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삶을 위한 학교교육의 역할

학교에서 학생들의 삶 자체가 모두 학생의 자율에 의해 영위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건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 여건상 교과목 수업시간 이외의 활동에 한정된 활동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율활동의 개념 규정은 학교 공동체의 의미를 부각시켜야 한다. 한 학교에서 생활한다는 건 바로 지역 공동체와 우정 공동체의 기본조건이 된다. 따라서 학교의 자율활동은 학급단위를 넘어 학년단위, 그리고 학교 단위로 확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율활동의 목표, 즉 공동체의 삶 자체를 멋지고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율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조건들이 많다. 학교의 일과 시간표가 너무 빈틈없이 짜여져 있다는 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할 일이 학교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결정할 일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 그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과 아닌 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자율활동을 위해 수업시간 운영의 융통성을 과감하게 증대시켜야 하고 교사가 민주적으로 행동하도록 강한 리더십과 영향력을 보여야 하며 학칙을 위시한 제반 규정상에 허용된 범위에서 최대한의 학생 자율성과 이에 따른 활동을 인정해줘야 한다. 자연주의 교육사상가인 루소는 ‘에밀’에서 “모든 건 조물주의 손으로부터 나왔을 때는 선했으나 인간의 손에 닿으면서 악하게 됐다”며 인공적으로 문화를 부여하는 환경과 전통적인 교육에 의해 인간은 퇴락하는만큼 참다운 자연성의 선과 미를 육성시키는 교육을 주장했다. 다원적인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사고는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빠져 심각한 이기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중심적 사고로 전환돼야 한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그가 속한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따라서 개개인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질서,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고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의 개발과 공동체적 의식의 함양으로 자아정체성 확립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키워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의 맡은 바 역할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인격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윤완 벌말초교 교감·교육학박사

노인수발보험제도법안 국회 통과 기대

국회에서 노인 수발문제와 관련된 노인수발보헙법(안)이 공청회 등 심의과정을 거치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보건복지상임위에 상정된 노인수발보험법(안)은 1차 공청회를 거친 후 공청회 결과를 토대로 법안소위 심사를 거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 찬반과 수발보험료 부담액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발보험료·정부지원금·이용자 본인부담금을 재원으로 하는 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에 대한 찬성률은 91.4%로 나타났고 응답자의 64.2%는 국민이 부담할 수발보험료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어느 누구도 노인요양보호 및 가족부양의 한계와 사회적 대책 마련 등의 시급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리운영 주체나 부담률 등 여러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경우 과연 기대하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까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현재 논의되는 내용들은 중증 노인 보살핌을 포괄할 수 있을 정도다. 이용자는 급여비용의 20%를 부담하는 것으로 설계됐는데(기초생활수급자는 본인부담금이 없고 차상위계층은 10% 부담), 20%가 어느 수준일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현재 수준으로 매월 30만~40만원대 부담이 예상된다(건강보험료 추가분 이외에 급여시 부담은 별도임). 가난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큰 부담이 되는만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다. 즉 가정 내 노인수발 일손을 덜어 주고 여성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키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현금 급여는 여성들이 취업을 중단하고 가정 내에서 노인 요양에 종사한다든지, 혹은 노인들이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는 등의 오용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 제도가 오는 2008년 7월 시행되기 위해선 준비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만큼 쟁점사항들이 심도있게 논의돼 반드시 연내 통과되길 기대한다. 그래서 노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노후를 맞고 노인수발 부담에서 벗어나 건강한 가정이 유지될 수 있길 기대한다. /신계용 경기도의회 의원

농업·농촌의 가치

물과 공기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자원이지만 희소성이 없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잊고 지내듯, 농업·농촌도 우리가 모르고 지내는 보이지 않는 다원적 가치가 많음에도 그 가치가 간과되고 있다. 그러면 농업·농촌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우선 논·밭은 농산물 생산이란 경제적 효과 이외에 환경보전, 홍수조절, 자원확보 등의 다양한 기능이 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49조3천400억원 상당의 가치(농촌경제연구원 발표자료)가 있다. 논밭의 사회·경제적 효과로는 농산물 생산을 통한 경제안정과 일자리 제공, 사회안정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20조4천억원 상당의 가치(지난 2000년 기준)가 있다. 또 논밭에 저장 가능한 물이 31억9천만t으로 홍수조절 효과가 커 17조8천98억원 상당의 경제적 가치로 평가됐다. 이밖에도 국내외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논·밭의 환경보전 기능도 높이 평가받는다. 매년 논은 산소 1천11만t을 발생시켜 대기정화기능(3조5천347억원 상당)을 수행하고 있고 논의 경우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수질정화기능(2조1천900억원 〃)도 있다. 밭 경작으로 토양 유실이 억제되는 양이 6천65만t으로 토양보전 효과(4천815억원 〃)가 있고 농작물 재배 때 증발이나 식물호흡을 통해 수분 61억9천만t이 빠져 나와 대기온도를 조절하는 효과(1조8천570억원 〃)도 있다. 지하수 함양을 통한 수자원 확보(1조8천451억원 〃), 농촌환경 보전(7천451억원 〃), 휴양 및 레저공간 제공(4천768억원 〃), 전통문화 보전 등 다양한 자원확보기능 등이 있다. 국내 다른 산업들이 급성장한 이면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농업을 포기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농지감소와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며 환경오염의 가속화와 각종 자연재해로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엄청날 것이다. 농촌 공동화(空洞化)는 결국 비농업부문으로 전가돼 환경·교통·주택난 등을 유발해 우리 삶의 질은 저하된다.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농업·농촌문제에 대해 깊게 고뇌해야 한다. 우리 농업에는 5천년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담겨 있다. 이것을 버린다면 민족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고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원망의 소리를 듣는다. /박원식 농협 인천지역본부장

