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

얼마 전 타계한 백남준이 남긴 말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작가로 그의 이름은 너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그런 그가 왜 ‘예술은 사기다’라는 풍자적인 표현을 했을까? 천재적인 예술가의 천재적인 표현인가?

비디오 예술로 일컬어지는 그의 예술은 어쨌든 매우 복합적이다. 그의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그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한국에 선을 보이기 전까지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가끔 해외토픽으로나 소개되는 괴이한 행동을 하는 작가로만 알려져 왔다. 그런 그가 처음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뱉은 말이 이 말인데 그의 예술에 대한 이 풍자적인 선언은 그의 세계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현대미술의 끊임없는 변모와 해체와 자기 확장은 그 스스로를 생존케 하는 원리다. 당연히 현대미술은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을 때 그 생명력이 다 한다. 새로움과 더 새로움을 위하여 관객들에게 온갖 충격들을 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전혀 엉뚱한 것이나 같은 것들끼리의 혼성 모방과 근친상간, 이종교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현대미술의 충격적인 변화의 한 가운데 백남준이 놓여 있다.

그가 한국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들고 온 것은 하나의 방송 기술을 들고 들어 온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소개되지 않은 전혀 새롭고 충격적인 ‘미술’을 세계적인 방송 네트워킹을 통해 소개한 것이다. 그가 오웰의 ‘1984년’을 소재로 선택한 데는 가공할 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매스미디어의 세계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인공위성을 통해 국경을 넘어 같은 시간대에 수 억 명이 볼 수 있게 방영된 이 프로는 세계를 빠르게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데 미술이 어떻게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내 뱉으며 입국했던 1984년은 조지 오웰이 가공할 감시 세계를 그린 빅브라더의 ‘1984년’과 일치한다. 그 당시 한국은 총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군부독재 하에 있을 때였다. 그가 만든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그는 “여전히 좋은 아침입니다. 오웰씨.”라고 1984년 새해인사를 건넨다. 그는 여기서 아직도 세상이 건재함을 알리면서 동시에 한국의 정치상황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는 한국의 군부 독재 하에 숨죽이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제도권 예술계에 ‘예술은 사기’라는 화두를 던져 충격을 준 것 같다.

원래 예술은 대중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절대왕권시대에는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고객과 관객이었다. 그러나 19세기 20세기로 거쳐 오면서 모든 것이 대중화되었다. 예술도 예외 없이 그들의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그들이 후원자이며 동시에 관객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술의 대중화에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남준은 이런 매스미디어의 막강한 힘을 알고 이를 그의 예술에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든 현대인들과 그들의 삶을 사로잡고 있는 TV매체를 이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빠른 속도로 과학 기술이 달라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어쨌든 대중들은 이러한 하이테크의 세계와 그것을 이용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더욱 이해하기 힘들고 결국은 소통부재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어차피 대중들에게 백남준예술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괴이한 행동들(일종의 퍼포먼스)과 같은 신화화된 상징으로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알고 ‘예술은 사기’라는 선언을 미리 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천재적 예언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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