방문하겠는가? 주차장 시설에 늘어선 수많은 자동차들과 아무 볼거리 없는 ‘들어가지 마세요’란 문구가 적힌 푯말이 있는 황량한 잔디밭만 있는 국회에 어느 유치원이 봄소풍을 가랴.

국회는 그들이 폐쇄적이고 권위적으로 치장하고 있는만큼 시민들로부터 멀어져 있고 그만큼 그들이 시민들의 참여 없는, 그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차량으로 가득 찬 주차장과 아무 볼거리 없는 넓기만한 잔디밭은 선량들이 문화·생태적으로 황량한 스펙터클에 스스로 갇혀 있음을 웅변해준다. 그들이 이러한 황폐한 풍경에 갇혀 있을수록 그들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반문화적인 생태, 즉 자기와 자기가 속한 정파의 이해득실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러니 남는 건 싸움질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가 싸움질의 전당이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번 17대 국회는 스스로 개혁 국회임을 선포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개혁을 하자면 그들이 일하는 터전인 국회 공간부터 개혁하는 게 먼저다. 국회 담장을 허물고 국회 공간을 문화·생태적으로 재구조화해 시민들의 참여와 접근권 등을 높이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놀면서도 어려서부터 정치공간에 친근감을 갖게 해야 한다. 또 단순한 눈 중심의 볼거리 제공을 넘어 여러가지 문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프로그램 기획으로 볼품 없던 정치적 공간을 품격 높은 문화·예술이 상연되는 공원이나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스스로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며 우리의 정치적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일이다. 우리 다 같이 국회 담을 허물자.

/김 정 헌

문화연대 공동대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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