이해(理解)와 기호(嗜好)

얼마 전 잭슨폴록의 그림이 지금까지 회화사상 최고가였던 클림트의 그림을 제치고 우리 돈으로 1천330억원에 팔렸다. 폴록의 그림은 몇가지 색의 액체상태 물감을 캔버스에 장난치듯 줄줄 뿌린 그림이다. 미술용어로 드리핑 기법이다. “아니 저런 그림이 그렇게 비싸다니! 내가 뿌려도 저 정도 아니 더 멋지게 뿌릴 수 있을텐데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란 생각이 들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의 답으로 종종 이렇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평화를 사랑합시다’란 문구를 길가는 어떤 사람이 외친 것과 인류를 위해 헌신한 휴머니스트가 외친 것을 비교한다면 받아들여지는 감도가 같을까? 매우 다를 것이다. 더구나 참혹하게 인권이 유린되는 큰 사건이 지구촌을 휩쓰는 상황에서 인류가 존경하는 대표적 휴머니스트가 평화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면 더욱 절실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진다. 폴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가이다. 그의 드리핑 기법은 시대적 정신문화를 대변한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영향을 잇는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기법은 자동기술법이다. 글자 그대로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이성의 통제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역사 이래 이성과 의식을 신봉해오던 인류가 재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을 겪으면서 비이성·비합리·무의식 영역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도 역시 참기 힘든 비극적 상황을 겪는다면 자신의 존재나 주변의 대상들이 다른 각도로 보인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평범한 것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폴록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그림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그저 인간의 비이성적 심연을 막힘없이 흘려 내보내는 추상표현주의의 액션페인팅이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 폴록의 그림에 감동을 느끼고 좋아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멋진 풍경화나 정물화만이 진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폴록의 그림과 같은 현대미술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도외시해서도 안된다. 즉, 예술작품에 대한 기호는 자신의 고유한 권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가 기호로 이어진다면 더욱 다행이다. /박동수 의왕미술협회장

고령화의 희망

매주 목요일, ‘평생교육개론’ 과목을 강의하는 야간 강의실에서 정년을 앞둔 교장·교감 선생님과 교직에 몸담은 젊은 교사, 그리고 평생교육 시설에 종사하는 중·장년 학생들을 만난다. 어느 교장 선생님은 나이들어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을 “젊었을 때와는 다른 새로움, 배우고 아는만큼 텅 빈 가슴이 채워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시간에는 항상 부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시점에서 무의미하고 역할을 상실한다는 노년기 위기 앞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배움의 시간을 서로 갖게 된다. 교육은 청년기까지의 일정한 시기에만 이뤄지는 게 아니고 전일제 교육의 틀을 갖춘 학교라는 일정한 장소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 자체가 학습의 공간이고 시간이다. 평생교육 강의실에는 교수와 학생 등만 있는 게 아니라 멘토와 멘티가 존재할뿐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딧세이 왕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그의 아들 텔레마쿠스를 친구 멘토에게 맡겼다. 10여년이 지나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텔레마쿠스는 훌륭한 통치자로 성장해 있었다. 여기서 유래한 멘토(Mentor)란 용어는 때로는 부모나 상담자, 교사 등의 역할을 맡는 지도자를 말한다.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은퇴와 더불어 시간과 건강의 여유는 갈수록 늘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응답들이 많았다. 이제 노년은 병들고 쇠약하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지저분하다는 통념은 집단의 상대적인 비교에서 나타난 편견들에 불과하다. 고령화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많다. 40대는 90세까지의 노후를 설계해야 한다는 단편적인 주장 등을 보더라도 장수의 인간 욕망이 가시화되고 있고 경제적 여건과는 상관없이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배움의 욕구가 증가하며 길어진 노년기를 통해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정년은 사회적 압력이 아니라 자연스런 인생의 휴식 단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령을 초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며 활동적인 생활을 지속하는 시기이다. 어쨌든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노년과 관련, 일본은 일과 함께 하는 평생현역사회를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은 신세대, 프랑스는 제3의 인생 등이라며 노년기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형수 (사)한국삶의질연구원 이사 교육학박사

구절초 예찬

늦가을 찬 서리 내릴 무렵 들녘을 나서면 어느 꽃들보다도 순수하고 은은한 향기로 낮은 곳에 무리지어 있는 들국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들국화는 전국 산야에 지천으로 분포된 가을꽃으로 어떤 특정한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국화과에 속하는 산국이나 감국,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 등을 뭉뚱그려 부르는 ‘들에 피는 국화’란 뜻이다. 이중 으뜸은 구절초이며 여러해살이 풀로 다른 꽃과는 달리 흰색이지만 더러 붉은빛을 띠기도 하며 쑥부쟁이처럼 가지를 많이 치지 않고 대개 높은 산간지대 능선부근에서 군락으로 자란다. 구절초는 만주, 몽골, 일본 등 동북아에만 분포하며 청초하고 그윽한 향기가 있어 최근 화단조경, 관상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구절초는 변이가 심해 잎 모양이 다양하며 꽃 지름이 8㎝에 이를 정도로 큰 것도 있고 잎이 두꺼우며 윤이 나는 것도 있다. 이런 특징들에 의해 산구절초, 한라구절초, 바위구절초, 큰구절초, 가는잎구절초 등으로 나눠져 불리기도 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조금 모자란 여인으로 등장, 강원도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며 순정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여배우 머리에 꼽혔던 꽃이 바로 구절초이다. 오래 전 작고한 박용래 시인은 구절초를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우리 몸을 덥혀주는 기능이 있어 줄기와 잎을 말려 손발이 차거나 산후 냉기가 있을 때 달여 마시는 상비약으로 써왔다. 생리불순이나 불임증 등도 다스리고 소화가 되지 않는 경우 식후에 뜨겁게 마시면 금새 속이 편안해진다. 5월 단오에 줄기가 5마디가 되고 음력 9월9일 아홉마디가 되며 이때 채취해야 좋은 약이 된다. 조상들은 싹이 올라오면 나물로 먹었고 잎은 백설기를 찔 때 떡 위에 얹어 방향물질로 하여금 세균번식을 억제하도록 해 며칠씩 두고 먹어도 부패하지 않았다. 화성 서신면 인근 바닷가에 국화도라는 섬이 있다. 이곳을 오가는 배가 전곡항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내년부터 국화도 가는 길과 작은 섬에 연차적으로 들국화를 심어 잠시라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서해포구를 찾는 도시민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꽃길·꽃동산이 조성된다. 국화도 가는 길에 아름다운 들국화가 무더기로 피어난다면 화성의 가을 풍경은 더욱 맑고 아름다워지리라. /김경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경기부양과 합리적 기대

내년 경기가 하강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위적인 부양책은 없다던 정부의 이런 표현을 보면 그만큼 경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경기부양이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 등 총지출을 증가시켜 국민총생산을 끌어 올리자는 것인데 정책수단으로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재정정책에는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인하하는 방법이 있다. 앞으로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할 재량적 재정정책으로는 세금인하보다 정부지출 확대가 점쳐지고 있다. 정부지출 확대란 예산을 늘리는 동시에 이를 조기 집행,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복안이다. 이 경우 재정적자가 우려된다.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보다 직접적인 조치로는 최근 발표된 건설경기 부양책을 들 수 있다. 다음 통화정책 수단으로는 통화공급량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방법이 있는데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한국은행이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통화공급을 늘리기 보다는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통화공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신 금리를 내리면 대출이 늘어 투자가 늘고 국민소득 증가를 가져온다. 그러나 부동산 억제를 위해 먼저 금리인상을 단행한 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정부의 의도대로 경기부양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효과가 예상대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루카스가 주장한 이 이론은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활용,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문에 이 이론에 따르면 정책당국의 시장개입에 의한 재량적 재정 및 통화정책은 무력화되거나 별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최근 정부의 잇단 부동산 정책에도 집값이 계속 뛰는 까닭도 이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합리적으로 잘못 판단, 손실을 본 후 스스로 교정해 본 경험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시행하려는 정책에 대해 과거경험이나 현재 정보를 활용, 정책의 방향과 낌새를 알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경기부양책은 무력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어떤 제도시행 이전에 과거에 불신할만한 행적이나 현재의 불투명한 제도는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길현 신용보증기금 군포지점장 경제학 박사

느림의 가치

너무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달려가고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도 모르면서 바쁨을 외치고 있다.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일들에 지쳐 밤이면 고단히 잠든다. 경쟁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전투에 출정하는 용사처럼 무장하고 바쁜 회오리 바람 속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희망하며 얼마나 거대한 일들을 일궈며 살아가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바쁘게 했지만 실상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창출해내고 마음 속 뿌리부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나태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인 반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이는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멋진 풍경을 발견한 뒤 자동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 것, 또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피에르 쌍소의 ‘느림의 철학’은 “느림의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물질과 효율, 경쟁과 속도 등으로 규정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휴식 또한 인간적인 만족으로 이어지는 효율과 속도가 있어야 휴식한 것 같고 하루를 살아가며 움직이는 일상에서도 능률과 성공 등에 연연하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1년이나 10년을 기다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충만감, 마음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깊은 내적 고요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몇년동안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삶의 경험이 느림의 철학적 삶이었다. 어린 시절 가끔 친구들은 흙밭을 놀이터 삼아 흙과 나무와 풀벌레와 어울려 놀고, 붉은 노을이 천천히 하늘을 물들일 때까지 긴 하루를 즐겼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빠른 인터넷 게임이나 속도감 넘치는 오락을 바쁘게 즐기고 많은 과제물과 과외활동으로 빠르게 움직여도 하루가 부족하고 빈곤하다.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떠밀려 기계적인 소리에 바쁘게 살아간다. 조금은 천천히 살아가면 좋겠다. 11월의 늦은 가을날 천천히 은행잎 쌓인 거리를 걸어보자.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숨을 고르어 보자. 느림 속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자.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엊그제 대한민국 60만 수험생들이 입시 한파와 긴장 속에서 시험문제를 풀면서 떨었다. 그들은 세상의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귀중한 청춘을 다 바쳐 오직 수능에만 매달렸다. 예로부터 학생들은 나라가 어렵던 시기에는 사회 변화의 당당한 주체였다. 그러나 요즘은 오직 입시 때문에 학교와 학원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교육정책에 허덕이고 있다. 그 틈에 국회는 교육과 정치를 통합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찬반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교육이 정치적 정치에 예속화돼 반대한다는 쪽과 마침내 교육주권이 되돌려졌다고 대환영한다는 쪽도 있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신성한 현장이 학교이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을 위한 교육이라면 아예 학교를 폐지하고 사교육으로 전환한다면 그 효과가 빠를 것이다. 우리 교육정책은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 결코 탁상공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몇몇 정치인들은 지방교육까지 정치하겠다고 나섰다.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대상부터 차이가 있다. 가뜩이나 국민들이 전문성도 없는 정치인을 뽑고 뒤늦게 후회하고 불신하는 게 현실인데, 교육현장까지 정치판으로 오염될까 걱정이다. 물론 당초 발상대로 교육감 및 교육위원 등을 직선으로 뽑는 것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많은 의견 수렴을 한 탓이겠지만, 현재의 법안대로라면 교육위원회를 정치집단으로 끌어오겠다는 기발한 발상이다. 그때가 되면 유치원이나 초·중등 교원들도 정당비례대표로 공천받아 교육위원으로 당선될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학교에서도 정치활동이 활발해진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으로 나서지 못했던 일부 교원들이 대거 교육계에서 정치계로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선거철이면 학생들의 가방 속에서 교과서 대신 출마하는 선생님들의 선거홍보물이 가득 담길 수도 있다. /이원규 테마기행예술제운영위원장

“다 아시잖아요”

지난 16일은 수학능력(수능) 시험일이었다. 수능 며칠 전에는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등 35개 시민단체들도 수험생들이 수능을 편안하게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날 하루만이라도 논쟁이나 투쟁을 멈춰 주세요”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매년 온 나라는 겨울을 맞기 위한 홍역처럼 수능을 치른다. 수능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수험생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온 나라가 이렇게 떠들썩 하니 수험생들은 더욱 불안해진다. 친척들이나 어른들이 “시험 잘 봐”라고 하는 인사말조차 수험생들에겐 스트레스가 된다. 12년동안 공부한 결과를 하루에 평가받으니, 긴장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수능을 치르고 집에 온 딸이 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한 여학생이 첫째 시간 종료 종이 울렸는데도 답을 답안지에 다 옮겨 적지 못했다. 그 여학생은 애걸했지만 감독관은 “책임을 질 수 없다”며 답안지를 걷어갔다. 그 여학생은 교실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며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다. 감독관이 교실을 나가려 할 때 바지를 잡고는 “다 아시잖아요? 다 아시잖아요!”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몇주일 전에는 미국에 사는 처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자녀는 엄마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SAT(미국식 수능)를 보고 왔다고 했다. 엄마가 자녀의 장래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도, 수험생이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토익이나 토플처럼 1년에 7회 정도 SAT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없다. 이처럼 교육열이 높다고 하는 나라에서 수능을 하루에 본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교육열이 높은 국가라면 우리 학생들을 수능 스트레스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한번의 실수나 불운이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교육부가 한해에 두 번 수능시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해라도 앞당겨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자기 자식의 성적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우리 자녀들은 수능의 중압감에 짓눌려 생활해야 한다. “다 아시잖아요”란 수험생의 절규를 통해 우리의 교육적 직무 유기를 깨달아야 한다. 교육열은 교육 욕심이 아니라, 교육에 관한 열정이자 강한 에너지다. 이 강렬한 국민적 교육열을 한데 모아 당면한 교육의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녹여나가야 한다. /이병석 경민대 교수

고교 평준화정책 개선해야

학교 평준화 이전의 우리 사회는 전형적인 학력사회로서 고액과외가 성행,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이 가중되고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식 습득과 인성교육을 함께 병행시키지 못하는 모순을 낳았다. 고교평준화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평준화정책이 기회의 평등과 과도한 사교육 부담 해소라는 순기능에도 평준화로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수월성 교육이 도외시되는 역기능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는 평준화정책이 교육의 질적 하향평준화를 낳고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데다 세계화에 걸맞는 인재 양성을 위한 수월성교육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2002년부터 5개 학군에서 고교평준화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의정부·안산·광명에서도 평준화 도입을 위한 추진 열기가 뜨겁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의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평준화와 비평준화에 대한 교육적 가치의 양면성이 존재하고 다양한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생각은 백가쟁명식 논쟁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로 계속돼 왔다. 여기에서 고교평준화정책에 대한 보완·개선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경기도교육청이 시행하고 있는 교과 특기자 육성정책은 평준화 교육의 대안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교과 특기자 육성교로 지정된 학교는 교과 특성화분야를 선정, 평준화 틀 안에서 별도로 교과 특기자(학교별 20명 이내)를 일정한 전형기준에 따라 선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평준화 교육에서 늘 따라다니는 교육의 질적 하향평준화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고려한 평준화 교육의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지정 학교와 학생수, 지정과목 등을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인적·재정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해 더 많은 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학교 선택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둘째, 위의 방안과는 별개로 평준화가 실시되고 있는 5개 학군별로 학생수에 비례, 학교 3~4곳을 소위 공립 특성학교형태로 자유입시학교를 지정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평준화 권역에 평준화와 비평준화 학교를 존속시켜 지정된 특성학교 입학전형은 내신과 연합고사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평준화정책에서 파생되는 교육의 획일성과 불합리성 등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완 벌말초교 교감·교육학박사

기부문화 정착과 복지사회 구현

필자가 도의원이 된 뒤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행사가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민간인 시절에는 행사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초청장들이 쌓인다. 한마음축제나 가을운동회, 어울림마당 등 포장을 그럴듯하게 한 뒤 치러지는 행사에 한편으론 혈세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역 주민들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유독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행사에는 대부분 지역 주변의 크고 작은 기업이나 종교단체, 개인업체 등이 발벗고 나서는 기부로 치러진다. 허리가 꼬부장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간간이 눈에 띈다)들이 자리깔고 앉아 손주·손녀뻘 되는 응원도우미들의 구령에 맞춰 겨우 따라 하는 모습을 뵈노라면, 오늘 하루의 웃음으로 조금이나마 행복해지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처럼 기부하는 분들은 기부만 하는 게 아니라 그날 하루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들 곁에서 함께 있으면서 함께 놀아드리고, 도와드린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고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좋은 선행을 하는 기업이나 사람에 대해선 정말 열심히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존경해야 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때, 기부가 문화의 형태로 자리 매김할 때 건강한 복지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점점 늘어나는 복지계층의 다양한 욕구들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 시책이나 정부 재정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이 나설 때 나누고 쪼개는 마음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기부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국민교육을 펼쳐야 한다. 화폐와 현물만이 기부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시간과 능력, 지식과 기술 등이 모두 기부가 될 수 있다는 의식교육이 필요하고 한사람 한사람 전염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 있는 기부나 봉사 내용 등을 이웃들에게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부는 잘 사는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내 자신도 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되는 그날, 우리는 진정한 복지사회를 향유할 수 있다. /신계용 경기도의회 의원

21세기도 식량안보 중요

국제 곡물시장이 심상찮다. 농림부의 세계 곡물수급동향 및 대책에 따르면 올해 곡물생산량은 19억6천700만t으로 지난 2004년 이후 최저 수준인 반면, 소비량은 지난 75년 이후 최고 수준인 20억4천300만t으로 소비량이 생산량을 크게 웃돌 전망이다. 중국의 쌀 소비량 증가 등으로 세계시장 쌀 재고율도 지난 74년 이후 32년만에 최저 수준이 예상된다. 현재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25%대 수준이다. 지난 98년까지만 해도 33%이었으나 갈수록 줄고 있다.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일본과 더불어 가장 낮은 수준인데 프랑스 222%, 영국 125%, 스웨덴 103% 등에 크게 밑도는데다 중립국인 스위스(53%)에도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식량 자급률 면에서만 본다면 우리는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안보능력이 뒤떨어진 나라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개방론 영향 때문이다. 리카도가 200년 전 설파했던 비교우위론은 오늘날 식량자급률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국내 일부 경제계와 학계, 언론계는 물론 정부 관료까지 모두 비교우위론 마술에 걸려있다. 이들은 틈만 나면 “농업은 시급히 구조 조정해야 할 비교열위의 산업”이거나 “싼 농산물 수입하고 비싼 공산품을 팔면 될 일”, 또는 “쌀도 관세화로 수입하는 게 국민경제를 위해 이익” 등으로 여론을 호도한다. 이들에게 식량자급률, 식량의 무기화 등의 논리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낡은 사고일뿐이다. 농산물 수출국들은 무역자유화를 통해 식량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식량수출국의 경제가 악화되거나 식량부족사태가 발생하면 식량수입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무역자유화를 통해 식량안보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건 강대국 논리일뿐이다. 국제사회 현실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관련해선 매우 냉혹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적 효용성만으로 농업을 평가 절하하는 비교우위론이 우리 사회 지도층에 만연돼있는 한 식량안보체제 확립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세계 쌀 재고율 급락이 우리에게 당장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기상재해 등으로 쌀 부족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만큼 식량안보차원의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박원식 농협 인천지역본부장

확대된 미술 개념

우리는 흔히 미술하면 멋진 풍경화나 인물화를 연상한다. 그러나 미술의 개념이 전통적으로 단순히 ‘그리는 것’에서 현대에는 ‘감각적 의사소통’이란 의미로 확대됐다. 즉 어떠한 방식으로든 형태를 통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면 모두 미술 범주에 넣고 있다. 미술이란 말이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기술’이란 제한적 의미가 아니라 이제는 확대된 미술 개념으로서의 ‘조형’이라는 말로 대치되고 있다. 미술가가 창작을 하는 곳을 예전에는 ‘화실’이라고 했는데 요즈음에는 ‘작업실’이란 말이 보편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형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형태를 다룬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다시 말하면 자연의 형태이든 인공의 형태이든 관계없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담아 이를 볼 수 있도록 시각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조형이다. 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진 칸딘스키는 우연한 기회에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에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림에는 꼭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 즉 산·나무·집·사람 형태가 없어도 감동적인 그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조형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 매우 폭이 넓다. 실례로 구상회화, 비구상회화, 마르셀 뒤샹처럼 기성 상업제품의 작품화, 팝아트에서의 많은 오브제 작품들, 크리스토 같은 작가처럼 포장된 건물 자체가 작품인 경우, 세계적인 조각가 세자르처럼 폐차장에서 압축된 자동차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는 경우,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등이다. 어떤 방법이든, 어떤 형식이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과 감정 등을 매개하는 게 바로 미술, 즉 다시 말하면 조형이다. 즉, 물감이나 석고로 표현된 형태이든, 이미 만들어진 물건에서 발견되는 형태이든, 행위에서 연상되는 형태이든 구태여 그 의미를 좁게 한정짓지 않는 경향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확대된 미술 개념으로 현대미술을 본다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것이다. 국내의 광주 비엔날레나 해외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때 이러한 생각을 갖고 본다면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당혹감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박동수 의왕미술협회장

중년의 위기와 영화요법

가을과 겨울이 섞여 찾아오는 환절기이다. 단풍이 물든 오솔길처럼 가을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계절이다. 생애동안 우리 인생은 사춘기, 갱년기, 노년기라는 인생주기의 정서적 위기를 경험한다. 청년기 위기는 소망에 대한 좌절로 고민하고 중년기 위기는 자아실현 목표 달성에 대한 성공과 실패라는 회한이며 노년기는 상실에 대한 절망감에서 온다. 어느 인생의 단계보다도 무거운 심리적 저항으로 나타난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은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미래 노년의 지표를 설정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선 중년이다. 중년은 그래서 제2의 사춘기와 같은 위기의 단계여서 ‘사추기’라고도 부른다. 중년기는 가정적으로 안정을 찾고 사회적으로 중추를 이루는 시기인 반면, 오감의 쇠퇴를 피부로 느끼는 신체적 노화의 격변기이며 퇴직이란 사회적 역할을 상실하는 방황과 감정의 격랑기인만큼 인생의 상처와 우울증에 자기극복으로 대응한다. 갱년기를 폐경기와 동일시하는 측면에서 가을은 40~50대 계절 감각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위기는 전환점이고 위험과 기회이며 불안정한 시기이지만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영화감상치료법이 중시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영화 ‘듀엣 포 원’의 주인공인 파란만장한 여인 스테파니 앤더슨이 생각난다. 가을의 기온과도 같은 알코올 도수 13도의 장밋빛 칵테일을 상징하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중년의 위기를 맞은 가장 레스터 번햄은 “나는 42세, 이제 1년 안에 죽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모른다. 어찌 보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다”란 독백과 “당신은 나를 기억 못하겠지요, 나도 나를 기억할 수 없으니”란 좌절과 분노를 떠올린다. 이외에도 ‘박하사탕’, ‘쉘 위 댄스’, ‘브리지 부부’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길’이나 ‘역마차’, ‘13층’ 등은 삶의 고뇌와 인생의 가치를 알려준다. 계절병과 같은 우울증이라면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따뜻한 인간의 정이 묻어나는 ‘일 포스티노’와 박진감 넘치는 007 시리즈를 권하고 싶다. 중년으로 노년이 들려주는 지혜를 살피고 싶다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나 ‘파인딩 포레스트’, ‘드라이빙 미스데이지’, ‘황금 연못’ 등의 영화 감상으로 가을의 정취를 나눌만하다. /김형수 (사)한국삶의질연구원 이사 교육학 박사

‘화성’ 인삼 잠재적 가치

오래 전부터 고려 인삼은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 특산품이며 건강 의용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건강에 탁월한 고려 인삼은 지난 90년 1억달러 이상 수출했으나 미국과 캐나다,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지난 2002년 5천만달러 규모로 떨어졌고 최근 점진적인 증가추세이지만 아직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극히 낮은 실정이다. 이는 고려 인삼이 홍콩시장에서 다른 나라 인삼보다 5배 이상 비싸게 팔리면서 뿌리삼 주 소비시장인 중화권 소비자들에게 확산된 “고려인삼을 먹으면 열이 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정작 고려 인삼은 말초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줘 체표면 온도를 높여주는만큼 땀으로 배출되는 기 손실을 막아 건강을 증진시킨다. 특히 인삼 주성분인 사포닌이 중국삼, 미국삼 등에는 15종 정도인데 반해 고려 인삼은 34종이나 되며 폐암이나 자궁암 세포 등에 투여했을 때 고려인삼이 70% 치유 효과가 있었고 중국삼은 30%에 머물렀다는 임상시험 결과만 보아도 우수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고려 인삼 효능의 잘못된 인식 전환을 위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를 다각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며칠 전 국내 인삼 전문가들과 무주에서 1박2일동안 화성 인삼 산업 발전을 위해 진지하고 열띤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 얻어진 결론은 화성이 지닌 유리한 해양성 기후와 토양을 바탕으로 인삼을 재배한다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우수한 고품질 6년근 생산이 가능하고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의 잠재가치가 무한하다는 점이었다. 인삼은 연작장해가 심해 한번 재배 된 곳에선 다시 재배할 수 없다. 기존의 유명 인삼 지역이 수명을 다한다면 화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활한 적정 재배지, 그린벨트를 활용한 우량 원료삼 공급, 토양검정 및 수질 분석, 생력화, 생산· 가공·유통 일관화, GAP 및 생산 이력제 실시, 수삼센터 건립, 전업농 육성 등을 인삼특구 조성과 지역 클러스터 사업 등으로 풀어 간다면 머지않아 세계에서 인정받는 청정 ‘화성’ 인삼 브랜드가 탄생하리라 확신한다. /김경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투자는 기업의 성장동력

훌륭한 자녀를 바라거든 자녀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선행돼야 하듯, 기업이 성장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99.5%로 IBM 등 세계 주요 기업들의 182.3%보다 거의 두배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IMF 직전이었던 지난 96년 30대 재벌의 평균 부채비율이 무려 427.7%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미국같은 선진국들보다 오히려 건실해졌다는 건 그만큼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재무구조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기업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다고 기업의 가치나 성장성이 3~4배 더 높아졌는가? 물론 개별 기업 가치는 예전에 비해 조금 높아졌을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기업 투자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5년동안 국내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1.1%로 지난 91년부터 5년동안 11.1%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기업 설비투자가 저조해 더 큰 문제라는데 있다. 실질투자가 위축되면 한 나라의 성장기반이 취약해져 이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몇년 뒤 국민들을 먹여살릴 기반이 흔들린다. 투자의 중요성은 경제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 없이는 어떤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면 왜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는가? 우선 기업이 투자하려고 해도 예전처럼 큰 이윤을 기대할 수 없는데다 각종 원부자재 상승, 치솟는 땅값, 노조 영향력 증대, 각종 규제 제약 등으로 기업을 둘러싼 경제환경과 경제정책 등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기업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또한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기업하려는 의지가 꺾이고 투자를 망설인다. 하지만 기업 성장동력은 투자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이다. 그러니 기업들은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지 말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적정 수준의 돈을 빌려 투자를 늘려야 한다. 미래에는 무엇을 먹고 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은 투자밖에 없다. /최길현 신용보증기금 군포지점장

그리운 금강산

금강산을 다녀왔다. 무수히 떠도는 소문들만 듣고 실상 그날 아침 핵실험을 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일행은 화진포 아산 휴게소를 거쳐,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넘었다. 지나면서 바라보이는 동해의 푸른 물들과 해변과 바다는 그어 놓은 깊은 경계를 망각하고 서로를 얼싸 안고 흰 물살을 가르며 파도치고 있었다. 어쩌면 바다는 조용히 그 자리에 있는데 정작 파도치는 건, 깊은 경계를 쌓고 사는 우리들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향을 잃고 목 놓아 울어도 말없이 안아주는 넉넉한 바다였다. 한편으로 임진강이 길게 누워 흐르고 있는 곁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도라산역도 볼 수 있었다. 민통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남쪽의 최북단 내 기차역이 개통됐으나 한번도 달려보지 못한 새마을호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애원하며 서있었다. 민통선 안, 그곳이 바로 군사분계선이었다. 무언가 그곳에는 특별한 게 있을 것이란 기대와 설렘으로 통과했는데, 가을걷이를 끝낸 논과 낮은 산들, 그리고 그 주위는 평온만 감싸고 있었다. 흰 왜가리들이 유유히 날아다니는 그곳은 전쟁터같은 험한 장소라기보다는 평화로움을 간직한 남과 북의 대치장소였다. 총과 붉은 깃발을 든 어린 군인의 선한 눈빛, 수줍고 예의 바른 헌병들의 모습 등이 분단의 아픈 자국이 미움이 아니라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북측 검문소를 지나면서 보이는 민가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일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북측 사람들이나 붉은 머플러를 목에 묶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멀리 보였다. 곳곳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주석비나 구호처럼 쓰인 바위 글발을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그런대로 관광안내원의 고운 민요가락도 들을 수 있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핵실험에도 아무 일도 없는듯 낙엽에 불타는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 풍악산과 외금강 만물상 등지에는 하늘이 빚어 놓은 만물의 작품이 놓여있었다. 상류담과 옥류폭포 등이 천상의 보석 같은 옥빛을 품고 있었다. 금강산은 자연이 한반도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란 찬사를 받는 곳으로 민족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가 하나 되려는 시도가 이뤄진 장소, 불안정하게나마 남한과 북한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미래의 통일된 한국을 미리 경험하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명산으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리운 금강산, 이처럼 아름다운 장소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차영미 성빈센트병원장

자전거 예찬론

늦은 가을비가 진종일 내리더니 날씨가 쌀쌀해졌다. 그간 오산문화탐사 ‘우리동네 오산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전거를 늘 고맙게 이용했다. 작품 연재 12편 예정 중 11편이 탈고됐다. 마지막 이야기 ‘청호동에서 부산동까지’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겠다. 30여년 전, 필자의 아버지 세대만해도 자전거 1대는 생존을 위한 밑천이었다. 배달도, 장사도 자전거로 하시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진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공무원들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업무를 보았다. 그때의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예전보다 땅의 면적이 넓어진 것도 아닌데 요즘의 그들은 승용차를 이용한다. 공무가 끝나면 휑하니 빠르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면 실례일까? 그러나 현실이다. 과거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선생님도, 조그만 동네 앞 상점 평상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민원을 청취하던 예전의 공무원들의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자전거는 다른 교통수단들과 달리 짐승을 이용한다거나, 공해를 유발하는 석탄이나 휘발유를 태우지도, 전기나 화학물질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말과 뜻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간다. 몇해 전 필자는 ‘자전거 도시’ 로 알려진 경북 상주시를 견학한 적이 있다. 그곳 시민들은 역시 자전거 이용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승용차를 비롯한 차량들도 자전거 탑승자들을 우선 배려한다. 등·하굣길이나 출·퇴근길 남녀노소가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자전거 행렬은 장관이었다. 자전거는 보행의 약 4배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도심지에선 오히려 교통체증을 피하며 기동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주차가 가능하다. 물론 현 실정의 도로망이 자전거 타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도심의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공무원들부터 솔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집이 멀다면 당연히 가까운 직장 곁으로 이사하는 게 참 공복이 아니겠는가? 자전거도로가 잘 됐는지, 잘못 됐는지는 본인들이 이용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이원규 테마기행예술제운영위원장

글로벌 리더의 조건

지난달 13일은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UN 사무총장으로 결정돼 수락 연설을 한 날이다. 충북 음성 출신의 시골 소년이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UN 사무총장이 된 날이다. 국민들은 정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했다. 각 매스컴들마다 반 장관에 대해 크게 보도했다. 반 장관이 고교시절 영어웅변대회에서 입상, 백악관을 방문,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외교관의 꿈꾸게 됐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반 장관이 진정 글로벌 리더인 UN 사무총장이 됨을 계기로 글로벌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학교들의 교육목표는 지·덕·체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교육목표는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 양성’이다. 글로벌 리더란 추상적인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교육만 잘 시키면 글로벌 리더는 저절로 양성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세계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8천만명 정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7천만명 정도 있다. 이들이 다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영어구사능력은 글로벌 리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반 장관은 유학파가 아니다. 더구나 조기유학파는 더욱 아니다. 그의 영어 발음에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정확한 영어 표현력을 갖췄다. 자녀들을 글로벌 리더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며 조기유학을 시키는 부모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그럼 글로벌 리더로서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 인품과 실력이다. 반 장관이 UN 사무총장이 된 건 영어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매스컴들은 그가 안보리의 만장일치로 UN 사무총장에 선출된 이유를 온화하면서도 성실한 인품과 거대한 UN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확실한 실력을 들고 있다. 여기서 ‘글로벌 리더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는 학교들은 시사하는 바를 얻어야 한다. 영어를 앵무새처럼 듣고 따라 하는 정도의 영어기술을 훈련시키는 것으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인품과 세계인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리더를 양성해야 한다. 이런 인품과 실력이 영어로 표현될 때 비로소 글로벌 리더가 되지 않을까? /이병석 경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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